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44)
주먹을 휘둘렀다. 눈처럼 새하얀 빛이 번쩍이며 선천진기가 뿜어졌다. ‘만약……’ 새하얀 빛 속, 기억의 편린이 떠올랐다. 젊었을 적부터 여러 전장을 떠돌아다녔다. 정도와 사도에 대해서 알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하고 벌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시간이 지나자 함께하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 웃기도 했고, 울기도 하고, 화내기도 했다. 때로는 무림의 현재나 미래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여 토론하는 등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왔다. ‘만약, 그때 무림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언제나 바보 같은 취급을 받았다. 현실을 모르는 어린아이라고 비웃음 당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던 신념이었고, 외로운 길이었으나 언젠가부터 함께할 사람이 늘어났다. 남궁위무가, 혜만대사가, 제갈중호가, 운광이……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했다. 포기하지 않고 관철해 나가면서 노력한 끝에 전 세대와의 갈등을 끝내고 무림맹의 개혁에도 성공했다. 그날, 떠나지 않았다면 다른 미래가 기다렸을 지도 모른다. 아무도 오지 않는 산속에 앉아 있지 않았겠지. 무림맹주의 은신처에 앉아 바둑을 두며 무림의 미래를 논하거나, 혹은 제자를 들였을 지도 모른다. 삶이 끝나가는 걸 기다리며, 늙은이들끼리 모여서 청승이나 떨고 있을 지도 모르겠지. “아아……” 꺼져 가는 의식 속. 정백은 불현듯 중얼거렸다. “위무야…… 미안하다……” 상천육좌. 정백(正白). 사(死). 사흘 뒤, 무림은 어떠한 소식으로 인해 요동쳤다. 합비가 함락됐다! 무림맹의 성도가 무너졌다.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는 데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무림맹 본부에 암천회의 깃발이 올라왔다!”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아니, 그러면 무림맹이 전쟁에서 패했다는 건가?” 무림맹 본부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난공불락의 성으로 인식됐다. 본부가 합비에 정착한 이후로 패퇴한 역사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전의 사례도 패퇴한 직후 금방 되찾은 경우밖에 없었다. 이번처럼 적군의 손아귀에 떨어진 경우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림인, 아니 정파인에게 그 여파는 상당했다. 얼마냐 극단적이었냐 하면, 본부의 함락 소식을 듣자마자 무림맹이 전멸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헛소문이다!” “암천회의 공작이다!” 정파 무림이 흉흉한 소문으로 난항을 겪기 시작할 때쯤, 정사 연합은 재빨리 수습에 나섰다. “무림맹 본부가 패퇴한 건 맞지만, 전멸한 건 아닐세. 암천회가 승전을 과장해 아군의 심기를 흔들려는 목적이니 현혹되지 말게나.” “휴우, 다행이로군!” “그래도 본부가 함락되어 패퇴한건 맞는 말이 아닌가? 충격이로군.” 무림인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안도하는 사람부터 시작해 실망하거나 혹은 좌절하는 이들 등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무림맹의 패퇴소식으로 혼란이 다 가시기도 전에 또 하나의 악보(惡報)가 정사 연합을 흔들었다. 상천육좌, 권동제가 죽었다! “그 양반이야 원체 나이가 많으니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지 않나?” “이 양반아, 그런 거라면 이런 난리를 부렸겠나? 천명이 다해 눈을 감은 것이 아니라 암천회주의 손에 의해 죽었다네!” “뭣이?” 상천육좌, 권동제의 죽음이었다. 전 세대의 영웅이자 정점에 이른 무인인 만큼, 그 죽음이 큰 화제로 떠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 군사, 제갈중호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자초지종이 밝혀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본부의 함락 건은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전황에 대해서 금세 알게 됐다. “허어, 그런 일이 있을 줄이야……”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세.” 정파인들은 정백과 제갈중호의 희생을 애도했다. “정파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건가?” “이거야 원, 완패나 다름없지 않은가.” 본부의 함락도 문제이거늘 설상가상으로 권동제의 사망 소식으로 인해 정사 연합의 사기는 곤두박질쳤다. 주체가 되는 퇴각대가 대부분 생존해 있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으나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론 본부는 함락되고 정파출신의 상천육좌를 잃기까지 했으니 피해가 커도 너무 컸다. “복잡한 기분이로군.” 사도천주는 무림맹 본부 함락에 눈살을 찌푸렸다. “전에는 그토록 성가신 본부를 어찌 박살 낼지 고민했거늘, 지금 와서는 한탄하고 있으니……” 무림맹도 무림맹이지만 사도천도 입맛이 썼다. 정파만이 아니라 사파의 사기에 영향을 끼치면서 내부에서도 불안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의나 도리가 아닌 이익을 추구하는 사파인 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지금이라도 암천회에 붙어야 하지 않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사문반란 이후 첩자를 싹 다 청소했거늘 싹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정사의 미래가 어둡구나……” * * * 호남, 장사(長沙). ‘당했다.’ 주서천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약 닷새 전의 일이다. 파견대는 귀주에서 합비의 습격 소식을 들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동시에 적의 의도가 무엇인지 저절로 깨닫게 됐다. 귀주는 함정이다. ‘귀주의 암천군이 본대가 아니란 건 느끼고 있었다.’ 요광 외의 간부가 없었으니 당연했다. 암천회의 전력치곤 생각보다 적기도 했다. ‘하지만 설마하니 미끼에 불과할 줄이야……’ 합비에 집결하기 위한 시간 벌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깨닫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합비로 다급하게 돌아갔으나, 습격이 벌어진 이후였다. 전속력을 다한다 할지라도, 귀주에서부터 안휘까지 워낙 거리가 있다보니 제시간에 도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암천회가 무림맹을 함락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속전속결. 물리적으로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결국 합비는커녕 안휘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호남에서 무림맹 패퇴 소식을 듣게 된다. “……” 주서천을 필두로 별동대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못했다. 특히나 제갈수란이 자책으로 침울해했다. “죄송해요…… 제가 좀 더 빨리 본부로 돌아가자고 말했다면……” 별동대주는 단리화지만 목적지나 행동은 제갈수란이 정한다. 그 탓에 책임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괜찮아. 동생 탓이 아니니까.” 단리화가 쓴웃음을 지으며 제갈수란을 위로 했다. “그 사람이 말한 대로야.” 당혜가 단리화의 말에 긍정했다. “귀주의 격돌이 끝난 후에 뒷정리는 필요한 일이기도 했고, 설사 곧바로 돌아갔다 할지라도 다들 지쳐있는 데다가 합비까지는 거리가 상당하니 제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없었을 거야. 설령 도착했어도 피곤에 절어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을 거고.” 주서천도 마찬가지다. 귀주와 안휘는 멀다. 귀주군과 다투던 도중 퇴각하지 않은 이상 제시간에 도착할 순 없었다. “당신도, 마찬가지고.” 당혜가 신경 쓰였는지 주서천을 힐끗 쳐다봤다. ‘다음에는 이번처럼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다.’ 하나 정작 주서천은 그리 침울하진 않았다. 분한 건 분한 거지만, 언제까지나 얽혀 있을 순 없다. 자책한 뒤에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권동제……’ 권동제, 정백의 죽음. 주서천도 정백의 죽음에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를 좋아하진 않는다. 싫어하냐고 묻는다면 싫어한다고 답할 것이다. 앞뒤나 주변을 생각하지도 않은 채 고집만 부리는 늙은이, 아니 어린아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그 최후를 듣고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나름, 책임을 지려 했던 거요? 권동제…… 아니, 정백.’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무림맹은 본부를 잃었으나, 정백과 제갈중호의 희생으로 인해서 비교적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다. 다만 피해가 전무했던 건 아니었다. 최초에 출발한 퇴각대 삼천 중 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천기와 천추가 이끄는 탐색대 탓이었다. 황견의 경우엔 당명인과 맞닥뜨려 죽을 뻔했다. 곧바로 본대가 뒤따라 와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차가운 시체가 되어 합비에 묻혔을 것이다. 또한 무림맹주가 합류하게 되면서 그 힘을 등에 업고 포위망에서 탈출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 뒤로 하남, 산동, 호북 등으로 분산해 각 지역의 정파 세력에 의탁하여 재정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쯤, 상천육좌에 새로운 이름이 들어온다. 암천회주. 전 상천육좌인 권동제를 정면 대결로 쓰러뜨렸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사실 전부터 상천에 이름을 넣어야 하지 않나 싶었으나, 여태껏 나선적이 없으니 그 강함에 대해선 피부에 와닿지 않았었다. 하나 이번 일로 그 무력을 몸소 증명하면서 권동제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됐다. “큰일이로군.” 무사히 퇴각을 끝낸 무림맹이 다음으로 할 일은 우선 임시방편으로라도 본부를 다시 수립하는 것이었다. 장소는 하남의 개봉(開封)이었다. 하남엔 예로부터 북두소림이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치안이 우수한 지역 중 한 곳이었다. 또한 합비 만큼은 아니나 정파인이 상당히 많아서 안성맞춤이었다. “암천회는 어떤가?” “아무래도 전 본부에 자리를 잡으려는 모양입니다. 그 날 이후로 합비에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 무슨 치욕인가!” 장로진의 낯빛이 하나같이 벌겋게 물들었다. 정파의 중심이자 최고 기관이 무너진 것도 모자라 그 자리를 빼앗겼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진정하십시오. 어쩌면 이건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제갈상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회?” 장로진은 순간 제갈상이 조부를 잃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그다음 말에 곧 흥분한 건 자신들이란 걸 깨달았다. “안휘는 북으로 산동, 북서로 하남, 서로 호북, 남으로 강서, 남동으로 절강, 동북은 강소로 둘러싸여 있는 곳입니다.” “아!” 우백이 감탄을 질렀다. “포위됐군요!” 경인사태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산동은 금의상단이 있기도 하고 그 위로 하북이 있어 팽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남에는 소림사가, 호북에는 무당파와 제갈세가가 있으며 강서와 절강은 사도천의 영역이다. 강소에는 명문정파가 없는 대신 정파의 중소 문파가 여러 밀집해 있었다. 즉, 정사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본부를 빼앗긴 건 저희 쪽에서도 타격이 큽니다만, 도리어 위기를 기회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제갈상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할아버님……’ 제갈상은 군사답게 냉정하나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다. 특히나 조부와의 관계는 그에게도 특별했다. 어릴 적부터 오늘날 무림맹의 군사로 지내면서까지 가르침을 받았으니 스승이나 마찬가지였다. 남들보다 분노하면 분노했지 조부의 죽음이 감정에 영향을 안 끼쳤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제갈상은 누구보다 공사를 철저하게 구별하는 사람이었다. 특히나 군사로서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판단을 내린다는 건 위험한 사고방식이었다. 병사가 오판하면 혼자 죽으나 군사가 오판한다면 군대가 멸한다. 그걸 알기에 감정을 최대한 죽였다. “하면 재정비가 끝나기 전에 당장 탈환하는 것이 낫지 않겠소?” 공추가 물었다. “무리요.” 제갈상이 아닌 우백이 즉답했다. “어째서요? 무림맹의 본대가 지쳐있는 것이 흠이나 그 외의 전력이 멀쩡하지 않소?” 본부가 함락된 것이 워낙 충격적이라 그렇지, 전력 피해만 보자면 그리 큰 것도 아니었다. 곤두박질친 사기가 조금 흠이긴 하지만, 사도천이나 정파 세력의 전력은 대체로 준수한 편이었다. “우리가 어찌하여 북으로 도망친 것인지 잊었소?” “아!” “수림구채!” 그렇다. 합비의 아래에 흐르는 장강이 문제였다. “우백 장로님 말씀대로입니다. 그래서 기회일 ‘수도’ 있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암천회는 장강을 이용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또한 장강을 수림구채가 완전하게 장악했으니 참으로 골치 아팠다. “끄응.” “그 도적놈들이 이리도 문제일 줄이야……” 정말로 상상 이상으로 성가셨다. “일단, 양측 다 재정비가 끝나지 않았으니 전황을 살펴보며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