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48)
“물론이오.” 검마가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최소 이백 년 전. 혹은 그보다 오래된 이야기요. 옛 무림에 당시 쾌검의 달인이자, 천하제일을 다툴 정도의 실력을 지녔던 전설적인 무인이 있었소. 그자가 응암동 검성이요.”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기도 한데……” “무리도 아니오. 그가 무림에서 종적을 감춘 지 시간이 오래되기도 했지만 검성의 사문은 무림이 위기에 빠진다 할지라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신비 문파이기 때문이오. 아무리 당대 최고수라 해도 사문이 오랫동안 활동을 하지 않으면 무림에선 잊혀지기 마련이지.” “어디입니까?” “신비 문파, 천녀문(天女門).” 무곡의 눈이 가늘어 졌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보타문처럼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신비 문파라 하오.” “예?” 주서천이 이해가 안 가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암천회주는……” 응암동 검성의 성별이야 그렇다고 쳐도, 암천회주는 남자가 분명하다. 속일 수도 없는 게, 훗날 무림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때 시신이 남아있었으니 모를 리 없었다. 주서천은 본 적 없지만, 만약 특별한 방법으로 성별을 숨겼다면 밝혀지지 않았을 리 없다. “그건 이야기가 좀 복잡하오. 미리 말하지만, 응암동 검성 역시 남자요.” “무슨 사연이 있군요.” “천녀문도 한때 폐쇄적이기는 해도, 강호에 출두해 활동한 시절이 있었소. 당시 천녀문주는 소문주 시절 강호에 출두했다가 그만 크게 다쳤는데, 지나가던 어떤 자가 그녀를 구해 주고 치료까지 해 주었다고 하더군.” “혹시 그자가……” “응암동 검성이오.” 무곡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녀문주는 용암동 검성에게 목숨을 빚진 대가와 감사의 의미로 사문의 무공을 전수해 주었소. 그것이 선천심공(先天心功)과 선천검법이었지. 다만, 이 무공에는 문제가 있었소.” “문제요?” “천녀문이 여인들의 문파인 건, 대표 무공인 선천검법을 비롯해 운기법이 여자의 몸을 기초로 했기 때문이오. 남자가 펼치지 못하는 건 아니나, 대성을 이루기가 극히 어려워지고 위력조차 크게 줄어들어 사실상 이류도 되지 못한다고 하오.” 무림에는 별의별 무공이 존재한다. 음양이기(陰陽二氣)를 나누어 성별에 따라 맞고 맞지 않는 경우야 그리 드문 것도 아니었다. “천녀문주가 응암동 검성에게 그러한 무공을 전수한 건 여러 일화가 있으나, 워낙 오래된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실을 알 수 없어 그것까진 나도 잘 모르오. 다만, 그 탓에 응암동 검성은 선천검법을 스스로 자기 몸에 맞춰 개량했다고 하더군.” “그래서 천녀문이 아닌, 응암동 검성의 무공이 라 하셨군요.” “그렇소.” 생각지도 못한 정보였다. 암천회주가 지닌 미증유의 힘에 대한 정체를 알게 되니 속이 좀 편해졌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은공께 도움이 됐다면 나도 기쁘오.” “이러한 정보는 어디서 알게 되셨습니까?” 주서천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문의 역대 문주 중에 천녀문과 동시대에 활동한 분이 계셨는데, 인상적이었는지 제자에게 검술 수련 중 쾌검의 묘리에 대해 가르칠 때마다 천녀문의 선천검법을 이야기했다 하오. 그 뒤로 사문에서 쾌검을 가르칠 때마다 선천검법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오게 됐소.” ‘이쯤 되니 어르신의 사문이 궁금하다.’ 주서천은 속으로 끙끙 앓았다. 그러나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고 하지 않았나. 검마와의 관계가 틀어지기를 원치 않았다. “응?” 무곡이 주서천에게 무언가 느낀 듯 눈을 껌뻑였다. “아아, 나의 사문이 궁금한 거요?” 주서천은 무곡의 물음에 흠칫 놀랐다가 이내 머리를 위아래로 미미하게 끄덕였다. “전에 사문의 이름은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기억나시오?” “예. 용제문(龍帝門)…… 이었던가요?” “그렇소. 잘 기억하고 계시는 구려.” 무곡은 주서천이 그동안 했던 걱정이 괜한 것이었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대답이 너무 시원스러워서 허무할 정도였다. “신비 문파라 해야 할까, 은거 문파라 해야 할까…… 본 문 역시 천녀문만큼 폐쇄적이고 무림 일에 적극적이지 않소. 하물며 일인전승으로만 전해지는 은거 문파다 보니 잘 모를 거외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곳인지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주서천은 무곡이 사문에 대해 묻는 걸 그리 꺼림칙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 보여 적극적으로 물었다. “물론이오. 쾌검이나 난검, 혹은 강검이나 중검. 그 외에도 수많은 검을 완벽히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한 문파가 용제문이오.” “허어……” 주서천은 사문의 정체를 듣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완전 미친 곳 아냐?’ 무곡은 지나가듯이 가볍게 말했으나, 그 속을 보면 결코 가볍지 않다. 터무니없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검술의 근원이 되는 성질이란 건 전부 다루겠다는 뜻인데, 권동제의 이상만큼이나 허황된 이야기였다. 어려운 수준의 일이 아니다. 사람의 몸으론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무인, 그중에서도 천재라 할지라도 끽해 봤자 하나나 둘의 성질이 한계다.’ 당장 검신이라 일컬어지는 주서천만 해도, 극의를 이룬 건 화산파의 검술인 산점과 환검 정도다. 쾌검이나 중검 등을 펼치지 못하는건 아니 나, 중도만공의 도움을 받아 성취는 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 외의 것들도 현경의 깨달음이나 끝없는 내공으로 응용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오. 도저히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무곡은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개파조사께서는 반대로 사고를 전환해 사람을 벗어난 힘을 얻자고 생각하였소.” “혹시, 용제라는 의미는……?” “용을 지배하고, 그 힘을 통해서 사람을 초월하게 되는 것을 뜻하오.” 용은 생물의 제왕이자, 최강의 생물이며 초월체이다. 해남도를 비롯한 남해만이 아니라 육지에서조차 신성시된다. 용제문의 시작은 용의 힘을 얻는 것이었다. “사문의 이름은 용제문이긴 하다만, 사실은 용이 된다기보단 초월적으로 강해지기 위한 문파요.”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오. 별로 숨길 것도 아니었소.”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물어볼 걸……’ 이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을 줄은 몰랐다. 주서천은 속으로 구시렁거리다가 무곡의 말 중 무언가 떠올렸는지, 질문을 한 가지 더 물었다. “그런데, 어르신의 사문은 방금 일인전승 문파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소만?” “그러면 슬슬 제자를 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생이야 딸, 무선화의 복수에 미쳐 제자를 받을 생각이 없었을 것이니 이해가 됐다. 하지만 살아 있고, 건강하기까지 한 현생은 제자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용제문은 정신 나간 문파이나 그래도 현경이라는 절대고수를 배출했다. 이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에는 아까웠다. “음……” 무곡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나, 사실 그에 관련된 고민이 하나 있소.” “혹시 괜찮으시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어르신께 도움을 받았으니 저도 그 빚을 갚고 싶습니다.” 검마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한 속셈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정마대전만 해도 무곡이 뒤를 이어서 도움을 주지 않았더라면 여러모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은공도 알다시피, 선화가 전보다 건강해졌지만 무공을 익히기엔 좀 무리가 있지 않소?” “그렇지요.” “그래서 적당한 자를 데릴사위로 삼아서 무공을 전수해 줄 생각이었소.” “아, 그건……” 주서천이 제갈승계를 떠올리며 무언가 말하려다가, 무곡의 다음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웬 놈이 나타나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선화를 채 가는 걸 상상하니 무심코 화가 나더구려. 나도 모르게 쳐 죽이는 생각을 골백번 했지 뭐요?” “……” 주서천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데, 은공. 방금 전에 무어라 말씀하시려 하지 않았소?” “아닙니다.” 주서천이 즉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어색한 침묵으로 인해 분위기가 가라앉으려고 할 때쯤, 멀리서부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오, 제갈 선생이 아닌가.” 무곡이 제갈승계가 오는 걸 보고 평소답지 않게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아, 어르신도 계셨군요. 그보다 선생이라니, 과한 호칭입니다. 편하게 대해 주세요.” 제갈승계가 무곡을 보고 허리를 숙여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아닐세. 딸이 선생에게 학문을 배우고 있는데 내 어찌 허투루 대하겠는가. 내 비록 아는 건 검 밖에 모르는 일자무식이네만 그래도 안하무인은 아니오.” 제갈승계를 향한 무곡의 눈길은 인자했다. “그래, 선화는 선생 밑에서 잘 배우고 있는가? 최근엔 선생 곁에서 기관 설계도 돕는다고 들었네만.” “아, 물론입니다!” 기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제갈승계가 눈을 반짝였다. “머리도 좋으셔서 기관에 대한 이해도도 높으시고, 열의도 남다르십니다. 휴식을 취하라고 말씀을 드려도 언제나 제 곁에 남아 밤늦게까지 기관에 대해서 물으시더군요. 자랑스러운 따님을 두셨습니다!” “하하하하! 그 정도란 말인가? 암, 선화가 어릴 적부터 머리가 비상하긴 했네. 그나저나, 오룡삼봉인 제갈선생께서 그리 칭찬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그래!” 무곡이 기분 좋은 듯 호랑하게 웃었다. 금의검문에서 악귀 교관이라 불린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점술학도 공부하시는 모양인지, 제 손금을 봐주시더군요. 기관 공부만 해도 상당히 하시는 모양인데 다른 것까지 공부하시는 걸 보고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님 같은 분을 보고 노력하는 천재라고 부르지요.” 제갈승계는 무곡의 칭찬에 기분 좋았는지 얼마 전 자신의 손을 매만지면서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하게 미소 짓는 무선화를 떠올렸다. “허허허!” “핫핫핫!” 무곡은 딸에 대한 칭찬을 듣자 너털웃음을 흘렸다. 제갈승계도 평소처럼 가슴을 쫙 펴고 웃어 댔다. “으……으……” 상천육좌, 검신이 갑자기 신음을 흘렸다. “응? 형님? 왜 그러십니까? 안색이 안 좋습니다.” 제갈승계가 무곡 뒤의 주서천을 보고 물었다. “아니야…… 위가 좀 아파서 그래……” 주서천이 제갈승계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아, 네. 상단주가 부릅니다. 무림맹에서 서신이 도착했다 하더군요.” “그래, 고맙다. 난 이만 가 보마.” 주서천이 힘없이 웃으며 제갈승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잠깐 스쳐 가는 그 눈빛엔 동정이 가득했다. “……?” 제갈승계와 무곡이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은공께서 무언가 이상한 것 같네만……” “그러게요. 뭐 잘못 드셨나?” 주서천은 두 사람을 뒤로한 채 생각했다. ‘신의에게 위약 좀 챙겨 달라 해야겠구나……’ 주서천은 위약 한 알을 먹고 이의채를 찾아갔다. “대협, 무림맹에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아직 확인해 보진 않았습니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안색이 영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이의채가 주서천의 낯빛을 힐끗 보고 걱정했다. “어떤 놈이 대협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겁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이 상왕 이의채가 아주 그냥……” “무곡 어르신이요.” “아주 그냥 잔치 하나 열어서 어르신과 대협의 기분을 풀어드리지요! 크으!” “극쾌의 고수로다……” 이의채가 눈부신 속도로 태도를 바꿨다. 주서천은 무림맹 서신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음……” “무슨 내용입니까?” “해남도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는군요.” “오! 어떻게 됐습니까?” “도움을 준다고는 하는데, 지금 당장은 힘들다고 하더군요. 인근 해역에 왜구가 모이기 시작한 탓에 그들을 소탕한 뒤에 보낸다 합니다.” 주서천은 골치 아픈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남해에서 날뛰던 왜구가 사라지니, 동해가 문제로군요.” 이의채가 말했다. ‘전에 방만에게 들은 것으로 동해에는 암천회 출신이 몇 없다. 선단(船團)을 움직일 힘도 있을 리 없으니, 아마 영역이 비었으니 가로채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