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51)
못하는 물 지옥이 이곳 백마채다. 죽은 자가 아닌 이상 백마동에 오지 못할 것이다.” 백마채의 수장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상천육좌라고 해도 애송이는 애송이로군. 방심했다가 무공 하나 펼치지 못하고 내 손에 허무하게 죽은 정파의 신진고수의 수가 한가득이다.” 눈에선 불안과 걱정이 사라지고 욕망이 번쩍였다. “어쩌면 이건 기회다.” “기회요?” 부채주는 백마채주를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 ‘검신을 보고도 겁먹긴커녕 기회라고?’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인지 뜯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심장이 철로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하늘, 아니 강이 준 기회다.” 백마채주의 안광이 욕망으로 불타올랐다. “상천육좌, 백마채주. 아니, 적림총채주!” 대대로 무림의 절대고수의 자리는 신위에 견주는 위업을 달성하거나, 힘으로 빼앗아 바뀌곤 했다. “주서천을 죽이고 적림총채주에 오른다. 암천회도 내 저력에 놀라 합당한 대우를 해 줄 터. 크흐흐.” 넋을 잃을 정도로의 미녀와 돈 주고도 못 구하는 술을 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흥분됐다. “뭐하냐, 이것들아! 상천육좌가 곧 올 텐데 성대하게 맞이할 준비하지 않고! 당장 입수해!” 백마동에 채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오늘부로 백마채는 천하제일수채다!” “와아아아!” 풍덩! 백마채의 수림도가 함성을 내지르며 입수했다. 장장 오백에 이르는 수림도가 몸을 던지니, 파도가 일어나는 것처럼 수면 위가 크게 요동쳤다. * * * 안내인 덕에 백마동으로 오는 동안 헤매진 않았다. 수적들이 앞다퉈서 안내해 준 덕분이었다. 혹시나 누가 주서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서로 눈치를 보기까지 했다. “저곳입니다, 대인!” 수평선 끄트머리에 기암절벽이 보였다. 안법으로 시력을 올리니 기암절벽 아래에 동굴이 보였다. 종유굴답게 수많은 종유석이 보였다. 주서천은 선상에 선 채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과연 거짓은 아닌 모양이군.’ 시각을 차단하자 그 외의 감각이 예리해졌다.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광경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더니,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의 모습도 만들어 냈다. 최소 수백 명 이상의 무인이 살의를 품은 채 숨어 있는 게 느껴졌다. ‘수적은 수적이군.’ 매복에 있어 살의를 숨기지 못하고 표출하는 건, 내가 여기서 공격하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과 같다. 수적은 환경적인 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아 유리할 뿐이지, 실력 자체가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한쪽 눈을 슬쩍 떠서 강 아래를 멀리 내려다봤지만 물고기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한둘도 아니고 세 자릿수나 되는 수적 무리의 살의가 밀집되다 보니 물고기 떼가 안 도망갈 리 없다. “수고했다.” 주서천은 뱃머리를 박차고 몸을 날려 수면 위를 뛰었다. 등평도수였다. “허어……” 병선 위에서 노를 젓던 수적들이 입을 쩍 벌렸다. 강 위를 아무렇지 않게, 그것도 눈부신 속도로 달려 나가는 모습은 사람이 아닌 신선 같았다. “온다!” 시선의 끝, 백마동 위에 마르고 대머리인 수적이 외쳤다. 그 뒤로 강의 흐름이 변했다. “물속으로 끌어드……” 주서천이 재차 속도를 높였다. 화살이 쏘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유성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밑에서부터 성가신 공격이 날아올 것을 방지해 발에 실린 공력을 용천혈에서부터 터뜨렸다. 콰아앙! 한 번 발을 내디딜 때마다 물보라가 몰아쳤다. “어푸!” 언제든지 위를 공격할 수 있도록 수면 바로 아래에서 대기 중이던 수적 무리가 당했다. 우드득! 퍼억! 장풍처럼 쏘아진 물보라에 턱이 맞아 날아가거나, 혹은 수압을 버텨내지 못하고 밀려났다. 그사이 유성이 된 주서천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백마동 앞에 당도해 대머리의 복부를 발로 후려찼다. “케헥!” 대머리가 동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주서천은 대머리에 마른 중년인이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재빠르게 무릎을 들어 얼굴에 꽂았다. “켁!” 대머리가 뒤로 벌러덩 넘어지며 고통스러워했다. 코뼈는 부러져 코에서 피가 주륵주륵 흘렀다. 입에서 피를 토할 때마다 부러진 이가 피 섞인 침과 함께 떨어져 나왔다. “나와라, 백마채주!” 주서천이 주변을 슥 둘러보며 외쳤다. “……” 그러나 답변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뭐지?’ 주서천이 처음으로 긴장했다. 눈에 힘을 주자 무저갱처럼 끝없는 어둠뿐이던 동굴 내부가 대낮처럼 훤히 보였다. 혹시 또 무언가 매복이 있지 않았나 싶었지만 착각이었다.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백마채주!” 다시 한번 소리 질렀지만 그저 종유굴 내부를 가득 채우며 메아리칠 뿐,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설마, 함정인가?’ 암천회에게 워낙 당한 게 많다 보니 선수 쳐서 백마채에서 무슨 준비를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주서천은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동굴 입구 앞,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응? 넌 아까 그……” 이름을 듣자마자 전력으로 도망친 부채주였다. “거, 거기 있습니다.” “거기 있다니?” 주서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마부채주는 그만 그의 눈빛에 압도되어 히익, 하고 놀랐다가 용기를 내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차, 찾고 계신 백마채주가 그자입니다. 대협.” “……?” 주서천은 백마부채주의 시선을 따라갔다. 바로 옆에 코를 붙잡은 채 머리를 박고 있는 대머리가 있었다. “네가 누구라고?” “예, 백마채주입니다. 대협.” 얼굴의 반이 부풀어 오른 백마채주가 답했다. “대화도 하지 않고 발로 차서 미안하다. 동굴에 혼자 떡하니 서 있던 네가 너무 눈에 띄어서 그만, 나도 모르게 공격했지 뭐냐. 솔직히 졸개인 줄 알았다.” “아뇨, 그럴 수도 있죠. 다 제 잘못입니다.” 백마채주가 허리를 숙이며 굽실거렸다. 시간을 되돌려 약 일각 전에 일어난 일이다. 백마채주는 수하 오백을 인근에 포진시킨 뒤에 주서천을 기다렸다. 물밑에서 습격할 생각이었다. 그 혼자서만 혹시나 외부에서 따로 공격해 올지 몰라 동굴에서 주변을 살피며 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전술적으로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아무리 추가 전력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들, 혹시 모르는 일이다. 끝까지 예의 주시하는 것도 괜찮다. 어차피 동굴 앞까지 오려면 오백의 포진을 뚫고 와야 하고, 위험하면 눈앞의 강물로 입수하면 그만이다. ‘아니 무슨 강 위를 육지보다 더 빨리 달려와?’ 목구멍 밖으로 욕이 절로 나올 뻔했다. 백마채주도 초절정 고수다. 열여덟 명밖에 없는 도적 무리의 수장이니 당연히 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경의 절대고수가 작정하고 전속력으로 달리면 그 속도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나 내공이 장강을 넘어서 대해와 같은 주서천의 움직임은 눈으로 좇기조차 힘들다. 수면에서 끌어들이려고 해도 발에서 뿜어지는 돌풍 탓에 다가가지 못하니 속도를 줄이지도 못한다. 괜히 백마채주가 허무할 정도로 당한 게 아니었다. “백마채주.” “예, 대협.” “수채 안에 감금된 사람들 있지?” “사람들이요?” “일반인이나 무림인. 납치해 오거나 한 사람들 있을 거 아니야.” 백마채주가 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동공이 물고기처럼 헤엄쳤다. 검선은 소싯적부터 협객 중의 협객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한 악행을 듣고 분노할 것을 두려워했다. 주서천은 백마채주에게서 답변이 돌아오지 않자, 주저하지 않고 손등 위에 검을 꽂았다. 푸욱. “끄아아악!” 백마동 내부에 백마채주의 비명이 터졌다. “백마채주. 내가 오해하게 만들지 마라.” 주서천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난 개인적으로 너희를 높게 보고 있다. 열여덟 명의 채주는 힘만으로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 분명 머리도 좋을 거야. 고민하는 척 머리를 굴리면서, 혹시나 무언가 숨기거나 또는 혼선을 줘서 날 혼란스럽게 할지도 모르지.”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있습니다! 남자들은 심부름꾼으로 쓰고 있고, 여자들은 그, 그 노리개로……” 주서천이 눈썹이 꿈틀거렸다. 동시에 백마채주의 엄지가 잘려 나갔다. “아아악! 정말, 정말입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안다.” 주서천이 무덤덤하게 답했다. ‘무, 무슨……’ 백마채주는 주서천의 답변에 소름이 끼쳤다. ‘이건 협상 따위가 아니다. 협박이야.’ 적에게 자비가 없다곤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좋아, 그러면 이제부터 수하를 시켜서 하나도 남김없이 안에 갇힌 사람들을 풀어 주도록 해.” “무, 물론입니다!” “좋다. 그러면 그동안 넌 나와 할이야기가 좀 있는데…… 적림십팔채, 정확히는 수로구채의 전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나?” “……” “대답.” 서걱! “끄아아아아…… 압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 암천회에 대해서도 조금 알고 있습니다요!” “좋은 대답이다. 무림의 평화를 위해서 암천회를 배신하다니, 훌륭하다. 너흰 천하제일수채다.” 주서천이 차갑게 웃었다. 수림구채, 백마채가 박살 났다. “항복합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대협!” 백마채주는 적림십팔채 중에서 열여덟 명뿐인 고수다. 그가 허무하게 당하는 걸 보고 다들 기겁했다. 무엇보다 박살 낸 장본인이 누구인가. 무림의 정점인 상천의 절대고수였다. 수중이고 뭐고 간에 유성처럼 빛나더니만, 수면 위를 달리는 모습은 도저히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또한, 주서천을 백마채까지 안내한 동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곤 아예 공포에 떨기까지 했다. “그래. 살려 줄 테니까 시키는 대로 해라.” 제일 먼저 할 일은 백마채에 감금된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었다. “허……” 수적의 소굴, 백마채 안쪽에서부터 사람들이 나오는 걸 보고 화가 솟구쳤다. “이게 도대체 몇 명이야?” 대충 어림잡아도 이백여 명이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성별과 연령 불문하고 다양했다. 공통점이 있다면 얼굴에 묻어나는 공포였다. 꼴도 그리 좋지 않았다. “전부 채주가 시켰습니다!” 백마부채주가 주서천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 가는 걸 보고 황급히 말했다. “이, 이 새끼……” 백마채주가 백마부채주를 보고 부들부들 떨었다. “뭐, 이 악적 놈아! 틀린 말이냐!” 백마부채주가 흥, 하고 콧방귀를 꼈다. 도적 간에 의리 같은 건 소설에서나 나온다. “이 개새……” “한 번만 더 쓸데없이 목소리 높이면 손가락 날아간다.” “……” 채주와 부채주가 입을 다물었다. 주서천은 약 이백 명의 인질 중, 대표로 보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여러분에게 해를 끼치려는 것이 아니라, 구하러 온 것이니 안심하십시오. 전 주서천이라고 합니다.” “주서천……? 혹시 검신이신 주서천 대협 말입니까?” “네.” “만세!” 이름을 다시 한번 확인한 인질 무리는 서로 얼싸안으며 환호하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매일매일 죽을 날을 기다리며 갇혀있었던 입장으로선 반갑기 그지없는 소식이었다. “혹시나 백마채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저희도 갇혀 있는 처지였던지라 그리 자세히 알진 못합니다만……” “괜찮습니다. 알고 있는 거라도 전부 이야기해 주십시오.” 주서천은 한낱 수적의 말을 믿지 않는다. 살기 위해선 얼마든지 거짓을 고할 수 있는 수적이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다른 의견이 필요했다. “저희는 각지 다른 곳에서 납치된 사람들입니다. 의창처럼 장강을 생활 터로 잡아 둔 곳부터 시작해, 타지방의 산채나 수채에서 온 자들도있지요.” “다른 곳에서요?” “예에. 듣기론 다른 곳에서 인력이나 노리개가 부족할 때, 요청하면 보내 준다고 합니다.” “허, 참.” 주서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