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54)
이 추위를 극복하려면 방한복, 정신력, 그리고 내공이 필요했다. 이러한 특수한 환경 탓인지 북해빙궁 외에도 북해인은 대부분이 무인이며, 중원인보다 무공이 높았다. 다만 환경 탓에 인구 역시 적었다. “북해궁주는 물론이고 빙궁 내에서 정예라 꼽힐 정도라면 중원의 기후나 환경에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오. 그만한 전력이 도움을 준다면 정사 연합 또한 앞으로 든든하겠지.” “끄응.” 주서천도 그걸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고민됐다. 운광은 주서천의 고민이 길어지자 몇 마디 더했다. “북해빙궁의 도움은 매력적이나, 검신께서도 말씀하셨듯이 현 전황에 자리를 비우게 되니 위험 부담이 크오. 딱히 거절하셔도 상관없으니 마음 편히 답해 주시오. 그리고 사도천주에게 협력을 받아 패신군에게도 제안할 생각이니 부담 갖지 마시오.” ‘아니, 그건 안 돼.’ 패신군이란 이름에 검신이 끙끙 거렸다. ‘지금, 북해로 갈 수 있는 상천은 나뿐이다.’ 운광이야 무림맹주니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사도천주도 마찬가지 이유로 갈 수 없다. 패신군이야 또 하나의 신분이니 별 의미 없으니, 결국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선 자신이 가야만 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북해의 힘을 빌리느냐, 아니면 중원에 남아서 결전을 준비하느냐……’ 주서천은 마음에 천칭을 만들어내 저울질했다. 약 일각 뒤, 고민이 끝났다. “다녀오겠습니다.” 천칭이 북해로 기울게 된 건,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 들어 여유가 생긴 것도 크지만 최근 암천회가 비급을 풀어서 전력을 보강하려는 것이 컸다. “어려운 결정을 하셨구려.” 운광이 쓴웃음을 지었다.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정말로 괜찮겠소? 북해의 여정은그리 녹록하지 않을 거외다.” “현경이신 맹주님께서 물으시니 의외로군요. 이 정도 경지에 오르면 한서는 불침이지 않습니까.” 주서천은 편법으로 진작 한서불침이 됐다. 반대로 제가 여쭙고 싶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괜찮겠습니까?” 주서천이 웃음을 지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북해에 가서도 중원의 소식을 들을 수야 있지만, 시차가 상당하다. 대응도 자연스레 늦어질 수밖에 없으니, 정사 연합이 불안하다고 하면 갈 수 없다.’ 무림맹주 입으로 곤란하다고 한다면 결정을 철회할 생각이었다. 그만큼 위험 부담이 컸다. 하지만 그만큼 보상도 상당했다. 특히나 북해궁주의 도움을 직접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컸다. 전생에서도 암천회주라는 괴물을 상대하려고 상천 여럿이 희생됐다. “물론이오.” 운광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답변했다. “언제까지고 검신께 모든 걸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겠소? 나 역시 맹주로서, 태극검으로서도 체면이 있다오. 검신이 안심하고 다녀올 수 있도록 연합군을 지키고 있도록 하겠소.” “맹주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저 역시 안심이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태극검, 운광……’ 솔직히, 운광에 대해서 그리 깊게 알진 못한다. 운광은 정백과 제갈중호, 그리고 남궁위무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무인인 만큼 나이가 많았다. 연령이 연령인 만큼, 전란의 시대 한창인 도중에 자연의 품에 돌아간지라 활약이 그리 많진 않았다. 그러나 현생에서 역사가 바뀌면서 무림맹주로 취임한 이후 우수한 행보를 보이는 등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됐다. 만약, 조금만 더 젊었어도 미래의 영웅들만큼이나 이름을 알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림의 미래를 짊어진 두 절대고수의 대화에 초를 치기 싫습니다만,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제갈상이 미안한 듯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얼마든지 말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야기라기보다는 사실, 주의 사항입니다.” 제갈상의 입가에 머금은 쓴웃음이 사라졌다. “북해로의 여정이 결정된 후에 말하는 것도 좀 뭐하지만, 이 모든 건 이상 기후의 원인이 북해빙궁에서 거론한 ‘법보’일 경우를 전제로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군사? 혹시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거요?” 운광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아닙니다. 암천회의 손이 북해빙궁에까지 닿았을 경우는 지극히 낮습니다. 본래 황제의 눈을 피하려던 무력 단체에게 수도인 북경과 명이 주시하는 몽골, 즉 달단이 코앞에 있는 북해는 서장만큼이나 부담스러운 존재였을 테니까요.” “과연.” “그러니 북해빙궁의 서신은 거짓이 아닐 겁니다. 다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이들의 ‘추측’이 어긋날 경우입니다.” “으음.” 주서천과 운광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북해빙궁도 궁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고, 이름을 건 만큼 몇 번이나 확인했을 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입니다.” “만약, 의뢰를 완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 기후가 계속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운광이 주서천을 대신해서 물었다. “빙궁의 여인들은 사천의 당가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하니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름을 건 만큼 약조는 지키겠지요. 다만, 더 도움을 달라거나 혹은 시간을 달라거나 한다면 냉정하게 거절하십시오. 검신께서 하실 일은 법보를 없앤 뒤, 북해빙궁의 전력을 동원하는 일입니다.” “알겠습니다.” * * * 주서천의 북해의 여정은 특급 기밀로 분류됐다. 정파의 영웅이자 정사의 최대 전력인 검신이 중원을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연합군의 사기는 불안으로 인해 떨어질 것이며, 암천회가 그 틈을 노려 무슨 수를 사용할지 모른다. 무림맹 상층부인 장로진에게조차 정보가 제한됐다. “서장과 남만, 해남도에 북해까지…… 안 가는 곳이 없구나. 이게 무슨 고생이냐.” 주서천은 앞으로 펼쳐질 고생에 한탄하며 여정을 준비했다. 최우선 사항은 단연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벌어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소령, 유령곡 전 지부에 내가 북해를 떠난 동안은 금의상단주 상왕 이의채와 기룡 제갈승계의 명령을 따르라고 전달해라.” “명.” 제갈상에게 위임할까 고민했으나 그만두었다. 무림맹은 흑영부처럼 뒤가 구린 단체 탓에 분열될 뻔했는데, 유령곡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현재 유령 대부분이 기관 설치 혹은 금의상단의 물자 수송과 호위를 맡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무림맹 일에 동원할 수 있는 숫자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 외에도 무곡 어르신이야 상단주가 알아서 하실 테고…… 하오문주와 사도천주에게도 당분간은 사정이 있어서 답할 수 없다고 전해 둬야겠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전서구나 전서응이 아니라 유령을 따로 불러서 전달하게 만들었다. 하오문주에게는 따로 정사 연합의 정보가 외부로 새지 않도록 정보 통제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개방과 협업하면 자신이 중원을 떠난다는 걸 잘 숨겨 줄 것이다. ‘동행은…… 소령만 데려갈까?’ 북해에서 오래 있을 생각은 없다. 동행인이 많을수록 방해가 된다. 그래도 혼자 갈 생각은 없었다. 혹시나 손이 부족할 경우를 대비해 누군가와 함께 가야 하기는 했다. 소령은 경신공의 고수이면서도 내공이 부족하지 않은지라 자신의 발을 쫓을 수 있어 좋았다. ‘음, 잠깐 내공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좋아.’ 백마채의 소탕 탓에 두고 온 일행이 떠올랐다. ‘화첨창을 가져가지 못하는 게 아쉽네.’ 진기를 흘리면 불꽃을 내뿜는 법보, 화첨창을 북해에 가져가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간야자가 흑철갑주의 제련에 쓰고 있어 가져오기가 조금 뭐했다. 화첨창은 도움이 되겠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라서 그냥 두고 가기로 했다. “지긋지긋한 눈이 겨우 녹기 시작했거늘, 또 그걸 보러 북해까지 가야 한다니…… 내 신세야.” 주서천이 한숨을 내쉬며 구시렁거렸다. “북해에는 눈 속에 파묻힌 영약이 많다던데…… 그거라도 챙겨 와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수지가 안 맞으니 말이야.” 북해, 북입 (北入) 마을. 중앙의 북해빙궁을 기점으로 아래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마을로, 중원의 북부 지방이기도 하다. 북해와 중원의 경계를 나누는 국경선이었다. 도시 규모 정도는 아니나, 북해와 중원의 경계답게 휴식 지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가는 장소였다. 또한, 북해와 중원의 몇 없는 교류지점답게 중원과 새외의 문화가 어우러진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후아아……” 입을 열면 허연 김이 피어오른다.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한기가 흘러들어 오다가 사라졌다. “이제 막 북해에 들어섰는데, 대단히 춥네요.” 청순미가 돋보이는 절세미녀, 낙소월은 몸 내부에 침투한 한기를 내공의 운용으로 무력화시킨 뒤 말을 꺼냈다. “그런가?” 주서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서불침은 딱히 내공의 소모가 없어도 더위나 추위를 느끼지 않다 보니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사형만 이리 편하시다니, 뭔가 치사해요.” 낙소월이 볼에 바람을 불어 넣으며 툴툴거렸다. “그렇지, 소령?” 낙소월이 주서천의 뒤에 서 있는 소령에게 물었다. “곡주의 한서불침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장기간 매복할 수 있어 유리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 주로 입던 천의 면적이 좁은 차림이 아니었다.눈처럼 새하얀 털가죽으로 된 방한복을 입었다. 주서천과 낙소월도 같은 차림이었다. “아하하……” 낙소월은 소령의 인간미 하나 느껴지지 않는 답변에 쓴웃음을 지었다. “저…… 사형.” 낙소월이 소령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불렀다. “응? 왜?” “그, 유령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는데요.” 주서천은 사매의 말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나보단 소령에게 묻는 게더 정확할 걸?” 주서천은 유령의 수장이다. 그러나 정작 유령에 대해선 세세하게까지는 몰랐다. 기본적으로 자율적인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 유령들은 묻지 않으면 대답해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주서천도 물어본 적이 없는 건 몰랐다. 유령곡 출신도 아니니 당연했다. “질문에 따라선 기분이 상할지도 모르니까요.” 낙소월이 최대한 낮춘 목소리로 답했다. “아……” 주서천은 낙소월의 말에 많은 걸 느꼈다. “그래, 사매의 말대로야.” 주서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동안 그 점을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다니……’ 그는 그동안 소령을 비롯한 유령들을 자기 멋대로 이용한다는 비인도적인 행위에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 낙소월의 말을 듣고 어쩌면 그 죄책감이 단지 허울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죽었으니 감정을 배려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을지도…… 반성하자.’ 마음속으로 사매의 말을 되새겼다. 참고로 북해의 여정의 동행인을 낙소월로 택한 건 편한 것도 있으나, 여러 가지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무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주서천만큼이나 내공이 받쳐 줘 북해의 추위를 충분히 버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무엇이 궁금해?” “저기, 그……” 낙소월은 조금 부끄러운 듯, 손을 꼼지락거렸다. 뺨을 살짝 붉히고 있는 게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귀여웠다. “소령이나 여타 유령들을 보면 언제나 복장이…… 파렴치하다고 생각했는데요……!” 낙소월이 눈을 치켜뜨고 주서천을 올려다봤다. “그건, 사, 사형의 취향인가요?” “콜록, 콜록!” 주서천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사레가 들린 듯, 기침을 토해 내면서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지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 허리나 배는 물론이고 허벅지까지 드러나는……!” 낙소월은 차마 그 다음을 말하기에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로 몸을 파르르 떨었다. “낙 사매가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 애초에 전에 낙 사매와 유령곡을 최초로 방문했을 때도 저런 복장이었잖아!” “확실히 그랬지만…… 그 후에도 차림이 여전히 너무하잖아요. 혹시, 사형의 취향이 아닌가 해서……” 청순하고 귀여운 사매는 눈을 게슴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