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56)
“음(陰)이란 차가움이요, 여자이다. 또한 양(陽)은 따스함이고 남자이다.” 음양이기(陰陽二氣)의 기초이다. “남자가 음의 성질로 치우친 한빙공을 익힐 경우 여러 가지의 부작용을 불러 일으킵니다. 높은 성취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요, 생명을 불어넣을 씨앗에 문제가 생기지요. 아이를 낳으면 칠 할 이상이 여자인데다가, 운이 나쁘면 평생 동안 아이를 잉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성비가 불균형일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북해의 인구가 적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래서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본궁에 도착하면 중원과는 반대되는 상황 탓에 종종 당황스러운 일이 있을 수 있으니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 * * 북해의 중부에는 강에 이어 바다와 이어진 호수가 위치해 있다. 그 크기는 몹시 컸는데, 왜 내해로 불리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또한, 날씨는 이리 추운데도 호수나 강이 얼지 않은 게 신기했다. “내해와 연결된 강의 물살이 거세서 잘 얼지도 않거니와, 최북부에서부터 흘러들어 오는 ‘얼지 않는 강’이 온천수라 따뜻해 생각보다 차갑지 않습니다. 여름이 되면 이 강에 몰려 계절 내내 물고기를 잡고, 물장난을 치기도 하지요.” 하와르가 주서천의 의문에 친절하게 답해 줬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북해에 대한 지식을 알려 줬고, 덕분에 약 일주일 동안 심심하진 않았다. 북해에 도착한 일행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궁전을 보곤 감탄사를 감추지 못했다. “와아……” “오……” 낙소월과 주서천은 눈앞의 장관을 살펴봤다. 호수, 아니 북해를 등 뒤로 두고 극한의 땅 위에는 위용을 실감케 하는 궁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만 전해지는 말처럼 얼음으로 지어진 건 아니고, 눈처럼 새하얀 대리석이었다. 다만 눈에 쌓여 있고, 워낙 하얗다 보니 햇빛에 반사되면 속이 투명한 얼음으로 착각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 점이었다. 눈보라 탓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하나 그 시야가 가려진 덕일까, 왠지 모르게 신비로움이 묻어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분위기였다. 주서천과 낙소월, 그리고 소령은 하와르의 안내를 따라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빙궁의 내부도 특이했다. 외관을 보면 척 봐도 중원이 아닌 이국적인 느낌이 묻어났다. 그러나 궁의 내부를 구경하기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그만두어야 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군요.” “얼마 전부터 배식(配食)의 할당량이 줄은지라 다들 예민한 상태입니다. 또한, 중원인이 빙궁을 방문하는 것은 몇십 년이나 더 된 일인지라……” “경계로군요. 이해합니……” 주서천은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피 냄새?’ 코끝으로 미세하게나마 혈 향이 찔렸다. 무인인 만큼, 그리고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신체 능력을 가진 절대고수다 보니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시선을 힐끗 돌려 봤지만 외부인을 경계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는 여인들밖에 없었다. 평소 눈을 가리고 다니며 오감이 발달한 소령도 눈치챈 모양인지, 방한복의 소맷자락이 흔들렸다. 주서천은 눈짓으로 수령에게 일단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린 다음, 마음을 가다듬었다. ‘무언가 있다.’ 그것도 순탄하지 않은 무언가가. 북해는 유난히 미인이 많다. 그 아름다움은 워낙 이름나 있어, 중원은 물론이요 새외까지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는다 하면 몇십 년 전부터 이름을 알린 빙궁의 주인이었다. “만나서 반갑도다. 본 녀가 빙궁의 주인, 냉악비(冷岳飛)니라.” 주서천은 냉악비의 얼굴을 보고 절로 감탄했다. 눈처럼 흰 피부 위의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고대의 신이 빚은 것처럼 완벽했으며, 이마를 살짝 드러내는 머리카락은 양옆으로 갈라져 폭포수처럼 쏟아졌는데, 그 색채는 빙하처럼 청백색이었다. 눈이 내리면 쌓일 것 같은 속눈썹 아래에는 북해처럼 깊고 깨끗했으나,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속내를 알아볼 수 없는 신비감이라기보단, 세상과 단절한 것처럼 얼어붙어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또한,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옷차림이었다. 북해인이라 해도 하와르를 비롯한 이들은 털가죽으로 된 방한복을 입었는데, 그녀는 백의 차림이었다. 놀랍긴 하지만 이상하게 여길 건 아니다. 현경의 고수, 그것도 빙한공의 절대자가 추위를 느낀다는 게 더 이상한 노릇이었다. ‘생각보다 젊다.’ 외관을 보자면 이십 대 후반, 삼십 대 초반 정도로 추정되나 당연히 그게 진짜 나이일 리는 없었다. ‘북해궁주, 냉악비……’ 북해 무림의 일인자이자 지도자, 북해궁주는 대대로 절대고수에 천마처럼 빠짐없이 이름을 올린 강자다. 냉악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들은 것에 비하면 냉악비의 최소 연령은 육십 이상인 노파일 텐데…… 절대고수에 오르면 잘 늙지 않는다고 해도, 너무 젊다. 권동제처럼 특수한 경우인가?’ 주서천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인사에 답했다. “북해의 상천을 만나 영광이다. 화산파의 사대제자이자, 상천육좌인 검신 주서천이다.” “궁주님 앞에서 예를 보이시오.” 궁주 혼자 주서천을 보러온 게 아니었다. 궁주의 알현실로 부름을 받은 공식적인 자리였다. 냉악비를 보좌하는 몇몇 노파들이 주서천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눈썹을 찌푸렸다. “됐다.” 냉악비가 새하얗고 긴 손가락을 들어 제지했다. “검신, 상천육좌라면 본 녀와 대등한 고수이니, 나 혼자만 하대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주서천을 탐탁지 않아 하던 이들이 허리를 숙였다. 그들의 태도를 보니 궁주의 권위가 빙궁 내에서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검신이여, 도움을 받아들인 것에 감사하는 바이다.” “서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거래이니 그리 감사하게 여길 건 없다.” 주서천은 불안감에 대비하여 일을 확실히 했다. 만약 무언가 이상한 게 껴 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걱정할 것 없도다. 법보를 파괴한다면 본 녀가 직접 빙궁의 정예를이끌고 암천회와 싸울 것이니라.” “알겠다. 그러면 당장 법보의 파괴를……” “법보를 둘러싼, 북해의 부족을 물리친다면 말이다.” 주서천이 입을 다물었다가 열었다. “거래는 끝이다, 북해궁주.” 그 얼굴은 볼 것도 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주서천은 북해가 먼 탓에 수많은 고민을 한 뒤에 이곳을 찾았다. 그리고 제갈상은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전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면서 오래 걸릴 것 같으면 그냥 돌아오라고 경고했다. 지금까지 멀리 돌아온 것이 아깝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이들이 막아 내면 북해와 척을 지고,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낙소월과 소령에게 언제든지 무기를 뽑을 수 있도록 눈짓을 보냈다. 하나 그 순간. “과거, 중원을 침공하면서 흘러들어 온 무공들.” 주서천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 외에도 각종 보물에 대해 혹시 관심 없는가?” 북해궁주, 냉악비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이 빛났다. ‘당했다……’ 주서천은 냉악비의 말을 들은 순간, 아차 싶었다. 북해궁주가 무슨 속셈이었는지 저절로 이해됐다. “결코 나쁘지 않은 이야기니라.” 냉악비의 표정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회심의 미소도, 혹은 북해의 위기를 구하기 위한 간절함도 존재하지 않았다. 얼음처럼 차갑기만 했다. ‘과연, 북해의 지도자라는 건가.’ 주서천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곤 몸을 다시 돌렸다. “이야기는 들어 보겠다. 하지만, 예의 법보처럼 무언가를 숨긴다면 즉시 돌아갈 것이니 명심해라.” “물론이다. 북해궁주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냉악비가 고개를 까딱였다. 움직임에 따라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은 그녀의 신비감을 한층 더 빛냈다. “검신 그대도 오면서 봤듯이, 북해는 이상 기후로 인한 기근에 허덕이고 있다. 추위에 적응하여 화려하게 피는 꽃과 식물은 물론이요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내해조차 얼어붙었다.” 안 그래도 척박한 땅이었다. 몇 년동안 추위가 지속되자 대지 위에서 뭐가 자라날 수가 없었다.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특수한 식물조차 이번 이상 기후엔 버티지 못했다. 북해에 새하얀 사신이 내려앉았다. 자연의 위대함이 아닌, 무서움으로 가득 찼다. 그야말로 재해였다. “강이 어니 물고기는 물론이요, 조개나 해초도 건질 수 없게 됐고, 어류를 주식으로 삼는 크고 작은 동물들도 굶게 되면서 사람 또한 먹을 것이 없어졌지. 이 재앙은 법보, 만년빙정(凰年氷精)에서부터 시작됐다.” “만년빙정? 전설에서나 나오는 만년빙정?” 주서천이 놀란 듯 목소리를 높였다. “만년빙정 ……?” 낙소월은 잘 모르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북해의 대자연이 빚어낸 보물이니라.” 냉악비가 낙소월을 위해 친절하게 설명했다. “빙정에 대해선 알고 있느냐?” 낙소월은 강호의 대선배이자 상천육좌가 직접 묻자 잠시 당황했으나, 더듬지 않고 또박또박 답변했다. “앗, 네. 차가운 기운…… 그러니까, 음한진기의 정수가 한데 모여 얼음처럼 굳어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평범한 사람이나 무인이 빙정을 취하면 그 자리에서 영혼까지 얼어붙겠지만, 북해의 사람처럼 빙한공 등 음한한 무공을 수련하는 이에겐 그 어떠한 보배보다 값진 것이지.” “그리고, 그 빙정이 수많은 세월을 거쳐 북해의 기운을 흡수하게 되면 만들어지는 것이 만년빙정이야.” 주서천이 냉악비의 설명에 덧붙여 말했다. “잘 알고 있구냐.” 냉악비가 신기한 듯 주서천을 바라봤다. 만년빙정은 북해의 전설이다. 교류가 적은 중원인이 자세히 알고 있으니 신기할 만했다. ‘암천회의 도감에서 봤으니까.’ 주서천은 답하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만년빙정 역시 도감부의 조사 목록 중 하나였다. 다만, 지리라거나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조사가 행해지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대단하다면, 차라리 없애는 것보다 취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요?” 낙소월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 의문이, 지금의 사태를 불러 일으켰느니라.” 냉악비의 고운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만년빙정이란 건, 보다시피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 기후를 뒤바꿀 정도의 기운을 품고 있다. 사람의 몸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거니와, 도리어 북해의 기운을 흡수한 것처럼 사람이 품은 음한진기를 흡수하겠지. 문제는 북해의 몇몇 부족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의 빙정만 해도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데, 만년빙정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독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욕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혹시’ 라는 생각이 얼어붙은 마음에 불을 지폈다. “과연, 그런 뜻이었나.” 북해의 부족이 법보를 둘러싸고 있다는 말이 이해됐다. 즉, 내전 중이라는 걸 뜻한다. 북해빙궁 입장에선 참으로 골치 아픈 문제였다. 하루라도 빨리 만년빙정을 처리해야 하거늘, 욕심에 눈이 먼 북해의 부족들로 인해 쉽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 제압하고 싶었지만, 강자들이 가득한 북해 무림답게 쉽지가 않았다. “검신이여, 이 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고 싶은 건 본 궁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안 그래도 얼마 없는 식량이 가속화하여 떨어진다면 북해빙궁 입장에서도 타격이 컸다. 초조한 건 매한가지였다. “그러니, 본 궁과 힘을 합해 만년빙정을 북해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도록 협력을 요청하는 바이다. 만약, 손을 빌려준다면 암천회와의 결전을 도울 뿐만 아니라 빙궁의 보고를 열어 합당한 보상을 내리겠다. 상승의 무공은 물론이요, 무림맹에 부족한 군자금의 지원 또한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