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57)
녀의 이름을 걸고 약조하겠다.” 냉악비는 주서천과 마주 봤다. 주서천은 한참을 마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북해의 부름에 답한 것부터가 함정이었다.’ 냉악비는 고의로 북해의 사정을 숨겼다. ‘중원에서 사정을 들었다면, 아무리 달콤한 제안이라 할지라도 시간부담 탓에 거절했을 거다.’ 북해의 내전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이니 부담감에 일언반구 없이 거절했을 터. 그래서 일부러 내막을 숨기고 겉의 사정만 보여 줬다. 사실, 말을 안 했을 뿐 딱히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닌지라 항변하기도 뭐했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은 건진 모르나 참으로 교묘했다. “원한다면 보상을 본 뒤에 판단해도 상관없느니라.” 냉악비의 어조에서 제왕의 여유가 느껴졌다. ‘거부할 수 없도록 매력적인 걸 준비한 건가.’ 주서천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꼼짝없이 낚시꾼에게 미끼를 물린 물고기 신세였다. “제안을……” 말꼬리를 한 번 끌었다가…… “받아들이겠다.” 답했다. ‘후우.’ 냉악비 대신 빙궁의 상층부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품은 고민이 한둘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 대신, 비급은 선불로 지급받겠다.” “상관없다. 마침 출병하려면 시간이 비니, 그동안 마음껏 비급을 고르도록 하라.” 협상이 무사히 체결됐는데도 냉악비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마치 소령과 같았다. “단, 빙궁의 무공은 제외한다. 또한,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무공 비급은 단 세 권뿐이 라는 걸 명심해라.” “네 권.” “……정점에 선 무인치곤 욕심이 많구나, 검신이여.” “네 권.” “흐응……” 북해의 무인은 팔 할 이상이 음한한 무공을 익히지만, 다른 성질의 무공을 안 익히는 건 아니었다. 특히 중원예서도 손꼽히는 신공의 분류에 들어가는 건 북해에서도 놓치기 아까운 무공서였다. 굳이 익히지 않더라도 급할 때 돈 대신 사용될 수 있다 보니 그대로 내주는 건 아까웠다. 냉악비도 고민되는지, 시선을 옆으로 돌려 측근에게 의견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믿을 수가 없군. 이런 터무니없는……” “이봐 세 권이야, 세 권 그것도 보고에서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비급에 보물까지 더한다고.” “한 권 더?” “도사는 물욕이 없다 하지 않았나?” “중원인은 욕심이 많다고 하더니만…… ” 측근들은 목소리를 죽이곤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물론, 목소리를 줄여 봤자 절대고수의 귀는 피하지 못했다. 얼마 뒤 결정이 떨어졌다. “미치겠구만…… 좋다! 네 권!” “좋아! 바이를라! 네 권!” 참고로, 바이를라는 고맙다의 달단어였다. 북해 여정이 늘어났다. 무림맹에게 사정을 알리기 위해서 서신부터 보내기로 했다. 주서천은 빙궁의 여무사의 손에 서신을 쥐여 준 뒤, 냉악비를 따라서 북해빙궁의 보고로 향했다. 주서천은 지하의 계단을 통해 내려가던 도중 맑고 투명한 벽면을 매만지곤 물었다. “이것도 대리석인가?” “아니, 얼음이다.” 냉악비가 즉답했다. ‘신기하군. 성질 더러운 그 양반께서 본다면 좋아라 할 궁전이야.’ 간야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북해궁주와의 협상으로 정신이 없어 미처 구경하지 못했으나 북해빙궁은 상당히 신기한 곳이었다. 우선, 내부가 생각만큼 그리 춥지 않았다. 도리어 따뜻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조사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바에 의하면, 궁 아래에 있는 어떠한 기문진 덕분이라더군.” “기문진?” “본 녀 역시 자세히 모른다. 워낙 오래된 일인 데다가, 궁의 근간을 흔드는 것인지라 궁주에게조차 그 내막에 대해선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면, 이 얼음은 뭐지?” 퉁퉁. 얼음벽을 손등으로 두들기며 물었다. 빙궁 내는 따뜻한데도 녹지 않는 얼음이 신기했다. “그대는 마치 무인보다는 탐험자와 같구나.” “모든 발견의 시발점은 호기심인 법이지.” “천고의 명언이군.” 나선형으로 된 계단도 어느 순간부터 얼음으로 변했다. 특이하게도 별이 박혀 있는 밤하늘처럼 밝았다. 횃불이 걸려 있지 않음에도 앞이 훤히 보였다. 약 반 각 정도의 시간을 내려가자 끝없이 이어졌던 계단이 끝나고 얼음으로 된 문이 반겼다. “궁주님을 뵙습니다.” 문 앞엔 잘 단련된 북해의 여고수가 경비로 서 있었다. 그녀들은 냉악비를 보자마자 곧장 부복했다. “보고의 비급을 가지러 왔다. 문을 열거라.” 냉악비의 명에 얼음 문이 활짝 열렸다. 그 내부 역시 얼음으로 된 구조물로 가득했다. “제한된 시간은 없으나, 본 녀가 궁주로서의 집무가 있으니 되도록 빠르게 선택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른 곳도 아닌 빙궁의 보고다. 중요한 만큼 북해궁주가 직접 감시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검신이나 되는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무인은 북해에서도 궁주가 유일했다. “참고하지.” 주서천의 눈이 반짝였다. ‘이렇게 된 거 수지에 맞는 걸 가져간다.’ 궁주의 집무가 쌓이건 말건 상관없었다. 후회가 되지 않도록 비급서는 전부 읽을 생각이었다. 보고에서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은 오로지 책장, 그것도 비급서가 분류된 곳뿐이었다. 그 외의 정보나 역사 등은 열람할 수 없도록 냉악비가 근처에서 감시했다. 주서천은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음으로 된 책장에 꽂힌 비급 서적을 꺼내읽었다. ‘많기도 하군.’ 과거, 북해의 중원 침공의 규모가 컸던 모양이었다. 정사의 무공은 물론이요 마공과 혈공도 존재했다. 다만 그 수준은 천차만별이었다. 상승의 무공 외에도 삼류나 이류에 준하는 것도 있었다. 마음 같아선 이름만 보고 고르고 싶었지만, 수량이 한정된 만큼 꼼꼼히 확인해서 골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약 한 시진이 될 무렵, 주서천은 결정한 듯 네 권의 비급서를 골라서 보여 줬다. “끝났느냐?” “그래.”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결단의 번복은 용납되지 않느니라. 이후 보고로 들어오지 못하니 명심해라.” “알았다. 대신에 개인 연무장을 잠깐 내줄 수 있나?” “못 내줄 거야 없지만, 길어 봤자 닷새 정도다. 본 궁의 여유가 그다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만약, 냉악비의 감정이 풍부했다면 이맛살을 찌푸리며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참전하기 전에 잠시 몸을 풀고 싶을 뿐이니, 그 정도면 충분해.”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빌려주지.” 주서천은 냉악비의 답변에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엔 기대감이 잔뜩 묻어났다. ‘좋아, 드디어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는구나.’ 냉악비는 주서천에게 개인 연무장을 내주었다. 기한은 닷새. 주서천은 낙소월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수련에 들어섰다. 무공을 터득하기 위해서였다. 개인 연무장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제자리에 앉아서 비급을 읽고 외우는 일이었다. 무공경지가 상승하면서 기억력 역시 좋아져서 그런지 암기하는 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다음에서야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섰다. ‘강격권(强擊拳).’ 무공 비급 그 첫 번째는 단연 권법이었다. 화산파의 매화권도 있으나, 사실 매화권은 권법이라기보다는 무공의 기초를 갈고닦기 위한 준비 운동에 가까웠다. 상황에 따라선 검을 버리거나 날려 버린 뒤 손발을 쓰는 자신에게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부딪친 순간에 맞춰 강함을 더한다.’ 직역하자면 세게 친다. 강격권의 원리는 단순하다. 이름그대로 강맹함을 실어 위력을 내는 것이 전부였다. 겉만 보면 그동안 해 온 방식과 비슷해 보이냐 엄연히 달랐다. 예전의 방식처럼 무식한 양의 내공을 주입해 가격하면 흘러넘치게 되며, 오히려 새는 경우가 생겨 비효율적인 면이 존재했다. 그러나 강격권처럼 정립된 무공을 사용하면 제대로 된 운기 덕에 쓸데없는 과소비를 막아 주고 최대의 위력을 내는 것도 가능했다. 강으로 비유하자면 전의 방식은 그저 강의 전체일 뿐이며 강격권은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 부분이었다. ‘일성(一成)은 기격(氣擊)의 사용법.’ 기를 특정 부위에 실은 뒤, 부딪쳐 가격한다. 기초적인 부분은 알고 있는 것인지라 중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검을 다루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니 이 또한 필요 없는 과정이라 생각하지 않고 시간을 투자했다. 답습 덕에 일각밖에 되지 않았지만 . ‘다음 단계는 이성부터 오성까지 주먹, 팔꿈치, 어깨, 팔 순으로 강격을 싣는 법을 익힌다.’ 권법이란 것이 주먹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보통은 맨손 무예로 알려져 있지만 팔의 운용법도 존재했다. ‘성취는 절반인 육성까지인가.’ 십이성이 대성인 강격권의 절반이 육성이었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반이란 한계는 아쉬웠다. ‘보법과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 강격권에는 일합을 이루는 보법이 존재했는데, 그 이름은 중소보(重素步)였다. 중소보를 수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만중검의 교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였다. ‘화려함 대신에 단출함을 중시하고, 일보는 묵직하게 내걷는다.’ 화산파의 신행백변과는 반대되는 성질이었다. 신행백변은 이름 그대로 변화무쌍하여 기초적인 발걸음만 해도 백 가지에 이른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도록 특화된 보법이었다. 화산의 변검에 알맞은 발걸음이었다. 반면에 중소보는 좋게 말하면 복잡하지 않고 간결하며, 나쁘게 말하면 단순한 형식이었다. 보폭이 넓고 움직임이 커 파악당하기는 쉬우나, 그 대신 강격권의 강맹함에 위력을 더해 주었다. 느릿해지는 것이 조금 흠이었지만, 한 걸음에 묵직함을 실은만큼 안정적이고 위력적이었다. 만중검과 접목시키기에 알맞은 보법이었다. 이로써 보법만 해도 세 종류였다. 변화의 신행백변. 가벼움과 신속의 유령보. 무거움과 안정의 중소보. 각 상황에 맞춰 대응할 수 있어 좋았다. 중소보의 기초를 다진 뒤 다음 무공으로 넘어갔다. 권법과 보법 다음은 장법(掌法)이었다. ‘공진장(共振掌).’ 공진장! 무림인, 특히 사파인이 그 이름을 들었다면 눈이 시뻘게져선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설마하니 실존된 귀진(鬼震)의 장법이 북해에 있을 줄이야.’ 주서천 역시 공진장의 이름을 보고 놀라워했다. 귀진의 활동 시기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오래전부터 이름이 알려진 사도의 절세고수였다. 그리고 귀진의 독문무공이 바로 공진장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귀진의 공진장은 사람은 물론이요, 이승이 아닌 저승까지 흔들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주서천은 머릿속으로 공진장의 구결을 떠올리면서 어떠한 무공인지 파악에 나섰다. ‘유(流)의 무공.’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손바닥을 매개로 하여 적의 몸에 접촉한다. 그 후, 상대의 기맥(氣脈)을 진동시켜 엉망으로 만든다.’ 적의 외부를 쳐서 내부를 훼손시키는 기예,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이었다. ‘과연, 유의 묘리로 기의 조작을 하는 건가.’ 강의 흐름이 각기 다르듯, 사람의 몸 역시 서로 다른 흐름을 지니고 있다. 단연 그 흐름이 외부의 공격으로 인해서 급작스레 바뀌게 되면 몸은 적응하지 못해 문제가 생겨 버린다. 공진장은 이 점을 노린 외부의 공격 방법이었다. ‘음공 혹은 청성의 칠십이파검과 원리가 비슷하다.’ 음공은 공기의 진동, 소리로 물리적인 파괴력을 낸다. 칠십이파검은 공기 대신 검의 진동을 사용했다. 여기에서 공통된 건 흔들리는 힘인 진동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공진장도 마찬가지 다. 손바닥의 충격파를 매개로 해 흐름을 조작하는 것이 그 원리였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다르지만 비슷했다. “공진장이 조금 까다롭군.” 강격권이나 중소보는 매화권이나 내공의 응용 방식, 만중검 둥 기존에 쌓아 둔 것이 있어서 무척 쉬웠다. 그러나 공진장은 익숙지 않은 장법인 데다가 유의 묘리도 그리 자세히 알진 못하니 노력이 필요했다. 심상구현인 답습 덕에 성취의 속도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빠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