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61)
시야를 가로막은 설인의 팔을 보곤, 몸을 움직였다. 바람의 압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차렷 자세를 풀 필요는 없었다. 몸을 살짝 틀기만 했다. 정자세의 몸을 사선으로 틀었고, 앞을 가로막은 팔을 스쳐 지나간다. 하나를 제치고 아직 여섯 마리가 남았다. 느릿해진 시간 속에서 양옆으로 세 마리씩 멈춰진 게 보였다. 사람의 극의를 넘어선 경지의 능력은 대단하다는 말로 부족했다. 감각도, 신체도 상식을 넘어섰다. 주서천은 사선으로 틀어진 몸에 힘을 주고 다시 돌렸다. 한 바퀴 회전하는 동시, 두 마리를 처리했다. 세 마리와 접촉한 순간, 주서천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회전하는 채로 검을 번개같이 뽑아 휘둘렀다. 서걱! 설인의 팔이 잘렸다. 추위 탓인지 아니면 너무 깔끔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피 한 방울 안 나왔다. 검의 주인은 그 결과가 당연하다는 듯이 쳐다보지도 않고, 검광을 연달아 뿜어내 네 마리째의 옆구리부터 시작해 반대편 어깨 위까지 사선으로 베었다. 휘리릭! 빙글 돌았던 몸이 원래의 위치를 찾았다. 전방에는 다섯 마리째의 설인이 어김없이 자리 잡고 있었다. 파앗! 오른팔을 앞으로 쭉 내미는 동작과 동시, 손바닥으로 검의 아랫부분을 쳐낸다. 외부에서부터 충격을 받은 검은 화살처럼 쏘아져, 설인의 팔 근육 윗부분에 구멍을 내고 날아갔다. 주서천은 검을 쏘아 낸 뒤, 왼팔도 앞으로 뻗어 구멍이 난 팔을 봉처럼 잡은 뒤 제자리에서 돌았다. 그냥 돈 것이 아니다. 설인의 팔과 접촉된 순간, 공력이 해일처럼 몰아치며 기맥을 뒤흔들어 놨다. 짧은 순간에 공진장이 팔에서부터 시작해 곧 온몸으로 뻗어 내장까지 크게 흔들어 놔 충격을 입혔다. 휘릭! 팔을 봉 삼아 회전하는 묘기를 보여준 뒤, 그 힘을 반동 삼아서 다시 유성처럼 쏘아졌다. 최후에 가로막은 설인은 전의 개체와는 다르게 측면이 아니라 정면이 보였다. 못생긴 얼굴이다. 주서천은 차렷 자세로 몸을 엎드린 채 쏘아지다가, 곤륜파의 운룡대팔식처럼 공중에서 한 번 뒤집었다. 본래 이 정도 되는 속도로 쏘아지던 와중 몸을 피면 바람의 저항 탓에 몸이 부러질지도 모르겠지만, 환골탈태와 현경의 신체 능력 덕에 면할 수 있었다. 주서천은 운룡대팔식처럼 공중에서 방향을 전환하진 않았다. 대신 발을 내려 설인의 머리에 꽂았다. 콰아앙! 속도가 속도다 보니, 발에 담긴 힘 역시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각법도 아닌데 머리의 반이 날아갔다. 뇌 밑에 드러난 머리를 힘껏 짓밟고, 지면 삼아 다시 뛰어오른다. 그러곤 오른손을 올려 기예를 펼쳤다. 허공섭물. 거리가 멀수록 내공이 극심하게 소모되지만, 자신에겐 별문제 없었다. 앞서 나간 검을 부르자, 손안에 빨려 들어가듯이 돌아와 잡혔다. 주서천은 검이 잡히자마자 자줏빛으로 일렁이는 검광으로 수직선을 그려 냈다. 서걱! 빙궁의 남무사를 입 안에 막 넣으려던 설인은 배를 채우지 못하고, 몸이 세로로 쪼개져 즉사했다. 동시에 실린 힘이 보통이 아니라는 듯 검으로 일으킨 풍압만으로 설인이 있던 자리에 큰 바위가 떨어진 것처럼 큰 충격이 일어났다. 쿠아아앙! 눈으로 된 기둥이 위로 솟구치고, 몸이 둘로 쪼개진 설인의 몸은 눈에 파묻혔다. 이 정도면 눈사태가 일어나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였다. “어푸!” 설인의 손에 잡혀서 잡아먹히기 직전이었던 빙궁의 무사가 눈 더미 밖으로 몸을 꺼내며 눈을 뱉어 냈다. “후우!” 멈춘 것처럼 느릿하게 흘러가던 시간이 정상으로 되돌아갔다. 주서천은 검 끝으로 지면을 툭툭 쳤다. “……” 근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빙궁의 무사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어떠한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야말로 압도적. 그 이상 그 이하의 표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상천만 보여 줄 수 있는 신위(神威)였다. “크, 크르르……” 최초에 스쳐 지나간 설인을 제외하면, 가로막은 설인 무리와 최후의 한 마리. 그렇게 한순간에 일곱 마리가 당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설인의 무리는 압도당해 몸을 파르르 떨었다. 영물이라 그런지 몰라도 직감이 뛰어난 것인지, 주서천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지금이다!” 주서천의 검신에 자줏빛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공포에 질려 있을 때를 노려라!” 검신의 외침이 빙궁의 무사들을 깨우쳤다. “와아아!” “죽어라!” “놓치지 마라!” 빙궁의 무사들은 설인과 상성적으로 불리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자신들에겐 상천육좌가 있었다. 설인의 무리에게 압도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사기가 대설산의 봉우리를 뚫을 정도로 높아졌다. 눈사태를 신경 쓴 탓에 함성이 그리 높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 기세가 확 느껴졌다. “화산파가 무림 제일의 문파라고 하더니만…… 그 말이 사실이로군요. 화산의 검수들은 전부 저렇게나 대단한 겁니까?” 하와르가 감탄하며 물었다. “아하하……” 낙소월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화산파가 아니라 주서천이 괴물인 것뿐이긴 하지만, 사문을 칭찬해 주니 별말 하지 않기로 했다. 부웅! 낙소월이 웃는 얼굴로 상체만 살짝 숙였다. 머리 위로 공기가 무겁게 찢기며 설인의 주먹이 지나갔다. “저 정도는 아니에요. 사형이 규격외인걸요.” 검신의 사매는 하와르의 질문에 답하면서, 검을 휘둘러 설인의 목을 얇게 베었다. 그리 큰 힘을 싣지 않았지만, 검신을 둘러싼 강기 탓에 털가죽이나 근육도 두부처럼 갈라졌다. 쿠웅. “……” 하와르의 눈썹이 구부려졌다. 표정변화가 거의 없었지만, 미약하게 어이없다는 감정이 묻어났다. 약관의 무인이 질문에 답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설인을 처리하는 모습은 충분히 괴물처럼 보였다. “거, 검신!” “예~ 다음 갑니다.” 주서천이 산책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캬아아아악!” 전설의 설인조차도 주서천 앞에선 한낱 미물에 불과했다. 분노의 외침은 공포로 변질됐다. 동족상잔을 해야 할 정도의 굶주림조차 공포에 지 배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대충 세어 봐도 이백을 넘어섰던 설인 무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백으로까지 줄어들었다. “소령, 고마워.” 낙소월이 등을 맡긴 소령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낙소월도 낙소월이지만, 소령의 활약 역시 적지 않았다. 낙소월을 등진 채로 설인의 학살에 참가했다. 빙궁의 무사들의 기세도 점차 안정화됐다. “다리의 근맥을 잘라라!” “하체가 무너지는 거에 맞춰 심장을 공격한다!” “무리하지 말도록!” 설인이 날렵하고 힘세다고 한들, 대여섯 명씩 붙어서 체계적으로 공격을 하면 어찌할 수가 없었다. 가끔씩 통하지 않는 개체가 등장해도 주서천이 나타나선 일검에 베어 허무하게 쓰러졌다. “쿠오오오오오오오!” 그때였다. 여태껏 들어 보지 못했던 울음소리가 설산에 메아리쳤다. 설인의 사이를 거닐며 여유가 묻어나는 검무를 펼쳐 내던 낙소월도 울음소리를 듣더니 얼굴을 굳혔다. 울음소리에 실린 분노와 살의는 화경의 고수조차 움찔하게 만들 정도였다. “나왔구나.” 주서천이 기다렸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설인의 시체로 즐비한 언덕의 위, 무리의 우두머리가 모습을 드러 냈다. 새하얀 털에 묻힌 핏발 선 눈동자는 무리를 잃은 우두머리의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몸집을 보면 왜 우두머리인지 알 수 있었다. 팔 척을 넘어서 거의 구 척에 이르는 큰 키였다. 설인이 아니라 거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신장이었고, 근육도 배는 컸다. 그야말로 괴물이다. 쿠구구구. 설상가상으로 산의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꼼짝도 않던 눈 더미가 방금 전 괴성으로 인해 들썩였다. 걱정했던 눈사태가 일어나기 일보직전이었다. “크……” “어딜!” 주서천은 우두머리의 생각을 눈치채곤 유은비도를 펼쳤다. 소맷자락이 펄럭이면서 비수가 튀어나왔다. 햇빛에 반사되며 섬광을 내뿜은 비수는 눈에 안 보일 정도의 속도를 내며 입 안을 노렸다. 째앵! “호오!” 주서천이 옅게 감탄했다. 설인의 우두머리가 날아온 비수를 입으로 낚아채곤, 턱에 힘을 주어간단히 부러뜨렸다. 그래도 나름 힘을 실어 날린 것인데 간단히 막아 내는 걸 보고 과연 우두머리는 우두머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정도면 능히 영물이로다.’ 주서천의 눈이 먹잇감을 찾은 독수리처럼 빛났다. “우두머리를 맡을 테니, 나머지를 부탁한다!” 주서천은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답설무흔을 펼쳤다. 유령신공으로 가벼워진 몸에 속력을 더했다. ‘눈사태가 일어나면 귀찮으니, 포효할 틈을 막는다.’ 손자병법에서 말하기를, 지형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주서천의 생각대로였다. 아군은 반밖에 남지 않았는데 적은 여전히 많다. 설인의 우두머리는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이 지형뿐이라고 생각했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몰릴 줄은 몰랐다. 짐승의 무리는 보통 약한 수컷이 사냥감을 우두머리 수컷과 암컷에게 가져와 바치기 마련이었다. 설인의 우두머리도 사냥이 끝나길 기다렸는데, 예상과는 달리 무리가 순식간에 반이나 줄어든 것이다. 결국 내버려 두면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 생각해 우두머리가 직접 나섰다. “쿠오옷!” 설인의 우두머리는 산을 울릴 정도의 포효는 하지 못하고, 기합을 내지르는 느낌으로 울부짖었다. 대신에 그 여력을 자신을 향해 똑바로 날아오는 인간, 주서천을 공격하는 데 썼다. 부웅. 오른손을 위에서 아래로 힘껏 내리친다. 힘의 세기나 속도 전부 월등했다. 근력의 원천인 근육이 울긋불긋 부풀어 올랐다. 털 속에 숨겨진 피부 위로 퍼런 핏줄이 돋아났다. 우두머리는 전속력으로 품 안에 들어오는 주서천을 보고 속으로 비웃었다. 여태까지 이 일격에 살아남은 이는 없다. 길을 잃고 온 인간도, 무리의 전사도 즉사했다. 자신의 힘은 타고났다는 표현 외에 설명할 게 없었다. 사람도, 짐승도 이 힘 앞에 굴복했다. 눈앞의 인간 또한 전례와 같은 모습이 되리라. 쿠웅! “크르르……?” 하나, 그 예상은 완벽하고, 철저하게 빗나갔다. 조금도 맞지 않았다. 무언가 부딪친 느낌은 났지만, 그 아래의 사람은 피떡이 되지 않았다. 평소라면 지면이 움푹 파이며 눈이 몰아쳐야 할 광경 대신, 왼손으로 주먹을 받친 사람이 보였다. “묵직하네.” 주서천이 한마디 했다. 조소가 아닌 진심이었다. 손이 제법 얼얼했다. 팔 근육도 당겼다. 내공의 운용 없이도 이 정도 되는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 차례다.” 푸욱! 손아귀에 힘을 주자, 다섯 손가락이 우두머리의 팔 근육에 빨려 들어가듯이 파고들며 구멍을 냈다. “캬아아아악!” 근육으로 둘러싸인 팔의 아랫부분이 줄어 들었다. 구멍이 난 부위에서 피가 철철 흘렀고, 끔찍한 고통이 동반됐다. 급히 빼려 했지만 꼼짝도 안 했다. 주서천은 무심한 표정으로 팔을 한바퀴 돌렸다. 우드드득! 팔이 꺾이지 말아야 할 방향으로 돌아가며 소름 끼치는 뼈 소리가 났다. 근육이 찢기고, 뼈가 부서졌다. 우두머리는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에 무심코 몸을 앞으로 움츠렸다. 주서천은 그 틈을 노려서 왼발을 시원스레 내디디고, 오른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턱을 힘껏 후려쳤다. 빠아악! 고개가 뒤로 꺾이듯 젖혀졌다. 길게 내려진 송곳니가 부러지면서 공중으로 떠올라 빙글빙글 돌았다. 주서천은 그 뒤로 물 흐르듯이 동작을 연결해 검을 뽑아내 절초를 펼쳤다. 우르릉!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에 빙설 대신 우렛 소리가 뿜어져 나온다. ‘위이잉’ 하고 자줏빛 섬광이 번쩍였다. ‘자하개벽!’ 자하검결의 제일검이 설인의 가슴 정중앙에 쏘아졌다. 쇠보다 단단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