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75)
명문정파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라!” “흥! 너희야말로 부끄러운 줄 알거라. 결국 이 지경까지 온 건 너희 화산파 탓이 아니던가.” 곽채가 적반하장으로 방철삼을 비난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방철삼, 화산오장로의 제자로서 화산파가 잘못됐다는 걸 시인하고 내부 고발해라. 그리고 숭산파가 오악의 수장이란 것을 말한다면 내 네 목숨만큼은 살려 주도록 하겠다.” 곽채는 마치 숭산파, 아니 오악검파의 수장이 된 것처럼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였다. “이익!” 방철삼의 얼굴이 분노로 벌갛게 달아올랐다. “그 표정을 보아하니 그럴 생각은 없나 보구나.” 곽채가 방철삼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죽여라!” 파바밧! 열에 이르는 숭산파의 제자들이 뛰쳐나갔다. ‘아, 안 돼!’ 방철삼이 최후의 발악을 하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사방팔방에서 동시에 몸을 날린 탓에 도망칠 곳도, 틈을 파고들 곳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내공도 소진된 상태. 죽음이 임박한 걸 느낀 방철삼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꽉 감았다. 쐐액! 검이 바람을 가르고…… “아악!” 서걱! 그다음으로 손목을 잘랐다. “어?” 방철삼이 어안이 벙벙한 듯 눈을 껌뻑였다. 자신이 내지른 비명이 아니었다. 신체 일부가 상실된 감각도 없었다. 대신 눈앞에 잘린 손목이 보였다. 퓨붓! “케헥!” 혼란은 끝나지 않았다. 손목이 잘린 제자의 몸 위로 사선으로 핏줄기가 그어졌다. “아!” 방철삼이 그제야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환희와 경악, 그리고 순수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낙 사저!” 낙소월이 방철삼 옆을 지나쳐 검을 쭉 뻗었다. 푸욱! “컥!” 방철삼의 등 뒤, 숭산파 제자가 눈을 부릅떴다. 구멍이 뚫린 가슴을 부여잡고 뒤로 쓰러졌다. 휘리릭! 낙소월은 숨을 멈춘 채로 다음 행동을 이었다. 앞으로 내민 발을 축으로 삼아 팽이처럼 돌았다. 그저 돈 것만이 아니다. 무게 중심을 앞으로 옮기면서 이동한 뒤, 검으로 반원을 그려 냈다. 서걱! “끅, 끅!” 근처의 숭산파 제자가 목을 붙잡았다. 어떻게든 막으려 했으나, 동맥을 스치고 지나가 소용없었다. 목에서 피가 흘러나와 결국 의식이 흐릿해졌다. 휘리릭! 삭풍이 살에 차듯 불었다. 등골에 오싹 소름이 다 끼쳤다. 숭산파의 제자들이 확인하기도 전이었다. 낙소월은 발을 우아하게 내려놓는 듯싶더니만, 순식간에 격풍처럼 몰아치며 적의 사이를 헤집어 놓았다. 코에서부터 흡입되어 뇌를 가득 메우는 매향은 곧 생전에 최후로 맡은 향이 됐다. 파바바밧! “어억!” 반격을 위해 팔을 움직이면 잘린다. 스쳐 지나가면 동맥이 베여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운이 좋아 막아 보았으나 검째로 베였다. 최후에 순간에 본 건 검에 맺힌 강기였다. 결국, 눈 깜짝할 사이에 숭산파 제자 무리가 전멸했다. “무, 무슨……!” 곽채가 입을 찍 벌리며 당황했다. 그러곤 사형제를 학살한 범인을 보고 다시 놀랐다. “헉! 서, 설마!” 곽채가 낙소월의 별호를 말하려던 찰나였다. 낙소월이 마치 공간을 접듯이 곽채 앞으로 이동하더니만,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매화권법을 내질렀다. 퍼억! “케헥!” 곽채가 얼굴을 맞고 뒤로 엎어졌다. 빠악! 넘어지는 곳이 그리 좋지 않았는지, 뒤통수가 돌조각 위로 떨어져 머리가 깨졌다. “……응?” 낙소월이 정신을 잃은 곽채를 내려다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날 아는 사람인가……?” 모를 리 없다. 매화검봉이라면 무공만이 아니라 미색으로도 유명하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 방철삼 사제, 괜찮아?” “네, 넵!” 방철삼이 놀란 듯 군기 든 병사처럼 대답했다. “홍 사형과 서은 사저, 어디에 계신지 알아?” “저, 저쪽입니다.” “고마워.” 낙소월이 선녀처럼 미소 짓곤 몸을 날렸다. 방철삼은 혼자 남아 낙소월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이윽고 무언가 깨달은 듯 소리쳤다. “아! 낙소월 사저가 오셨다는 건……!” “주서천!” 조무양의 얼굴이 짝 퍼졌다. 얼굴에는 환희가 가득했다. “장로님, 괜찮으십니까?” “그럼 당연하고 말고!” 조무양은 주서천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지만, 지금 만큼은 안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현 상황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마음 같아선 스승의 일부터 물어볼까 했지만, 조금 자중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화산파의 습격에 머리가 돌아가 버렸다고 해도, 전황을 알지 못하면 피해가 더 커질지도 모른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대충이나마 전황을 들은 뒤에 출발하기로 했다. “그게……” 조무양은 최대한 간결하게 요약해서 설명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부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정상, 상궁에 장문인을 호위하고 있을 걸세.” * * * 철퍽! 선녀가 머리를 감았다던 연못이 짓밟혔다. “다른 것들은 무시한다! 유정목을 잡아라!” 약 서른에 이르는 무리가 독단 행동에 나섰다. 옷차림은 삼악검파의 도복이었으나, 무언가가 이상했다. 우선 목표여야 할 정휘련을 무시한 것이었다. “유정목!” 파바밧! 삼악검파의 제자들에게서 나오지 말아야 할 것이 나왔다. 소맷자락이 부풀어 오르더니 암기가 나왔다. “흡.” 심옥련과 합을 맞추던 유정목이 흠칫 놀랐다. ‘암기?’ 삼악검파가 무림맹, 나아가 정파를 배신한 건 문파로서의 열등감이다. 아무리 막장이라 하지만 그 근원이 무공, 그것도 검이라는 자존심이다보니 암기를 택할 만큼 미치진 않았다. “하압!” 유정목은 혹시라도 암기가 곁의 심옥련에게 날아가지 않도록, 검을 재빠르게 움직여 암기를 쳐냈다. ‘내 이름을 불렀다.’ 정휘련도 심옥련도 아니었다. 무공은 물론이요 머리까지 비상한 유정목답게 판단력 이 빨랐다. “장문인을 보호해라!” 유정목이 외치며 초예사태와 심옥련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예상대로 정체불명의 무리가 따라왔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다소 거친 방법을 써도 상관없다!” 삼십인 중에서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외쳤다. “유정목을 잡아!” “크윽!” 유정목은 대화가 소용없다는 걸 깨닫곤, 상궁에서 물러나며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장문인이 휘말릴 것을 우려한 행동이었다. 혹시라도 함정이라면 어쩌나 싶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그들은 정휘련에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딜!” 불명인이 꼬리처럼 달라붙어 검을 쭉 뻗었다. 쐐애액! 정면에서부터 검을 찔러 들어왔다. ‘으음?’ 그러나 갑작스레 방향을 틀었다. 최초에 노리던 흉부가 아닌 손목이었다. ‘살의가 없다.’ 유정목은 의아하면서 손목을 노린 검을 쳐냈다. 째앵! “타아압!” 검을 쳐내자마자 연이은 공격이 들어왔다. 정면의 불명인 옆으로 각각 두 명씩 달려들었다. 좌우 상단에서부터 검이 수직선을 그려 내고, 바로 아래에서 옆구리를 노리고 쏘아졌다. ‘이건……’ 유정목의 의아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순간에서도 적의 의도가 무엇인지 추측했다. “훗!” 크거나 늘어지지 않은 기합. 침착하게 가라앉은 숨을 내뱉곤, 검초를 상하좌우로 넓게 펼친다. 꽃봉오리처럼 오므린 내공은 이윽고 공력으로 전환되며, 만개하듯이 매화를 피며 장막을 이루었다. 채채챙! “말도 안 돼!” 정면의 무리가 경악했다. 아무리 살심을 배제했다고 한들, 움직일 수 없도록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그런데 퇴보하는 도중에 전부 다 막아 냈으니 놀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칠절매화검(七絶梅花劍)!” 누군가가 유정목의 검초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만화성막(萬花成幕)인가!” “으드득!” 이십사수매화검법은 매화검수에게만 주어진다. 주서천이야 워낙 특이하다 보니 예외인 경우지만, 보통은 매화검수나 예검수, 혹은 은퇴한 검수에게만 허락됐다. 유정목은 건강 탓에 매화검수가 되지 못해 전수를 받지 못했고, 지병이 나았을 땐 나이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이 칠절매화검이었다. “합!” 유정목은 문파는 물론이고 무림에서도 성격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별호도 부드럽고, 유려하며 언제나 입에 머금은 자애로운 미소 덕에 소유검이라 붙었다. 하나 그렇다고 연약한 건 아니다. 이 강호에서 살인을 주저할 정도의 애송이는 아니며, 이상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크아악!” “아악!” 여섯 명에 이르는 불명인이 검에 베여 쓰러졌다. “큭!” 이십 하고도 네 명이 혀를 차며 주춤거렸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포위하는 건 잊지 않았다. “과연.” 유정목이 포위한 이들을 살피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의 정체는 암천회인가?” “누가 주서천 사부 아니랄까 봐 눈치 한번 빠르구나.” 불명인, 아니 암천회의 칠성사병이 짜증을 냈다. “그대들이 정녕 삼악검파 출신이었다면 장문인을 코앞에 두고 나를 따라올 리 없네.” “겨우 그 이유만으로 답에 도달한건가?” “이 보잘것없는 중년의 무인에게 뭐가 있다고 끝까지 따라오겠는가. 검초에 살의가 깃들어 있지 않은 걸 보아하니 날 어디론가 데려갈 생각인가 본데…… 답은 뻔하지. 나에 대한 원한이 없는 것이라면, 제자인 서천이를 협박하기 위해 인질로 쓸 생각이겠구나.” 유정목은 화산파에서 장문인만큼 유명한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검신의 스승이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그 검신이 평소에 유정목에 대한 찬양을 끊이지 않고 하다 보니 유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좋으니 이야기가 빠르구나, 유정목.” 지휘관이 손을 들자 칠성사병이 포위망을 좁혔다. ‘과연, 암천회로구나. 하나하나가 절정의 고수다.’ 유정목은 겉으론 평온한 표정이었으나, 속내는 전혀 달랐다. 여러모로 긴장한 상태였다. 최소 경지가 절정이고, 나머진 최절정이다. 화경의 고수는 보이지 않았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심지어, 방금 전에 초예사태와 격전을 이룬 후였다. “쉽지는 않을 걸세.” 유정목이 검을 세우자, 강기가 맺혔다. “검강!” “화경의 고수였다니……” 칠성사병은 전장에 도착한 지 얼마되지 않았다. 초예사태와의 격전에서 유정목이 검강을 쓰는 걸 보지 못했으니 경지도 몰랐다. ‘화경이라는 건 듣지 못했거늘……’ 무엇보다, 유정목의 경지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초절정에서 최상승에 있다는 것만 알았다. 알려지기 좋아하는 무림 특성상, 보통 본인이 아니어도 사문의 제자가 무공의 극의를 이루면 사문의 이름이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알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정목은 스스로 나서는 걸 딱히 좋아하는 성격도 아닐뿐더러, 그렇지 않아도 검신의 사부라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워서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랐다. 현 장문인인 정휘련은 동경하는 무인이자 우일문 다음으로 존경하는 주서천의 스승이 하는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그것이 바로 유정목의 경지가 알려지지 않은 연유였다. “후우……” 유정목은 제자 덕에 지병 아닌 지병을 해결한 뒤, 마치 그동안의 답답함을 풀 듯 수련에 집중했다. 매화검수에 들지 못한 것도 사실상 지병 탓이지, 재능이나 실력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건강 체조랍시고 내공 없이 스스로 절벽을 등반했던 양반이다. 무공의 수련도 노력 부분의 상식이 이상하게 결여되어서 누구나 다 혀를 내두를 만큼 독한 수련을 자행했다. 유명세 탓에 강호에 출두하지도 않고 끝없이 수련한 덕분인지 화경에 오를 수 있었다. “주서천이 오기 전에 해결한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유정목을 데려가라!” “천기님의 말씀을 명심해라!” * * * 덜덜.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손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적과 처절하게 검을 교환했다. 수로 밀어붙이면서, 어떻게든 밀어내려고 했다. 승산이 보였다. 화산파의 무명이 무색하게 보였다. 하나, 어떠한 사람의 등장으로 상황이 돌변했다. “누, 누구라고……?” 매화 잎이 흩날린다. 날씨가 따스함에도 한겨울처럼 추웠다. 악몽이었다.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갑자기 날아오듯이 공중 위에 나타나더니만, 자색의 빛이 번쩍이는 순간 사형제들이 비명을 내지 르면서 쓰러졌다. “상천육좌(上天六座).” 절대고수가 걸어왔다. 그 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