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76)
어떠한 흥미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귀찮은 것을 보는 것 같았다. “검신(劍神).” 분명 언덕 아래에 있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인지 마치 내려다보는 것처럼 보였다. “주서천.” 그 이름에 전장, 아니 화산이 요동쳤다. “우……” 누군가의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오고…… “우와아아아!” 곧 함성으로 바뀌었다. “거, 검신?” “주서천?” 화산파의 경우, 마치 완승을 거둔 것처럼 환희했으나 삼악검파는 그 반대였다. 안색이 시체처럼 창백해지거나, 혹은 얼어붙어서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말도 안 돼!” “검신이 어째서!”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경악과 불신, 그리고 공포 등의 감정이 뒤섞여 소용돌이처럼 움직였다. 놀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크, 큰일이다!’ ‘어떡하지?’ 주서천의 북해 행은 극비로 붙여졌으나,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지 못한 건 아니었다. 특히나 암천회의 요주의 인물인 주서천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다 보니 이상함을 느꼈다. 행적을 명확하게 알 수는 없었으나, 적어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암천회는 검신이 자리를 비운 지금에야말로 화산파를 무너뜨릴 천재일우라며 꼬드겼다. 즉, 주서천은 존재만으로 억제력 그 자체라는 의미였다. 한데 그 억제력이자 공포의 상징이 전장에 나타났으니, 혼란을 부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최고의 원군이 도착했다!” 위지결이 이때다 싶어 진두지휘에 나섰다. “화산의 검을 똑똑히 보여 줘라!” “오오!” 방금 전만 해도 배나 되는 전력 차이에 지쳐 가던 화산파였다. 주서천의 등장만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위지결은 태산파검을 앞에 두고도 무시한 채, 목소리를 쩌렁쩌렁하게 외치면서 화산의 검수들을 움직였다. “이, 이놈!” 눈앞에서 대놓고 무시당한 태산파검의 낯빛이 울긋불긋 해졌다. 이마예선 퍼런 핏줄이 툭툭 튀어나왔다. 당장 달려들 기세였으나,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위지결을 쳐다보다가도 주서천이 신경 쓰이는지 힐끗힐끗 살펴봤다. ‘제이식.’ 삼악검파의 후위, 주서천이 검을 높이 들었다. ‘화우선형!’ 굳이 무형의 강기를 동원할 필요도 없다. 하단전에서부터 끌어 올린 자하진기를 넓게 퍼뜨렸다. 콰르릉! 고막이 찢어질 정도의 굉음이었다.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우렛소리가 들렸다. 검에서 쏟아진 대량의 자하진기는 부채꼴처럼 펴지면서 정면, 삼악검파의 후위대를 덮쳤다. 콰드드득! 자하검결이 지면을 훑고 지나갔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대지가 흔들리고, 바위가 솟구쳤다. “아아악!”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절대고수가 어찌하여 상천이라고 빗대어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어떻게든 막아 보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검을 든 채로 몸이 날아가거나, 막지 않은 부위가 베였다. “크, 크으윽!” “쿨럭!” 자하의 폭풍에 내상을 입은 자도 속출했다.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쑥대밭이 됐다. “위 장로님!” 주서천이 위지결을 부르며 바라봤다. ‘이만하면 됐다.’ 위지결이 머리를 위아래로 느릿하게 흔들었다. ‘좋아!’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나, 사문이 곤란에 빠졌는데 못 본 척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 만약에 도와주지 않을 경우, 유정목 성격상 어찌하여 외면했냐면서 화낼 것이다. “뒤는 맡기겠습니다!” 주서천이 몸을 활등처럼 굽혔다. 그리고 다시 펴는 순간, 마치 튕겨나가는 것처럼 쏘아졌다. 전력을 낸 궁신탄영은 후폭풍까지 일으켰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춤을 추듯 흩날린다. “휴우!” 태산파검은 주서천이 떠나는 걸 보고 안도했다. 그러나 곧 그 얼굴은 자존심처럼 구겨졌다. ‘안도했다고?’ 검신의 이름을 들은 순간,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감정이 곧 공포에서 파생됐다는 걸 깨달은 순간, 용암처럼 끓어오르던 감정이 폭발했다. 치욕이었다. “이, 이, 이익!” 화가 너무 난 나머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또다시……!” 평생 동안 화산파를 넘기 위해서 노력했다. 어딜 가도 화산파에게 밀리는 취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악검파에 화산파가 먼저인 게 짜증 났다. 언젠가 넘어야 할 대상이며, 동시에 그들을 증오했다. 코를 납작하게 해 줄 것을 맹세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인가. 납작하게 해 주기는커녕 겁먹은 개새끼처럼 꼬리를 내린 채 숨죽였다. 검신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기는커녕 그 무위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으아아아악!” 가슴이 뜨거웠다. 심장이 쿵쿵 뛴다. 하복부, 단전이 감정에 반응하듯 성난 소처럼 날뛰었다. 태산파의 문주가 기어코 이성을 잃었다. 오악 위에 우뚝 솟아야 할 검강은 아래로 추락한 지 오래였다. 정순함은 온데간데 없고, 그 대신 질척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역류하듯 분출했다. “무엇이 그리 이렇게까지 망가뜨렸나.” 위지결은 태산파검을 보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호승심이 아닌 열등감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언제부터 고장 난지 모를 이 무림인가.” * * * 서로를 마주 본 채 출발한 검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콰앙! 물질과 물질이 아니었다. 대자연의 힘을 무술의 극의로 승화시킨 기운이 충돌한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겹겹이 쌓인 대기층이 부서졌다. 충격파가 파도가 되어 주변을 훑었다. “크읏!” 심옥련이 침음을 흘렸다. 유정목이 후퇴한 이후 결국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절매산엽검식이라는 상성의 검법과 더불어 주화입마로 폭주하기 시작한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죽어라!” 초예사태가 고함을 내지르며 검을 찔렀다. ‘이런!’ 심옥련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에 지쳐 잠시 틈을 보인 게 문제였다. 몸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대응하기가 힘들었다. 하는 수 없이 피해만이라도 최소화하자며 몸을 기울이며 고통을 기다렸다. 째앵! 그러나 그 순간, 또 다른 검이 파고 들었다. “장문인!” “정휘련!” 정휘련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검에 실린 자줏빛 실 자락이 일렁였으나, 그 색은 한없이 옅었다.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고 하나, 정휘련은 약관도 되지 못한 아이다. 화경일 리가 없었다. 검신의 가르침과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고 한들,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화경에 오르지 못한다. “최고가 되는 것이 그리 중요한가?” 어린 장문인의 눈동자가 고요하게 타올랐다. “오랫동안 이어 온 신념을 내던지고, 남을 짓밟고, 문도를 대거 희생시켜야 할 정도로 중요하냐는 말이다.” 정휘련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비교란, 결국 행복의 끝이며 불행의 시작이다!” “그 비교를 시작한 것은 이 무림이 아니더냐!” 초예사태가 피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무공이나 출신에 따라 우위를 매기고, 멋대로 누구보다 강하다, 약하다 등의 순위를 정하고.” 검을 쥔 손 위로 힘줄이 돋아났다. “행복까지 겨루며,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경쟁뿐인 사회를 만든 것은 잘난 무림인이지 않느냐!” 채애앵! 초예사태가 정휘련과 심옥련의 검을 힘껏 받아쳤다. 가공할 수준의 공력에 두 사람은 대경했다. 검에 실린 강기는 마치 분노와 같이 활활 타올랐고, 금속끼리 부딪치면서 만들어 낸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마교와 뭐가 다르더냐!” 태어난 순간부터 경쟁이 약속됐다. 열심히 공부해 타인의 위에 오르라고 들었다. 남보다 우위에 서야 한다고 들었다. 누군가를 넘어서서, 짓밟으라고 들었다. 이 정도의 행복으론 부족하다며, 더한 행복을 사로잡으라며 속삭였다. “힘이 곧 전부라는 족속들과 뭐가 다르냐고!” 규율로 가득한 곳을 나가니 세상은 더한 곳이었다. 대화 없이 재능이나 출신만을 보고 판단했다. “……주…다.” 비구니의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다. 입 바깥으로 피가 꿀렁꿀렁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지옥 아래에서 올라온 것처럼, 목소리는 고통과 절규로 가득했다. 피로 가득한 눈은 섬뜩했다. “저주다……!” 툭툭걸을 때마다 핏줄이 터졌다. 관절 부분이 삐걱거렸다. 뼈가 부러지고 근맥이 뒤틀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새하얗게 질린 머리카락은 피와 땀으로 범벅이었다. “무림을…… 저주하겠다……!” “……”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압도당한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정휘련과 심옥련은 검을 내려놓았다. 압도당해 패배를 인정한 게 아니었다. 검을 들 필요가 없었다. 숨이 점차 꺼져 간다. 맥박도 낮아졌다. 눈과 입, 코에서 피란 피는 다 쏟아졌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여전했다. 약해지기는커녕, 더더욱 강렬하고 증오 어린 안광을 내뿜었다. * * * 장문인을 걱정해 장소를 옮긴 게 화근이었다. 유도한 것까진 좋았지만 혼자 남는 원인이 됐다. “하아, 하아!” 유정목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눈을 가늘게 떴다. 몸에 상처는 없었으나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대단하구나, 소유검.” 암천회 무력 부대, 개양성의 칠성사병이 감탄했다. 표정에 묻어나는 놀람을 보면 비꼬는 것이 아니었다.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주변에는 숨이 끊어진 시체가 가득했다. 서른에 이르던 정예 부대원은 겨우 일곱 명밖에 남지 않았다. 제압하는 것이 죽이는 것보다 어렵다곤 하지만,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발버둥 치는 것도 여기까지다.” “큿!” 유정목이 뒷걸음질 쳤다. 도망치려 해도 퇴로가 막혔다. 무엇보다 기력이 다한 점이 컸다. 도리어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하다할 정도였다. “유정목 순순히 따라간다면 피를 볼 일은 없을 거다. 힘을 쓸 수 없도록 산공독을 먹이긴 하겠지만,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마.” 무림맹에서 보낼 지원 병력이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 순간순간이 아까웠다. 유정목의 힘이 다했다고 하지만, 화경의 고수가 목숨까지 버려 가며 발버둥 친다면 상당히 성가시다. 또한, 이 난리 통에서 벗어나려면 동료가 한 사람이라도 살아 있는 편이 나았다. ‘서천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제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자가 검신이 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장문인은 방문객 대부분을 돌려보냈지만, 유정목은 수련 외에 시간이 남는다면 만나 보았다. 혹시라도 건방지다면서 제자의 명성에까지 흠집이 가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서부터 나온 행동이었다. 상천육좌의 스승이라는 자리는 무겁고 부담스러웠지만, 자랑스러운 제자를 위해서 참고 견뎠다. ‘폐가 될 수는 없다.’ 유정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들었다. 있는 힘까지 쥐어짜 내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손끝이 미미하게 떨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됐다.” 칠성사병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팔다리 하나 정돈 상관없다.” 유정목이 강경하게 나오자, 지휘관도 단념했다. “쳐라.” 파바밧! 지휘관을 포함한 칠성사병 전원이 덤벼 들었다. 쐐애액!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목숨까진 아니지만 어디 한두 군데 망가뜨릴 기세였다. 사방에서부터 검광이 일곱 번이나 번쩍였다. 직감적으로 전부 다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팔 하나 정도는 내주겠다!’ 동공이 좌우로 바삐 움직인다. 살을 주고 뼈를 깎는 각오로 임한 유정목은 칠절매화검으로 화답했다. 서걱! “아니……?” 유정목이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우측 어껫죽지부터 좌측 허리까지 선이 그어졌다. 사람의 몸이 도축되는 것처럼 간단하게 잘렸다. 몸이 베인 칠성사병은 죽은 것도 인식하지 못한 듯, 살벌한 표정을 유지한 채 절명했다. “감히.” 사선으로 쪼개진 몸의 뒤편, 그림자가 보였다. “어느 분께 검을 겨누는지 아느냐.” 그 뒤로 나타난 건, 분노하는 주서천이었다. “꺼져.” 검을 돌려 잡은 뒤, 수평으로 휘둘렀다. 콰아앙! “아악!” 분노가 폭풍이 되어 불었다. 바로 옆에서 달려들던 칠성사병이 나가떨어지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주서천의 움직임은 끝나지 않았다. 잔상을 남기 듯 고속으로 이동해 주먹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쿠아앙! 주먹이 턱에 꽂혔다. 타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