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79)
언제까지고 생각만 할 순 없었다. 전황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으니 한시라도 빨리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내가 갈 곳은……’ 한여름인 여덟 번째 달도 곧 끝나간다. 암천회의 전(前) 병력은 약 구천이었다. 그러나 요 몇 개월 동안 무공비급을 풀거나, 혹은 중소문파를 위주로 배신을 부추겨 전력을 보강했다. 그 숫자가 무려 육천여 명이었다. 그들의 군세는 순식간에 만 오천이 됐다. 암천회는 대담하게도 만 오천 중 만 사천을 각각 칠천씩 나누어 북부와 남부로 진군시켰다. 북은 하남, 남은 강서로 향했다. 목적지는 두말할 것도 없이 정사 연합군의 본거지였다. 다행히도 정사 연합 역시 암천회의 결전에 대비하여 편성을 끝낸 상태였다. 연합군의 병력은 각자 경계선에 자리 잡았다. 합비, 아니, 안휘의 동북부 부근엔 하북팽가, 소림사, 화산파, 종남파, 사천당가, 모용세가가 집결했다. 장강 유역 너머 남부엔 남궁세가, 제갈세가, 무당파, 점창파, 아미파, 청성파가 모였다. 무림맹과 사도천, 그리고 금의검문은 북부와 남부로 골고루 흩어져서 포진됐다. “저 왈패 같은 놈들이랑 합을 맞추라는 말이오?” “저 위선자 놈들이랑 합을 맞추라는 말이냐?” 정사 연합군이 서로 뒤섞이다 보니 불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필요에 의해서 손을 잡았다곤 하지만, 수백 년 이상 묵은 원한은 그리 간단히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닙니다. 진정한 적이 누구인지 떠올려 주십시오.” “머리가 왜 목 위에 있는지 잘 생각해라.” 그렇지 않아도 삼악검파 사태로 불안한 상황이다. 지도부는 내부의 분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 * * 북부. 전선 북부에 약 오천의 병력이 집결했다. 본래라면 팔천여 명이었어야 하나, 북악인 항산파에서 숭산파와 태산파가 제외된 탓에 그 수가 줄었다. 게다가 화산파의 경우엔 얼마 전 사태로 부상자가 속출하였기에 동원된 전력 수가 그리 많진 않았다. 북부 전선장이자 천군사, 제갈상이 보고서를 재확인했다. 무림맹 千 금의검문 千 개방 千 서문세가 六百 팽가 五百 당가 二百 화산파 百 소림사 三百 종남파 三百 수적으로는 무림맹과 금의검문, 개방도가 제일이었다. 무림맹은 본대 중 일부이고, 개방도야 워낙 많으니 그렇다 쳐도 금의검문의 지원이 생각보다 많았다. 비록 그들의 신뢰는 돈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고용주가 사람을 잘 다룬다는 상왕이니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본 가에서 육백여 명이나 데려왔으니, 잘 운용해야 할 것이다. 천군사.” 서문이진이 오판을 내리면 각오하라는 듯 쏘아붙였다. “예의를 지키시오, 뇌승도.” 종남파의 은하노사가 탐탁지 않은 듯이 지적했다. “비록 그가 어릴지 몰라도, 무림맹의 군사님이오.” “그래. 무림맹의 군사일 뿐이지.” 자신은 사도천 소속이니 상관없다는 어조였다. “전 괜찮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갈상이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은하노사는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으나, 불협화음을 만들지 말라는 당부를 떠올리고 그만두었다. 그래도 서문이진은 사도천주에게 들은 것이 있어서 그런지 더 이상 비꼬거나, 도발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라면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한데, 서문세가라면 절강에 있지 않냐?” 훤칠한 체구에 아무렇게나 자랐으나 지저분하지 않은 머리카락, 코 부근에 가로로 그어진 흉터. 겉모습으론 삼십 대 초중반이나, 실제 나이는 사십 대 중반에 이른다는 하북팽가의 가주, 팽자호(彭姿岵)가 물었다. “서문세가는 전부터 이 근방에 주둔하여 반역자의 진압을 도왔다고는 들었지만…… 굳이 남부를 내버려두고 뻥 돌아와서 북부를 도와줄 필요가 있는지 의아하군.” 의심이나 비꼬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궁금해서였다. 장강의 주인, 적림십육채가 암천회와 손을 잡은 이후로 강북으로 이동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됐다. 목숨을 걸고 건너거나, 혹은 빙 돌아가야 했다. 절강의 경우엔 그래도 바로 앞이 바다여서 금의상단이나, 그 외의 선박을 이용하면 강소나 산동을 통해서 북부 지방으로 갈 수 있었다. “정사가 아무리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았다곤 하지만, 그것들과는 죽어도 함께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것들?” “남궁세가다.” “아아, 과연.” 안휘의 남궁세가, 절강의 서문세가. 각각 정파와 사파를 대표하는 세가이다 보니 성향이 정반대인데다가,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충돌이 많았다. 특히나 서문이진은 남궁세가 현 가주의 동생, 남궁재영과는 앙숙으로 이름 높았다. 칠검전쟁 때만 해도 죽일 듯이 싸워 온 사이다. 그동안 쌓인 게 많다보니 아무리 명령이라 하지만 연합군에서 등을 맞대고 싸울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사도천주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어, 괜히 사고가 날 것을 우려하여 서문세가를 북부로 보냈었다. 과거에 정파의 소란을 진압하려고 보냈던 것인데, 다행히도 오늘날 이렇게 도움이 됐다. “그나저나, 팽가의 가주를 볼 줄이야.” 서문이진이 팽자호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하북팽가는 장강 아래론 잘 내려오지 않는다. 과거, 마교를 배신하고 탈주한 남양호법을 척살하러 따라온 사건처럼 북부의 경계를 위해서였다. 이렇다 보니 강남에 포진된 사파 특성상 팽가의 인물, 그것도 주요인물은 특히 보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시급한 때라는 거지.” “하기야 그 검신과 북부에서 합류하기 전까진 무방비하니, 하북의 호왕(岵王)이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서문이진이 화산파의 대표, 위지결을 보고 말했다. “나무아미타불. 검신이 정파의 무력을 대표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그래도 모처럼 걱정해 주신 것 같으니,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소림사의 현 방장, 홍진이 중얼거렸다. “그러니 부디 양측 다 그만 진정해주시길 바랍니다.” 홍진이 손목에 감은 염주 알을 굴리며 말했다. 만약, 그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화산파를 제외한 이들이 나서서 불같이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얼마 전, 천기의 작전 중에 주서천 외에는 별로 신경 쓸것이 없다는 의중을 듣고 자존심이 상했던 탓이다. 아직까지도 그들의 감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휴우, 벌써부터 삐걱거리는구나.’ 제갈상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 * * 남부 전선. 위치상으론 강서가 코앞인 합비의 남부 지방이다. 사파의 세력권인 남부답게 사도천이 대다수였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남부 연합군의 수는 개미 떼를 방불케 했다. 대충 세어 봐도 약 만에 이르렀다. 지휘 막사 안. 남부 전선의 모사, 제갈수란이 보고서를 재확인했다. 사도천 五千五百 묘가검문 千 소음문 六百 사독문 千 남궁세가 二百 점창파 二百 무당파 五百 아미파 五百 청성파 五百 북부 전선과는 전력의 수부터가 달랐다. 괜히 물량의 사파라고 불리는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사도천 본대 소속만 오천 오백 명이었다. 묘가검문의 경우, 과거에 폭섬도문과의 분쟁에서 승전한 뒤 급속도로 이름이 높아진 덕에 잃었던 문도를 금세 보충할 수 있었다. 또한, 사문반란 이후로 사도천주의 신뢰를 얻게 되면서 자연스레 영향력이 커진 것도 한 이유였다. 그 덕에 지금 천여 명에 이르는 문도를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도천의 주축이자 명문인 사문은 대체적으로 이러한 연유로 천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힘을 얻었다. 하나, 전(前) 암천회였던 소음문만은 달랐다. 전대 문주이자 상천이었던 음신을 잃게 되면서 급속도로 쇠퇴하였다. 비주류의 무공인 음공으로 버텼던 것도 상천 덕분이었다. 지금은 사도천주의 비호 아래에서 간신히 명맥을 이어 가고 있는 수준이었다. 어쨌거나, 정파와 달리 사문반란 이후 배신자가 없다시피한 사파는 전력의 수가 많이 줄지 않았다. “모사님.” 막사를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신가요, 창룡 대협.” 창룡, 남궁선유였다. “남부의 암천군, 칠천여 명이 장강을 넘었다는 소식입니다.” 남궁선유의 표정은 비장하기 그지없었다. 비록, 이 전선이 결전이 되진 않겠지만, 남궁세가의 운명이 달려 있어서였다. 남궁세가는 전 무림맹주, 흑역사이자 천하제일악인인 검악으로 인해 가세가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남궁세가 또한 협박의 피해자라 알려져 있다 할지라도 무림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았기에, 어떻게든 일정한 공적을 내세워야 하는 입장이었다. 만약 별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결국 남궁위무의 그림자에 가려진 이들 답다며 조롱당할 것이다. 끄덕. 모사미봉, 제갈수란이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손에 쥔 보고서를 정리한 뒤, 막사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경비 중이던 사도천의 무사가 경례했다. 제갈수란은 품 안에 쥔 보고서를 고운 손가락으로 북북 찢은 뒤, 막사 근처의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혹시라도 유출될까 소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곤 등을 돌려 눈앞의 광경에 작게 감탄했다. ‘……대단해.’ 사도천은 무림맹과 다르게 자유로운 분위기다. 사파인답게 정파의 질서나 규율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대부분이 난잡하고 소란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사파인만 거의 팔천에 이르는데도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경박하기는커녕 진중했다. 숨 하나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야말로 폭풍 전의 고요라는 말이 걸맞은 광경이었다. 암천군과의 충돌을 코앞에 둔 탓이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부 전선의 분위기 는 소란스러웠다. 제갈수란의 힘만으론 통제하기가 힘들었었다. 그러냐 며칠 전, 사도천주의 특수임무로 참전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한 사람이 등장하면서 바뀌었다. 정도, 사도, 마도도 아닌 패도(覇迫). 패도의 절대고수는 등장만으로 주변을 압도했다. ‘패신군……’ 일만에 이르는 남부 연합군의 선봉장. 상천육좌 중에서도 비밀에 싸인 상천이었다. * * * 암천회. “패신군이라……” 천기가 눈을 가늘게 뜨곤 중얼거렸다. “드디어 나타나셨나.” 무림에 혜성처럼 등장한 사도의 영웅. 강호초출만으로 천하백대고수에 궁귀검수라는 이름을 올렸고 그다음 나타날 땐 상천에 올랐다. 주서천만큼은 아니나, 암천회 입장에선 성가신 적이었다. 문젠 워낙 두문불출하다는 점이었다. 천선성을 동원하고 온갖 정보를 사들였지만 패신군에 대한 정보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아는 사람도 없다는 점이 어이가 없었다. 사도천주를 대신하여 특수 임무를 수행한다고는 들었지만, 근데 정작 뭘 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북부로 검신을 보내고 남부에는 패신군인가.” 천기가 코웃음 쳤다. “예상 못할 줄 알았나?” 전력을 반으로 나눈 전쟁이다. 겨우 몇 수 준비해 두었을 리 없었다. 이러한 사항 또한 예견했다. 무림맹 장로진도 패신군을 두둔했는데, 생각하지 못할 천기가 아니었다. “무림맹주와 사도천주는 본거지에서 쉽게 움직일 수 없으니, 결국 전선에 나갈 상천은 둘뿐이다.” 정파의 검신. 사파의 패신군. “본 회의 위업을 방해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천기의 시선 아래, 중원이 그려진 지도가 보였다. “무림인 위에 상천이 있다면, 상천의 위엔 암천이 있다.” 안휘의 남부에는 안경(安慶)이라는 마을이 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장강 바로 앞에 위치하여 어업이나 항구로서 나름대로 이름 있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 안경은 바로 얼마 전, 합비에서 온 칠천에 이르는 암천군의 진지로 쓰이게 됐다. 남부로 향한 암천군은 안경에 진지를 구축한 뒤, 앞으로 있을 싸움에 대비하였다. 식수야 바로 앞이 강이니 문제없었고, 칠천에 이르는 식량 또한 저장해 둔 것과 더불어 장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확보할 수 있었다. 암천군은 안경에서 군량 확보 및 태세 정비를 끝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