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82)
압도적일 정도의 피해를 입히진 못했다. 그러나 사기나, 부상의 차이를 보면 연합군이 한발 앞서 나아가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팔천오백 명과 오천 명의 추격전이시작됐다. * * * 무림인도 사람이다. 사람인 이상 휴식 없이 싸울 순 없다. 체력과 내공에도 한계가 있다. 추격자도, 그리고 도망치던 이도 지쳤다. “적이 멈췄습니다.” “휴식이군요.” 남부 연합군의 상층부에서 안도하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들 역시 상당히 지친 기색을 보였다. “본대와 적군과의 거리는 약 사 리 정도입니다. 이 리 근방에 정찰 무사를 배치하여 감시 중이니, 안심하고 쉬셔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당분간은 움직이지 않겠지만, 언제든지 출사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알겠소.” 팔천오백여 명이었던 연합군이었으나, 휴식을 취할 때 즈음에는 중상자의 상태가 악화됐다. 결국 삼백여 명 정도가 추가적으로 목숨을 잃었고, 그 외에 이백여 명은 더 이상 전투를 속행할 수 없는 몸이 됐다. 긴장이 풀린 모양이었다. 지역 의원과 화인의원 덕에 부상자의 치료는 문제없었다. 의료품 역시 사독문이 대신 해결해 주었다. 우르릉. 신시(申時 : 오후 3시 ~ 5시)가 끝나고 유시(西時 : 오후 5시 ~7시)에 들 무렵, 창궁에 암운이 끼었다.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이 먹구름에 가려졌다. 오후 시간이 긴 여름인데도 몰려온 구름 탓에 어둑어둑하다. 툭툭툭투두둑쏴아아아. 비가 잠깐 오나 싶더니만, 빗줄기가 굵직굵직해지며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직 여름이 다 떠나지 않아 그런지, 피부가 끈적거리고 눅눅한 느낌의 습기도 느껴졌다. 우르릉. 날씨가 심상치 않다. 죽은 이들이 지옥에서 원망하는 건지 우레가 요란하게 치기 시작했다. 암천남군도 남부 연합군도 움직이지 않았다. 막사를 세우고, 임시 진지를 구축하여 체력을 보존했다. 서로 간에 경계를 거두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어스름한 빛이 사라지고, 달빛조차 새어 나오지 않은 밤하늘을 보냈다. 황혼이 아닌 여명이 찾아올 시간일 무렵, 각자 운기조식을 끝내고 태세를 정비했다. 그리고 정오가 될 무렵, 움직임이 포착됐다. “출발할게요.” 남부 연합군, 팔천이 막사를 걷고 출발했다. 쏴아아아아. “오늘은 바람이 좀 강하군.” 아무래도 장맛비인 모양이었다. 하루가 지냈는데도 암운은 가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폭우 정도는 아니었지만, 비바람이 약간씩 불기 시작했다. 그 탓에 진군 속도가 늦어지긴 했다. 그러나 선두의 암천남군 역시 매한가지인지라 거리가 벌려지거나 하진않았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철퍽 소리가 난다. 찻잎으로 된 밭은 흙탕물에 집어삼켜진 지 오래였다. “이 방향은……” 민교가 무언가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암천남군, 선두와 접촉하기 직전입니다!”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정찰 무사가 소리쳤다. “어째서 거리가 줄어든 거지?” 민교는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긴 어째서야. 적이 패색이 짙어지자 전의를 잃고, 지쳐 버린거지.” 묘지담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좋아, 가자! 이번에야말로 승부를 내자!” “와아아!” 묘지담이 승승장구하며 호기롭게 외쳤다. 좌익의 진군 속도가 오르기 시작했다. “합비를 되찾아라!” 백궁자도 지지 않겠다는 기세로 소리쳤다. 정파 무림인들 역시 여세를 타고 속도를 올렸다. 좌익과 우익이 앞서가려 하니, 중앙도 따라붙었다. 양 군은 서로 코앞에 둔 채로 진군하고, 또 진군했다. 굵직 한 빗줄기 속에서 추격전이 형성됐다. “이런!” 민교가 무언가 떠올린 듯 소리쳤다. “제기랄, 멈춰라! 이 앞은 함정이다!” 사독문주의 목소리에선 다급함이느껴졌다. 사독문도는 그 말에 속도를 줄였으나,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특히나 선두로 선 묘가검문은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들의 머리를 취하고, 원하는 것을 얻자!” 정파인과 달리 사파인은 보다 욕망에 솔직하다. 절제심이 더 앞섰다면, 사파가 아닌 정파에 들어갔을 것이다. 특히 적이 코앞에 있어 참을 수 없었다. 적의 수급을 잘라 얻을 명예와 재물, 그리고 품에 안을 미녀를 생각하니 침이 고였다. 그리고 굽이굽이 이어진 언덕을 지나 근방에서 제일 높은 곳에서부터 내려온 순간,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하!” 입가에 맺힌 웃음이 지워지고, 피가 차갑게 식었다. 비 탓이 아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 때문이었다. “이, 이런 걸 이제야 눈치채다니……” 구화산에서 출발한 남부 연합군. 안경에서 출발한 암천남군. 양 군의 최초의 충돌은 그 중간지점에서부터 시작됐으나, 그 이후론 조금씩 안경 쪽으로 이동했다. 연합군은 맹렬한 기세로 적을 밀어붙였고, 암천남군은 후퇴를 계속했다. ‘연전연승한 탓에 머리가 과열됐다. 구화산에서 서쪽으로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면…… 장강이지 않은가!’ 그렇다. 바로 장강이었다. “배수진(背水陣)!” 배수진이라 하면, 등 뒤를 강과 바다로 둘러싸게 만들어 물러설 수 없게 만드는 진을 말한다. 보통이라면 후퇴를 계속하던 군대가 결국 물러설 수 없어 불리하게 하는 것이지만, 알다시피 암천회에게는 통용되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강의 지배자가 아군이었기 때문이었다. “욕심에 눈이 멀어 발정 난 개새끼처럼 좋아라 쫓아오더니만, 결국 함정에 걸려드는 모습이 우습구나.” 장강의 거센 물살 위, 여덟 채나 되는 대형 선박을 이끄는 적림의 우두머리가 코웃음을 쳤다. “적림총채주!” “홍하랑!” 붉은빛이 감도는 곱슬머리, 냉혹하게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품은 맹수와 같은 눈매, 눈썹에서부터 광대뼈까지 내려오는 화상은 결코 흔치 않은 인상이니, 적림총채주가 틀림없었다. “제, 제길!” 묘지담이 선상 위의 수림도를 보고 기겁했다. “뒤, 뒤로 물러나라!” 한눈에 봐도 네 자릿수를 넘었다. 물 위에서 싸우는 것도 아니고, 고작 수적 나부랭이긴 하지만 암천남군에 합류하게 된다면 성가시다. 분하지만 여기에선 뒤로 물러나는게 상책이었다. 그러나…… “크아악!” “아악!” 암천회의 반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왜, 왜 날……!” “배신이다!” “아악!” 중앙과 쌍익 할 것 없이 부대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너 이 새끼! 네가 어떻게!” “하하하, 암천회에서 절정 무공을 준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돈이 필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형.” “이 무림은 바뀌어야 합니다.” “배신하고, 배신당하고. 서로를 이익을 위해서 모인 것이 사도천이 아닙니까.” “네 부인은 내가 잘 돌봐 주마! 크하핫!” 내통자, 그리고 배신자의 등장이었다. 한둘이 아니었다. 약 천여 명 정도가 갑자기 무기를 휘두르며 후위로 물러나서 퇴로를 막아 냈다. 그중 반절 이상이 뒤에 서 있다보니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인지라 대처가 늦었다. “왜, 내부에 배신자가 더 이상은 없을 줄 알았나?” 유소가 서늘하게 웃었다. “그렇게 생각했더라면 실망이로군.” 암천회는 각종 비급이나 혹은 영약 등을 풀어서 전력을 대대적으로 늘렸다. 대부분의 이들은 암천회의 문을 두드렸지만, 전부는 아니다. 일부는 암천회에서 찾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이 경우, 오늘날의 경우를 위해서 적과 내통하여 정보를 건네고 또는 등을 찌르기를 기다렸다. “모, 모사님!” 연합군의 정중앙, 김팔이 제갈수란을 쳐다봤다. 어떻게든 해 보라는 필사적인 표정이었다. “……” 제갈수란은 예의 무표정으로 눈을 껌뻑였다. 기다란 속눈썹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포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었다. 유독 길게 느껴지던 침묵이 끝나면서 입술이 움직였다. “내통자의 구분이 끝난 것 같으니, 더 이상 숨길 필요는 없는 것 같네요.” “……!” 연합군의 주요 인물들이 그 말에 환하게 웃었다. “잘했다, 모사!” 묘지담이 비인지 땀인지 모를 물방울을 닦아 냈다. “모사는 이 사태를 예견했……” “푸…… 푸하하하!” 유소의 비웃음 소리가 묘지담의 말을 집어삼켰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멍청할 줄이야! 정말로 한심하고, 실망스럽구나! 모사미봉이여!” 목하흑의 목소리는 조소로 가득했다. “보아하니 네 딴에는 수를 읽었다고 생각한 것 같군그래. 내가 판 함정을 도리어 이용하겠다고 말이야.” 안도했던 남부 연합군의 얼굴에 불안이 묻어났다. 유소는 한껏 웃어 대다가, 웃음을 싹 지우고 말했다. “해남검파가 이곳에 도착할 예정은 없다.” “……” 제갈수란의 눈이 커졌다. “정사 연합은 검신, 주서천이 해남도에 다녀온 일을 꼭꼭 숨긴 모양인데…… 천기님께서 그걸 모를 리 있겠느냐? 멍청한 것. 그 정도는 얼마든지 상정해 두었다.” 유소, 그리고 천기는 암천남군을 적림십육채와 합류시켜서 남부의 연합군을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래서 첩자 및 배신자에게 비밀스러운 지령을 내려 준비하고, 일부러 아슬아슬한 추격전을 만들어 냈다. 성격이 급한 사파인 특성상 눈앞에 먹잇감이 놓여 있다면 반드시 따라올 것이라 확신했다. “남해를 비롯하여 동해와 연결된 강 유역 근처에 사람을 배치하여 해남검파가 오지 못하도록 손을 써두었다. 노력하면 이곳에 올 수는 있겠지만, 그때는 이미 너희가 전멸했을 터겠지.” 유소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왜, 놀랐느냐?” 눈이 커지는 걸 본 순간, 온몸이 짜릿짜릿했다. 이 기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잘난 연놈들이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걸 깨닫는 광경은 쾌감 그 자체였다. “……네.” 제갈수란이 답했다. “설마하니……” 그녀가 손을 천천히 든다. 얇고 긴 손가락에 쥐어진 부채가 공작처럼 날개를 활짝 폈다. “이렇게 ‘생각대로’ 움직여 줄 줄은 몰랐거든요.” “……뭐라고?” 유소의 얼굴이 굳었다. “……배수진입니다.” 허장성세냐고 외치려던 찰나였다. “쿠오오오오오오!” 그동안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던 절대고수. 패신군의 입에서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사람이 아닌, 짐승. 사자후가 떠오르는 음성이었다. “크으윽!” 유소가 이맛살을 찌푸리곤, 귀를 막았다. 군사답게 정보를 놓치지 않도록, 눈을 뜬다. 반쯤 감긴 시야 속에서 입술을 달싹이는 봉황이 보였다. “이무기와 인어를 보신 적 있나요?” 쿠오오오오오오오! 그리고 그 순간, 뒤편의 선박이 박살 났다. 파도가 쳤다. 비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건, 용을 연상시키는 상상 속의 괴수와 그 몸 위에 올라탄 물빛 머리의 인어였다. 함정을 파고, 또 함정을 팠다. 그리고 그 의도 자체가 함정이었다. 북부 전선. 북부로 떠난 검신, 주서천이 연합군에 합류했다. 북부의 연합군은 주서천을 환대했으나, 지휘 막사에 들어오자마자 분위기를 뒤집듯이 바꾸었다. “누구냐.” 팽자호가 낮게 으르릉 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외의 주요 인사 역시 험악한기색을 보였다. “진정하세요.” 독봉, 당혜가 손을 들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모처럼 머리 좀 굴려서 내놓은 작전안을 살기 탓에 망가뜨리려 하고 있다는 거, 알고 계신가요?” “독봉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게.” 은하노사가 당혜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무림맹에선 검신이 합류한다 들었네만……” 팽자호가 매섭게 뜬 눈으로 주서천을 쳐다봤다. 정확히 말해선, 주서천을 모습을 한 누군가였다. 얼굴은 누가 만진 것인진 몰라도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으나, 결정적으로 무공의 성취가 달랐다. 현경 정도 되면 너무 높아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다 보니 사실 상천의 경지를 알아볼 수는 없다. 즉, 원래라면 경지를 알 수 없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지금은 초절정 정도로 보였다. 먼 거리라면 속였을지 몰라도 근접한 거리에서 고수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작전상 확실한 정체를 밝힐 수 없는 점을 이해하시오.” 주서천의 인피면구를 착용한 유령곡 출신 탈주령, 가무량이 목소리까지 닮게 흉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