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83)
내면서 말했다. “현재 검신께선 임무 탓에 북부에 오지 못하는 상황이 며, 모종의 연유로 천기의 눈을 피해야 해요.” “그래서 대신할 사람을 내놓은 건가.” 서문이진이 납득하듯 중얼거렸다. “아무리 모종의 연유가 있었다곤 하지만, 우리에게까지 감췄어야 했나?” 봉두난발의 늙은 거지, 손일산이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개방의 노고수이자 장로인 금주봉개였다. “어르신 분들께선 부디 노기를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기분이 그리 유쾌하시진 못하겠지만, 내부의 첩자 탓에 밝히지 못한 점을 부디 이해해 주시어요.” 정사 연합의 최상층부는 암천회의 첩자, 배신자 등 불순분자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 작전을 끝까지 숨기기로 했다. 이제 와서 밝힌 건, 팽자호를 포함해 고수에게 지척에서 보인다면 정체를 들킬 것 같아서였다. “하면 진짜 검신은 어디에 있는 거지?” 팽자호의 물음에 당혜는 옅은 미소만 지었다. “그것도 비밀인가. 어쩔 수 없군.” 마음에 들진 않지만, 사정이 있으니 캐물을 수는 없었다. 무림맹주나 사도천주가 관여했을 터이고, 그 검신에다가, 정보를 쥔 사람은 당가의 독봉이다. 어릴 적부터 흑영부의 교육으로 무엇을 숨기는 데는 도가 텄으니 알아내는 데는 시간이 걸리리라. ‘날 내버려 두고 북해로 떠난 것도 모자라 한참 늦게 온 건 그렇다 쳐. 북해에 돌아오자마자 화산파에 간 것도 좋아. 어쩔 수 없으니까.’ 당혜는 주요 인사들의 시선을 견뎌내며 생각했다. ‘거의 반년 만에 연락이 왔나 싶더니만, 남들을 속이는 데 좀 도와 달라고?’ 툭툭. 팔짱을 낀 채로 검지를 불만스럽게 움직인다. 무공만이 아니라 성격도 독하기로 소문난 당혜다. 표정을 읽히지 않도록 얼굴은 거짓된 웃음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독기로 타오르고 있었다. 머릿속에선 얼마 전에 있었던 서신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네 도움이 필요해. 중간에서 조율할 수 있는 건 패신군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 너뿐이야. 부탁할게. 좀 도와줘.’ “……” 서신의 내용 중, 말미를 떠올리니 분노로 차갑게 타오르던 눈동자 가신기하게도 잠잠해졌다. ‘둘만의 비밀……’ 사실 딱히 둘만의 비밀은 아니다. 패신군, 곧 궁귀검수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녀 외에도 몇 존재한다. 당혜처럼 기사분반 탓에 알게 된 무곡, 그리고 천선과 대립했던 현 하오문주 강능초가 있다. 굳이 차이점이 말하자면, 한때 그의 사망 소식에 폐관 수련 및 복수에 눈이 멀어 버려 패신군의 활약상을 앞서 두 사람과는 달리 뒤늦게 들은 정도다. ‘짜증 나.’ 평정을 유지하려던 마음이 흐트러진다. 둘 만의 비밀이라거나 도와 달라는 말에 화가 눈 녹듯이 사라진 자신의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다면 검신의 도움 없이 북부전선을 막아 내야 한다는 말인가?” 서문이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불안할 것 없소. 정파의 저력은 검신만이 아니오.” 은하노사가 걱정 말라는 듯이 단언했다. * * * 시간을 되돌려, 아직 화산에 있을 때의 일이다. 북부 전선과 남부 전선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무림맹의 전령에게서 제갈상의 연락을 받게 된다. “남부 전선에서 적림십육채를 동원할 것 같다…… 인가. 과연.” 적림십팔채가 비록 십육채로 줄어들었으나, 그 세력은 아직 건재하다. 그래서 먼 남해까지 다녀왔다. 제갈상은 장강의 항구 마을, 안경을 거론하면서 암천남군이 연합군을 장강으로 끌어들일 걸 암시했다. ‘암천회의 움직임을 눈치챈 거야 그렇다 쳐도, 내 고민을 예상했다는 듯이 순간에 맞춰 온 답변…… 언제나 생각하지만 괜히 천군사가 아니로구나.’ 주서천은 그의 조언에 감탄하면서 남부로 향하기로 했다. ‘원래는 단순히 남부 전선에 참전할 생각이었는데…… 설마하니 이러한 작전을 세울 줄이야.’ 제갈상의 누이이자 동시에 또 한 사람의 천재인 제갈수란 역시 이 계획에 가담하여 작전을 세웠다. 그녀는 산동에 있다가 삼악검파의 배신이 정리될 무렵 주서천이 남부로 떠날 걸 알고 장소를 옮겼다. 그리고 도중에 그와 합류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암천회라면 그리고 천기라면……해남검파의 동원을 모를 리 없어요. 정보원을 동해와 남해로 통하는 길로 보내 두고, 첩자에게도 말해 두었으니 곧 해남검파를 경계하는 세력에 대해서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첩자는 언제 심어 두었습니까?’ ‘육천여 명의 무림인을 급히 모으는 것만큼 빈틈이 생기는 순간도 없으니까요.’ ‘과연, 그렇군요 대단하십니다.’ ‘벼, 별거 아니에요…… 그보다, 이번이 골치 아픈 수림도를 일망타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에요.’ ‘무슨 생각이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경계 탓에 도착이 늦어지는 해남검파를 대신해서…… 남해용문에게 도움을 요청해 볼까 해요.’ ‘아! 과연, 배가 아닌 수중으로 이동하여 매복할 생각이시군요. 이해했습니다. 제 이름을 걸면 얼마든지 도와줄 겁니다.’ ‘죄송해요…… 그렇지 않아도 너무 늦으면 곤란할 것 같아서 작전 개요와 더불어 존함을 빌려 서신을 보내두었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올바른 판단이십니다. 음, 그러면…… 이무기의 도움도 받아 봐야겠군요.’ 전서응을 중원의 남부인 광동으로 보낸다. 그리고 광동의 사도천 소속무사가 급히 해남도로 떠났다. 마침 기후가 멀쩡하기도 하고, 전과 달리 남해용문의 기문진도 없어 신속한 소식 전달이 가능했다. 남해용왕은 주서천에게 연락을 받고 용후를 이용, 이무기에게 전달한 뒤 남해용문도까지 동원한다. 이 모든 일이 불과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남해용문도를 태운 이무기는 무서운 속도로 중원으로 헤엄쳤다. 수룡과 인어라는 이명답게, 출발했던 해남검파를 뒤쫓은 걸 넘어 오히려 추월해 장강에 도착한다. ‘설마하니 그가 패신군일 줄은.’ 그리고 이 과정에서 패신군의 정체를 밝혔다. 제갈수란이야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 데다가, 전선의 지략가인만큼 중요한 정보가 필수였다. ‘안 돼…… 놀라는 건 나중이야. 집중해야 해.’ 제갈수란은 머리를 털어 잡념을 지워 냈다. “저게 뭐야!” 적림총채주, 홍하랑이 입을 떡 벌렸다. “요, 용?” “으아악! 용이다! 수룡이야!” “꿈, 꿈인가?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이무기의 겉모습은 용과 뱀 사이의 중간이다. 그런데도 용으로 보이는 건, 터무니없는 크기를 자랑하는 몸집 탓이었다. 상상 속에서나 나올 법한 괴물이 튀어나왔으니 난리가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용신님께서 노하셨다!” “수신이다, 수신!” 뱃사람이 미신에 민감한 건, 해남도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림도도 마찬가지였다. “들으세요!” 등허리까지 내려오는 바다를 연상시키는 물빛 머리카락, 설화 속의 인어가 아닐까 싶은 고운 미녀였다. 용미, 적수수가 이무기의 몸통 위에 서서 수적 무리에게 소리쳤다. “저의 이름은 적수수, 남방적룡이자 남해의 용왕의 꼬리입니다!” “나, 남방적룡?” “사해용왕이라고?” 사해용왕의 전설을 모르는 자는 없다. 수적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누, 누님!” 수로채에서도 큰 동요가 일어났다. “쯧!” 홍하랑은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요하지 마라! 저건 용이 되지 못한 요물, 이무기다!” 적림총채주는 주변을 휘어잡아 진정시키려 했다. “저를 비롯하여, 남해용궁의 백성이 멀고 먼 중원의 강을 밟은 것은 침략이 아니라는 걸 알립니다!” “뭐하고 있어? 죽여 버려!” 홍하랑이 얼굴을 팍 찡그리곤 소리쳤다. “바다의 진노를 잠재우고, 용궁의 붕괴를 막아 준 은인인 화산의 검신에게 보답하러 온 것…… 까악!” 휘리릭! 홍하랑이 수하의 도끼를 던져 말을 끊었다. “이 엿 같은 상황은 뭐냐, 목하흑!” 홍하랑이 부글부글 끓던 분노를 토해 냈다. 신경질적인 목소리에선 온갖 안 좋은 감정이 격동했다. “이딴 건 듣지 못했다고!” 용이 되지 못한 요물이니 동요하지 말라곤 했지만, 그녀 본인도 적지 않게 당황한 상태였다. 손안에 잡히는 뱀도 아니고 집채만한 크기를 넘어선 괴물이다. “천기성, 이 개새끼야! 뭐라고 말좀 해 봐!” “무, 무슨……” 목하흑 유소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잘난 듯이 조소를 흘리던 모습은 없었다. 창백해진 낯빛을 보면 그야말로 병자였다. “이, 이봐.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제기랄!” “줄을 잘못 탄 건 아니겠지?” 남부 연합군의 후미에서도 동요가 벌어졌다. 개중에선 후회막심한 얼굴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려 기회를 엿보는 자들도 존재하였다. 암천남군도 역시 안색이 어두웠다. “수를 내다보고, 그다음 수를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 수조차 내다보았지.” 패신군, 주서천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스읍.” 숨을 크게 들이쉬고……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다시 한번 용의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이번엔 이무기 역시 동시에 울어댔다. 지상과 지상 위에서의 전투가 시작됐다. “제, 제기랄! 막아라!” 유소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빗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이 얼굴에서부터 폭포처럼 쏟아졌다. 머리 위로 먹구름이 보였다. 방금전만 해도 자기들만의 것이라 생각했던 암천이 불길해 보였다. “으아악!” 쿠아아아앙! 장강의 물살이 더 거세졌다. 이무기가 몸통을 채찍처럼 휘두르자, 정면에 서 있던 선박이 정통으로 맞고 박살이 났다. 장강 한가운데에 충격으로 인한 소용돌이가 생기고, 그 위로 조각난 선박의 잔해가 빨려 들어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수공을 익혀 장강에 빠져도 살아남을 순 있었지만, 안도할 수는 없었다. 꼬르르륵! 당황한 나머지 숨을 잘못 쉬어 물거품을 내뱉었다. 수적의 앞에 보이는 건 삼지창을 쥐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바다에서 온 악마, 남해용문도였다. 해남검파는 남해의 무인들과 중원을 밟았다. 해남검파에서 백여 명과 해남도의 중소 문파 사백여 명을 더해 오백 명의 무림인이 배에 올랐다. “주서천 대협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돛을 올려라! 출항의 준비다!” “검신께 은혜를 갚을 때가 왔다!” “남해의 용왕의 비호를 받는 배를 누가 막으랴!” 해남도의 주민은 주서천에게 호의적이었다. 당시, 해남검파를 필두로 한 해남연합에 소속되어 있던 중소 문파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누가 말하지도 않았거늘, 주서천이 도움을 요청했다는 말에 솔선수범하여 배에 올라탔다. 상선으로 개조된 해적선, 그리고 해남도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상선을 통해 중원으로 향했다. “장강에 가려면 동해로 좀 돌아가야겠군.” “동해에 왜구가 있소.” “올 테면 와 보라지. 왜구 따위 두렵지 않다.” “동해용왕 전하께선 남해용왕 전하의 형님 되시는 분이지. 길을 열어주실 것이 분명하다.” 해남도의 자신감은 미신에서부터 나왔다. 남해용문과 화해한 이후론 바다에게 비호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정말로 비호를 받아서인지, 아니면 운인지는 모르나 해남 연합은 정말로 항해 도중에 어떠한 문제에도 직면하지 않았다. 바다가 좀 거칠었어도 폭풍이 불 정도는 아니었으며, 동해의 왜구도 접근하지 않았다. 아니, 접근하지 못했다는 것이 알맞았다. “선장님, 금의상단 소속의 상선이 보입니다.” “금의상단? 놔둬라. 몸집이 너무 크다.” “그럼 더 털 게 많지 않을까요?” “목숨이 아깝다면 덤비지 마.” 금의상단의 명성은 왜구에게까지 알려졌다. 아무리 탐스러워 보인다고 한들, 호위로 보이는 무림인이 수백씩이나 보이는데 건들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바다 한가운데 아니라, 대륙의 인근 해역로를 이용하고 있잖느냐. 괜히 접근했다가 명나라 수군의 눈에 띄어 오해를 받으면 곤란하니, 지나가게 놔둬.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많다.” “넵, 알겠습니다.” 해남 연합은 남해에서 동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