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92)
암기였다. 파앗! 독접이 비상한다. 나비처럼 날아오른 것이 아니라, 벌처럼 쏘아졌다. 하북의 호랑이는 그 광경을 미동도 하지 않고 바라보다가, 코앞에 다가온 순간에 맞춰 일도양단했다. 서걱! 독접이 둘로 갈라졌다. 그러자 날개에 붙어 있던 독이 가루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팽자호는 그 독 가루를 보진 못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마치 보이는 것처럼 도를 위로 올려 막았다. 파앙! 팽자호의 도는 힘의 반작용이 아직 남아 있을 터인데 아무렇지 않은 듯이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올라가면서 대기를 갈랐다. 놀라운 건 잠시 동안이지만 독 가루와 더불어 앞을 가린 독 구름이 같이 사라졌다. “팽가의 가주답게 대단한 무공이로구나.” 하북팽가의 무공은 오대세가 중에서도 발군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혼자 덤벼든 것을 후회할 것이다.” “안 본 사이에 건방져진 것뿐만 아니라 말이 많아졌군. 네놈 따위는 몇 초식이면 충분하다.” 뇌가 근육으로 가득하다는 조롱의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무력에는 자신이 있다는 증거였다. 실제로 하북팽가의 핏줄은 하나같이 무골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인 팽가의 가주는 강할 수밖에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이 정도의 반응 속도, 정확도는 놀랍기만 했다. “그 자만심이 독이 될 것이다, 팽가의 가주여.” 당명인의 안광이 음험하게 빛났다. “그리고, 이걸로 알았다.” 천추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곳에 주서천은 없군.” * * * 암천회주와 직면할 뻔한 북하군은 진로를 바꿔 후퇴했다. 사전에 발견한 덕에 쉽게 물러날 수 있었다. 전력의 수도 서로 비슷하다 보니 진군 속도도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추격을 떨쳐내는 건 불가능하나, 시간을 버는 것만이라면 어떻게든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신도균의 표정이 좋아지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평원에서 벗어날 거요.” 신도균이 눈썹을 찡그렸다. “북상군과 더 멀어진다는 뜻입니까?” 홍진이 물었다. “예.” 북상군과 가까워도 문제지만, 너무 떨어져서도 안 된다. 너무 멀어지면 지원을 받기가 곤란하다. 무엇보다 현재 암천회가 점거한 합비와 가까워지다 보니 정면이 막혀 포위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선회하면 그만…… 무슨 문제가 있군.” 서문이진이 신도균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신도균은 일그러진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옮겨진 곳에는 산맥이 있었다. 뒤만 보면서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미처 보지 못했다. 상천육좌, 그것도 은연중 정점이라 평가되는 괴물이 뒤에서 쫓아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압박이 되고 있었다. “후위를 확인하면서 속도를 늦추지 않고 오다 보니 선회할 순간을 놓쳐 너무 멀리 와 버리고 말았소. 선회하면서 속도가 느려지는 건 둘째 치고, 평원이 끝나는 구간에 산맥이 있는 탓에 암천회주가 사선으로 가로질러 오거나, 혹은 가로로 이동하여 가로막아 잡을 거요.” 평원 지대의 단점이었다. 사방팔방으로 뻥 뚫려 있다 보니, 어디 숨을 곳도 없고 장애물을 방패 삼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금처럼 어디 한 곳이 막혀서 돌아갈 경우, 어딜 향해도 부딪칠 수밖에 없게 된다. “지도를 좀 더 확실하게 암기했어야 했는데……” 신도균이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자책했다. “본부로 배정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 않습니까. 애초에 작전 반경은 평원이기도 했고, 암천회주가 나타날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홍진이 신도균을 위로 했다. “위로는 그만하고 다음 판단을 해라. 잘잘못을 따지는 건 나중이다.” 서문이진이 홍진과 신도균에게 핀잔을 주었다. “산림을 통해서 선회하는 건 어떻지?” “생각보다 오랫동안 달려온 탓에 다들 조금씩 지쳐 있소. 언덕을 오르는 순간만큼은 속도가 줄어져 공격당할 거외다. 차라리 뒤를 잡히느니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게 나을 거요.”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암천회주와 정면으로 부딪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들 알고 있었다. “시간을 끈다면?” 손일산이 입을 열었다. “부대의 일부가 막아서서 반 시진, 아니 이각 정도라도 시간을 끈다면, 문제없지 않소? 그 뒤 적들 역시 산을 타게 되면서 느려지게 될 거고 말이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서문이진이 손일산을 쳐다보며 물었다. “뇌승도의 말대로입니다. 그자의 앞을 가로막는 건……” 홍진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 외에 방법이 있소?” 손일산의 물음에 다들 하나같이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결정됐군. 개방도의 반절이 맡겠소.” 손일산이 손을 들자, 개방도 일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시오. 나를 믿으시오.” “……알겠습니다.” 신도균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금 전 개방도 절반의 운명이 결정됐다. 그러나 지휘관은 전쟁의 승리 및 다수를 위해서라도 때때로 비정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건 어리석은 행위다. 더 좋은 방안이 없으니 차선책을 택했다. ‘어쩔 수 없다.’ 북하군의 수뇌진은 침묵으로 수긍을 대신했다. 그러나 이 선택을, 얼마 지나지 않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됐다. 일각 뒤. “흠.” 암천회주가 침음을 흘렸다. 그 시선에 비치는 건 죽음을 각오한 용맹하기 그지없는 정파의 고수인 금주봉개 손일산이었다. “도망만 치는 것이 이상하다 싶더니만……” 암천회주가 말꼬리를 흘리며 손일산을 위아래로 훑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위만 살펴보았다는 것이 알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손일산의 몸은 갈비뼈 아래로 없었다. 피에 젖은 척추만 힐끗 보일 뿐이었다. 암천회주는 손일산의 머리를 쥔 채로 시체를 흔들흔들 움직이다가, 별 흥미 없다는 듯 옆에 버렸다. “천선성.” “예!” “천기에게 알려라.” 암천회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주서천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암천회주는 칠성사에게 주서천의 위치를 정기적으로 보고받았다. 북부에 편성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나름대로 대면을 기대했거늘, 예상과는 다르게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보이지 않았다. “천기성, 내 의견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암천회주가 정면을 주시한 채로 물었다. “위대하신 회주님의 말씀대로라고 생각하옵니다.” “그 연유는?” “상천육좌, 특히나 주서천처럼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자가 앞에 나서지 않을 리 없사옵니다. 검신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기 상승 및 용맹함의 근원이 되며, 지휘 체계 그 자체이옵니다. 이러한 이점을 내버려 두고 나서지 않는다면 그는 필시 머저리일 것이옵니다.” “주서천이 머저리일 수도 있지 않느냐?” 천기성은 암천회주의 물음에 곧장 답하지 않았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과연 말해도 괜찮을지 주저해서였다. 그래도 고민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실례하옵니다만, 비천한 자가 감히 말을 올리도록 하겠사옵니다. 그자가 머저리였다면 본 회의 대계가 그리 쉽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며, 또한 적수로 취급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사료되옵니다.” “정답이다, 천기성.” 암천회주가 만족한 듯 끄덕였다. “그 정도의 머저리였다면 주서천 그놈이 살생부 맨 위에 이름이 새겨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결과가 어찌 될지 뻔히 알고 있음에도 안 그래도 얼마 없는 전력에서 사백이나 되는 개방도를 희생시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암천회주는 북하군과 추격전을 벌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혼자 따라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것이 미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그리하지 않았다. 또한 부대가 따라잡을 수 없는 것도 아닌지라, 시간을 좀 들여도 착실하게 추적하기로 했다. “겨우 거지 무리 따위로 회주님의 앞길을 막아 시간을 끌려 하다니, 어리석은 자들이옵니다.” “매듭을 보니 개방의 장로인 것 같더군. 그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자가 있다면 말해 보아라.” “금주봉개 손일산이라는 자입니다.” “고기와 술이라면 환장을 하지 못하는 개방도인 주제에 술을 금한다니, 특이한 자로군.” “손일산에 대한 정보를 원하신다면……” “아니, 됐다. 어차피 죽은 놈일 뿐이니까.” 죽은 자보단 산 자가 우선이다. 눈앞에 적이 도망치고 있다면 더더욱. “천선성, 신호는 보냈느냐?” “물론입니다. 확실히 보냈습니다.” 칠성사병이 보란 듯이 죽통을 보여줬다. 입구 부근에 신호가 된 연기의 잔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좋다, 쫓아라.” * * * 북하군은 능선을 타 암천회주를 따돌리려 했다. 금주봉개, 손일산의 희생으로 분위기는 숙연했다. 몸은 물 먹은 솜처럼 지쳐 있었지만, 손일산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리에 힘을 줬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보고에 그 당찼던 발걸음에도 힘이 빠졌다. “끄흐윽, 끅!” 개방도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뭐라 말하려 했다. 결과 보고를 위해 산기슭에 남겨두고 온 개방도다. 전멸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일이 있다면 복귀하라고 명령해 두었는데, 문제는 빨라도 너무 빨랐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적어도 반 시진 뒤에 왔어야 한다. “정신 차리게!” 신도균이 개방도를 진정시켰다. 다 큰 어른이 눈물 콧물 흘리는 모습이었으나 결코 추해 보이진 않았다. 방도들이 희생당하는 걸 직접 보고 있었음에도 나서지 못한다는 사실에 그 누구보다 분했으리라. “금주봉개를 비롯하여 그대 형제들의 죽음을 헛되이 만들 겐가!” “……!” 개방도는 신도균의 호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피와 먼지투성이인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슥슥 닦아 낸 뒤, 그제야 간신히 보고할 수 있었다. “금주봉개를 포함한 사백여 명! 전멸했습니다!” 북하군의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특히 개방의 제자들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어떻게 될지는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현실과 마주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벌써?’ 신도균의 낯빛이 꺼멓게 죽었다. “접촉한 뒤 얼마나 버텼는가?” “일각, 겨우 일각입니다.” “허어!” 홍진이 커다랗게 탄식을 흘리며 불경을 외웠다. 서문이진은 얼굴을 참혹하게 일그러뜨렸다. ‘안 돼!’ 신도균이 절규 어린 비명을 가까스로 참아 냈다. ‘반 시진, 아니 이각은커녕 일각이라고?’ 나빠도 이보다 더 나쁠 수가 없었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반 시진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설마하니 이각도 버텨 내지 못할 줄은몰랐다. 이 근처 지형에 익숙한 것도 아니고, 주변에 즐비한 나무의 수도 상당해 도망이 쉽지 않았다. 떨어질 때로 떨어져, 더 이상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사기와 더불어 체력을 소진하게 되면 필시 잡힌다. “제기랄!” 누군가가 결국 참지 못하고 울분을 토해 냈다. “개죽음이란 말인가?”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그거야말로 개죽음이다.” 외침을 기점으로 동요의 파도가 아군을 휩쓸었다. 다들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계속된 추격전으로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지쳐 있었다. 무엇보다 암천회주가 존재만으로도 압박이었다. 방금 전 개방도가 일각 만에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공포와 불안이 급증했다. “멈추지 마시오!” 신도균이 진정시키기 위해 고함을 질렀다. “금주봉개 및 개방의 동도들이 모처럼 일각의 시간을 벌어 주었소. 지금 여기서 멈추거나 주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고결한 희생을 더럽히는 일이라는 것, 명심하시길 바라오.” “……” 신도균의 말에 정사인 할 것 없이 입을 다물었다. “이 일각이란 시간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당장 시간을……” 바스락. “누구냐!” 그때였다. 측면의 수풀에서부터 인기척이 느껴졌다. 다들 예민한 탓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히, 히이익!” 수풀을 헤치자 겁에 질린 모자(母子)가 나타났다. “부, 부디…… 사, 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