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4)
자세가 좋군.’ 철웅이 그 뒷모습을 보고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이후, 주서천은 일상에 조금 변화가 생겼다. 새벽에 일어나 매화나무 근처에서 꼭 운기조식을 했다. 다만 그게 조금 눈길을 끌었다. 사대제자 대부분은 아직 성년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 뿐이었다. 자고로 아이란 건 호기심이 많은 법이다. 그런 아이들의 사회 속에서 매일 혼자 매화나무에 앉아 운기조식을 하면 당연히 눈에 띈다. “야, 매화우무(梅花友無).” 운기행공을 막 끝내고 눈을 뜨니 웬 일련의 무리가 찾아와 있었다. 다들 동년배 정도의 아이들뿐이었다. “너 매화밖에 친구가 없다며?” 킥킥! “자고로 아이만큼 순수한 악(惡)은 없다 하였다.” 주서천 이 몹시 슬픔에 잠긴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래?” 딱 봐도 아이들 무리를 이끄는 대장 꼬마가 그 말을 듣고 뭔 개소리를 하나는 표정을 지었다. 주서천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우수에 잠긴 눈으로 말을 이었다. “보통 이럴 때는 ‘형이 너희들 상대하기 귀찮으니 좋은 말할 때 가라.’ 라고 말하겠지.” “뭐?” “하지만 그래도 분명 너희는 나에게 시비를 걸 거야. 세상이란 그런 증오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 연쇄가 일어나기 전에 끊도록 하겠다.” 아이들에게 있어 주서천의 말은 어려웠다. 자고로 아이의 사회에서 말을 어렵게 하면 잘난 척한다, 재수 없다고 보이기 마련이다. 그들은 처음에 혼자 있는 주서천을 조금 놀리려 왔으나, 그가 이렇게 나오니 점차 기분이 나빠졌다. “오라, 이 악적들이여! 이 주먹, 그 증오의 연쇄를 끊도록 지금까지 매화권을 연마해 왔다!” 주서천이 지면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그다지 빠르지는 않았다. 이제 막 매화생공과 매화권을 시작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뭐, 뭐야. 이 미친놈은!” 대장 꼬마가 당혹스러워하면서 날아오는 주서천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하하” 주서천은 재미있듯이 웃으면서 가볍게 피해 냈다. 속도와 힘은 대장 꼬마가 위지만, 그래 봤자 아이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주서천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어떤 움직임을 할지, 어떻게 공격을 해 올지 눈에 뻔히 보였다. “허?” 대장 꼬마가 기겁하며 몸을 급히 돌렸으나, 이미 늦었다. 주서천은 대장 꼬마의 가슴을 발로 후려쳤다. “컥!” 대장 꼬마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주서천이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슬퍼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이 강호의 주먹이다.” “뭐라는 거야, 방금 그건 발차기잖아!” 원래의 주서천은 상당히 조용하고 얌전한 편이었다. 중압감 같은 것에 억압되어 살아와서 그렇다. 평생을 수련하느라 그럭저럭 보냈고, 중년이 됐을 때 즈음에는 눈치만 보다 살아서 음침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회귀 후에 그 성격이 좀 변했다. 정확히 말해선, 억압된 걸 모조리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삶에선 좀 더 자유롭게. 근데 그게 좀 어처구니없게 이상한 방향으로 가 버렸다. “켁켁…… 저 미친놈 잡아!” 대장 꼬마가 복부를 부여잡은 채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와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주서천에게 덤볐다. “하하, 매화권이다! 매화권을 받아라!” 주서천이 오냐, 하면서 아이들을 상대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의 입장에서 아이들과 싸우는 것은 그저 소꿉장난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전력을 다했던 것 같았지만 주서천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의 움직임은 너무 단조롭고 쉬워서 눈을 감고도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주서천은 덤벼오는 아이들 사이를 추어(報魚 :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유린했다. “으아아악!” “꾸웨엑!” 아이 들이 비명을 흘리며 대거 나가 떨어졌다. 주서천은 그 아이들을 보고 자상하게 웃었다. “이 아저씨랑…… 비밀 친구 할래?” “히이이익!” 그곳에 광인 (狂人)이 있었다. 아이, 특히 어린 남자아이에게 있어 ‘싸움에서 졌다.’ 라는 건 무척이나 수치스러운 사실이다. 만약 그 싸웠던 상대가 나이도 어리고 체격도 작으면 더더욱 그렇다. 주서천에게 시비를 걸었던 아이들은 그게 부끄러워서 그에게 된통 당한 걸 굳이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사대제자 중에서 막내인 데다가 또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단체로 덤볐다가 손도 못 대고 당했다. 그게 알려지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반대로 주서천이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건 아닐까하고 노심초사하며 그를 지켜봤다. “흐흐, 아이들이 그렇지 뭐.” 그 덕에 이 소란은 크게 커지지 않았고, 주서천 입장에서도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어서 크게 만족했다. “그래도 반성하자. 참지 못하고 그만 욱해 버렸네. 몸이 어려져서 그런지 나이도 거꾸로 먹은 기분이야.” 주서천은 스스로를 반성하면서도, 얼마 전 일을 떠올리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이렇게까지 자유롭게 날뛴 적은 또 처음이었다. 회귀 전에도 이런 막무가내인 적은 없었다. “그럼 방해꾼도 없으니 다시 수련에 집중할까.” 참고로 대장 꼬마 등 시비를 걸어왔던 아이들은 동년배 무리 중에서도 제일 높은 위치에 속했다. 그들은 혹시라도 주서천이 무용담을 펼칠까 봐 신경 쓰여, 호기심을 갖고 접근하려는 아이들을 사전에 막았다. 그 덕분에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혼자서 매화나무 근처에서 수련을 할 수 있었다. * * * 매화생공을 운기하고, 매화권을 배운 지 어언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하하!” 그 시간 동안 얻은 결과물은 굉장했다. “무려 반년 치 내공을 한 달 만에 쌓다니!” 매화생공의 축기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매화와 함께 호흡한 덕에 반년 치 내공을 쌓는 데 고작 한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에 단전을 완성했고, 매화기공의 오성을 이루는 데까지 운기조식해서 일 년 치를 쌓았다. 그런데 그중 반을 고작 한 달 만에 이루었다. 기쁘지 않다면 그게 이상하다. 지금 주서천의 내공은 일 년하고 반년 치였다. “매화권도 이 정도면 되려나.” 주서천이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쐐액! 매화권에 대해서는 이미 교두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몸에 숙련되지 않았던 것뿐이지, 몇 번 집중해서 수련하니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거의 다 익혔다. 회귀 전에는 일 년 가까이 걸렸던 것 같은데, 그걸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손발처럼 다룰 수 있게 됐다. ‘음, 남은 건 지루한 반복뿐이구나.’ 정신적인 깨달음에 따른 이해도가 있다 하여도 그걸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전설상에서나 나온다는 천무지체(天武股體)가 아닌 이상, 무리를 하면 몸이 따라 주지 못한다. 아직 성장하고 있는 아홉 살 어린아이의 육체다. 괜히 욕심을 부렸다간 신체가 망가진다. 만약 몸만 따라 줬다면 매화권이고 뭐고 어디 검이라도 훔쳐서 검법부터 수련했을 것이다. 그럴 수 없으니 별수 없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가면서 매화 권법을 펼쳐 몸을 단련시켜야만 했다. 참고로 주서천 입장에서 느린 거지, 남들이 보기엔 미 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원래 처음에 배울 때는 천재가 아닌 이상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낮으니 느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계획의 검토나 해야겠어.’ 매화권은 굳이 생각을 하지 않아도 펼칠 수 있다. 거의 무의식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다. 굳이 구결이나 권로(拳路)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주서천은 그 대신 앞으로 있을 미래의 일 몇 가지를 되뇌며 정리했다. “정말로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 중 제일 먼저 기억에 남는 건……” 주서천의 얼굴에 검은 그늘이 꼈다. 앞으로 오 년 뒤, 열네 살 때의 일이다. 몇십 년도 더 된 일이지만 아직도 그 일을 결코 잊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해에 스승 유정목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소유검(笑柔劍) 유정목. 언제나 미소가 부드럽고 순하다 하여 붙은 별호다. 주서천은 유정목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사부님 ……’ 유정목은 존경받을 만한 위인이자 무인이다. 결코 주관적인 게 아니었다. 남을 배려하는 성격, 자상함, 편안한 미소. 인격적으로 흠잡을 것 하나 없었고 무공도 뛰어났다. 화산에는 매화검수(梅花劍手)라는 직책이 있다. 매화검수는 무위와 오성, 인격 등 철저하고 엄격한 심사와 시험을 통과해야만 오를 수 있다. 그만큼 그 기상은 화산파 내에서도 제일이며, 화산파의 제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우상이었다. 유정목은 한때 매화검수의 후보에 오른 적이 있었을 정도로 뛰어났다. 본인 또한 꿈을 가지고 열심히 했고 몇 차례의 심사도 통과했다. 하지만 결과만 말하자면 유정목은 어떠한 연유로 인해서 매화검수에 오르지 못한다. 바로 예로부터 지니고 있었던 지병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지병인지도 몰랐었다. 유정목은 어릴 때부터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며, 그만큼 몸으로 펼치는 것 또한 정확하게 잘했다. 하지만 남들보다 쉽게 지치고, 근골 또한 빈약했다. 태생적으로 체력과 근골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산파에 입문했을 직엔 주변의 동기들에게 약골이라며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 하나 유정목은 이에 굴하지 않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남들보다 배는 노력하여 신체를 단련했다. 태생적으로 빈약했던지라 남들보다 더욱 힘들었지만 굳건한 의지 끝에 어떻게든 이겨 냈다. 그러나 이 빈약한 체질은 나이를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크게 아팠던 적은 없었으나 가끔 미열이 오르는 등 잔병치례를 겪었다. 매화검수가 되는 조건은 정말로 엄하고 철저하다. 잔병을 자주 겪는 탓에 결국 심사에서 떨어졌다. 주서천에게 다른 사형제가 없었던 것도 이러한 연유가 있어서 그렇다. 유정목이 건강이 그다지 썩 좋지 못해서 주서천 외에 제자를 더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어릴 적부터 몸이 좀 약했을 뿐이라며 그냥 넘어갔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했어.’ 애초에 무인이 병약하다는 것이 이상하다. 내공심법이란 건 곧 몸과 마음을 단련시켜 주는 것. 그걸 연공한 무인이 일반인과 비슷할 정도로 잔병을 자주 겪는다는 건 뭔가가 어긋난 것이다. 배를 굶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씻지 않아 청결을 유지 못 하는 경우도 아니었다. 규적적인 생활과 식습관, 수면 시간을 맞춰 가며 대자연의 기를 호흡하는데 건강하지 않을 리 없다. 설사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고 해도 그 체질은 진작 고쳐지고 끝냈어야 한다.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천수를 거의다 누렸거나, 혹은 과거에 크게 내상을 입었을 경우는 제외다. 유정목은 어떠한 경우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간단하다. ‘체질이 아니라, 질병에 걸리셨던 거지.’ 병이 얼마나 잠복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또한 그 병에 대한 정체도 모른다. 심지어 이 병이 선천적인 건지 후천적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나 이 병은 스승의 몸을 조금씩, 천천히 갉아먹다가 끝내 오 년 뒤, 그 목숨까지 집어삼킨다. 유정목이 큰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주서천이 알게 되는 건 이미 그의 건강이 많이 악화된 뒤 였다. ‘그때 그 무기력함이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