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402)
기관이 아니라 장성을 쌓았다. “누님, 누님이 부럽습니다.” 개룡, 시량이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러워?” 단리화가 정면을 바라본 채 되물었다. “예. 최소한 검룡이나 기룡에 비교당할 일이 없지 않습니까. 당장이라도 별호를 반납하고 싶군요.” 검룡의 상천육좌요, 지룡은 정사연합군사다. 기룡은 방금 전 앞의 둘처럼 터무니없는 수준의 괴물의 영역에 들어섰다. 창룡 남궁선유와 개룡 시량의 능력도 낮은 건 아니다. 애초에 오룡삼봉이란 건 후기지수의 정점이다. 그러나 앞의 세 명에 비교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이었다. 경쟁을 한다 안 한다의 수준이 아니었다. 단리화는 시량의 푸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허미……” “이쯤 되면 제갈세가의 방계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괜히 공명의 후예가 아니로구나.” “천재(天才)! 아니, 천재(天災)!” 사실, 제갈세가가 지략으로 특별하긴 하나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유독 이 시대가 이상했다. 무림맹 군사에 그를 이을 모사, 그리고 사장된 기술을 부활시켜 천재지변을 일으킨 괴물이 있었다. 한 세대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인재가 한 가문에 세 명씩이나 태어난 게 이상하다. “우, 우와……” “도련님께선 도대체 뭘 만드신 거지?” “미쳤군.” 금의검문 소속 무사들도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저게 뭔가?” 은하노사가 당혜에게 물었다. “기관, 지상미궁(地上迷宮).” 당혜가 물음에 답했다. “장치를 발동하면 지하에 숨겨 두었던 미궁을 구성하는 벽과 돌기둥이 위로 올라가요.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 장성, 아니 미궁을 세워 적을 가두죠.” 당혜도 개요를 들었을 땐 두 귀를 의심했다. 과연 사람의 영역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구심이 절로 들었다. 도리어 순진하게 믿는 게 이상하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더 있단 말이오?” 주변이 질린 기색을 내보였다. 돌기둥이 수십 개씩이나 솟아나고, 벽으로 가둔 것만으로도 경악했다. “미궁의 내부는 돌기둥 탓에 미로처럼 얽혀 있어요. 수가 워낙 많다보니 시야가 가려져 있거든요. 또 둘레가 상당하다 보니 사이가 협소해 대군이 빠져나가기에는 시간이 걸려요.” “그러면, 돌기둥을 타고 오르면 되지 않습니까?” 당가의 호위 무사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나 무림인은 다르다. 보법과 경공이 있다. “오를 수 있다면.” 의미심장한 답변이 돌아왔다. “으아악!” “기둥을 건드리지 마! 함정이다!” “케헥!” 때에 맞춰 지상미궁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만약 내부의 상황을 볼 수 있었더라면 질문을 던진 당가의 무사는 듣지 않아도 이해했을 것이다. 돌기둥을 오르는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중턱쯤 닿으면 함정이 발동됐다. 푸슛! 팟! “켁!” 돌의 틈을 붙잡고 오르던 칠성사병은 복부에서 화끈한 통증을 느끼고 시선을 아래쪽으로 돌렸다. 꼬챙이였다. 쇠로 된 꼬챙이가 가시처럼 돋아나 복부에 구멍을 낸 뒤, 할 일을 끝냈다는 듯 되돌아갔다. “기둥을 오르지 마라!” “벽이다! 벽으로 향해!” “독이다! 해독제를 삼켜!” 지상미궁은 기관 천지였다. 돌기둥이나 벽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땅을 잘못 밟으면 독연이 뿜어져 나오거나, 창살이 솟구쳤다. 그래도 어찌어찌 함정을 피하고 동료의 시체를 발판 삼아 벽까지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벽이다!” “내가 먼…… 크아악!” 참상이 벌어졌다. “저, 저게 뭐야!” “기룡! 이 개새끼야!” 벽에 일정한 곳에 힘이 가해진 순간, 상어가 수면에 지느러미를 내보인 것처럼 칼날이 나타났다. 반달 모양의 칼날이었다. 게다가 장치의 연결 부위를 통해 힘을 받아 세차게 회전해 위협적이었다. 하나도 아니고 수백에 이르렀다. 없는 곳이 없었다. 높이도 높이지만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설계자의 악의밖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절망만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문이다!” “탈출구가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았다. 그 심경은 말로 헤아릴 수 없었다. 암천군은 벽 구석에 자리한 거무튀튀한 문을 발견하곤 빠르게 달려갔다. ‘그래. 문이 없을 리가 없다.’ 설치 및 보수 등 관리를 위해선 지상미궁으로 진입해야 한다. 출입구 없는 미궁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수백에 이르는 칠성사병은 물 만난 물고기 떼처럼 신난 듯이 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비켜! 부순다!” 개양성 소속의 고수가 창으로 혼신의 찌르기를 쏘았다. 무력을 담당하는 만큼 창날에 강기를 실었다. 그는 문이 우지끈 구겨지리라 의심치 않았다. 째애앵! “이, 이럴 수가?” 주름 가득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희끗한 수염에 동요가 전해지며 파르르 떨렸다. 문은 멀쩡했다. 구겨지지도 부서지지도 않았다. 강기가 부욱 그어지며 흠집이 났지만 그뿐이었다. “하, 한철?” “도대체 돈을 얼마나 쓴 거야!” 믿을 수가 없었다. 그 귀한 한철을 고작 문을 만드는데 쓰다니…… 정말 돈지랄도 이런 돈지랄이 없었다. 심지어 한철은 다룰 수 있는 장인도 몇 없었다. “안 돼! 이럴 순 없어!” 암천회가 절규했다. “으아악! 안 돼!” 현세에 펼쳐진 지옥에서 아비규환이 울려 퍼졌다. 탈출구는 없고 함정은 끝없이 이어졌다. 정신적인 압박감이 심하다 보니 길을 잃기도 했다. 기둥을 오르려면 쇠꼬챙이가 나타났다가 모습을 감추고, 벽을 타면 회전하는 칼날을 맞이했다. 한철로 된 문은 부풀어 오른 희망과 기대를 절망으로 만들었다.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를 화살 비도 극악이었다. 정말로 무서운 건 이 지옥을 만들어 낸 장본인, 제갈승계는 정작 이 자리에 없다는 점이었다. 사용법만 가르쳐 주고 직접 발동하지도 않았다. ‘이 정도일 줄이야.’ 주서천도 감탄을 삼켰다. ‘그러나 다시는 시도할 수 없겠네.’ 지상미군은 최대이자 최악의 전쟁병기다. ‘암천회라는 공공의 적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무림 사회 통념상 이런 것이 튀어나오면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니, 그 전에 정말로 비효율의 극치다.’ 사회의 인식도 인식이지만 자금과 인력이 문제다. ‘아무리 금의상단이라 할지라도, 지금처럼 대규모적인 기관 장치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설사 만든다 한들 유도나 발동도 골치 아파. 돈을 벌기 위한 투자도 아니니 그 돈벌레가 치를 떨었겠군.’ 이의채가 지출 내역의 서류를 보고 부들부들 떨 게 눈에 훤했다. “그래도 장하다, 승계야.” 주서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네 덕에 별다른 피해 없이 승리할 수 있었다.” 귀주에서부터 시작해 합비, 그리고 화산파와 이 지상미궁까지 합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을 무찔렀다. 고야말로 신위(神威)였다. “소란이 끝난 뒤에 몇몇 사람들만 절 따라오십시오. 안으로 진입하겠습니다.” “누가 살아 있지도 않을 텐데 어째서죠?” 단리화가 이해가 안 가는 듯 물었다. “당명인, 천추는 그리 쉽게 죽을 자가 아닙니다.” 주서천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주검을 확인하지도 못했는데 ‘죽었겠지?’ 라거나 ‘죽었을 거야.’라고 판단하는 건 위험한 생각입니다.” 주서천은 암천회를 상대로 결코 방심하지 않는다. 예측 따위는 없다. 확신도 없다. 결과만을 원한다. 직접 보고 확인해야 불안이 가신다. * * * “쿨럭!” 무곡이 울컥 피를 토해 냈다. 지면에 기검을 박고 몸을 지탱했다. 맥은 너덜너덜하고 온몸에선 피가 흘렀다. 근육은 찢어진 지 오래며 앞을 가린 시야는 흐릿해졌다. 심장이 ‘쿵쿵’ 하고 뛰었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철검은 박살난 지 오래였다. “설마.” 무곡의 얼굴에는 피로함 대신 놀라움이 묻어났다. “이 정도일 줄이야……” 놀라웠다. 그저 놀랍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쉽도다.” 암천회주가 무곡을 내려다보았다. “그대를 조금이라도 빨리 발견했다면, 주서천이 손을 대기 전에 오른팔로 삼았을 텐데 말이야.”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암천회주는 무곡의 실력을 보고 순수하게 놀랐다. “사람의 영역을…… 벗어났군.” 무곡이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알아보았나?” 암천회주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역천(逆天)…… 인가.” “훌륭하도다. 내 특별히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암천회주가 손에 쥔 검을 들었다.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 주는 걸 감사히 여겨라.” “……” 무곡은 죽음이 임박한 걸 느끼고 체념한 듯,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언제나, 의문이었다.’ 주서천의 얼굴이 떠올랐다. ‘서른은커녕 이십대 중반도 되지 않아 현경의 성취를 이룬 괴물이신 은공께서, 그리 경계하던 이유가.’ 주서천은 무곡 및 신뢰할 수 있는 주변인들에게 암천회와 그 주인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해 왔다. ‘이자는 현세의 법칙을 거슬렀다.’ 몸을 지탱해 주던 기검이 점차 흐릿해졌다. ‘선화야……’ 생명의 불꽃이 희미해진다. 빛이 꺼져갔다. ‘이제 와서 죽는 것 따윈 두렵지 않다. 다만, 딸의 곁을 지켜 줄 수 없는 것이, 더 이상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 두렵구나.’ 역천의 괴물을 상대하러 은 건 후회하지 않는다. 주서천이 무선화의 목숨을 구해 준 순간, 이 한 몸을 맡기리라고 맹세했다. 다만 어린 딸을 두고 떠나야 하는 것이 아비로서 후회스러웠다. ‘은공.’ 붉게 달아오른 노을빛이 검의 그림자에 가려졌다. 암천이자 역천의 검이 머리 위로 내려왔다. ‘선화를 잘 부탁하겠소.’ 무곡은 최후의 최후까지 무선화를 걱정했다. 부웅. 검날이 무곡의 머리카락을 가른 순간. 쩌적! 노을빛에 뜨겁게 달궈지던 땅바닥이 얼어붙었다. 쐐액! 측면에서부터 손바닥이 하얗게 빛나며 날아왔다. “……!” 암천회주의 눈썹이 구부러졌다. 손에 쥔 검의 반응 속도는 재빨랐다. 순식간에 검로를 직각으로 꺾어 받아쳤다. 콰앙! 부딪친 순간, 물줄기가 수면 위를 후려친 것처럼 공력이 물방울처럼 떠올랐다가 충격파를 쏟아 냈다. 쩌저적! 백색의 파도가 주변을 슥 훑자 변화가 일어났다. 푸른 잎을 지닌 나뭇가지에 서리가 끼는 것이 시작이었다. 서리는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 나무줄기 전체에 번졌다. 수백 년을 산 나무가 얼음 조각처럼 변하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휘이잉! 북풍한설이 부는 듯한 추위가 느껴졌다. 대기의 온도가 떨어지는 걸보니 비유가 아닌 사실이었다. “이건……” 무곡이 어느새 눈을 뜬 채 놀라운 기색을 보였다. 폭풍우가 지나간 것처럼 엉망이었던 주변의 모습이 변했다. 난장판이 아닌 얼음으로 된 조각 같았다. 조각이나 그림 등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 봐도 놀라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빙백신장.” 암천회주가 북해신공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붉은 빛깔이 감도는 눈에 무표정한 절세미녀가 비쳐졌다. “북해궁주.” “그렇다.” 절세미녀가 안광이 청백색으로 은은하게 빛났다. “본 녀가 빙궁의 주인, 냉악비다.” 검의 몸체에 닿은 손바닥에 힘을 준다. 대답을 끝으로 암천의 검을 밀어 치려 했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냉악비는 당황하지 않았다. 놀라지도 않았다. 감정이라 불리는 것들은 옛적에 육체와 함께 얼었다. 머리를 굴릴 틈도 없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북해에 비하면 후덥지근한 걸 넘어 사막처럼 느껴질 중원의 기후임에도 빙한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북해에 있는 것처럼, 그대로의 위력을 낸 서릿바람이 오른손에서부터 흘러나와 검을 붙잡았다. 휘리릭! 오른발을 반 보 내딛은 뒤, 그대로 축으로 삼아 몸을 반 바퀴 회전했다. 급격하게 떨어진 기온에 의해 얼어붙었던 풀잎이 밟히면서 산산조각났다. 동시에 왼손을 쭉 뻗었다. 팔의 관절이 쫙 펴졌다. 일반인이라면 평소에 쓰지 않은 근육이 저릿했을 것이다. 팔에서부터 상완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