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415)
진작 외경에 고정됐어야 했다. 암천회주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입안을 가득 메운 피를 꿀꺽 삼키곤 입을 열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웃음소리는 밝았다. 부정적인 감정은 조금도 없었다. “그 말대로다.” 파스스슷! 주서천이 깜짝 놀라 발아래를 내려다봤다. 아까 전부터 보였던 시커먼 줄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지?” 그 기세는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더니만 악마의 혀처럼 넘실거리거나 춤을 추는 것처럼 요동쳤다. 암천회주는 역천의 실체가 밝혀졌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 냉악비가 다급히 물러나려 했으나 실패했다. 암천회주는 냉악비의 고사리 같은 손목을 잡았다. 우드드득! “아아악!” 살과 근육이 짓눌린다. 보호받던 뼈도 압력에 버티지 못했다. 뭉개지는 걸 넘어 바스러졌다. 화경에 오른 뒤 느껴 보지 못한 통증에 비명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그걸 안다고 한들, 변하는 것은 없다.” 부웅! 냉악비의 시야가 뒤집혔다.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면서 몸이 떠오른 걸 깨달았다.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기지를 발휘하려 했지만 외경의 괴력을 이기지 못했다. 암천회주는 냉악비를 철퇴처럼 휘둘렀다. “흡!” 운광이 바람 소리를 내며 팔을 교차해 막았다. 콰아아앙! 곧 정면에서 전해져 온 충격에 숨을 멈춰야 했다. 두 다리로 버티려 했으나 무리였다. 발이 뒤로 밀리기도 전에 떠올랐다. 자세를 다시 잡으려도 무리였다. 머리까지 흔들려 뇌가 웅웅 울렸다. 평형 감각이 말을 듣지 않았다. 팔에 금이 간 게 느껴졌다. 경악과 불신으로 찬 목소리를 미처 내뱉기도 전, 충격을 이기지 못해 뒤로 멀찍이 날아가 처박혔다. 쿠와아앙! 신공의 반열에 드는 자하검결이 예외적일 뿐이지, 해남일검류가 위력이 낮은 건 결코 아니었다. 등 뒤를 길게 베였다. 얕다 깊다는 수준이 아니라 치명상이었다. 그 후론 빙백신장을 정통으로 맞았다. 화경도 아니고 현경의 고수의 전력이었다. 움직이기 전에 말하는 것조차 기적이었다. “본좌를 얕봤구나.” 개소리다. 주서천은 암천회주를 한 번도 얕보지 않았다. 얕보기는커녕 남들이라면 과한 걱정이라 지적할 정도로 생각을 몇 번, 몇십 번이나 했다. 전생은 물론이요 현생까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 팔과 손.” 심연을 품은 동공에 호기심이 묻어났다. “십중팔구 심상구현이겠구나.” 주서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머리가 떨어져도 다시 붙일 수 있는지 봐야겠다.” 암천회주는 확실히 주서천과 냉악비가 추측한 대로 외경을 무한하게 사용할 수는 없다. 순리를 거스르는 힘인 만큼 여러 부작용이 따라서 장시간 동안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시간을 찰나의 수준으로 쪼개 수백 번에 걸쳐서 능력을 발휘했다. “주, 서, 천!” 암천회주가 외경에 진입했다. 또다시 홀로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시각이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놓쳐 버린 게 아니라 인지할 수가 없었다. ‘눈으로 보는 건 포기한다!’ 어차피 볼 수 없으니 동원할 필요없었다. 도박이나 다름없지만 그 외의 감각을 활성화한다. ‘생각하지 마! 느껴라!’ 사고가 느려진다. 이성이 흐릿해졌다.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영역에 가까워지며 육체에 모든 걸 맡겼다. 집중력이 극도화되면서 잡념, 아니 생각이 사라졌다. 주서천은 순간적으로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쐐애액! 회주의 검초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무곡에게서 전해 들은 선천검법의 초식에 대해서도 잊었다. 숨을 들이쉰 채 힘을 주자 근육이 부풀었다. 회오리치듯 검을 휘감은 자줏빛 역시 강해졌다. ‘무궁육허!’ 무의식적으로 자하검결 제오식이 펼쳐졌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검을 움직인 게 아니라, 검이 나를 움직였다. 팔은 한일 자로 쭉 뻗어 있다. 그리고 그 끝을 따라가면 여섯 개의 매화 잎이 만개하듯 쫙 펼쳐져 있었다. 생과 사의 경계 속. 두 검이 부딪친다. 콰과과과과과과! 감히 사람 간의 대결이라 청할 수 없었다. 영웅지, 아니 설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이었다. 여섯 개의 잎 중 세 개가 사라지고 폭풍우를 일으키 면서 이상 현상을 만들어 냈다. “주서천.” 대기의 온도가 곤두박질쳤다가 솟구쳤다. 주변 일대가 얼어붙었다가 녹는 게 몇 차례나 반복됐다. 군중은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몇몇 내공이 약한 자들은 피를 울컥 토해 내며 무릎을 꿇었다. 고막이 찢어져 귀를 잡고 괴로워하는 자도 있었다. “여기까지다.” 푸욱! “커헉!” 마치 꿈을 꾸는 듯 싶었다. 방금 전까지 자줏빛의 폭풍우가 몰아치며 난리를 치더니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른손은 끝나지 않았다는 듯, 검을 꽉 쥐고 있었으나 정작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서걱! “이럴…… 수가……” 다리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몸이 멋대로 뒤로 넘어지면서 오른손과 분리된 걸 볼 수 있었다. 털썩. “쿨럭, 걱!” 무언가 말해 보려 했으나 목에 구멍이나 무리였다. 설상가상으로 걱정했던 무기력감이 찾아왔다. 수마(睦魔)에 사로잡혀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힘을 내도 겨우 반개하는 것이 고작. 그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흙처럼 메마른 입술만 겨우 달싹거려 소리를 낸다. 하지만 신음에 가까운 목소리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이미 시야는 안개처럼 희뿌옇게 일그러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지만 귀가 멀어 뭐라 말하는지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노력했다. 어떻게든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 정도면…… 되지 않습니까.’ 눈을 감으니 익숙한 광경이 보인다. 평생을 동경해 왔던 이들의 등이 보였다. ‘너무…… 힘이 듭니다……’ 영웅들의 삶을 동경해 왔다. 그래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함께 서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쉬지 않고 달려왔다. 가끔씩 유혹에 져서 넘어갈 뻔한 적도있었다. 전생에 해보지 못한 미녀와의 풍류도 즐겨 보고 싶었고, 또는 주변에서 떠받들어 주는 걸 즐기고도 싶었다. 그러나 죄다 외면하고 노력해 왔다. 누가 봐도 인정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달리고, 또 달려서 오늘날까지 왔다. ‘그렇지 않습니까……?’ 의식이 저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 속으로 떨어진다. 주변은 침묵에 잠겼다. 고요로 가득 찼다. 방금 전의 누군가의 비명도 없던 것처럼 사라졌다. 창공을 선회하던 매도 어딘가에 앉아 바라봤다. 세로로 갈라진 노란 눈동자에 누군가 비쳐졌다. “뭐냐.” 암천회주는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그 앞에는 만신창이가 된 청년이 서 있었다. 오른손은 잘렸다. 옆구리는 뜯겨져나갔다. 목에는 구멍이 났다. 사람인지 시체인지 구별이 불가능했다. 얼굴은 흙투성이와 굳은 핏자국으로 가득했다. “대답해라.” 휘이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보기 좋던 흑발은 마치 갑자기 생명을 잃는 것처럼, 급속도로 노화를 겪으면서 새하얗게 질렸다. “화산파.” 청년은 손을 뻗어 바닥에 굴러다니는 검을 당겨와 잡았다. “주서천.” 목에 난 구멍에 살이 채워지며 구멍이 막혔다. 오른손과 옆구리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갔다. ‘회귀.’ 구희의 신단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자연 치유력을 높은 수준으로 상승시킨다 할지라도 채 하루도 되지 않아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대로 되돌리는 건 심상구현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 부작용을 무시한 채 연이은 사용에 혹시나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지 마음에 걸렸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주먹을 천천히 쥐락펴락하며 확인해 봤지만,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뇌와 심장, 배꼽 아래 부근의 문이 열렸다. 상중하로 이루어진 단전에서부터 생명의 기운이 넘쳤다. 대자연에서부터 쌓아 올린 것도 영약의 것도 아니었다. 사람, 혹은 생명체 본연이 지니고 있던 기였다. 암천회주는 주서천의 변한 분위기를 눈치챘다. 약 일 년 전, 무림맹의 재야고수에 의해 접해 본 적 있었다. “선천진기.” 주서천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정백에게 배웠나?” 생명의 근원, 선천진기는 다룰 수 있다고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경의 절대고수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권동제 정백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의지만으로 사용했다. 암천회주도 당시 궁금해 물어봤으나 끝내 답변은 듣지 못하고 죽여 버렸다. “그럴 리가.” 주서천이 진심으로 기분 나쁜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 정신 나간 노인에게 배울 건 조금도 없다.” 주서천은 정백의 사후를 듣고도 부정적인 감정을 씻어 낼 수 없었다. 후에 희생했다고 한들, 결국 이상이니 뭐니 하는 아집 탓에 일어나지 않아도 될 비극이 일어났다. “북해에 다녀오면서 몇 가지 배웠다.” 냉악비는 주서천에게 도움을 대가로 빙궁의 비고를 열람할 수 있게 해 줬다. 그리고 그중에서 세 가지, 아니 네 가지 무공 비급을 건네주기로 약조했다. 첫째는 강격권, 둘째는 중소보. 세번째는 공진장이요 최후는 진원번(眞元播)이라는 무공이었다. ‘진원, 곧 사람 몸의 원기를 불태우는 무공.’ 북해인은 역사상 대대로 추위 속에서 고통받았다. 방한을 위해 온갖 수단을 강구했고 그중 하나가 원기를 불살라 체온과 기력을 되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목적을 생각하면 진원번은 실패작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선천진기, 진원을 소모하는 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머리카락의 색도 그 증거라는 듯 새하얗게 질렸다. “주서천. 놀랍구나. 정말로 놀라워.” 암천회주는 순수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놀란 적은 또 처음이었다. “서른, 아니 스물다섯 살도 되지 않은 자가 심상을 정립하고 구현했다. 이보다 더한 역천이 어디 있나.” 대단하다 놀랍다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주서천만큼이나 또 역천에 어울리는 사람이 없다 할 정도다. 거짓이 아닌 진심이었다. 사람이 정의한 무공의 상식, 그리고 세상의 법칙을 깨끗이 무시했다. “주서천, 무슨 삶을 살아왔나?” 암천회주는 주서천의 목, 옆구리, 팔을 훑어봤다. “또 무엇을 잃었나?” “……” “무엇을 후회하기에 돌아[回歸]가려는 거지?” 발 근처에 널려 있어야 할 살점이 보이지 않았다. 새살이 돋아 치유된 게 아니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잘린 부위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주서천, 그동안 네놈에게 여러 일이 있었으나 소중한 사람 따위는 누구도 잃지 않지 않았나.” 암천회주는 의문이 깃든 표정을 지었다. “아비처럼 여기는 유정목부터 시작해 소중하다고 여길 만한 이들은 그 무엇도 잃지 않았다. 아니면,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부모가 그리 보고 싶었나?” 암천회주는 주서천이 무엇을 되돌리려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직접 낳아 준 부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기억나 봤자 사오 년이다.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전대 장문인인 우일문이나 혹은 무림맹주 남궁위무도 사유로는 부족하다. 설사 가깝게 지났다 한들, 인생을 송두리째 가져갔을 정도로는 애매했다. “도대체 무엇을 잃었느냐?” “모두일세.” 주서천이 답했다. “이 늙은이는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님도, 피는 이어지지 않았으나 또 한 사람의 부모님이신 사부님도, 그 외에도 곁에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