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419)
적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한 덕에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주서천은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확인을 위해서 볼을 꼬집어 통증을 확인하곤, 손을 쥐락펴락했다. ‘선천진기.’ 진원번, 북해빙궁에서 도움을 받아 손에 넣은 네 번째 무공은 신의 한 수였다. 심상을 구현한 자조차 다룰 수 없는 선천진기답게 수련 또한 어려웠다. 무려 답습을 적용시켰는데도 성취를 이루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수련해서 결전 전에는 어찌어찌 터득하는 데 성공했다. 낙소월이 감탄했을 때 수련하던 것이 바로 이 진원번이었다. ‘부작용은……’ 무공의 이름처럼 선천진기를 불태웠다. 천만다행으로 운이 좋아 그 자리에서 죽지는 않았다. 선천진기와 그 부작용, 그리고 대가에 대해서 생각하려 할 때였다. 기척이 느껴졌다. 드르륵. “사형……?” 주서천은 귀에 익은 목소리에 감았던 눈을 떴다. 옆으로 열린 문 앞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아, 낙…… 억.” “사형!” 낙소월이 몸을 날리듯 달려와 품에 안겼다. “사형, 사형!” 낙소월은 감격에 겨운 채, 몇 번이나 그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는 온갖 감정으로 떨렸다. 주서천은 낙소월에게 무어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언제나 보았던 등을 슥슥 쓸어 주며 웃었다. “흐윽, 흑! 제가, 얼마나……!” 가슴팍이 눈물로 젖는다. 울음으로 가득한 목소리에서 그동안의 걱정이 묻어났다. “걱정 끼쳐서 미안해.” 주서천은 상냥한 목소리로 속삭여주면서 등에서 손을 옮겨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낙소월은 그 손길에 울음을 멈추기는커녕 더욱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다가, 일각의 시간이 흘러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사형 몸은 좀 어떠세요?” 낙소월이 걱정스레 물었다. “난 괜찮아. 그보다 여기는 어디야?” “무림맹 합비의 본부에요. 그보다, 의료각에 신의께서 진찰 중이시니 지금 당장 불러올게요.” 낙소월이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서천은 재빨리 손목을 낚아채 앉혔다. “난 괜찮으니까 걱정 마. 그보다, 괜찮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 줄래?” “하지만……” “사매.” “……알았어요. 대신, 설명을 다 들은 뒤에는 신의께 반드시 진료를 받겠다고 약속해 줘요.” 낙소월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힘을 풀었다. “물론이야.” “좋아요. 어디까지 기억하세요?” “암천회주의 확인 사살을 끝낸 뒤.” 당연한 이야기지만 확인 사살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니다. 심장을 찌르고 목을 베어 마무리했다. 그 뒤로는 바로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떴을 때는 이곳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사형이 정신을 잃은 순간에 맞춰 사실상 전란은 막을 내렸어요. 암천회 일부가 수뇌부를 잃고도 천기가 준비해 둔 몇 가지의 지휘 사항을 따라 저항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전멸했어요. 무림맹주님, 사도천주, 그리고 북해궁주께서 선두 지휘를 맡아 주셔서 제압 역시 빨리 끝냈고요.” 정사와 새외의 상천은 큰 부상을 입었으나, 고통 하나 티 내지 않고 선두에 서서 멀쩡함을 과시했다. 사실은 고수는커녕 일반 무사들과 손을 섞기도 힘들 만큼 몸 상태가 나빴지만, 지휘를 위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실제로 아군과 적군에게 상천의 건재를 보이면서 상황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 패도제공의 주인, 사도천주가 특히 큰 도움이 됐다. 암천회주와의 결전에서 그리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되려 부상이 덜 심해 뒷정리에서 활약했다. 특히나 무공 특성상 다수에게 유리하다 보니 좋았다. ‘전력은 차이 나고 중심을 잃었는데도 저항하다니, 하여간 정말 지독한 놈들이야.’ 그 암천회라도 회주와 천기를 잃었으니 곧장 항복하거나 단념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물론 전부가 아닌 일부이긴 하지만 그래도 보통 집념이 아니었다. 후일을 위해 사도천주를 물러나게 한 게 다행이었다. “전 사형제와 금의검문 등 몇몇 문파와 함께 사형을 신의가 있는 곳으로 후송했고요. 당시 사형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어요.” 낙소월은 당시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듯, 고운 이맛살을 찌푸렸다. 뼈라는 뼈는 부서지고, 근맥까지 끊어졌다. 대해와 같은 내공 역시 한 줌도 남지 않았다. 의식은 없지 숨도 잠깐이나마 멈추기까지 했다. 구희의 신단의 치유력이 적용되지 않았더라면 진작 죽었다. “오늘은 그날로부터 보름째에요. 암천회 대다수가 죽거나 혹은 포로로 뇌옥에 갇혔어요. 운이 좋아 도망에 성공한 잔당은 정사의 추격자가 쫓고 있는 중이고…… 구파일방, 오대세가, 사도사문, 무림맹, 사도천, 북해빙궁, 해남검파, 남해용문. 그 밖에도 여러 무림 세력이 힘을 합해 돕고 있어요.” “다행이다.” 주서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전생과 달리 현생은 전란이 끝나고도 무림 세력이 건재했다. 정파와 사파 모두 피해가 없던 건 아니지만, 멸망 직전까지 간 전생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세력이 건재한 탓에 패자가 되기 위해 누가 뒤통수를 치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다. ‘정말로, 전생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구나.’ 전생의 경우에는 지금처럼 다 끝난 뒤에도 하나가 된 것처럼 힘을 합쳐 뒷정리를 하지는 않았다. 정사와 마도이세, 그 외의 세력들도 각자 서로 너무 많은 피해를 입은 탓에 누군가를 돕기는커녕 주변을 경계하면서 사문의 회복에만 주력했다. 그때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었다. “이야기는 끝이에요. 좀 더 자세히 듣고 싶다면, 진료부터 받고 오도록하세요. 이 이상은 안 돼요.” 낙소월이 쌍심지를 켜며 엄격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어, 그럴게.” “좋아요. 그러면 부축해 줄게요.” 낙소월이 그제야 생긋 웃었다. “아니, 그 전에 할 이야기가 있어.” 낙소월은 무심코 허튼수작하지 말라고 말하려다가, 주서천의 얼굴을 보고 그만두었다. 주서천은 낙소월과 마주 본 채 입을 열었다. “아가씨.” 당가의 호위 무사, 원대식이 당혜를 불렀다. “왜?” “정말로 괜찮으십니까?” “그러니까, 뭐가?” “그놈…… 아니, 주서천 말입니다. 의식을 차렸다고 하는데, 정말 안 보고 돌아가셔도 괜찮겠습니까?” 원대식의 얼굴에 걱정이 묻어났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가네. 아, 혹시 무림의 영웅과 소싯적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탓에 마음에 걸리기라도 한 걸까. 지금에라도 관계를 되돌려서 친분을 과시라도 하고 싶은 거야?” 당혜는 등을 보인 채로 특유의 독설을 쏟아 냈다. “아가씨.” “그만둬 무림의 대영웅이신 검신께 꼬리라도 흔들고 싶으면 차라리 화산파에 가서 머리라도 조아리도록 하렴. 그리고, 더 이상 듣기 싫은 목소리를 낸다면 그 입에 독주를 먹인 뒤 버리고 갈 거야.” 원대식은 다시 무어라 말하려다가, 이내 그만두고 입을 다물었다. “당가로 돌아간다.” 합비의 팔문을 돌아보곤, 안타까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 * 주서천은 신의에게 진료를 받았다. “괜찮다면 해부 좀 해도 되겠나?” 신의는 주서천을 진료하면서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무림인, 특히 고수는 회복력이 남다르기는 하지만 주서천만큼 터무니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아무리 고수라 해도 내상을 입으면 회복이 더딘 게 정상이다. 다른 상처까지 더하면 두말할 것 없다. 보름은커녕 수개월, 아니 몇 년이 걸려도 부족하다. 그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는데 신체만큼은 대강 회복됐다. “구희의 신단이 괜히 신단은 아니로군.” 신의는 진심으로 해부하고 싶었지만, 곁에서 이를 듣고 눈총을 쏘아대는 낙소월 탓에 그럴 수 없었다. 어쨌거나, 주서천은 진료를 끝낸 뒤 신의와 몇 가지 대화를 섞은 뒤에 어딘가로 향했다. “잠은 잘 자냐.” 주변의 빛이라곤 벽에 걸린 횃불뿐이었다. 불빛이 주변을 천천히 밝힌다. 일반 철도 아닌 한철로 이루어진 쇠창살. 그 너머에는 외팔이 죄인이 혼자 앉아 있었다. 그동안 먹지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피골이 상접했다. 입술은 물어뜯었는지 굳은 핏자국으로 얼룩졌다. 사지, 아니 삼지(三技)에는 한철로 된 쇠사슬과 사람 몸만 한 철구가 달려 있었다. “천기.” 한림원의 외팔이 학사이자 암천의 두뇌였다. “주서천……” 천기가 눈을 부릅뜨며 낮게 으르릉거렸다. 보름 전, 주서천은 천기를 죽이지 않고 살려 두었다. 암천의 두뇌이자 또 다른 괴물을 살려 두는 것이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후일을 위해서 기절만 시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뇌옥은 천기가 수감된 순간, 현존하는 뇌옥 중 가장 삼엄한 곳으로 재탄생했다. 장소는 무림 연합 수뇌부 극소수만 알고 있으며, 이 뇌옥의 문지기 및 경비들은 천기가 죽기 전까지 나갈 수 없게 됐다. 그 밖에도 제갈승계와 간야자가 뇌옥 시설 및 기관을 설치했으며, 경비는 백여 명이 무작위 시간으로 교대를 섰다. 그 외에도 절대복종하는 유령이 곳곳에 배치되기까지 했다. 무인도 아닌 자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하고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그 반대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불안했다. “카아악, 퉤!” 천기가 가래침을 최대한 멀리 내뱉었다. 아쉽게도 닿지는 못했다. “꺼져라! 재수 없다!” “다 끝났다.” “헛소리!” 천기는 암천회주의 사망 소식을 믿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뇌옥의 안이었다. 제갈상이 찾아와서 사실을 말해 줬으나 전혀 믿지 않았다. “암천회주께서는 인간이 아닌 재앙이시다. 주서천, 네가 아무리 잘났다 한들 결국 사람에 불과하다.” 암천회주는 무신. 패배란 없었다. 마교의 교주조차 상처 없이 굴복시켰다. “날 가두고 살려 둔 걸 보니, 결전이 실패 혹은 무승부로 돌아간 모양이로군. 거짓말로 날 속여 단념시킬 생각이라면 오산……” 천기는 말을 이으려다가 멈췄다. 입은 열려 있고,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요동치는 눈동자에 담긴 건 쇠창살 너머의 어떤 머리였다. “속을 줄…… 아느냐.” 주서천은 암천회주의 수급을 천천히 내려놓은 뒤, 뇌옥의 문을 열어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어디선가 그분과 닮은 자의 얼굴에서 인피면구라도 만들어 온 거겠지. 누군지는 몰라도 보통 솜씨가 아니구나. 흑도의 하오문인가?” 천기는 끝까지 부정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미약하게나마 떨리고 있었다. “주서천, 시도는 좋았다. 그러나 넘어가진 않는다. 날 속여서 계획을 알아낼 생각이었더라면……” “천기, 착각하지 마라.” 주서천은 천기의 말을 자르고 소매를 뒤적거렸다. 그 안에서 나온 건, 어떤 인피면구였다. “난 딱히 너에게 무언가를 알아내려고 온 게 아니다. 심문은 더더욱 아니다. 애초에, 고통 따위로 너에게 무언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천기가 고통에 넘어갈 자였다면 이렇게까지 쉽지도 않았다. 어쩌면 포로로 잡힌 것도 계획의 일부라고 의심할 정도였다. 뭘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아닌 척하지만……” “만년화리.” 천기의 표정이 변했다. “칠각사.” 주서천이 보라는 듯이 인피면구를 보였다. “흉마의 무덤.” “아니야……” 천기의 동공이 요동쳤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쇠사슬이 출렁이면서 쇳소리를 냈다. “하오문주, 천선.” “아니야……” “천권, 철무명환.” “아니라고!” 천기가 목청껏 소리쳤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가 떠올랐다. 그동안의 의문, 그 밖에도 여러 일이 섞이면서 답을 도출해 낸다. 천기는 머리가 좋다. 좋은 걸 넘어서 천재다. “아니, 알잖아. 그게 맞아.” 몇 가지 단어만 듣고도 수많은 가능성을 낸다. 그리고 거기서 답에 근접한 추측도 가능하다. “알고 있지?” 주서천은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