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421)
“왜 그래?” 주서천이 의아한 듯 물었다. “말해.” “뭘?” “뭐에 쓸 건지 말하라고.” 왜 그런지 모르겠다. 다만, 묻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소령의 마음을 되돌릴 생각이야.” “소령을?” 당혜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능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될 것 같아.” “부작용은?” “음……” 주서천은 침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당혜는 그제야 왜 신의가 동행한지 알 수 있었다. “선천진기를 사용하는 것인데 없을 리가 있겠냐.” 신의가 주서천을 대신해 답했다. 설사 결과가 절망적일지 몰라도 진실을 말해야 하는 것이 의원이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자네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야.” “알고 있습니다.” 주서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 “웃기지 마!” 주서천은 당혜의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당신,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당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주 오래전부터 암천회를 막으려고 온갖 노력을 해 오고, 이를 위해서 삶의 일부를 포기했잖아. 툭 까놓고 말해서 복수가 목적인 것도 아니었고,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이렇게까지 하다니, 제정신이야?” 암천회주는 주서천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연인이나 스승이라거나 사형제가 살해당해 복수에 불탄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집념이었다. “당신이 쉰다고 해도 누구도 뭐라 안 해. 더 이상 희생하지 마. 그동안의 보답을 받으란 말이야. 낙소월과 사랑이라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 상천이자 검신으로서 칭송받으면서 살아가! 내가, 내가 어떤 마음으로 당신을 포기했는데!” “너……” “정마대전에서 당신을 잃었을 때,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아? 잘 들어, 주서천.” 당혜는 두 손으로 주서천의 손을 포개었다. “난…… 난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는 없어. 부탁할게, 그만둬.” 눈초리에서 물방울이 뺨을 타고 뚝뚝 흘렀다. 주서천은 당혜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반대쪽 손을 들어 뺨을 조심스레 쓰다듬어 주며 눈물을 닦아 줬다. “걱정 마. 죽지는 않을 거니까.”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야. 약속할게. 날 믿어 주지 않겠어?” 주서천은 당혜와 눈을 마주치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 스승과 제자라고 할까. 유정목과 닮았다. “부탁할게, 당혜. 날 믿어 줘.” “당신 정말…… 비겁한 거 알아?” 당혜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사랑에는 먼저 반한 사람이 약자라 했는가. 뺨을 쓰다듬어 주고, 웃어주면서 부탁을 하니 마음이 흔들렸다. 알고도 당한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준비는 됐나?” “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만약, 무언가 잘못되면 제가 아닌 이 아이부터 봐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주서천은 당혜에게서 떨어져 소령에게 갔다. 소령은 늘 그렇듯 영혼이 없는 것처럼 서 있었다. ‘기사분반은 기와 사고를 분리하는 법보다. 이 법보로 회귀를 사용한다면, 어쩌면 되돌릴지 몰라.’ 주서천은 소령과 마주 보고 앉은 채 손을 맞잡았다. ‘진원번.’ 새하얗게 물든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혼과 육체의 근원, 물질의 시초인 선천진기가 흘러나왔다. 주서천은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얼마 전에 신의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무공을 잃었다고?’ ‘예. 전부는 아니고 일부이긴 한데, 다시 습득하려고 해도 불가능하더군요.’ ‘뭐, 시간도 되돌리고 선천진기를 사용하고도 살아남았는데 그 정도야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 목숨은 붙어 있으니 넘어가게.’ ‘만약 한 번 더 사용하면 어찌 될 것 같습니까?’ ‘자살하려고?’ 선천진기는 사용하면 죽는다. 천운이 닿아도 폐인이었다. 그러나 주서천은 비교적 멀쩡했다. ‘중도만공의 부작용이 적용돼서 그런가, 선천진기의 부작용도 어떻게 된 것인지 이상하게 적용됐다.’ 선천진기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영역이다 보니,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추측할 뿐이었다. “정말로 이해가 안 가.” 신의는 주서천과 소령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늙은이는 비록 무림인은 아니지만 무림인에게 무공은 목숨 이상의 가치라는 건 잘 알고 있네. 하물며 무림을 구한 신에 가까운 힘이 아닌가. 그런데 여자아이 하나 구하기 위해 버리겠다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물어봤지. 그런데 뭐라 답했는지 아나?” 신의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회상했다. ‘원래부터 없었던 겁니다.’ 주서천은 소령의 기와 사고를 분리했다. 마음이 있어야 할 사고(思考)이나 심살로 인해 아무것도 없었다. 주서천은 이 사고만을 과거로 되돌렸다. 뇌에 새겨진 기록이 아니다. 영혼을 뜻하는 마음. 유령곡에게 살해된 유령을 과거로 되돌린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간다. 회귀한다. 그리고 그 부작용으로 무공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주서천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무언가 새로운 걸 배울 수는 없다. 기존에 있는 것들 또한 잃게 되면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일월신궁, 유령신공, 녹안만독공, 만중검, 철포삼, 탄검음, 전음입밀, 용후, 해남일도류, 수인공, 강격권, 공진장, 중소보, 중도만공, 진원번. 그리고 또 하나의 근간이었던 자하신공도 사라졌다. 그 행위에 주저함은 없었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모든 걸 버렸다. 도가나 불가에선 모든 걸 버리면 등선하거나 열반에 든다고 가르치나 자신은 그럴 리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너무나도 많은 미련이 남아 있으니까. 아마 평범한 사람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난 여태껏 무림을 구해야 한다는 이유를 변명 삼아 소령을 마음껏 이용해 왔어.’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이 앞은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른다. 실패할 수도 있고, 어쩌면 무공만이 아니라 목숨까지 잃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시도를 안할 수는 없다.’ 최후에 잃지 않은 건 매화심법과 매화검법이었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니 소령이 보였다. “소령아……?” 주서천은 약간의 기대를 담아 물었다. “……” “소…… 령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머리가 새하얗게 질렸다. “뭐가…… 뭐가 영웅이냐……” 손에 힘이 풀린다. 몸이 떨려 왔다. “뭐가, 영웅이냐고!” 정파의 어둠을 모른 척했다.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갔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변명해 왔다. “검신? 영웅? 지랄하지 마! 나는, 나는 결국 그냥 주서천이야! 그냥, 아무것도 아닌 주서천일 뿐이라고!” 소령에게 명령할 때마다 자신에게 구역질이 났다. “뭐가……” 스륵. 주서천은 말을 이으려다 눈을 크게 떴다. 오른쪽 뺨 가녀리고 얇은 손가락이 올라왔다. “슬퍼요……?” 아래로 떨어뜨렸던 고개를 위로 올렸다. 그곳에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곡주가, 슬프면…… 저도, 슬퍼요.” “아아……” “곡주?” “아아아!” 와락! 손을 뻗어 그 몸을 껴안는다. 부서질 것처럼 힘껏, 또 힘껏 껴안은 채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눈물이 터졌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안도인지, 아니면 기쁨인지도 잘 모르겠다. 주서천은 소령에게 안긴 채 울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목 놓아 엉엉 울며 오열했다. 문득, 울어 본 게 오랜만이란 걸 깨달았다. 언제나 당신들의 등을 보았습니다. 당신들처럼 되고 싶어 등을 좇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저도 당신들과 함께 걸을 수 있을까요? – 화산파의 사대제자, 주서천 – * * * (외전 1) 시간이 흘러간다. 햇빛을 눈부시게 반사하던 눈 덮인 대지도 조금씩 녹아 없어졌다.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겨울은 종막을 고한 전란의 시대와 함께 끝났다. 새벽이슬이 맺힐 무렵, 지평선 너머로 밤의 장막이 걷히며 어슴푸레한 빛이 인시(寅時)를 알렸다. “후우……”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가 내쉰다. 생명을 품은 양기가 몸을 가득 메우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소실된 무공은 돌아오지 않나.’ 주서천은 진원번, 선천진기를 소모한 부작용으로 대부분의 무공을 잃었다. 이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재차 습득해 보려고 노력은 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조금도 되찾지 못했다. ‘심법의 경우에는 구결을 외거나 운기해도 반응하지 않는다. 검법은 펼치려 하면 몸이 따르지 않아 도중에 갑자기 잊어버린 것처럼 멈춘다. 조금 아쉽구나.’ 주서천은 아쉬워하면서 두 눈을 느릿하게 떴다. “……” 만약, 주변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면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벌러덩 넘어졌을 것이다. 주서천은 황당함이 묻어나는 눈초리를 반개한 채, 정면을 바라보면서 말을 꺼냈다. “소령아, 뭐하니?” “곡주를…… 바라보고 있어요.” 소령이 쪼그려 앉은 채 답했다. “그건 나도 알아. 아니, 그것보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더 이상 곡주가 아니야.” 유령곡의 주인은 유령신공을 수련한 자에게만 허락된 칭호다. 따라서 여타 무공처럼 유령신공 또한 소실한 주서천 역시 더 이상 곡주가 아니었다. “……” 소령은 머리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표정은 언제나처럼 무표정이었으나, 마치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유령곡주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 되니까 마음이 되돌아온 건 맞는데 말이야……” 만약, 유령신공의 절대명령이 잔존해 있었더라면 ‘곡주라 부르지 말 것’이라는 명령을 거부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러나 소령은 몇 날 며칠이 지나고도 계속해서 곡주라 불렀고, 이를 지적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껌뻑일 뿐이었다. ‘거부는 둘째치고, 표정이나 감정표현이 전과 다를 것 없으니 제대로 돌아왔는지 파악하기 힘들구나.’ 스스로의 입으로 슬프다고도 말했고, 방금 전처럼 때때로 기행을 보이기도 했으니 확실했다. 다만 표정변화가 없다 보니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주서천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내 피식 웃으면서 소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령곡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돌아가지 않고, 너는 끝까지 내 속을 썩이는구나.” 마음을 되찾은 이후로 몇 번이나 유령곡으로 되돌아가거나, 아니면 마음 가는 대로 살라고 말하며 어르고 달래 봤지만 소용없었다. 소령은 별다른 말없이 여태껏 그래 왔던 것처럼 곁을 지켰다. “곡주, 저 때문에…… 속, 아파요?” 두 눈을 치켜뜬 채, 올려다보는 모습은 부모에게 혼나는 걸 두려워하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그럴 리가. 농담이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 누가 이 아이를 보고 잔혹과 두려움의 대명사이자, 전설로만 전해지는 암살자라 생각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마침 널 부를 생각이었는데 잘 왔다.” “……?” “지금부터 유령신공의 구결을 가르쳐 주마.” 무공의 소실이라고 해도 구결까지 잊어먹은 건 아니었다. 주서천은 소령에게 구결을 전달했다. “마음 같아서는 너희 전원의 마음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었는데……그러지 못해 정말로 미안하다.” 주서천은 아쉬움과 미안함이 섞인 쓴웃음을 흘렸다. 무림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희생된 건 소령만이 아니다. 그녀 외의 유령들도 존재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들 역시 타인 회귀로 되돌리고 싶었으나, 현재 그럴 능력이 되지 못했다. “유령신공의 사용처는 네 마음대로 하도록 하렴. 누군가에게 전수하는 것도 좋고, 네가 습득해서 다음 대의 유령곡주가 되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너처럼 심살을 겪은 이들은 내버려 뒀으면 하는구나.” 끄덕.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란 걸 명심해다오.” 소령은 주서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제나처럼 예의 무표정으로 두 눈을 껌뻑이기만 했다. 입에서 존명이라는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