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425)
없는 사람이다……’ 제갈승계는 여러모로 최악인 사람이었다. 특히 누군가를 가르치는 능력은 전무했다. 여담으로, 얼굴은 잘생겼다. 그래서 더 재수 없게 느껴졌다. 결국 부인인 무선화가 남편을 대신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남을 가르치는 데 재능은커녕 최악인 남편을 대신하여 수습생이나 가문의 식솔들에게 기관지술에 대해 강연하는 모양이었다. “사부님은 어디에 가셨니?” “손님이 찾아오셔서 잠깐 자리를 비우셨어요.” 제갈수란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입가에 맺히는 웃음은 물론이고 표정 변화가 드문 사람이지만, 그녀 역시 교두처럼 감정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 것뿐이었다. 속은 읽기 힘들어도 좋은 사람이었다. “얘.” 당혜가 그를 불렀다. “네?” “모처럼 선생님이 오셨는데, 차를 내와야지.” “앗, 네. 사모님. 그럴게요.” 움찔. 제갈수란의 손이 떨렸다. “왜 그러신가요, 선생님.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신가요? 약이라도 내어드릴까요?” 당혜가 제갈수란을 내려다보듯이 바라보며 웃었다. “……악취미시네요.” “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속여서 불리고 싶은 대로 불리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갈 수란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했다. “누가 누구 보고 속인다고 하는지 모르겠네. 어딘가의 모사께서 몇 십 년 전의 일을 잊었나 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역시 아무리 똑똑해도 나이는 이기지 못하는 모양이네. 치매 예방으로 괜찮은 독약이 있는데 처방해 줄까?” “그 말 그대로 되돌려드릴게요.” 치지직! 두 사람 사이에서 번갯불이 튀기는 것 같았다. ‘살려 줘……’ 제자가 울상을 지으며 속으로 바랐다. ‘사고. 혹시 사부님께서 대단했다는 건, 무공이 아니라 여자를 후리는 능력이었나요?’ 사부에 대한 의문은 여러 가지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역시 주변 인물. 복잡한 여성 관계였다. 낙소월과 당혜, 그리고 제갈수란. 한 사람도 아닌 세 사람씩이나 사부를 몇 십 년 동안 사랑하고 있다. 제자의 입장에서는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사부가 못생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세 사람에게 사랑을 받기에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었다. 툭 까놓고 말하면 객관적으로 봐도 세 사람이 아까웠다. 무공이 고강하다거나, 아니면 남들보다 머리가 뛰어나다거나 하는 특출한 것이 있다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도 의문밖에 남지 않았다. “두 분 다, 사부님의 어디가 좋으신 거예요?” 결국 참지 못하고 장본인들에게 묻기로 했다. “……” “……” 방금 전만 해도 오갔던 설전이 멈췄다. 두 사람 다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 뺨은 불그스름하고 손가락은 꼼지락거렸다. 덥지도 않은데 손으로 부채질하는 것이 이상했다. 다른 때는 몰라도 사부에 대해서 물으면 소녀처럼 부끄러워했다. ‘정말로 복잡해……’ 사부의 관계가 이렇게 복잡한 건 사실, 사부가 아직 기혼이 아닌 미혼 남성이기 때문이었다. 사부도 당혜도 서로 사랑하는 건 맞으나, 피치 못 할 어른의 사정 탓에 혼인은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제자는 무척 궁금했으나, 낙소월과 제갈수란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당혜가 무서워서 차마 묻지 못했다. “그나저나, 네 사부는 누구를 만나고 있기에 이렇게 늦는 거야?” 당혜가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인지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교두가 말씀해 주셨거든요.” “교두? 소령?” 끄덕. “소령.” 당혜가 제자의 그림자를 향해 말했다. “네.” “으악!” 제자는 그림자 속에서 소령이 솟자 기겁했다. “주 가가를 찾아온 게 누구야?” “호칭이 잘못됐어요.” 제갈수란이 지적했지만 당혜가 깔끔히 무시했다. “남궁선유입니다.” “창천(蒼天)이?” * * * “검신께서는 세월이 흘러도 참 변함이 없으십니다.” 남궁선유가 주서천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입가에 웃음을 맺자 세월을 가득 담은 주름도 움직였다. “남들보다 일찍 극의를 이루고, 심상을 구현하지 않았소. 남들보다 노화가 늦는 거야 당연하지.” 쪼르륵. 주서천도 남궁선유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상천이자 남궁세가의 가주나 되시는 양반이 무슨 일이오? 설마 누이를 소개하려는 건 아니겠지?” “몇 십 년 전에 그러려다가 세 분께 죽을 뻔 하지 않았습니까. 천군사, 그 친구도 누이를 슬퍼하게 한다면 용서하지 않겠다면서 째려보더군요.” “그리운 사람이 떠올라서 말이오.” “……” 잠시 간의 침묵이 흘렀다. 애도하는 것이 아닌,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듯했다. “어젯밤, 천기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술병을 집으려던 손이 멈칫했다. “오래도 살았군.” 주서천은 놀라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받아들였다. “검신께서 쉽게 죽일 수는 없다면서 무림에서도 손꼽히는 영약을 먹인데다가, 화인의원이 세대에 걸쳐 건강을 관리하지 않았습니까. 이십 년 전에는 위에 혹이 발견됐는데도 무사히 제거하고 살아남기까지 했습니다.” 암천의 군사는 천수, 아니 그 이상의 삶을 살았다. 정사의 관리 하에 둔 뇌옥에서. “어땠소?” “무섭더군요.” 남궁선유가 술잔을 매만지면서 몸서리쳤다. “금제에 걸려 자살은 물론이요 자해조차 할 수 없습니다. 병에 걸려도 곧장 치료되지요. 먹을 것이라곤 벽곡단뿐입니다. 여럿도 아니고 혼자서 수십 년 동안 뇌옥에서 지냈는데, 미치지 않은 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 “수감자가 수감자인 만큼, 말을 나누는 것도 금했거늘…… 정말로 무서운 정신력입니다.” “그리고?” “수십 년을 뇌옥에서 혼자 갇혀 있었는데도, 마치 밖에 있는 것처럼 무림의 상황을 추측하더군요. 문제는 그 말이 대부분 맞았다는 겁니다.” 창천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천기는 숨을 거두기 전, ‘무림은 변하지 않았지?’라면서 비웃었습니다. 정사는 희생 끝에 얻은 평화를 잊은 채 대립하고 있을 것이며, 무림인은 여전히 무공과 사문만으로 차별하고, 미워하고 있을 것이라고 조롱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지요.” 남궁선유는 무거운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전란이 막을 내렸을 때, 과거의 저는 무림이 변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정사에 등을 돌린 이들이 암천회와 손을 잡은 건 용서할 수 없으나, 원인은 결국 무림의 차별 탓이 아니었습니까.” 깍지를 낀 손가락에 힘이 들었다. “실제로도 그 후, 무림에서 불평등한 차별은 줄어들었습니다. 어쩌면 무림이 정말 일통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크나큰 착각이었습니다. 평화 조약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대립하더군요. 게다가 얼마 전에 무림맹에서 흑영부의 부활이 검토됐을 때는 제 두 귀를 읫미했습니다. 그나마 천추의 전례가 있으니 다수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당혜의 귀에 들어가면 아마 무림맹의 수뇌부가 독살될지도 모르니, 입단속을 시키는 편이 좋을 거요.” “맹주님께서 노발대발하셨으니 당분간은 그 누구도 입 하나 뻥긋하지 못할 겁니다.” “그 홍진대사께서 화내셨다니 깜짝 놀랄 일이로군. 그보다, 그 분께서는 아직도 은퇴할 생각이 없으신 거요?” 홍진은 내일 입적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오랜 세월 동안 무림을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보지 못하는 만큼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더 구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분도 참……” 주서천은 질린 듯이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는 겁니까?” “기다리는 이들이 있어서 말이오.” “이런, 제가 실례했군요.” 남궁선유는 포권으로 사과를 표했다. “아 참, 천기가 저에게 남긴 말은 없었습니까?”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들 만큼 심한 욕설 인지라…… 그저 저주했다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소?” 주서천이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창룡.” “부르셨…… 음?” 남궁선유는 무심코 답했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운 별호였다. “무림이 어떻든 간에 당신이 무림을 구한 영웅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결코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었다는 걸 명심해 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이십니까? 영웅은 검신……” “당신과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무림을 구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립니다.” 주서천은 최대한 절도 있는 포권으로 인사했다. 남궁선유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떠날 수 없었다. 왠지 모를 그리움을 느꼈다. “사형.” 낙소월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팔짱을 꼈다. “장로께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주서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떨어뜨리려 해도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미소 탓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 같은 스승 아래에서 배운 것도 아닌데 저러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니. 정작 그녀를 가르친 철혈매검과는 정반대였다. 가끔씩, 단리화가 방문할 때는 철혈로 물들기는 하지만. “뭐가 곤란한데요?” 낙소월이 머리를 기대면서 짓궂은 웃음을 지었다. “그거야……” “나한테 걸리면 죽을 테니까.” 주서천이 걸음을 멈췄다. 공포로 얼어붙은 눈동자에 비치는 건 악귀나찰로 변해 버린 당혜였다. 그리고 바로 옆, 제갈수란은 악귀처럼 변하진 않았지만 슬픈 표정을 짓고 있어 몹시 신경이 쓰였다. “사형을 괴롭히지 마세요!” 낙소월이 주서천의 앞을 가로막았다. “낙소월, 그 자리에서 비키는 것이 좋을 거야.” “절대 안 돼요.” “좋아, 잘됐네. 그렇지 않아도 너에게는 원한이 있어서 갚아 줄 생각이었거든.” “원한이요?” “모른 척하지 마. 몇 십 년 전에 혼담이 오갔을 때, 방해했던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무, 무슨 소리세요. 전 그냥 화산파의 제자로서 규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던 것뿐인걸요?” 낙소월이 모른 척했다. 동공은 물고기처럼 헤엄치고, 목소리는 떨렸다. 나이를 먹었는데도 거짓말을 못하는 건 여전하다. 한편, 제갈수란은 낙소월과 당혜가 대치하는 동안 유령처럼 슥 하고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바람 소리를 내면서 날아온 독접에 멈춰야만 했다. “어디 가려고?” 낙소월도 낙소월이지만 제갈수란도 문제였다. 몇 십 년 동안 그녀에게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으음.” 마음 같아선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후에 당혜가 무슨 말을 할지 알기에 얌전히 있어야 했다. 툭툭. “응?” “사부님, 사부님.” “왜 그러니, 제자야?” “사부님은 쓰레기인가요?” 제자가 소령의 옆구리에 들린 채로 물었다. “어허, 이 녀석. 사부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더냐. 누가 그리 가르쳤어?” “사모님이요.” “흠……” 주서천이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앗!” 어떻게 복수할까 하고 소심하게 궁리하고 있을 때였다. 제자가 무언가 떠올린 듯 방방 뛰기 시작했다. 소령은 제자가 옆구리에서 마구 움직이자, 귀찮다는 듯이 바닥에 내팽개쳤다. 제자는 ‘철퍼덕’ 하고 엎어졌다가, 벌떡 일어났다. “사부님, 사부님! 큰일이에요!” “무슨 일이야?” “제가 매화심법, 그러니까 매화기공의 비밀을 알아냈어요!” 주서천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웃음을 지었다. 마치 예상이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제자는 사부에게 오늘 알아낸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잔뜩 들뜬 목소리가 귀엽게 느껴졌다. “정말로 대단하구나, 제자야. 그런데, 그 운기법을 무어라 부르면 좋겠느냐?” “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매화생공(梅花生功)! 매화생공이요!”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