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49)
“그나저나……” 유정목이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말꼬리를 흐렸다. “소환단을 복용했으니 어이해야 할 꼬?” 자신은 분명 독침에 당해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의식을 차렸을 때 독은커녕 내공량이 늘어났다. 무슨 일인가 하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는 머리를 잃고 쓰러진 오엽과 안도하는 제자였다. 이후 주서천이 자초지종을 설명해줬다. 그제야 어떻게 된 것인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은 비밀로 해 달라고 스승에게 부탁했다. 암천회에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였다. 물론 암천회에 대해 설명한 건 아니었다. 왜, 강호에는 삼 할을 숨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주서천은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안 그래도 노수창병 때의 일로 이목을 모은 게 부담됐다고 말했다. 제자의 공을 빼앗는 것 같아서 싫었지만 간곡한 요청에 할 수 없이 함구해 주기로 했다. “끙.” 자신에게 소환단을 먹인 제자에게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스승을 살리려고 한 건데 어찌 뭐라 하겠는가? 유정목도 그 정도로 융통성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부님, 불초 제자가 말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격식 차릴 것 없단다.” “감사합니다. 여하튼, 복용한 건 이미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소림사에게 사정을 설명한다고 해도 일이 쉬이 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외적인 위신이란 게 있다. 비록 오래되었다고 해도 훔친 물건이다. 그걸 마음대로 복용한 걸 알려 양심 고백을 한다 할지라도 소림사의 입장에선 쉬이 넘어갈 수 없었다. 무림이란 게 다 그렇다. “사부님께서 일부러 복용하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처도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겁니다. 성인(聖人)이지 않습니까? 분명합니다.” 혀가 매끄럽게 움직였다. 기가 막힌 솜씨였다. 그래도 유정목의 불편한 마음을 조금은 녹여 없앴다. “어쩔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은 진리와도 같다. 어떠한 불합리한 상황이라도 선악에 구분없이 이해시킨다. 어쩔 수 없으니까. 주서천은 그동안 무공이 아니라 혀를 굴리는 것을 수련했는지 현란한 말솜씨로 유정목을 변호했다. “진실을 말했다간 화산파도, 소림사도 곤란하게 됩니다. 별수 없으니 그냥 지나가는 게 좋을 돗싶습니다, 사부님.” “…… 알았다.” 유정목도 결국 백기를 들었다. 마음에 잔뜩 걸리는 얼굴이었으나 그래도 미련을 버리고 단념했다. “이로써 소림사에게 빚을 졌구나. 내 이 일은 무덤까지 가져가겠지만, 언젠가는 갚도록 해야겠어.” 그래도 끝까지 양심적이었다. ‘됐어!’ 이걸로 완전히 넘어갔다. 속으로 환호했다. ‘사부님께서도 천하백대고수의 반열에 오르시겠군.’ 소환단의 영기는 전부 사라지지 않았다. 독 일부를 태워 없앴지만 나머지는 그러지 않고 밀어냈다. 그래서 전부는 아니지만 육 할에서 칠 할 정도의 양은 남아 있었다. 이걸 흡수하면 최소 십 년 정도의 양은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여기에서 천운이 따라 준다면 다음 경지도 넘볼 수도 있었다. 영약이 괜히 영약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홀리면서도 어떻게든 차지하고 싶어 할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생전에 갚지 못한 은혜를 몇 배로 되돌려 드려야지.’ 천하백대고수의 반열도 부족했다. 할 수만 있다면 화경의 경지까지 올려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고생하고 겨우겨우 화산에 돌아가려 하는데, 내 탓에 피곤한 일에 휘말리게 해서 정말로 미안하다.” “자꾸 그렇게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부님. 따지고 보면 제가 행방불명된 탓이기도 하니까요.” “정말로 보면 볼수록 장하다.” 유정목이 주서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 슬슬 떠날 채비를 하거라.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야겠다.” 그리운 고향, 화산으로. 第一章무사귀환(無事歸還) 길다고 말하면 길고, 짧다면 짧은 강호행이 끝났다. 끊임없이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 곳에 참전했다. 이후 적에게 포위되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다시 화산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수림구채와 천하백대고수에게 습격을 받고 행방불명됐다. 어찌어찌 구사일생해서 돌아가는데 이번에는 천하백대고수 정도는 아니지만 사도천의 고수에게 습격을 당했다. 연화각의 강호 출도는 연례행사였지만 역대 강호행 중에서도 이 정도로 파란만장한 적은 없었다. 그 외에도 남들에게 밝힐 수는 없는 일도 있었다. 훗날 미래의 역사에 중요 인물이 될 만각이천과 상왕. 이 둘과의 만남 덕에 삼안신투의 비고도 털었다. “음, 그다지 주목받지 않아서 좋군. 예상대로야.” 평소였다면 자신의 행보가 꽤나 주목받고도 남았겠지만, 지금 무림은 비고로 이목이 쏠려 있었다. 화산파도 마찬가지다. 유정목 다음으로 주서천의 안전을 확보하고 싶었던 구풍 또한 어쩔 수 없이 중경으로 갔을 정도였다. 화산파의 자존심인 연화각원을 데려오는 건 확실히 중요한 일이었지만 비고와 비교될 건 아니었다. 주인 없는 삼안신투의 비고는 주요 전력을 전부 투입해서 탐색해야 할 이유로 충분했다. 주서천의 입장에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덕분에 괜한 주목이나 귀찮은 일을 피할 수 있었다. 비고의 재물은 어차피 사정상 전부 손에 넣을 수 없으니, 그 존재를 철저하게 이용해서 득을 봤다. “사제!” 누군가를 반기는 낯익은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니 눈물을 글썽이는 사형제가 있었다. “사형, 사저.” 장홍과 장서은이었다. “이 녀석!” 장홍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주서천의 머리를 겨드랑이에 끼곤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헝클어지면서 새집처럼 변했다. 장서은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표정을 보니 그동안 자신 탓에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대충 예상이 갔다. “우리가 너를 끝까지 신경 썼어야했는데……!” 장홍도 훌쩍이곤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게 울음을 필사적으로 참는 듯 했다. 비록 함께한 시간이 그렇게까지 길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주서천에게 정이 쌓여 있었다. 또한 장홍은 어리나, 사형으로서의 책임감에 죄책감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죽은 줄만 알았던 사제가 돌아왔다. 그 기쁨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기뺐다. “괜찮습니다, 사형과 사저 탓이 아니니까요.” 주서천은 어린 둘을 안아 주면서 등을 토닥여 줬다. 어째 장홍과 장서은이 더 사제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았니?” “자세한 걸 듣고 싶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게……” “사형!” 말이 도중에 끊겼다. 장홍에게 안긴 채로 고개만 돌렸다. 목소리의 근원지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굴썽이는 눈망울, 일 년 사이에 한층 더 빛을 발하게 된 미모, 급히 달려온 듯 숨을 헐떡인다. “사매.” 낙소월이었다. “…… !” 낙소월이 몸을 번개같이 날렸다. 장홍이 그 기세에 놀라 옆구리에 낀 주서천을 놓아주었다. “사형!” 낙소월이 주서천에게 안겼다. “그래.” 주서천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웃었다. “살아, 있어서…… 정말, 로…… 다행 끅……” 낙소월이 도중에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이에 비해 성숙해도 아이는 아이다. 정과 친분을 쌓았던 사람의 죽음은 아직 성년도 되지 못한 소녀에겐 너무나도 무거웠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 품 안에서 우는 낙소월을 열심히 토닥여줬다. ‘나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전생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군이 대패했던 격전지에 참전했다가, 운이 좋아 생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가 반겨 준 적은 없었다. 그때는 침상에 누워 의원에게 치료만 받고 끝났다. 몇몇 면식만 있는 사형제가 와서 인사만 하고 돌아갔다. 스승을 잃은 이후 자신은 쭉 혼자였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있었다.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이 날, 사형제의 연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됐다. * * * 중경, 삼안신투의 비고. “아아악!” 탐사는 순탄치 않았다. 기관 지식이 전무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툭하면 함정에 걸려 사망자나 부상자가 대거 발생했다. 무림맹이나 사도련이나 마찬가지였다. 비고가 공개된 지 어언 석 달. 아직 중간도 채 가지 못했다. 그러나 간간이 발견되는 보물 덕에 도전자는 끊이지 않았다. 정파, 사파 외에 낭인들도 몰렸다. 가끔씩 전대 고수의 명맥을 잇는 자들도 나타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시끌벅적해졌다. 탐사가 장기화되면서 암장(巖場)도 모습을 조금이나마 바꿨다. 적어도 사람들이 지나는 길과, 막사가 들어올 공간 정도는 생겼다. 사람이 많다 보니 상인들도 제법 몰렸다. 그들은 비고 인근에 세워진 임시 진지에 여러 가지를 팔았다. 평소에 보지 못하는 고수들이 모이자, 그에 따른 구경꾼들도 몰렸다. 사람은 물론이고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던 암장은 어느덧 사람들도 북적였다. 다만 마을을 형성할 것 같지는 않았다. 비고 외엔 아무것도 없으니 탐사가 끝나면 모두 굶어 죽는다. “이 개만도 못한 놈!” “비고 안에서 보자!” 정사가 한자리에 모이면 싸움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림맹과 사도천은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평화 협정을 맺었다. 그게 비고협정(秘庫協定)이었다. 그 탓에 탐사 기간은 물론이고 각자 세력권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싸움은 강제적으로 금지됐다. 확실히 비고협정이 있어 탐사 기간 중 다들 조심하여 시비가 붙어 싸우는 일은 크게 억제됐다. 단, 어디까지나 비고 바깥에서 일어나는 경우였다. 삼안신투의 비고의 경우는 달랐다. 그 안은 지옥이었다. 비고에선 길을 잃어 실종되거나 함정에 걸려 시체도 건질 수 없는 경우가 빈번히 벌어졌다. 사람들은 이를 이용해 비고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살해해도 함정 속에 시체를 내던지면 증거가 사라지는 것이니 후환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눈앞에 보물이 있는데 그걸 그냥 보고 있을 리 없었다. 빼앗기 위해 죽이는 경우도 흔했다. 무림맹과 사도천도 비고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렇다 보니 탐사도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비고 안은 위험천만했으나, 보물을 가지고 나가기만 하면 팔자를 고치고도 남는다. 목숨을 걸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암천회만 실컷 득 보겠군.” 강호에 기관지술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 자체가 암천회에 의해서다. 제갈승계 만큼은 아니지만, 기관에 대해서는 암천회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승계가 없으니 무림맹도 얻는 건 없을 거야.” 전생에서는 그래도 제갈승계가 탐사에 참여한 덕에 정파가 상당한 보물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사파는 기관지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보물을 확보하기는커녕 손실만 얻었다. 이 일을 기점으로 후에 기관지술을 연구하게 됐다. “그래도 중도만공이나 유령신공, 소환단을 암천회에게 넘기는 것보다는 낫지.” 틀린 말이 아니었다. 특히 중도만공의 경우, 안 그래도 괴물인 암천회주를 무신의 영역으로 올렸다.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삼안신투의 비고. 흉마의 무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앞으로 있을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건 마찬가지였다. 예정보다 이 년 정도 앞서서 일어났고, 거기에 원래 정파가 얻어야할 보물도 확 줄었다. 원래의 역사에서 이 비고의 보물은 정파의 사치로 쓰이지 않는다. 얼마 뒤에 흉마의 무덤으로 칠검전쟁이 일어나서 군량을 확보하는 등의 군비로 사용된다. 이제 그게 사라졌으니, 크고 작은 전쟁에도 영향이 간다. 정말로 앞을 볼 수 없는 세계가 됐다.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