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55)
조형미와 균형이다. 또한 신체 외에 무공도 빼놓을 수 없었다. 연화각에서 나온 이후로도 장홍과 장서은, 낙소월 정도를 빼곤 남들과 교류하지 않고 수련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중 장홍과 장서온조차도 각각 이 년 전, 일 년 전에 강호에 출도해서 지금은 화산에 없었다. 어쨌거나, 요 사 년 동안 무공에만 집중해 일취월장한 성취를 보였다. ‘자하신공, 팔성.’ 육성에서 팔성까지 사 년이 걸렸다. 언뜻 보면 오래 걸린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었다. 유례없는 속도다. 화산 역사상 겨우 열여덟 나이에 자하신공을 팔성까지 연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무엇보다 자하신공의 진정한 힘을 낼 수 있는 십성까지 이성(二成) 밖에 안 남았다는 게 기뺐다. 자하검결도 제이식은 완숙하고, 제삼식도 얼마 남지 않았다. 순탄한 성과였다. 그 외에도 이십사수매화검법을 대성했고, 일월신궁은 사성에 올랐다. 일월신궁은 일성만 높이면 끝이다. 더불어 경공인 암향표도 대성했다. 내공만 지속적으로 소진하면 높일 수 있으니 어려움은 없었다. 미래에 대한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간간이 화산에 방문하는 금의상단의 사람에게 정보와 서신을 주고받는 걸로 대충이나마 해결했다. 이의채는 생각 이상으로 유능한 상인이었다. 단편적인 정보로도 주서천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의채는 삼안신투의 비고의 보물을 투자받은 것만으로 군말 없이 따라 줬다. 단순하면 단순한 인물인데, 그렇다고 바보나 머저리는 아니다. 지금 생각해도 특이한 인물이다. 제갈승계와도 종종 전서구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여전히 세가에선 배척받는 입장이라고 한다. 삼안신투의 비고 이후로는 여전히 기관지술은 써먹을 곳이 없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취급이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라. 나중에 데리러 가마.’ 그 천재가 얼마나 성장했을지 기대됐다. 후일을 기약하면서 미래의 일을 떠올렸다. ‘요 사 년 동안, 다행히도 역사의 개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화산에 돌아왔을 무렵, 바뀐 미래가 신경 쓰였다. 삼안신투의 비고가 역사보다 빨리 발견된 것과, 수림구채 등의 일로 인해 역사의 개변을 걱정했다. 나름대로 미래를 준비하곤 있지만, 확실한 건 아니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 하나는 단연 흉마의 무덤이다. 흉마의 비급을 손에 넣기 위해 시작된 이 전쟁은 일 년 동안 지속되다가 결국 전 무림까지 퍼진다. 칠검전쟁. 일곱여 개의 세력이 주역이 된 이 전쟁을 시작으로 강호무림은 전란에 휩싸인다. ‘곤륜파(鹿漏派), 태산파(泰山派), 숭산파(崇山派), 항산파(恒山派), 남궁세가(南宮世家), 마교, 사도천.’ 시기는 올해 여름. 앞으로 반년 남았다. ‘너희들의 생각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칠검전쟁은 막지 못한다. 그만큼 암천회가 이번 일에 들인 노력과 시간이 보통이 아니었다.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어도 한계가 있다. 막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는데 칠검전쟁은 후자다. 하지만 그래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암천회의 계획 몇 가지를 무너뜨릴 수는 있었다. “사형!” “응?”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에 상념에서 깼다. 고개를 뒤로 돌려서 확인했다. “으음!” 선녀가 있었다.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도 부족하다. 그곳에는 넋을 잃을 정도의 미모를 가진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밤하늘을 닮은 머리카락은 비단처럼 찰랑거리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백옥처럼 흰 피부가 보인다. 소녀에서 막 벗어난 숙녀. 당찬 여장부의 기색이 묻어나는 그 여인은 과거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매화검봉…… 전생에서도 매화검봉을 봤던 건 단 한 번이다. 그것도 전장에서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그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매화검수들을 비롯한 여러 영웅들 사이에 섞여 검초를 펼치던 그 모습은 강하고, 아름다웠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사형, 왜 그러세요?” 낙소월이 다가와선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들에 비해서 성장이 빠르긴 해도 기억 속의 모습을 보려면 아직 더 남았다. 기억에 있는 낙소월은 이십 대 중반 정도고, 지금의 낙소월은 열일곱 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기억 속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으음, 아니야.” 천하계일 미녀로 거론되기는 아직 이르지만, 그래도 화산 제일 미녀에 이름을 올릴 정도는 된다. “네가 너무 예쁜 나머지 넋을 잃고 쳐다봤을 뿐이란다.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도록 하렴.” 생각이 입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낙소월이 어이없다는 듯이 물어봤는데, 다만 그 뺨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으윽,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모습조차 귀여워서 죽겠구나. 날 죽일 셈인가.” 주서천이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괴로워했다. 어설픈 연기 따위가 아니라 진짜다. “정말이지……” 낙소월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툴툴거렸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사숙께서 불러요.” “사부님이?” * * * 주서천은 낙소월과 거처로 향했다. 화산 제일의 미녀와 걷다 보니 이목이 집중됐다. 남자 제자들이 부러움과 질투 어린 눈길로 노려봤다. 시선이 따갑지만 이것도 이제 익숙하다. 낙소월과는 거처 인근까지만 함께하고 헤어졌다. “오, 왔느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유정목이 주서천을 반겨 줬다 “네, 사부님. 부르셨습니까?” 주서천이 공손한 태도로 인사했다. 청년이 됐어도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극진한 태도는 여전하다. “너도 벌써 열여덟 살이로구나……” 유정목이 감회가 새롭다는 듯 제자를 쳐다보면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세월이 흘렀다. 유정목도 어느덧 지천명(知天命 : 50세)의 나이지만, 외관상 크게 변한 건 없었다. 그리고 회귀한 지도 벌써 십 년째 의 해이다. “너에게 말해 줄 게 있단다.” “불초 제자,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서천이 유정목의 분위기를 슬쩍 살폈다. 표정을 보아하니 나쁜 일은 아닌 듯했다. “어제 상궁회의에서 너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눈이 절로 커졌다. 유정목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갔다. “수선행(修仙行)에 대해서다.” ‘드디어!’ 거창한 건 아니고, 약관의 나이가 되면 강호에 나가 협행을 하고 도를 닦는 수행을 칭하는 말이다. 기한은 약 오 년. 이후 본산으로 복귀하면 그제야 한 사람 몫으로 인정받는다. 보통은 약관이 넘어서야 나갈 수 있지만, 연화각 출신은 남들보다 무공이 강해 시기가 좀 더 빨랐다. 그 기준이 열여덟 살이고, 장홍과 장서은도 나이에 알맞게 강호로 출도했다. 이 강호행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라 할 수 있었다. “솔직히, 널 혼자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만……” 유정목이 침음을 홀리면서 수염을 쓰다듬었다. ‘안 돼!’ 비명이 절로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원래라면 이 수선행에는 보호자가 붙는다. 일반적인 제자들의 경우, 강호 초출이니 당연했다. 그러나 연화각 출신들은 다르다. 그들은 일찍이 성년이 되기 전 강호에 나간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연화각 출신의 우수한 제자들은 상궁회의를 통해 수선행의 동행 여부를 정한다. 원래라면 애써 키운 제자들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아 전자겠지만 일각에선 너무 과보호가 아니냐면서 후자의 경우도 괜찮다는 말이 있었다. 무엇보다 보호자가 붙지 않는다 할지라도, 강호에 나가 따로 동문의 제자들을 만나면 그만이었다. 실제로 연화각 출신의 사대제자들은 대부분 강호에 혼자 나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동문의 제자들을 찾았다. 안전성 탓이기도 하지만, 외로움이 크기도 했다. 평생을 화산에서 지냈고, 강호 초출 때는 너무 어려 거의 보호만 받는 강호행이지 않았는가. 이런 저러한 인연을 맺었다 할지라도 동문의 제자들에 비해선 소속감이나 친근감의 차이가 크다. ‘제발!’ 누가 동행 하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계획이 결정된다. 보호자라도 붙는다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몰래 도망쳤다간 화산으로 보고가 올라가 귀찮아질 것이니, 따로 떼어놓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장로님들이 괜한 걱정이라고 하시더구나.” 유정목이 부드럽게 웃었다. ‘휴우!’ 주서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선행은 그도 내심 걱정했었다. 강호 초출 때 수림구채 일로 행방불명이 된 전적이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혹여나 과보호라도 하면 어쩔까 싶었는데, 연화검회 이후 적당한 무위를 보여 준 덕에 피했다. “특히나 심옥련 장로님께서 제일 먼저 괜찮다고 하셨을 때는 나도 정말로 놀랐단다.”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아주머니가 그래도 지 제자에게 내가 죽었다고 한 게 양심이 찔렸던 모양이군!’ 심옥련에게 손톱만큼 고마워했다. “이번에야말로 제자가 하산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겠구나. 몇 년 전에 보지 못한 어리석은 날 용서하지 말아다오.” “아닙니다,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당시 임무 수행 중이시지 않았습니까. 무림이 유능하신 사부님을 필요로 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녀석. 여전히 말은 잘하는구나. 언제나 이 못난 스승을 변호해 주느라 수고가 많다.” 유정목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면서 손을 뻗어 왔다. 주서천은 피하지 않고 그 손길을 가만히 기다렸다. 소년에서 청년이 됐지만, 머리를 쓰담 받는 건 여전하다. 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좋았다. “……” 이런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울컥했다. 전생에선 화산을 내려갈 때 누구도 배웅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남들처럼 스승이 있다. “다녀오거라.” “다녀오겠습니다.” 스승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눈물을 꾹 참았다. 그 대신 존경과 감사함을 담아 구배(九拜)했다. 주서천도 제대로 된 수선행을 밟은 적은 없다. 회귀 이전에 자신은 연화각 출신이 아니라 평범한 사대제자였다. 약관이 돼서야 그 조건을 충족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칠검전쟁이 끝나고, 전란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였다. 처음으로 강호에 나갔을 때 도착한 곳은 피가 튀기고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이었다. 강호 초출이긴 한데 수선행은 아니다. 도를 닦으러 하산한 게 아니라, 전쟁을 하러 간 것이었으니까. “낙 사매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할 것 같네.” 하산하기 전에 낙소월이 배웅해 줬다. ‘사형, 일 년 뒤에 뵐게요.’ 낙소월의 목소리가 아른거린다. 조금 쓸쓸해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환하게 웃어 주었다. 나중의 만남을 기약한 건 좋은데, 문제는 내년에는 칠검전쟁 도중이라는 점이었다. 전생 당시에는 수선행인 중인 몇몇 사대제자들을 화산으로 다시 불러들이기도 했다. 수선행에 나갈 자격이 될 제자들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어쩌면 정사대전 혹은 정마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섣불리 제자들을 내보낼 수 없었다. 수선행에 채비는 주어지지 않는다. 협행이건 호위 임무건 간에 누굴 도와 먹고살 돈을 구해야 한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불교의 탁발수행(托鉢修行)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살펴 가십시오!” “수고하쇼.” 대부분의 제자들은 협행이나 임무를 찾거나 혹은 강호에 나와 있는 사형제들을 찾아 도움을 구하지만, 주서천은 그런 걱정이 필요가 없었다. 하산하자마자 할 일은 인근의 전장(錢莊)에서 자신의 명의로 맡겨 둔 돈을 꺼내 오는 일이었다. 각각 금자와 은자가 충분히 들어 있는 주머니를 품 안에 갈무리하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왔다. 이 날을 위해서 이의채에게 돈을 준비해 달라고 미리 언질을 해 두어서 돈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참고로 금의상단은 고작 사 년 만에 유례없을 정도로의 성장 속도를 보여 줬다.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