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56)
천하에 이름을 떨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규모가 그럭저럭 있어서 알 사람들은 아는 이름이다. “흉마의 무덤이 발견되기까지 반년.”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몇 년 전에 강호에 나오면 뭘 할지 정해 뒀다. “사천의 만년화리(萬年火經), 운남의 칠각사(七角蛇), 서장의 천년설삼(千年雪藝).” 보다 압도적인 힘이 필요했다. 일단 암천회의 눈에 띄면 어중간한 힘으로는 살아남기가 힘들다. 또한, 그들의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서도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보다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전생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강구했고, 제법 떠올릴 수 있었다. 다만 반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어서 모두 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게 이 세 가지다. 우선 사천에서 만년화리를 잡아 내단을 복용해 백독불침과 한서불침을 노린다. 이후 운남으로 내려가면 영물이자 독물인 칠각사를 사냥해서 얻은 내단으로 천독불침에 오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크게 중진된 내공과 한서불침으로 서장의 대설산까지 가서 천년설삼까지 복용한다. 반년 동안 최대한으로 강해질 수 있는 최상의 경로였다. “벽곡단도 준비했으니 든든하군.” 품 안에 넣어 둔 주머니들이 빠지지 않도록 꼼꼼히 확인한 다음에야 이동할 수 있었다. 주서천은 경공을 극성으로 펼쳤다. 일 갑자하고도 십오 년의 내공이 힘을 주며 용천혈에서 흘러나왔다. 암향표를 대성한 덕에 효율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다. 마치 바람과도 같았다. 경공이 극성이니 말보다 빨라 굳이 말을 탈 필요도 없었다. 내공의 소진이 빠르지만 그만큼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전부 소진하면 식사를 하고, 약간의 수면 등 휴식을 통해 재차 회복했다. 식사야 벽곡단을 씹으니 얼마 걸리지 않고, 수면만 두 시진 정도 취하고 그냥 달리기만 했다. 약점이 있다면 지루하다는 것이지만. 그것만 빼면 완벽했다. “누군가 함께했다면 심심하지는 않겠지만, 원래 강호행이란 건 혼자하는 법이지!” 회귀 전에도 항상 혼자였다. 혼자인 그에게 고독이나 외로움이란 건 익숙한 감정이었다. 머릿속으로 미래에 대한 계획과 낙소월의 미소와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심심함을 달랬다. 이렇게 쉬지 않고 꾸준히 경공을 펼친 덕분에 석천(石泉)까지 도착하는 데 나흘 밖에 걸리지 않았다. 화산에서 섬서까지 걷거나 말을 타도 이것저것 시간을 따져 보면 보통은 일주일이나 보름은 걸린다. 상당히 단축할 수 있었다. * * * 섬서의 남부에서 시골이라 불리지 않을 규모의 마을은 몇 없다. 석천은 그런 동네 중 하나다. 섬서의 남서 방향으로 이틀에서 삼 일 정도 내려가면 바로 사천이 나오고, 남쪽으로 가면 중경, 남동쪽이면 호북이다. 거리도 비슷하기에 섬서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특히 석천은 사천, 중경, 호북으로 갈라지는 중간 지점에 있기에 그만큼 유동 인구도 많고 마을도 컸다. 주서천은 자시(子時 : 23시 ~ 01시) 무렵에 석천에 도착했다. 모두가 잠들 야심한 시각이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이 별로 없는 촌의 경우다. 석천의 밤거리는 아직 밝고 시끌벅적하다. 취객들이 서로 얼싸안고 홍얼거리거나, 술에 잔뜩 취해 거리의 한 곳에 쓰러져 속을 게워 내는 모습이 보인다. 그 외에도 아랫도리를 주물럭거리면서 기루를 들락거리거나, 창가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손짓하는 기녀들도 볼 수 있었다. 석천의 밤거리를 지나쳐 간다. 머리 위에서 자신을 유혹하는 기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사님~” 도복 차림을 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강호에 나온 혈기왕성한 청년 도사들만큼 쉬운 상대는 없다. 평생을 도가 문파에서 살면서 성욕을 억제당하다가, 자유가 됐으니 조그만 유혹에도 금방 넘어온다. 주서천은 기녀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밤거리를 지나, 객잔으로 곧장 들어갔다. 계산대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중년인이 인기척을 느끼고 졸린 눈을 떴다. “죄송합니다, 손님. 지금 방이 없어……” “금의상단 주서천.” 주서천이 소맷자락의 매화를 보여줬다. “아!” 중년인이 눈을 번쩍 뜨며 정신을 차렸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인. 석천지부와 이곳 객잔주를 맡고 있습니다.” “반갑소, 석천 지부장.” 금의상단은 이제 귀주뿐만 아니라, 정파와 사파 세력권을 넘나들며 각지에 지부를 세우고 장사하고 있다. 이 객잔은 금의상단의 장사처 중 한 곳이다. ‘상단주가 사람 편의는 잘 알아봐준단 말이지.’ 수선행을 나가기 전, 이의채에게 서신을 보냈다. 별다른 내용은 아니고, 수선행의 경로를 알려 주곤 급한 일이 있으면 이곳에서 찾으라고 언질해 두었다. 이에 이의채는 말도 안 했는데 수선행 경로 중에 금의상단의 각 지부를 가르쳐 주면서 말했다. “전 지부에게 알려 대인의 편의를 최우선할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가명이나 거짓 신분이 필요하시다면 준비할 터이니 말씀만 해 주십시오.” 말을 하지 않아도 원하는 바나 곤란한 상황을 대비해 주는 부분은 기가 막힐 정도로 완벽했다. 괜히 상왕이 아니다. 나중에 어찌 그리 잘 아냐고 물어보니 ‘교섭과 거래의 기본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라고 답했다. 어쨌거나, 정체를 숨길 일은 없어서 가명이나 거짓 신분은 필요 없다고 전했다. 혹시 몰라 준비는 해 달라고 했다. “야식이나 술은 필요 없고, 씻을 온수나 준비해 주시오. 조식(早食)도 거창한 것 말고 간단히.” 오랜만에 침상에서 잘 수 있는 생각에 기뻤다. “네, 그렇게 준비해 두겠습니다.” 객잔주가 힐끗 하고 눈치를 봤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얼굴이었다. “괜찮으니 말해 주시오.” 조금 피곤하지만 이야기를 들을 정도는 된다. “예!” 객잔주가 환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섬서는 광물 자원이 풍부하게 발견되는데, 그중 단연 제일 많으며 거래가 활발한 건 철이다. 금의상단의 석천 같은 섬서의 지부는 대부분 이 철이나 혹은 소금을 위주로 교역(交易)에 나섰다. 그리고 최근에 마침 사천으로 나갈 일이 생겼는데, 곤혹스러운 문제가 생겼다. 바로 산적이었다. “중경의 녹림구채가 요 몇 개월 전부터 영역을 확대해 섬서의 남부 지방까지 노리고 있습니다. 저희 금의 상단도 통행세라는 명목으로 과하게 뜯긴 적이 있습니다.” 가끔씩 녹림의 고수가 등장해 호위무사를 두고도 과하게 피해를 입었던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상단주께서 대인이 불편해하지 않는 한에, 부탁을 드려보라 하여서……” 객잔주가 살짝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제발 죽이지만 말아라!’ 무림인의 성질은 더럽다. 정파건 사파건 매한가지다. 지닌 힘 탓에 일반인을 정말로 우습게 본다. 흔한 일이니 그건 상관없다. 그도 이젠 익숙해졌다. 다만 괜히 성질을 건드렸다가 날뛰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도 마음 같아선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화산에서 쉬지 않고 석천까지 달려온 사람에게 호위 임무에 대해서 사정 설명하는 건 큰 실례이다. 하지만 미리 말하지 않으면 주서천이 사정을 듣기도 전에 떠날지도 모르니 꼭 전달하라 명령받았다. “녹림도가 나타나는 곳이 어디요?” “사천으로 막 넘어가는 경계선입니다.” “그곳까지라면 호위해 줄 수 있소. 아마 사천으로 넘어가게 되면 녹림도의 위협에서 벗어날 거요.” 사천은 정파 세력의 영향력이 손에 꼽을 정도로 큰 지역이다. 구파일방 중 아미와 청성이 있고, 오대세가인 사천당가까지 있으니 치안이 상당한 편이었다. “감사합니다, 대인!” 금의상단의 일은 남 일이 아니다. 자신의 일이기도 하다. ‘질풍십객(疾風十客)을 호위로 붙여도 될 일이지만……’ 질풍십객은 질풍검 왕일을 필두로한 무사들이다. 그들 모두 단쾌검법과 질풍보를 필사적으로 수련한 덕분에 지금은 그럭저럭 이름도 알려졌다. ‘그들은 다른 곳의 호위도 맡느라 이래저래 바쁘지. 여기로 부르면 다른 곳을 해결할 수 없게 된다.’ 조금 귀찮긴 해도 어차피 어려운 일은 아니다. 거리도 그렇게까지 멀지는 않으니 해결해 줄 수 있다. 무엇보다 이의채에게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부탁해도 괜찮다고 말한 건 자신이었다. * * * 이튿날 인시(寅時 : 03시 ~05시)가 끝날 무렵, 방 안에서 운기조식을 끝낸 주서천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안녕하십니까, 대인!” 계단을 내려오니 일련의 무리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높여 인사했다. 상인으로 보이는 자가 네 명, 그 외에 호위 무사로 보이는 자가 스무 명이었다. 다들 사전에 주서천에 대해서 들은 게 있는 듯, 태도가 깍듯했다. 주서천은 손을 들어 대충 인사한 뒤, 적당한 자리에 앉아 혼자서 조식을 끝냈다. 꽤 맛있었다. 자리에 일어나서 바깥에 나가자 대기 중인 이두마차(二頭馬車) 네 대가 보였다. 상인들이 마부와 함께 앞에 앉아있었고, 그 주위론 무사들이 각자 말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자, 가 보실까.” 第五章금적금왕(摘賊摘王) 적림십팔채는 원래 중경에서 잘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육 년 전의 일로 변화가 생겼다. 삼안신투의 비고가 발견되면서 온 무림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문제는…… 많아도 너무 많았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적림십팔채가 중경이 앞마당이라 할지라도 그 많은 무림인을 상대할 수준은 되지 못했다. 결국 별수 없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도적질을 잠시 멈추곤 산채나 수채에 틀어박혔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그동안 도적질한 것이 남아 딱히 걱정할 건 없었다는 점이었다. 십팔채주들은 창고를 열어 개인 자산까지 털어야 한다는 것이 불만이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수하들을 먹여 살리고 제어할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반년이나 일 년 정도만 참자……” 그러나 그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인지 깨닫게 됐다. 비고 탐사는 무려 이 년까지 이어졌다. 상당한 재물과 식량이 소모됐다. 배를 굶어야 할 정도로 부족한 건 아니었다. 불만인 건 줄어든 재산이었다. 적림십팔채는 무림맹과 사도천이 철수하자마자 다시 도적질로 돌아갔다. 무려 이 년 동안 얌전히 산채나, 수채에 틀어박혀 있던 탓이었는지, 그 반동으로 도적질이 활발해졌다. “캬하하핫!” “얘들아, 죄다 쓸어버려라!”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범해라! 그동안 쌓인 불만과 폭력, 가학심을 풀기 위해 날뛰었다. 가끔은 통행세를 내도 그냥 죽여 버렸다. “그동안 네놈들에게 들어간 밥값이 얼마인지 아느냐?” “좀 더 무리해도 상관없으니, 하루라도 빨리 좀 더 많은 재물을 약탈해 와!” “너희 때문에 흥이 깨졌으니, 책임져!” 열여덟 명의 채주들은 눈에 띄게 줄어든 금은보화를 채워 넣기 위해 수하들을 채찍질했다. 드르륵. 마차의 바퀴가 굴러간다. 지평선 너머에서 먼지구름을 이끌고 오는 일련의 무리가 보였다. 금의상단의 수송 행렬이다. “으하암.” 주서천은 마차 지붕 위에 누워 하품을 내뱉었다. 마차가 거칠게 흔들림에도 침상 위에 올라온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심지어 짧게나마 수면까지 취했다. 호위 무사들이 말을 타고 달리면서도 신기한 듯이 힐끗힐끗 살펴봤다. “고수라고 하더니 진짜로군.” 범인 중에서도 운동 신경이 좋으면 마차 위에 떨어지지 않고 누워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저렇게 미동도 하지 않고 편안히 누워서 한 시진, 두 시진 정도 있는 건 불가능했다. “겉모습이 어떻건 간에 화산파의 제자가 아닌가.” 화산파의 제자라도 어리면 무시를 당한다. 하지만 청년이 돼서 강호무림에 나오면 좀 다르게 본다. 대부분의 대문파에서 제자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