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59)
아는 한 본 가와 화산파 사이에 이렇다 할 연은 없었으니…… 강호행 도중 사천에 들른 김에 방문한 것이겠지.” 그녀는 호위 무사의 의문에 답하곤 발걸음을 옮겼다. 당혜의 추측이 틀린 건 아니었다. 대문파의 제자나 명가의 자제들이 보통 강호행에 나가면 주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방문한다. 별 목적이 없어도, 대문파끼리 교류해 연을 좀 더 깊고 돈독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사천당가에 방문한 목적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방금 전 말한 것이요, 둘째는 어떤 약을 얻기 위함이었다. 셋째는 어찌 보면 첫째와 동일한데, 다른 점은 그 약을 내줄 사람이 사천당가의 인물인 탓이었다. ‘독봉, 당해’ 강호 무림에서 별호에 용(龍)과 봉(價)이 붙는다는 건 특별하다. 이십 대에서 삼십 대에 이르는 후기지수(後起之秀)들 중에서도 오직 여덟 명밖에 없는 자들이었다. 오룡삼봉(五龍三鳳)! 다섯 명의 용과, 세 명의 봉황. 용은 남자이며, 봉황은 여자에게 붙는다. 이 오룡삼봉은 소속 세력, 미모, 또는 무공 등 여러 방면으로 평가받아 제일 우수한 젊은이들이었다. 주서천도 당혜를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잘 알고 있었다. 무림인으로서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하다. 오룡삼봉은 언제나 주목을 받는다. 서른을 먹기 전 쥘 수 있는 최고의 명예니 당연했다. “아가씨께서 오고 계십니다.” 시동(侍童)이 쪼르르 다가와서 알려 줬다. ‘원래라면 아무나 만날 수 없는 사람이지.’ 천하의 오룡삼봉이다. 만나겠다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쪽도 아주 무명은 아닌 화산파의 제자이며 , 또 초절정 고수로 이름을 날린 소유검의 제자였다. 사천당가가 바쁜 일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니 자신의 방문을 거절할 수는 없다. 독봉의 명성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그래도 얼굴을 잠깐 비춰 줄 정도는 된다. 끼이익 문이 열리면서 여인이 들어왔다. 그 얼굴을 확인한 주서천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 확실히 아름다웠다. 낙소월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 정도로 미인이었다. 치켜 올라간 눈초리 탓에 인상이 매서웠다. 신장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딱 중간이었다. 연령은 이십 대 전반으로 보인다. 등을 넘어 허리까지 닿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은 둥글게 말아올리고 잘 엮어서 풍성한 느낌을 냈다. 눈매도 눈매지만 눈동자도 보통이 아니었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함과 약간의 독기도 보였다. 전체적으로 얼음같이 무뚝뚝하고 차갑다, 가 아니라 고고하게 앉아있는 암사자 같았다. 무림인들 대부분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왜 별호에 ‘독’이 붙어 있는지 곧바로 이해한다. 그리고 독봉만큼 어울리는 별호도 없을 거라 말하곤 했다. 당혜가 독공을 수련한 탓도 있지만, 그것보단 전체적으로 독기를 머금은 강렬한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분명 처음 보는 것일 텐데……’ 당혜에 대해선 이름만 알고 있고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의 사후가 어떻게 되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전란에 휩싸였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런 미인을 봤다면 잊을 수 없을텐데, 어딘가 모르게 본 것 같은 감각에 의아해했다. “어린 도사께선 뭘 그리 넋을 잃고 계신가요.” 주서천의 당혜의 목소리에 제정신을 차렸다. “듣자 하니 화산의 도사들은 검에만 흥분하는 변태라고 하는데, 소협을 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네요.” 당혜가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엄청난 소리를 했다. “예?” 주서천이 순간 두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이에 당혜가 다리를 꼬고, 턱을 들고 주서천을 오연하게 쳐다봤다. “미안해요. 과한 농이 섞인 실언이니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기를 바라요.” “……” 주서천이 어이없어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나를 처음 보았을 때, 미명(美名)대로라면서 벌게진 눈으로 쳐다보곤 하죠. 그에 비해서 소협은 적어도 그런 부류는 아니군요. 제법 신선해서 기뻐요.” 이 여자, 뭔가가 심상치 않다. “걱정 마세요, 소협. 소협이 괜한 수작 걸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이름을 세 번 정도 거론할 때 , 겨우 떠올릴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독봉이 이렇게 맛 간 여자였나.’ 독봉 당혜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뛰어난 독공과 암기술을 지닌 데다가 지혜를 겸비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정도였다. 성격에 대해서 아예 몰랐던 건 아니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이라곤 지기 싫어하는 성격 정도다. 그 외의 것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자, 그럼 얼마든지 머물러도 좋으니 쉬다 가도록 하세요. 되도록 절 찾지는 마시고요.” 대놓고 귀찮게 굴지 말라 말했다. “독봉께선 성질이 급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독봉을 찾은 건 어떠한 승부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등을 돌린 당혜가 발걸음을 멈췄다. “…… 승부?” “예. 그것도 내기 있는 승부이지요.” 독봉 당혜는 명문의 여타 자제들 중에서도 특히 자존심이 드센 편이다. 이렇게 누군가가 내기까지 건 승부를 걸어오면 반응을 보인다. 물론 이 승부도 일단 기본적인 자격은 갖춰야 한다. “……” 당혜는 제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러곤 말해 보라는 듯이 사나운 눈초리로 압박을 줬다. “무림인답게 승부는 비무로 하겠습니다. 독봉이 나서도 괜찮고, 대리인을 내세워도 상관없습니다.” “꽤나……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폭풍 전의 고요가 폭풍으로 바뀌었다. 당혜는 스스로의 기운을 숨길 생각조차 안 하는 듯했다.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진다. 숨이 절로 답답해졌다. 눈을 슬쩍 돌리니 화초가 거무튀튀하게 변색되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보였다. 독이었다. 이제껏 바위 위에서 홀로 고고하게 앉아 있었다면, 지금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았다. 그 포악함은 무림인, 그것도 절정의 고수가 아니라면 숨도 못 쉴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미안하지만, 이 몸을 여타 평범한 계집들과 비교할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그 눈이 음험하고 사납게 빛났다. 가느다란 손가락에서 짙은 녹색의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방 내부가 진득한 독기로 가득 찬다. 벽 중 일부분이 물렁해지더니만, 이윽고 조금씩 녹아내렸다. 주서천은 그 기운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흘려버렸다. “내가 할 말이다.” 독봉 당혜의 나이는 올해로 이십삼이다. 확실히 강호의 선배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었다. 상대가 존중이나 예의를 차리지 않는데, 이쪽에서도 굳이 맞춰 줄 생각은 없었다. “내기에 걸 것은?” “명검.” 스르릉! 주서천이 예한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 뒀다. 당혜가 눈동자만 굴려 예한을 슥 훑어봤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물건이지만, 나와의 혼인을 원하는 것이라면 도둑놈 심보가 아닐까 싶네.” “모든 남자들이 너에게 관심 있는 건 아니야.” 당혜가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얼굴에는 ‘그럼 원하는 게 뭐냐.’ 라고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맹한독(氷寒毒).” 중독되면 몸 곳곳이 한기로 인해 얼어붙어 결국 한여름에도 동사(凍死)시키는 극독이다. 만년화리는 적지 않은 화기(火氣)를 품고 있다. 그대로 복용한다면 제대로 흡수할 수도 없을뿐더러, 또 자칫 잘못하면 내상을 입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만년화리의 내단과 함께 복용할 것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빙한독이었다. 마음 같아선 독이 아닌 영약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구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설산의 천년설삼이 좋긴 하지만 그걸 구하기도 전에 탐색 도중 얼어죽는다. 일월신궁의 음기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만년화리의 화기를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빙한독을 떠올렸다. 자고로 영약이 잘못 복용하면 독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독 역시 잘 쓰면 약으로 쓸 수 있는 법이다. “독……?” 당혜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구부려진 눈썹은 펴질 생각이 없었다. 빙한독은 적어도 돈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한 독이 아니었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함부로 내줄 수 없는 수준은 아니다. 사천당가에 그 정도 독은 얼마든지 있었다. 괜히 독과 암기의 당가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또 아무나 꺼내서 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당가의 직통이자 독봉인 그녀는 예외다. “……내 설마 살다 살다 화산의 제자 입에서 독을 내어 달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어. 만약 날 깜짝놀라게 할 목적이었다면, 틀림없는 대성공이야.” 정파는 독과 암기를 비겁하다면서 천시하는 경향이 있다. 싫어하는 건 기본이고 멸시하는 자도 여럿이다. 이러한 경향이 있는데도 사천당가가 정파, 그것도 명가인 오대세가들 수 있는 건 ‘필요’ 하기 때문이다. 정파와 달리 적대 세력인 사파는 독과 암기를 적극 사용한다. 이에 대한 피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피해를 조금이라도 최소화하려면 독과 암기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 해독을 하려면 독에 대해 연구해야했고, 이 독에 전문 분야인 정파 무림 단체는 오직 사천당문 뿐이었다. 사천당문이 오대세가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건 이러한 연유다. 한데 정파인, 그것도 검에만 목숨을 거는 화산의 제자가 독약을 달라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의도가 궁금하다면, 내기에서 승리해서 묻는 게 어떤가?” “썩 괜찮은 도발이지만, 자꾸 그렇게 내 성질을 건드리는 건 좋지 않을 걸.” 당혜가 원형 탁자에 손바닥을 올리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강가에 네 머리를 담가 놓고, 발로 뒤통수를 누르면서 이름 그대로 물귀신(川)으로 만들 수 있거든!” 치이익! 탁자 위에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는 부분이 움푹 파이며 자국이 났다. 손바닥을 떨어뜨리니 거무튀튀하게 썩어 문드러진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무서운 년!’ 주서천이 혀를 내둘렀다. 성격이 보통 독한 게 아니었다. 독봉(毒鳳)이 아니라, 독봉(毒蜂)이지 않을까? “승부를 받아 줄게.” 당혜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냉혹하게 웃었다. ‘휴우!’ 천만다행으로 계획대로 흘러갔다. 만약 당혜가 거절했다면 앞으로의 일이 꽤나 골치 아파졌으리라. 주서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무덤덤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일시와 장소를 정해주……” 마음이 완전히 풀어졌을 때다. 분위기가 느슨해진 순간, 당혜는 독처럼 쏘아붙여 왔다. 파바밧! 당혜가 몸을 획 돌리면서 손을 쭉 뻗었다. 손가락 사이에 껴 있던 암기가 쏘아지며 빙글빙글 회전한다. “흡!” 순간 놀라 숨을 멈췄다. 급습에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멍하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에 몸이 반응한다.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암기를 보고 목을 옆으로 틀어 피했다. 쐐액! 그다음 암기가 날아왔다. 정신이 집중된 탓에 이번엔 날아오는 암기도 순간적으로 포착할 수 있었다. ‘독접(毒蝶)?’ 손가락만 한 크기에 나비 모양을한 암기라면 무림에서도 한 가지 밖에 없다. 당가의 자랑인 독접이다. 머릿속에서 당가의 독집에 대한 지식이 떠오른다. “이런!” 좌측으로 몸을 던졌다. 그가 있던 자리에 하나가 아닌 둘의 독접이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