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64)
내버려 두고 모두 도망가……라?” 무심코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그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묻어났다. 사람이 죽음을 코앞에 두면 생전의 삶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의 시간만큼은 느리게 느껴진다고 들었다. 한데 그것치곤 길어도 너무 길었다. 몸에서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 이상함을 느껴서 확인해 봤다. 그곳에, 남자의 등이 보였다. “도감으로만 봤던 거당랑인가……” 남자가 신기한 듯이 중얼거리곤 검으로 지면을 툭툭 쳤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남아서 생명을 불사르던 거당랑이 다섯 조각으로 잘게 쪼개졌다. “그게… 무슨……?” 단하성은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모르는 자였다. 목소리도, 뒷모습도 낯선 자였다. 언뜻 보이는 얼굴을 확인했지만 역시 처음이었다. “당랑이 교미를 할 때, 암컷은 수컷을 잡아먹소.” 남자가 자신을 진득하게 괴롭혔던 거당랑의 앞발을 짓밟았다. 낫이 톡부러지며 피가 바닥에 흐른다. “그리고 그 암컷은 잡아채기 쉬운 머리부터 먹는다고 하는데, 수컷이 죽기는커녕 그 성행위가 더욱 격렬해진다고 하오.” 남자가 정면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끝에는 새로이 등장했던 거당랑이 ‘키에엑’ 하고 울고 있었다. “그것도 머리가 없는 채로!” 거당랑의 앞발이 남자를 노린다. 머리, 어깨, 허벅지, 가슴이었다. 전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부위였다. 그러나 남자는 몸을 크게 움직일 필요도 없다는 듯, 몇 걸음만으로 피해 냈다. 저 보법은! 단하성온 장문인의 제자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등과 교류했다. 남자의 움직임은 익숙했다. 저 발걸음은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당랑의 머리에는 사람처럼 과한 힘을 써 망가지지 않도록 억제하는 신경이 있다 하오.” 하늘하늘. 매화가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게 연상된다. 그 움직임에서는 여유까지 느껴졌다. 머리를 날려 버리면 그 신경도 함께 사라져, 힘이나 움직임이 배로 늘어난다고 하더군!” 단하성도 거당랑을 앞에 두고 저런 여유는 부리지 못했다. 그러나 남자는 알고있어봤자 쓸모도 없는 정보를 나열하면서 거당랑을 농락한다. 캬아아악! 몸체를 고정할 다리가 없어졌다. 거당랑이 앞발 둘을 써서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했다. 그리고 다가오지 말라는 듯 나머지 앞발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위협했다. “그러니 앞으로 당랑을 보면 머리가 아니라 몸 전체를 짓뭉개거나 발로 치십시오!” 남자의 검이 앞발을 벤다. 검기까지 잘 막아 내던 껍질이 두부처럼 허무하게 잘렸다. “흐합!” 거당랑이 죽기 직전 살려달라는 듯이 애처롭게 울었다. 남자는 그걸 기합으로 무시하곤 발로 날렸다. 발끝에 잔뜩 실린 공력이 거당랑의 앞발 사이에 있는 가슴을 힘껏 후려쳐 박살 내 버렸다. 끼에에! 거당랑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엎어진다. 잘리지 않은 머리에 달린 눈에서 빛이 꺼졌다. “내 솔직히 꽃향기가 나는 여인이 살려달라 외치고, 그 틈에 등장해 구해 주는 영용지와 같은 전개를 조금 기대하기는 했소.” 남자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헛소리를 지껄였다. 남자는 검에 기를 주입했다. 물처럼 흐르는 푸르스름한 기가 언뜻 보인다. 색을 보니 정파였다. 그래도 사파인이나 마교도, 혹은 혈교도에게 목숨을 빛지는 경우는 피했다. “아니, 그보다 독충들이 많아도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목소리에서 벌레들에게 쌓인 것이 느껴진다. 단하성도 무심코 그 말에 긍정하는 답변을 할 뻔했다. 남자는 짜증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지은 채, 검을 전방위로 몇 차례 휘둘러 검풍을 쏟아 냈다. 퍼퍼펑! 눈을 껌뻑이니 백 마리에 가깝던 독충들이 몸이 터 져 나갔다. 단하성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내공의 소모가 워낙 대단해 쓰지는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내공을 아끼라고 말하려 했지만, 입을 다시 닫았다. 남자는 땀 한 방울 홀리지 않고 검풍을 숨 쉬듯이 쏟아 내면서 독충의 학살에 나섰다. …… 졸지에 병풍처럼 된 무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압도적인 무위에 입을 떡 벌려 경악했다. “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중독되어서 환각이라도 보는 건지……” 절체절명의 때, 웬 고수가 나타나선 여태껏 목숨을 위협하던 독물들을 멸종시키듯이 없애버린다. 워낙 현실감에서 벗어나는 광경인지라 그들이 의심을 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캬아앗! “시끄러워.” 이름도 모를 독물이 비명을 지르면서 덤벼들었다. 그런데 남자는 그걸 귀찮다는 듯이 베어 갈랐다. 시산혈해.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처럼 흘렀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시체가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윽고 차가 식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단하성과 그를 따라온 무사들은 아직도 눈을 비비면서 믿기지 않은 듯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여태껏 그들을 괴롭혔던 독물들이 허겁지겁 도망치는 모습과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후우!” 남자가 이제 숨 좀 돌리겠다는 듯 허리에 손을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여전히 땀 한 방을 흘리지 않아 별로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화산파 ……” 단하성이 남자의 소맷자락에 새겨진 매화를 보고 중얼거렸다. 그의 의아함이 더더욱 깊어졌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남자가 대답 대신에 말없이 검을 갈무리했다. 햇살이 들어오지 않음에도 그의 검은 눈부시게 빛났다. “주서천.” 남자, 주서천이 씩 웃었다. 第九章신궁취미(神弓超味) 주서천은 근처에 놔둔 망태기를 메고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단하성 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화산파의 주서천이요.” 주서천이 짧게 소개했다. “저, 점창파의 단하성이라고 하외다……” “아! 점창칠공자!” 주서천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그보다 점창칠공자나 되는 양반이 왜……?’ 점창파가 아무리 실전 무학이 발달되었다곤 해도 독을 쓰지는 않는다. 독혈곡에 올 이유가 없었다. “방금 전에 하오체는 못 들은 것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 다. 신분을 몰라 그만 실례했습니다.” “주 대협은 은인이 아닌가. 신경쓰지 말게.” 단하성이 점창칠공자 중 막내라고 해도, 주서천 또래는 아니다. 나이만 언뜻 봐도 삼십 대 초반이었다. 어엿한 강호의 선배이기도 하며, 같은 문파는 아니지만 그래도 장문인의 제자이니 항렬로도 상당하다. “그리고 은인께 미안하네만, 괜찮다면 안전한 장소까지 호위해줄 수 있겠나?” 너무 놀라 넋을 잃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게 여유로운 편은 아니다. 서른에 이르던 인원은 그 반절, 열다섯 명밖에 남지 않았다. 또 그중 반이 부상자였다. 식사는 물론이고 수면도 제대로 이루지 못해 다들 하나같이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아까 돌아다니다가 쉴 만한 동굴을 발견했었습니다. 따라오시지요.” 동굴은 그다지 깊지 않았다. 적어도 안쪽에서 독물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지 않아도 되니 안심할 수 있었다. 단하성 일행은 그제야 안심하면서 쉴 수 있었다. “목숨을 빚졌네, 주 대협.” 단하성이 지혈을 끝내자마자 감사인사를 전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주서천이 괜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정파인으로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나, 그걸 행동으로 실현하는 건 쉽지 않지. 무엇보다 이곳은 자기 목숨도 챙기기 힘든 독혈곡이 아닌가? 다시 한번 깊이 감사의 인사를 표하네.” 단하성이 호의와 존경을 포권에 담았다. ‘영웅지에 나올 법한 인물이로군!’ 주서천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단하성의 몸짓이나 표정에는 거짓 하나 담겨 있지 않았다. 단순한 인사치레 같은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어리고 후배인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고개를 숙일 수 있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감사합니다, 대협!” 뒤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무사들도 부랴부랴 일어나면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으음. 이상한데.’ 왠지 모르게 근질거렸다. 같은 무인, 그것도 열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 ‘그 반대인 경우는 많았지만……’ 전장에서 생명의 등불이 꺼질 때, 누군가 바람처럼 등장해서 구해 주곤 갔다. 그 뒷모습이 사라지기 전,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던 게 떠올랐다. “그나저나, 혹시 독혈곡에 온 건 주 대협뿐인가?” 단하성의 눈은 묘한 기대로 차 있었다. “아, 예. 그렇습니다. 저 혼자입니다.” “허어…… 독혈곡에…… 정말로 혼자 왔나?” 단하성이 탄성을 내뱉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주서천을 쳐다봤다. 마치 “왜 그런 미친 짓을 한 것이냐?’ 라고 묻는 것 같았다. “호, 혼자가 뭐가 나쁩니까.” 괜히 순간 울컥해서 말까지 더듬었다. 회귀 이전부터 언제나 혼자서 밥을 먹고, 수련하고, 공부하고, 싸우다가 죽어간 생이 스치고 지나갔다. “확실히 주 대협의 무위를 보니 괜한 걱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독혈곡은 무림에서도 금지로 지정할 만큼 무시무시한 곳인 건 잘 알고 있지 않나. 조금이라도 자만하다간 목숨이 위험하니, 그러한 마음가짐은 버리게나.” 단하성이 진지한 얼굴로 걱정해 줬다. “……” 주서천은 괜히 아프고 쓸쓸한 기억에 울컥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입을 다물었다. 괜히 여기서 방금 전 일을 말하면 구차해질 것 같아서다. “크흐흠! 감사합니다.” “보아하니 수선행인 것 같은데…… 독혈곡까진 대체 어언 일로……?” “독물들을 상대로 살아남아 제 강함을 증명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독혈곡의 방문자 중에는 가끔씩 이런 부류가 있다. 그중 반이 사망하고, 반은 초입에서 되돌아간다. 칠각사의 내단을 취하러 왔다고 할 수는 없다. 괜한 욕심 탓에 싸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단하성도 다행히 별 의심하지 않고 수긍했다. “주 대협, 만약 독혈곡에서 나가지 않을 생각이라면…… 목숨까지 빚진 입장으로선 염치 불구하나, 부탁을 청해도 괜찮겠나?” “부탁이라면 어떤……?” “부디 우리와 함께 칠각사라는 영물을 사냥해 줬으면 하네.” ‘……’ 하마터면 입 밖으로 헉 소리를 낼 뻔했다. ‘칠각사라고?’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칠각사에 대해 알고 있는 개인이나 단체는 암천회뿐이었다. 그런데 점창파의 무인, 단하성에게 들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릿속 한구석에서 이들이 실은 점창파가 아닌 암천회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스쳐 지나가기는 했다. 하지만 역시 암천회치곤 다들 허술하거나 약한 탓에 그 가능성은 금세 묻혔다. 무엇보다 장문인의 제자 정도 되는자가 암천회의 일원이었다면 전생에서 거론이 되지 않을 리 없었다. “의아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걸세. 자세한 걸 이야기해 주지.” 단하성이 예상했다는 돗이 말했다. “먼저, 주 대협은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음……” 주서천은 대답하지 못하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단하성이 쓴웃음을 흘렸다. “괜찮네. 점창칠공자의 막내라는 것을 제외하곤 아는 것이 없을 걸세. 그게 정상이야.”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단하성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별로 없다. 언젠가 죽었다는 소식 정도는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시기도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나 단하성은 점창파 장문인의 제자인 동시에 성하장 장주(莊主)의 아들이기도 하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충격적인 소식을 알려 줬다. “허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것 같다만, 괜찮겠나?” “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