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7)
바닥을 전부 뒤덮었다. 수중목(水中木)! 이름 그대로 물속에서도 자라는 나무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태양빛이 없어도 잘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수중목은 상당히 희귀한 식물 중 하나로, 중원 전체를 통틀어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주서천이 이렇게 놀란 건 수중목을 봐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수령신과를 발견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이십 년 뒤, 낭인이 신냐게 떠들었던 대로 청색으로 물든 과실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회귀 이전에는 몰랐던 게 존재했다. ‘저건 대체 뭐냐!’ 뱀이었다. 수중목처럼 공동을 채울 정도로 큰 몸체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일반적인 크기의 범위에서 벗어난 뱀이 있었다. 일단 길이가 대충 봐도 범상치 않았는데, 정확하진 않지만 무려 오 장(丈) 정도는 되어 보였다. 길이도 길이지만 둘레 역시 대단했는데, 대충 가늠해 보면 삼 척(尺) 정도 됐다. ‘영물!’ 영험한 기운과 능력을 가진 동물이나 식물을 영물이라 칭한다. 수중목 또한 영물에 속한다. 식물의 경우엔 그렇게까지 위험하지 않다. 보통 식물이 위험한 경우는 독성을 품은 독물에 분류되니까. 하지만 동물은 그 위험성이 심각하다. 동물임에도 사람 못지않게 똑똑한데다가 무엇보다 지닌 힘이 상당해 고수조차 위협이 될 정도다. ‘저 정도 덩치라면……’ 주서천은 전생에 혼자 있던 시간이 많다 보니 책을 많이 읽었다. 그중에서는 영물에 대해서도 있어서 비교적 자세히 아는 편이었다. ‘제길, 최소 몇백 년은 산 영물이다.’ 특히나 뱀은 야수만큼 위험한 분류에 들어간다. 뱀은 대부분 영물이 되면 속도, 근력은 물론이고 비늘도 단단해져 심각하면 검기도 튕겨 낼 정도였다. 무엇보다 제일 무서운 건 송곳니에 숨어 있을 독. ‘지금은 자고 있는 것 같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겨울인 것을 수백 번 욕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겨울인 것에 감사했다. 뱀은 영물이건 뭐건 간에 겨울이 되면 동면에 든다. 그 덕에 발견되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었다. ‘싸우면 아니, 깨우면 죽는다.’ 저 정도의 영물이라면 절정, 초절정 고수 여럿의 힘이 동원되어야 겨우 이길 수 있다. 어떠한 명검보다 더 절대적인 절삭력을 지닌 병기나 화경의 증표인 강기(莖氣)가 아니면 힘들다. 즉, 적어도 회귀 이전의 무공을 지니지 않은 이상 저 뱀에게 덤빈다는 건 자살행위이다. ‘이십 년 후에 저런 게 있었다는 건…… 들었을 리가 없지. 실제로 없었을 테니까.’ 그 입이 가벼운 낭인이라면 분명 저런 뱀에게 살아남았다는 걸 자랑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듣지 못했다는 건 이십 년 뒤에 저 뱀은 없었던 게 확실하다. 왜인지는 잘 모른다. 그 전에 다른 영물이나 은거기인에게 사냥당했을지도 모르고, 혹은 이무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십 년 전의 과거, 지금 저 뱀은 이 수중 동굴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지독하게도 운이 나빴다. ‘도망쳐야 하나?’ 영물이란 게 괜히 영물이 아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깰지도 모른다. 그러면 정말 죽는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기도 아깝다.’ 머리를 슬쩍 들어 수중목을 확인했다. 압도적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는 거목 아래, 과일이 보였다. 물빛으로 물든 과실. 필시 수령신과다. 가지나 뿌리, 그 외에도 살펴봤지만 수령신과로 보이는 건 바닥에 구르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저게 분명하다.’ 수령신과는 그 낭인이 신나게 떠들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바로 옆에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진 거대 뱀의 머리가 있었다. 도저히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 주서천은 눈동자를 굴리며 고민에 잠겼다. 여기서 물러나느냐. 아니면 전진하느냐.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주서천은 몸을 낮추고, 최대한 기척을 숨겼다. 그러고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사부님!’ 내년에도 기회는 있지만, 그때도 뱀이 없을 거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만약 열네 살 때까지도 이곳을 둥지로 삼는다면 끝이다. 유정목은 역사대로 죽게 된다. 그 불안과 공포가 주서천에게 용기를 줬다. 주서천은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수령신과에 조심스레 접근했다. 두근! 두근!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심장 소리다. 지금 만큼은 번개가 내리치는 것처럼 유난히 크게 들렸다. 주서천은 뱀의 눈치를 보면서 소리 죽여 이동했다.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는 않아.’ 후회는 과거에 이미 여러 번 했다. 그 분함과 원통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 앞으로 다가가자 수령신과가 비교적 잘 보였다. 손바닥에 딱 들어올 만한 과실이었다. 그러나 멀리서 봤을 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둘?’ 바로 뒤쪽에 경사가 있어서 못 봤다. 그런데 다가가니 수령신과가 하나 더 보였다. ‘이게 웬 횡재냐!’ 하마터면 웃음이 튀어나올 정도로.기뺐다. 이십 년 뒤에 낭인은 수령신과를 하나만 복용했다고 밝혔다. 추측해보면 아마 저 나머지 과일은 눈앞의 뱀이 훗날 떠나면서 부숴졌을지도 모른다. ‘좋아, 침착하게. 침착하게’ 허리를 굽히며 손을 뻗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굴러가지 않도록 잡아서 품에 안았다. 수령신과 하나는 무사히 회수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 역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품에 넣었다. ‘됐다!’ 웃음과 기쁨은 꾹 참고 허리를 폈다. 옆에 자고있던 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주서천은 속으로 환호하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주서천은 얼어붙었다. 새애애액 반개한 눈매 사이로 금안(金眼)이 보였다. 세로로 갈라진 동공에 주서천의 얼빠진 모습이 비쳤다. “ ……” 숨 쉬는 것도 잊었다. 아니, 생각이 멈췄다. 뱀이 눈을 살짝 뜬 채로 주서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살의도,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의지도 아니었다. 어떠한 감정도 없는 것처럼, 공동 너머 지상으로 이어진 강물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머리 위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물이다. 적어도 뱀이 흘린 물은 아니었다.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이었다. 뱀과 눈을 마주 본다. 그 눈 속에서 본 것은 아홉 살의 어린아이. 그리고 포만감과 나태였다. 뱀은 다 뜨지도 않은 눈을 몇 차례 껌뻑이더니, 이내 흥미를 잃은 듯 머리를 옆으로 돌렸다. 머리의 무게가 상당한 듯 옆으로 돌려 눕자 공동 전체가 살짝 흔들렸다. 그게 끝이었다. 뱀이 다시 잠든 것인지, 아니면 잠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인지는 모른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얼음처럼 굳어 있던 주서천은 가만히 있다가 다시 걸었다.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는 모른다. 머릿속은 새하얗게 질렸다. 생각 자체가 이어지지 않았다. 손에는 수령신과를 놓치지 않고 들고 있었다. 주서천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는 뛰지도 않았고, 빠르게 걷지도 않았다. 마치 산책하듯이 천천히 일정한 간격으로 걸어가 수면 아래로 몸을 천천히 담갔다. 스윽 수면 위로 머리가 올라왔다. 어린아이였다. 아이, 주서천은 바깥으로 나왔다. 분명 아까 잠영했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떴다. 그런데 지금은 해가 지며 하늘을 붉게 물들고 있었는데, 그 색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주서천은 아까와 달리 조용히 지상 위에 올라오곤, 우수에 잠긴 얼굴로 중얼거렸다. “쌌다……” * * * 주서천은 수령신과를 무사히 회수하고 중식이 되기 전에 화산파로 복귀했다. 딱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유정목은 석식 무렵에 회합에서 돌아왔다. 며칠 뒤, 주서천은 고민에 빠졌다. ‘이걸 사부님께 어떻게 드리지?’ 화산파에서 수령신과 같은 과실은 없다. 일단 외관부터가 범상치 않다. 크기는 일반적인 과실이나, 그 색이 물빛을 띤다. 한눈에 봐도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후우. 애초에 영약이라고 언질을 주지 않는 건 너무 위험하다.’ 영약이라고 먹기만 한다고 다 끝나는 게 아니다. 수령신과처럼 강력하고 거대한 기운을 소유한 영약은 복용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만약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복용하게 된다면 갑작스레 몸으로 들어오는 기운에 당황하게 된다. 당황하게 되면 통제 불능으로 이어져 최악의 경우 내공이 폭주해 주화입마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그..’ 어떻게 말해도 의심을 피할 수는 없다. 이만한 영약을 돈으로 사려면 최소 천금 정도는 들어야 하고, 길가에서 주웠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정파의 제자로서 누군가에게 훔쳤다라고 할 수 없지 않는가. 애초에 그런 실력도 없고 말이다. 주서천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끙끙 앓으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느냐?” 유정목은 그런 제자의 고민을 얼마되지 않아서 눈치챘다. “사, 사부님!” “요 며칠 동안 얼굴에 근심과 고민이 가득하더구나. 혼자 고민했는데도 풀리지 않는다면 때로는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단다.” 유정목은 언제나처럼 주서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끄응.” 주서천은 겉모습은 아이지만 속은 노인이다. 나이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또 무공의 깨달음으로 보나 유정목보다 몇 수 위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회귀를 했건 말건 간에 유정목 앞에만 서면 정말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또 유정목 앞에선 무엇을 숨기기가 예전부터 참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회귀한 이후 괜한 의심을 피하고 눈에 띄지 않으려고 뻔뻔스럽게 거짓을 고했다. 연기력도 수준급이라서 다들 껌뻑 속아 넘어갔다. 눈앞의 한 사람, 유정목만을 제외하고. ‘그래 의심을 사고 추궁을 받아도 어쩔 수 없어.’ 주서천은 각오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사부님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만약, 영약 복용 기간이 오늘까지였다면? 그 생각이 들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물론, 과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주서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과한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것이 무척 마음에 걸렸다. 주서천은 용기를 내 품 안에서 수령신과를 꺼냈다. “사부님, 이걸 복용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엇이냐?” “영약입니다.” 주서천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하’ 속으로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며칠 동안 똥 마려운 것처럼 끙끙 앓더니만, 갑자기 영약을 꺼냈다. 그러곤 다짜고짜 그걸 복용하라고 했다. 누구라도 어이없어할 것이다. “허……” 유정목이 침음을 흘렸다. 그 올곧은 시선이 주서천이 손에 쥔 물빛 과실인 수령신과로 향했다. 잠시간의 고요. 그리고 고요를 끊은 건 유정목이었다. 第五章증진체조(增進體操) “훔쳤느냐?” 유정목이 고개를 들어 주서천을 쳐다봤다. “아닙니다.” 주서천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부정했다. “빼앗았느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속여서 가져온 게냐?” “절대로 아닙니다.” 계속되는 물음에 주서천은 전부 부정으로 답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으며, 동요도 없었다. 유정목의 눈처럼 올곧고 정직하게 빛났다. 다만 그 눈은 무엇인가를 각오한 듯, 결연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 이런 걸 어디에서 구한 게냐?” “그게……” 주서천은 유정목에게 사실대로 고했다. 다만 전부는 아니었다. 알려 준 것은 유정목이 자리를 비운 사흘간 화산파를 몰래 빠져나와 수중 동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