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76)
놀람도 잠시, 곧장 그 흔적을 쫓으려고 몸을 곧추세우고 허리를 돌린다. “그대들은 이렇게 느리지 않았네.” 목소리와 함께 뒤쪽에서 검이 수평선을 그었다. 선이 지나간 곳은 칠성사병의 배꼽이었다. 흑의가 뎅겅 잘렸다. 잘려 나간 옷자락 사이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면서 피 안개를 만들었다. 몸을 지탱하고 있는 척추까지 잘려 나갔다. 하체와 분리된 상체가 버티지 못하고 바닥으로 미끄러져 쓰러졌다. “노부가 빨라진 건가.” 바람이 불었다. 피 안개가 바람에 흩날려 사라졌다. 그 대신 노인이 나타났다. 세 명의 칠성사병이 양측과 뒤에서 덤벼들었다. 전방에 있던 칠성사병이 그걸 보고 눈을 껌뻑였다. ‘노인……?’ 눈앞에 있는 건 약관의 고수가 맞다. 그래서 아까 전에 저 정도의 무위를 가진 걸 보고 경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의 머리는 청년을 노인으로 인식했다. 파바밧! 칠성사병이 눈을 한 번 껌뻑였을 때 , 노인이 검을 펼쳤다. 그 움직임은 빛과 같이 빨랐다. 검이 잔상을 남기면서 허공에서 춤을 췄다. “커헉!”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세 명의 칠성사병들이 비명 소리를 내면서 나가떨어졌다.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불현듯 매화 향이 난다는 걸 떠올리게 됐다. “더더욱 모르겠군.” 최후로 남은 칠성사병의 눈썹 부근이 깊게 파였다. 복면이 파인 걸 보니 이맛살을 찌푸린 게 틀림없다. 그, 혹은 그녀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검을 펼칠 때 매화 향이 난다면 분명 이십사수매화검법이 틀림없겠지. 그렇다면 화산파의 고수라는 건데, 그건 약관에 대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독공까지 쓰다니, 그런 건 더더욱 들어 본 적이 없다.” “네놈들은 위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나 명령으로 알아보라는 것 외에는 모른다는 거지. 아무리 머리를굴려 봐도 나에 대해선 모를 거다. 관심이 없으니까.” “우리에 대해서 도대체 얼마나 알고 있나.” “임무 수행 도중인 칠성사병은 만약의 일을 대비해 고문에 정체를 밝히지 않도록 어금니 아래에 극독을 숨겨 둔 것 이상으로 알고 있다.” “단순히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니로군. 설마하니 내부에 이렇게 깊이 내통자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보고를 올리지 못하는 게 원통하구나.” 으득! 칠성사병이 어금니를 꽉 깨물어 독약을 씹었다. 그 말을 끝으로 쓰러지며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주서천은 칠성사병에게 다가가 검 끝으로 뒤통수를 찌르고 생사를 확인했다. “예전이었더라면 도사가 부관참시와 다름없는 행동이라면서 천벌 받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전란의 시대 때, 죽은 줄 알았던 칠성사병이 벌떡 일어나 덤벼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탓에 목숨을 잃은 무인들이 수두룩했다. 주서천을 검에 묻은 피를 툭툭 털어 낸 뒤, 허리춤에 회수하곤 시체를 들어 양 옆구리에 꼈다. “자, 슬슬 들어가 볼까.” * * * 이십사수매화검법은 유명하다. 그 역사가 짧은 것도 아닌지라, 이 검법에 당하면 어떤 검상이 남는지 알아보는 자들은 적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 발견하지 못하도록 시체를 전부 무덤 안으로 옮겨 와서 처리했다. 걷다보니 입구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이 열리는 함정에 걸렸고, 그 아래로 시체들을 전부 던졌다. 마침 아래에 창살이 백여 개 정도 설치되어 있어 검상을 덮기에는 충분했다. 그에 모자라 입구에서 챙겨온 횃불을 던져 화장까지 했다. “음, 승계를 데려올 걸 그랬나.” 목적은 함정이나 기관의 파괴다. 굳이 제갈승계와 함께할 필요는 없어서 혼자서 왔다. 그런데 혼자서 오니 뭔가 조금 심심하다. “일단 닥치는 대로 확인해 봐야겠군.” 껑충 뛰어서 열린 바닥을 넘어 착지했다. 그리고 검을 허리춤에 단단히 고정시킨 다음, 무릎을 굽혀서 다리 근육에 힘을 잔뜩 주고 준비했다. “간다.” 어째 혼잣말만 늘어난다. 머릿속에 준비, 출발이라는 글자가 지나가자마자 멧돼지처럼 저돌적으로 달려 나갔다. 쿵, 쿵!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발이 지면에 닿으면서 소리가 났다. 일부러 체중을 실어서 밟았다. 함정을 비롯한 여러 기관의 발동을 위해서였다. 파바밧! 양 벽에서 무수히 많은 구멍이 열리면서 화살이 쏘아졌다. 그냥 화살도 아니고 극독이 발라져 있었지만, 함정을 밟고 지나간 주서천이 워낙 빨라 맞추지 못하고 전부 반대편 벽에 부딪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외에도 갖가지 기관이 발동되며 반응을 보였다. 독으로 된 안개가 통로를 가득 채우기도 했다. 이 구간에서는 호흡까지 해 가며 맛있게 삼켰다. 중간부터는 통로가 위를 향했는데, 갑자기 큰 바위가 굴러오기도 했다. 검강으로 조각조각 냈다. 쿵 콰지직! 서걱! 콰르르르! 흉마, 혹은 암천회가 고생해서 설치한 기관이나 함정이 동시에 발동해 덮쳐 왔다. 그러나 어떠한 피해도 없었다. 원래 화경의 고수만 돼도 물리적인 기관 장치는 잘 걸리지 않는다. 독 정도는 통할 만한데, 현재 천독불침이다 보니 이 또한 예외다. 물론 천독불침을 넘어서는 독이라면 가능하나 보통 귀한 게 아니니 기관 장치의 함정으로 써먹지는 않는다. 주서천은 주변의 기관이란 기관은 전부 건드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 칠성사의 일곱 수장 중 천기(天磯)가 팔짱을 풀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얼굴은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은 쪽으로 바뀐 건 알 수 있었다. “무덤.” 그 목소리는 쇠를 긁는 것처럼 끔찍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도 가지 않는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또 다른 목소리가 천기에게 묻는다. 이번에는 그 목소리가 남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기적으로 와야 할 연락이 오지 않는다. 무언가의 이변을 포함해 계산해도 너무 늦는다. 모종의 연유로 연락용인 죽통이 전부 파괴됐거나, 전부 죽었다.” 천기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런가. 그럼 내가 가지.” 요광(稀光) 이 일어났다. 흉마의 무덤은 삼안신투의 비고처럼 지하의 몇 계층으로 되어 있다.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아래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게 됐다. “응?” 내려가던 중, 그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이 근처는 황하가 흐르고 있었지……” 벽을 문지르니 손바닥에 축축했다. 아까부터 공기에서 묻어나는 습기가 적지 않았다. “이거, 잘만 하면 이용할 수 있겠는걸.” 주서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일단은 최하층까지 내려가 보자.” 여태껏 진행했던 것처럼 흉마의 무덤 곳곳을 들쑤시면서 내려갔다. 굉음과 소음이 뒤섞여 떠든다. 가끔씩 천장이 무너지기도 하고, 땅이 전부 꺼지거나, 혹은 불이나 독으로 통로를 가득 메우기도 했다. 삼안신투의 비고처럼 목인이나 강시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덤 안을 엉망으로 만들면서 최하층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내가 너무 강하다.” 주서천이 본인의 무력에 취했다. “자하신공도 그렇고, 이십사수매화검법을 대성할 때부터 전생과 비교할 건 아니지.” 화경도 그냥 화경이 아니다. 대성한 무공들의 숫자도 그렇지만, 정말로 다양한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 지닌 내공조차 웬만한 중년 고수들 뺨을 후려치고 남는 데다가 환골탈태와 천독불침도 얻었다. “흉마의 무덤이 왜 이렇게 허술한지 의문이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강한 거였구나.” 생전의 무위를 넘는 힘을 이십도 되지 않아 얻었다. 무림 전체를 봐도 자신보다 강자가 많이 없다. 공개적이지는 않지만, 순위를 따져 보면 천하백대고수 안에는 무조건 든다. “하긴, 검강을 개나 소나 쓸 수 있는 건 아니지.” 주서천이 걸음을 멈췄다. “미로인가. 길을 잃었네.” 이 주변의 풍경이 벌써 세 번째다. 두 번째는 기분 탓이라 쳐도 세 번째는 아니다. 미아가 됐다. “그렇다면 개척하면 그만이지.” 주서천이 검을 휘둘렀다. 날에 실린 강기가 두꺼운 벽을 두부 가르듯이 베었다. “하하. 화산파의 영웅님이 나가신다.” 주서천이 폭군처럼 웃으면서 전진했다. 최하층을 돌아다니기를 반 시진. 미로의 고안자가 보면 뒷목 잡고 쓰러질 방법으로 벽을 베면서 전진한 끝에 수백 명 정도를 수용할 공동이 나타났다. 발목까지 파일 푹신푹신한 양탄자가 입구에서부터 공동의 끝자락까지 반듯하게 깔려 있다. 중간중간에는 사람의 두개골 모양으로 깎은 야명주가 창대에 꽂혀 서 있어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머리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면 종유석이 즐비하게 매달려 있어 마치 지옥의 천장을 연상케 한다. 좌측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이 산처럼 수북하게 쌓여 었고, 우측에는 병장기가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다. 주서천은 주저하지 않고 우측으로 향했다. 第三章월오삼검(越吳三劍) “어디 보자, 분명 여기에 있을 터인데……” 흉마는 신투에 비견될 만큼 욕심이 많았다. 영약이나 무공 비급에는 별로 관심 없었지만, 돈이나 보물 등을 상당히 밝혔다. 그중에는 신병이기도 존재했다. 다만 대부분의 보물들은 암천회가 회수해 가고 없었다. 이 흉마의 무덤은 이미 한차례 공략됐다. 여기에 남은 건 그럭저럭한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 안에 있던 보물들 대부분은 암천회의 고수들에게 돌아가 전란의 시대에서 악명을 떨쳤다. 한 가지를 제외하고. 찾았다. 눈앞에 검 한 자루가 지면에 꽂혀 있다. 검집은 보이지 않는다. 월오삼검(越吳三劍)! 암천회는 무림 세력들이 흉마의 무덤에서 나인성공을 비롯한 보물을 두고 앞다퉈 싸우기를 원했다. 그래서 간자를 심어 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욕심을 자극할 만한 보물을 남겨뒀다. “태아(泰阿)!” 춘추 시대 말기에서부터 전국 시대 초기 월나라의 인물로 활동한 전설적인 장인(匠人) 구야자(歐治子), 그리고 마찬가지로 동시대에 활동했던 오나라의 명장(名匠)인 간장(干將)이 함께 초나라 왕의 명으로 만들었다는 세 자루의 검 중 하나로 보검(寶劍)의 반열이다. 예한도 예한이지만, 신검(神劍)과 비견될 정도의 태아에 비교해선 조족지혈이다. 애초에 전국 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검이 아직까지도 녹슬지 않고 멀쩡하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태아는 미래의 여러 무인들을 걸쳐 그 힘이 발현되었고, 진품이라 알려져 수많은 피를 불렀다. “남은 건 비급인가.” 태아를 집어넣고 다시 중앙의 양탄자를 밟는다. 길을 따라 끝까지 전진하니 계단 위 제단이 나왔다. 아흔아홉여 개의 계단을 올라, 제단 앞에 서니 대리석으로 된 단상과 그 위에 낡은 서적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불길한 서적, 아니 비급이었다. 상당한 두께를 자랑하는 이 서적의 표지는 인피(人皮) 로 되어 있으며, 앞에 새겨진 얼룩은 꼭 비명을 지르는 사람의 얼굴과 같아 소름이 끼쳤다. 그 안에는 비록 알아볼 수는 없으나, 하 왕조 시대의 고문(古文)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주서천이 고문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건 따로 지식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나인성공의 정체 탓이다. 나인성공, 또는 나인성정본이라고도 불리는 육대금공의 역사는 아득하다 할 정도로 깊다. 중원의 최초 왕조였다는 하나라 때 만들어진 이 금서 (禁書)는 본래 무공보다는 주술의 집합체였다. 누가 집필한 것인지도 모르고 목적 또한 모르지만 선경(仙境)이나 마경(魔境)과 같이 속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