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86)
한 수 접는 신랄한 성격! 밤늦게 남창에 도착한 일행은 객잔을 잡고 여장을 풀었다. 참고로 당혜는 면사포로 얼굴을 가렸다. 꽃에는 벌이 꼬이는 법. 특히 그 미색이 보통이 아니니 괜히 소란을 불러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튿날. “이십 명 씩이나 데리고 다닌다면 여기 봐달라고 떠드는 꼴이야. 세 명 정도만 따라오고 나머지 인원은 저잣거리라도 나가 정보를 얻어 오도록 해.” “예, 아가씨.” 당혜는 강호에 나온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잘 판단하고 있었다. 성격이 영 좋지는 않아도 감정에 이끌려 공과 사를 구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쓸데없이 자존심만 높고,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룰 데리고 다니며 일일이 알려 주는 것보단 나았다. 일행은 남창의 외곽 부근의 기와집을 찾았다. 나름 잘사는 집인 듯 규모가 제법 크다. “작네.” 당혜가 문 앞에 서서 읊조렸다. 크다고 해도 오대세가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없는데, 지금부터 만날 사람 앞에선 웬만하면 자존심을 세우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당혜는 평소처럼 독설로 되갚으려다가, 주서천의 분위기가 평소답지 않게 무거운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누구를 만나기에……?’ 천하의 독왕, 사천당가의 가주 앞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당당했던 주서천이다. 그런 그가 각별하게 주의를 주니 호기심이 솟아올랐다. 끼이익 “무슨 일이오?” 대문이 열리자마자 험상궂은 무사들이 보였다. “전광검귀(錢狂劍鬼)를 만나고 싶어 왔소.” 스릉. 무사들의 허리춤에서 검이 매끄럽게 빠져나왔다. “그분께 원한을 품고 온 것이라면 순순히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그 사실을 아는 자는 별로 없을 텐데……” “웬 놈들이냐. 정체를 밝혀라.” 분위기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주서천 측의 당가의 무사들도 언제든지 암기를 던질 준비를 했다. 일촉즉발의 순간! “비켜라.” 안뜰에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아……” 주서천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찾았다, 라고. 검마를 본 적이 없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 멀리서 봐서 얼굴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서천은 그를 한눈에 알아봤다. 쭉 찢어진 눈매에 그 안에 담긴 눈동자는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악귀처럼 독기로 가득 찼다. 눈매처럼 턱 선 역시 매섭고, 묶지 않은 머리카락은 등허리까지 길게 늘어졌다. 연령대는 사십 대 중반 정도, 나름 잘생겼으나 오른쪽 눈썹 위부터 일 자로 새겨진 흉터가 무섭다. 무엇보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무려 칠 척(尺)에 가까운 신장이었다. ‘개양성(開陽星) 검마, 무곡(武曲)!’ 상천십좌. 칠성사. 암천회주의 오른팔. 그야말로 검의 마귀. 암천회의 또 다른 괴물! “하.” 무심코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경지를 알아볼 수가 없다……’ 하수는 고수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소매 안의 매화…… 화산파에서 괴물을 길러 냈군.” 고수는 하수를 알아본다. 第八章기사분반(氣思分斑) 검마, 무곡의 행적은 이의채에게 조사를 맡겨 뒀다. 찾는데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는 않았다. 검마 이전의 별호, 돈에 미친 검귀신은 그럭저럭 알려져 있어 찾기가 쉬웠다. 정보를 구하는 데 돈만큼 확실한 것도 또 없었다. 무곡은 딸을 위해 치안이 좋은 지역의 저택을 구입했고, 전장에서 만난 실력 좋은 무인들을 고용했다. 그리고 혹시 자신을 노리는 자들이 있을지 몰라 이곳에 대한 정보는 되도록 숨기는 데 힘썼다. 방문하자마자 비밀로 붙이고 있는 집주인의 정체를 말하니 무사들이 경계하는 것도 당연했다. ‘화경인가.’ 무곡은 겉으로는 내색하고 있지 않았으나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초절정이나 절정도 몇 명 섞여 있고……’ 눈앞의 어린 괴물 뒤편의 여인과 무사들을 살핀다. ‘그 아이를 인질로 삼을 생각을 한다면 난 끝이다. 지키면서 싸우기에는 힘들어.’ 수가 그렇게 많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부담스럽다. ‘화산파에 이런 놈이 있다는 건 못 들었는데……’ 고작 약관 정도 되는 자가 화경의 고수다. 주목을 안 받을 수가 없는데, 들어 본 적이 없는 게 신기했다. “싸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전광귀검. 그리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서천이 싸울 의지가 없다는 듯 양손을 들었다. 무곡이 입을 다문 채 내려다 본다. 주서천은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본론만 말하겠습니다. 저 안에, 병에 걸린 그대의 딸이 있을 겁니다.” “……” 순간 당혜의 소매가 부풀어 올랐다가 잠잠해졌다. 무곡에서 흘러나오는 살기에 무심코 반응할 뻔했다. “딸아이의 치료를 도와 드리겠습니다.” “네 이놈……!” 무곡의 목소리가 스산하게 울려 퍼진다. 입구에 서 었던 무사들이 몸을 움찔 떨며 옆으로 물러났다. 칠 척이나 되는 무인이 다가오니 그 위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피부는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갑고, 위가 꽉 죄어 오는 것처럼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 얼굴은 검은 그늘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으나, 매섭게 째진 눈매 만큼은 잘 보였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그 눈은 섬뜩한 붉은색으로 빛나는 듯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허튼 짓을 했다간 온전히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당혜 면사포를 거둬 주겠나?” 당혜가 군말 없이 면사포를 걷었다. 허억! 여기저기서 숨이 멈추는 소리가 나왔다. 무곡을 제외하곤 입구를 지키는 무사들이 험악한 분위기에도 그녀의 미색에 빠져 넋을 잃었다. 괜히 사천제일미가 아니다. “당혜……” 무곡이 중얼거렸다. 동시에 살기도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당가의 독봉.” “만나서 반가워요.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랍니다.” 당혜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그러나 그 눈썹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전광검귀, 라고? 왜 이런 자를 듣지 못했지?’ 당혜는 명문세가 출신이다 보니 고수를 보는 기회가 나름 흔했다. 잠깐이지만 상천십좌도 보았다. 그 외에도 임무 수행으로 세가 어르신과 함께 전장에 나가 사파나 마도이세의 고수와도 접점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살 떨리게 만드는 고수들이 있었는데, 무곡은 그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원한다면 무기도 넘기겠습니다. 그러니 대화를 해 주지 않겠습니까?” 주서천이 보란 듯이 검을 풀어 바닥에 놓았다. 이에 무곡이 일행을 한 명씩 한 명씩 훑어봤다. 그 눈은 여전히 사나운 맹수 같았다. “네놈은 누구나.” “화산파의 사대제자인 주서천이라고 합니다. 강호에선 봉추라고 부르더군요.” 이에 무곡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서 있었다. 눈은 뜨고 있지만, 생각에 잠긴 표정이다. 지루할 만도 하지만 그 누구도 움직이거나 불평하지 않았고, 순간순간이 긴장되어 다들 흘러가는 시간을 눈치채지 못한 채 무곡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한두 명의 의원이 거쳐 간 게 아니다. 저명하다는 의원조차 힘들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데 의원도 아닌 무인이 무슨 자신감으로 내 딸 아이를 치료하겠다는 거지?” “치료하는 건 제가 아닙니다. 그녀입니다.” 고개를 돌려 당혜를 슬찍 쳐다본다. “독인이 병을 치료한다는 것 따윈 들어 본 적 없다.” “약은 잘못 쓰면 독이고, 독은 잘만 쓰면 약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혀에 기름이라도 바른 듯 매끄럽게 움직였다. “과연, 일리는 있군.” 무곡의 굳은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따라와라.” 방 안에는 한눈에 봐도 몸이 성치않은 소녀가 누워 있다. 누군가 들어왔는데도 눈치채지 못한 채 가슴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숨을 들이쉬었다 내뱉는다.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할 기세가 보인다면 손목을 자르겠다.” “딸의 병세가 어떤지 알고 싶으시다면 그 살벌한 시선은 거두어 주셨으면 하는데요. 진맥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고요…” 당혜가 무곡의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받아쳤다. 이에 무곡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주서천은 그 옆에 앉아 당혜의 진찰을 기다렸다. 일다경 뒤. 당혜가 무곡의 딸, 무선화의 손목을 놓으며 묻는다. “딸아이가 아직 태아였을 때, 산모에게 무슨 일이 있지 않았나요?” “……오공(飯松)에게 물린 적이 있었다만, 곧장 의원을 데려와 해독하여 무사히 넘겼었는데……” 무곡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부풀어 오른 배가 제법 됐죠?” “……그래.” “산모가 독물을 접한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위험해요. 아마 당시 의원이 산모의 건강을 확인하고 아이도 유산하지 않았다는 것에 넘긴 것 같은데…… 그 탓에 문제가 생긴 것 같네요.” 당혜의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곡의 얼굴에 불안과 희망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그동안 여러 의원들을 만났지만,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진찰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무엇인지 알겠는가?” 딸의 생사가 걸린 일이라서 그런지 그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그만큼 목소리도 불안하게 떨렸다. “태독인작(胎毒人作)을 알고 계신지요.” “태독인작?” 불길한 이름이다. “이름 그대로, 태아일 때부터 독에 대한 내성이나 단전에 독기를 지니게 하는 악랄한 방식을 말해요. 이 이론에 의하면 태어난 아이는 어미의 배 바깥으로 나온 순간부터 백독불침에, 독공에 알맞은 독공지체를 갖게 된답니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그야말로 인륜을 벗어난 행동이 아닌가! “마교에서나 가끔씩 쓰이는데, 그 조차도 산모나 태아가 생존할 가능성이 극히 낮아 폐기되었다고 들었어요. 방법은 어렵지 않아요. 독물에게 물리거나, 독기를 불어 넣은 다음 적절한 치료를 한 뒤, 또 다시 독물에 접하는 걸 반복하는 거죠.” “설마……” “네, 아마 독을 지닌 오공에게 물렸을 때 태아에게 전이된 모양이네요. 산 것 자체가 기적이랍니다.” “허어……” 무곡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그 일이 문제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선천적으로 몸이 나빠,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운이 나빠 태아에게 독이 전이됐고, 또 거기에서 운이 좋아 무사하게 태어났다. 산모, 무곡의 부인은 불행 중 다행으로 독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의원이 산모의 건강에 집중해준 탓도 있었지만, 잔류한 것이 아이에게 전해져서다. 다만 원래부터 몸이 좋지 않았는지라, 아이를 낳고 쇠약해져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무곡은 그동안 딸, 무선화가 그저 어머니를 닮아 선천적으로 연약한 체질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딸의 연령은?” “열네 살이다.” “독이 정말로 미세한 데다가 태아였을 적부터 들러붙어 육신에 융화되었으니 진맥을 한다 해도 눈치채는 사람은 저 정도 되는 독의 고수나, 화인의원의 신의 정도예요. 일반 의원은 눈치재지 못하는 게 당연하죠.” 독공을 수련했다면 반대로 득이 되었겠지만, 이미 늦었다. 무려 십사 년 동안 독을 내버려 두었다. 그 탓에 혈관에 쌓이는 탁기는 조금씩 독을 품고 있었고, 이내 몸 자체의 약화를 불러냈다. 무선화는 미래의 기억처럼 병 탓에 아픈 것이 아니라, 중독 때문이었다. “뭐든지 하겠다!” 쿵! 무곡이 머리를 바닥에 찡었다. “무엇이든 할 테니 부디 딸아이만 살려다오……!” 목소리에서 딸을 생각하는 간절함이 느껴졌다. “어때?” 주서천이 당혜에게 해독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독봉라는 이름은 겉치레가 아니야. 다만……” “다만?” “법보(法寶)의 도움이 필요해.” “법보?” 주서천이 끙, 하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법보라는 게 흔한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