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87)
아니고, 또한 대부분이 주인이 있어 손에 넣기도 힘들다. “어떤 거?” “기사분반(氣思分斑).” 기사분반은 이름 그대로 기와 사고를 나눌 수 있는 가락지다. 효과만 들으면 감이 안 잡히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굉장히 쓰임새 있게 사용할 수 있었다. 무공을 예를 들어 보자. 검법과 권법을 동시에 써 본다고 치자. 둘은 무기를 쥐고 안 쥐고의 차이도 있을뿐더러, 초식이 다른 데다 기의 운용 자체도 달랐다. 설사 사문과 심법이 같다 할지라도 운용법 자체가 다르니 동시에 펼쳤다간 흐름이 뒤틀려 주화입마다. 하지만 이 기사분반을 착용할 경우, 상식을 깡그리 무시한 채 동시에 펼칠 수 있게 해 준다. 기와 사고를 완벽히 분리할 수 있으니 , 마치 한 몸으로 두 사람이 무공을 펼치는 것과도 같다. 그야말로 상식과 힘을 초월한 신비의 무구! 참고로 기사분반과 동일한 힘을 지닌 무공이 있는대, 그게 바로 무당파의 삼대신공인 양의신공이다. ‘과연. 전생에선 정사대전 때 기사분반이 손실되었다고 했는데, 실상은 암천회에 가 있던 건가. 암천회주가 기사분반을 이용해서 무선화를 치료했구나.’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되니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하필이면 사도팔문(邪道八門)인가……” 사도천은 무림맹처럼 사파 세력의 연합체다. 당연히 그중에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처럼 문파나 가문이 있는데, 이를 사도팔문이라 칭한다. 기사분반은 그중 한 곳이 소유하고 있다. “기사분반이 사도팔문에 있어?” 당혜가 깜짝 놀라 물었다. 주서천은 긍정 대신 침묵으로 답했다. “흠.”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것만 같았던 무곡이 곤란하다는 듯이 침음을 흘렸다. “나는…… 움직일 수 없다.” “아까는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렇기에 안 돼.” 당혜의 물움에 무곡 대신 주서천이 답했다. “최근, 돈을 벌기 위해 특히나 전장을 많이 돌아다녔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그렇다. 상당한 사람들에게 원한을 지었지.” “그들이 이 집을 알아낸 것입니까?” 주서천의 물음에 무곡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그러나 강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게 문제다. 너희가 찾아왔으니 그들이 알아내는 것도 시간문제겠군.” 과연. 당혜가 이해했다. 아픈 딸 탓에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선 집 근처를 벗어날 수도 없었다. 만약 이런 사정이 아니었더라면 또 전장에 나가 돈을 벌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의 경우에는 돈 좀 써서 알아낸 것이라 다른 이들이 당장 이 집을 알아내는 건 힘들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기사분반의 일은 제가 처리해 보죠.” “기사분반이 왜 사도팔문에 있는지는 모르지만……그곳은 동네 무관같은 곳이 아니야.” 당혜가 경고했다. “나도 알아.” 第九章움호사궁(音皓死弓) 정파는 문파끼리 싸우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그만큼 체면을 중시하고 눈치를 보는 탓에 잘 안 싸운다. 하지만 사파는 다르다. 마교처럼 매일 싸우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파보다는 싸움이 빈번하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는 공적을 두고 경쟁하거나 개개인의 비무로 싸움을 마무리하여 끝나지만, 사도팔문은 심하면 전쟁으로까지 치닫는 경우도 있었다. 그 탓에 통제가 쉽지 않아 사도천주도 이리저리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태였다. 흔히들 말하는 사파의 자유분방함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 분쟁은 지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이 탓에 흉마의 무덤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묘가검문(苗家劍門)과 폭섬도문(i暴閃刀門)이었다. 언제는 한 번, 폭섬도문이 이렇게 말했다. “무공이라면 역시 도(刀)지! 검 같은 건 정파의 위선자들이나 쓰는 것이다!” “사파인이라면 응당 도를 써야 해. 검이나 쓰는 것들은 죄다 약자거나 겁쟁이다!” 사파의 무공은 패도적인 것이 많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이 도를 썼다. 하지만 검이 없는 건 아니다. 검공 중에서도 패도적인 초식은 얼마든지 있다. “뭐?” 묘가검문이 제일 먼저 반응했다. “백일창, 천일도, 만일검이라고 못들었나? 검이 만병지왕이라는 건 코흘리개라도 아는 것을!” 계기라는 건, 의외로 단순하다. 아이가 아닌 어른들도 유치한 이유만으로 싸우고, 그게 곧 단체와 단체가 다투는 전쟁으로 번진다. 그동안은 묘가검문과 폭섬도문도 입장이 있고,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세력인지라 기 싸움만 했다. 그러나 결국 주먹 다툼이 벌어졌다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시작으로 분쟁이 터졌다. 복건(福建) 묘가검문. 묘가검문의 서기관이 물었다. “이름.” “주서천.” “사문.” “화산파.” 서기관이 고개를 들었다. 주서천은 평소의 도복이 아닌 흑의무복이었다. “화산파의 속가계자 출신이 먹고 살기 힘들어 사파의 분쟁에 끼어들다니, 웃기기도 하지.” 속가제자는 보통 사문의 규율에 자유롭다. 통제도 가하지 않는다. 화산의 무공을 허락 없이 가르치지만 않는다면 사파의 분쟁에 끼건 뭘하건 간에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보통 정파 중소 문파에 고용되거나, 표국의 무사가 되어 싸우지 사파 분쟁에 껴들지 않는 편이었다. “오늘 휴전 전까지 살아남으면 은화로 두 냥이다. 사망 시에는 가족에게 가고, 폭섬도문 중진의 수급을 가져오면 추가 보상이 있으니 참조해라. 보아하니 버티지 못하고 금세 시체가 될 것 같지만 말이야.” 기사분반은 폭섬도문에 있다. 마침 묘가검문과 분쟁하고 있어 얼른 지원했다. 아무리 화경의 고수라고 해도 사도팔문 중 일문에 단신으로 쳐들어가서 기사분반을 훔쳐올 수는 없다. “목숨을 거는 데 겨우 은화 두냥? 날도둑놈들!” 주서천이 어이가 없어 욕부터 했다. “싫으면 관두든가.” 서기관이 흥, 하고 콧방귀를 꼈다. “다음!” 서기관이 명부에 적고 다음 사람을 불렀고, 주서천이 멀어지는 걸 확인한 다음 명부를 고쳐 썼다. “이 많은 무사들이 사망한 다음에 어떻게 가족을 찾아서 사례금을 보내줘? 부문주께서 뒈질 놈들을 눈여겨보고 이름을 빼라 했으니, 지워 둬야겠네.” * * * 복건에는 주서천 혼자만 왔다. 당혜는 해독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남창에 남았다. 자연히 호위 무사들도 남았다. “그래. 차라리 오지 않는 게 좋지. 그놈들이 ‘네가 감히 아가씨를 부려 먹어!’ 라면서 내가 싸우던 도중 뒤통수에 암기를 던질지도 몰라.” 사천당가에 대한 신뢰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쨌거나 주서천은 복건까지 한 걸음에 달려와 묘가검문부터 들러 분쟁에 참여한다는 의사를 표했다. 이후 적절한 절차를 밟아 이름을 등록한 다음, 주녕에 도착했다. 주녕은 복안과 병남 사이에 있는 지방인데, 묘가검문과 폭섬도문의 중간에 위치한 지점이기도 했다. “찻잎이 많군.” 도착한 뒤의 첫 감상이었다. 근방은 경사가 심한 구릉 지대였는데, 언젠가 본 적 있던 찻잎 밭이 가득했다. 하나 원래라면 은은한 차향으로 가득해야 할 장소는 혈 향과 악취뿐이었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있는 장소에 드문드문 피가 묻은 반파된 무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 보였다. 그 외에도 찻잎 사이로 지독한 악취를 내는 팔이나 다리 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오리(里 : 1리 = 400미터) 정도 곧장 전진하면 구릉 위에 세워진 폭섬도문의 두 번째 진지가 나온다. 여길 점령하고 다음 진지까지 나오면 우리의 승리다. 열 명씩 짝을 지어 십인대를 결성해 싸워라.” 도착하자마자 묘가검문의 고수가 명령을 내렸다. 주서천은 근처에 있는 아홉 명과 짝을 지었다. “반갑다. 철삼이라 한다.” 얼굴에 무수한 흉터가 난 중년인이 앞으로 나왔다. 일단 얼굴은 무수한 전장을 넘나든 역전의 용사다. “보아하니 이 중에서 내가 제일 강한 것 같군. 십인장은 내가 맡을 테니, 내 명령을 따르도록. 그렇다면 너희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날 믿어라.” 범상치 않은 분위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만 제외하고. “반갑다. 주서천이라 한다.” “……?” 철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이내 얼굴을 찡그렸다. 안 그래도 험악한 얼굴이 악귀처럼 변했다. “애송이, 말이 짧군. 경어를 붙이도록 해라.” 주서천은 한 귀로 흘려듣고 철삼 앞에 섰다. 그리고 머리를 들어 그를 멀뚱멀뚱 올려다봤다. “건방진 놈. 선후배 간의 예의를 알려 줘야겠군!” 사파인들 사이에선 시비를 거는 게 일상이다. 혈기 넘치는 애송이들이 종종 뭣 모르고 덤벼든다. 나머지 여덟 명은 주서천이 엉엉 울면서 잘못했다고 사죄하기를 기다렸다. 쐐액! 철삼의 검이 주서천의 목을 노렸다. 살기는 없었다. 이제 곧 싸울 터인데 바보같이 동료를 잃을 수 없다. 목 바로 앞에서 멈출 생각이었다. 챙그랑. “응?” 철삼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이해가 안 갔다. 무언가 맞은 것 같더니만, 손에 쥐고 있던 검이 튕겨져 나가 지면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게 뭔……” 짜악! “꾸엑!” 철삼이 뺨을 후려 맞고 쓰러졌다. 주서천이 몸을 돌린 다음 여덟 명에게 말했다. “이젠 내가 제일 강하니 내 명령을 따라라. 그러면 너희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날 믿어라.” “거절한다면?” “뺨을 때릴 것이다.” “잘 부탁합니다, 십인장.” 정파는 사파보다 사람이 적지만, 고수가 많다. 반대로 사파는 정파보다 사람이 많지만 하수가 많았다. 십인대의 아홉 명은 거의 전부 삼류였고 철삼만 이류였다. 십인장을 자처한 게 허세만은 아니다. “후우.” “십인장. 얼굴에 근심이 많소. 십인장을 따르면 산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이오?” “너희 실력을 보니 그게 정말 가능한 것인가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걱정하지마.” ‘으음.’ 철삼이 도망칠까 고민했다. “생판 모르는 놈들 신경 써 주면서 싸우는 것보단 혼자가 낫지만, 그렇다고 사파 소굴에 나 혼자 있을 수는 없지. 적어도 날 믿고 따를 사람은 필요하니까.” 전쟁이란 건 결코 혼자 할 수 없다. 전란의 시대를 경험하고 깨달은.것이었다. 아무리 화경의 고수이고, 여러 무공을 지녔다고 한들 그러면 뭐하나. 믿고 함께할 수 없는 동료가 없는데. 출신 역시 정파의 사람이란 것이 알려진다면, 도와준 묘가검문조차 막바지에 자신을 몰아낼 수 있다. 세운 공에 눈이 멀어, 그걸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말(言)이라는 건 곧 힘이다. 그리고 그 말이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일 경우는 큰 힘이 된다. 굳이 무공이 강하지 않다고 해도, 사파인들이 손을 들어 주고 신뢰를 준다면 최악의 결말은 면한다. 그리고 그 신뢰는 목숨을 빚지는 걸로 쉽게 쌓을 수 있다. ‘단숨에 폭섬도문에 쳐들어간다고 해도 기사분반을 찾을 시간도 필요하고, 같은 화경의 고수와 싸운 뒤에는 다쳐서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몰라. 혼자라는 건 지긋지긋해.’ 주서천은 등에 매단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었다. “지원은 내가 한다. 옆과 뒤는 신경 쓰지 말고 앞을 향해 달려.” “십인장. 설마 그 활을 쓰겠다는 겁니까?” 활의 취급은 관부 정도가 아니라면 좋지 않았다. 특히 무림에서의 인식은 아랫바닥이었다. “또 맞고 싶지 않으면 상관하지 말고 전진해라.” 주서천이 턱 끝으로 앞을 가리켰다. 아홉 명은 서로를 마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가 있을 때 저놈에게서 도망치자.’ ‘아무래도 살기는 글러 먹은 것 같다.’ ‘우리를 적당히 이용하다 바릴 생각이야.’ 정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