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94)
생각인가?” 서신을 보내기 전, 남궁위무가 제갈상에게 물었다. “확실히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렇다면, 소유주를 가리기 위한 지역 전쟁은 어떻습니까?” “지역 전쟁?” “예. 마침 흉마의 무덤 탓에 무림맹과 사도천, 그리고 마교가 산서에 집결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지요. 각 세력에서 고민한 끝에 보낸 사람들이니, 그 인원대로 싸워도 불만이 없을 것입니다.” “추가 지원은 금할 생각이군그래.” “예. 병력이 추가될수록 규모가 커지고, 그러다 결국 전쟁으로 번질 것입니다. 만약 불만이 제기되면 인원을 제한해서 받으면 그만입니다. 조금 거친 방법이긴 하나, 전쟁보다는 낫지요.” “과연, 지룡!” 혈근경의 소유주도 가릴 수 있고, 전쟁도 막는다. 마교는 조금 달갑지 않은 눈초리였으나, 무림맹과 사도천의 의견이 너무 잘 맞아 따르기로 하였다. 참고로 분쟁 전에 혈근경의 진위 여부는 소림사와 마교가 확인했다. 혈근경 자체가 원래 역근경에서 파생된 것이니, 소림사의 감정이 필요했다. “감정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만, 소림사 역시 참전하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혈근경은 소림사의 치부 자체다. 누구보다 혈근경을 손에 넣어 봉인하고 싶은 건 소림사였다. “불허합니다.” 후계 양성에 힘을 쓰던 무림맹 군사까지 나섰다. 괜히 북두소림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정파 무림 최고 전력이 나서게 된다면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소림사의 은원 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었고, 이를 진정시키려고 조건을 제시했다. “대신, 무림맹이 승리할 경우 혈근경을 소림사에 양도하겠습니다.” 곤륜파, 태산파, 승산파, 항상파, 남궁세가도 군말하지 않고 승낙했다. 애초에 곤륜파는 흉마의 무덤에 관심이 있는 거였고, 그 외에는 공과 명성이었다. 최후에 혈근경을 손에 넣는다 해도 어차피 봉인하거나 없앨 예정이었으니 소림사에 양도해도 별 상관없었다. “지금 당장 산서의 흉마의 무덤에서 일어나는 분쟁은 전부 중지하도록 하시오.” 역사라는 이름의 굴레. “소림사에서 감정사가 보내지기 전까지 무림맹, 사도천, 마교의 경비가 혈근경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고 함께 경비합니다. 감정 이후, 정확히 보름 뒤 혈근경을 둔 전쟁을 시작하겠습니다.” 미래에 있을 그 굴레는 사뭇 달랐으나, 결국 동일한 이름을 지닌 굴레가 다시 구르기 시작했다. * * * 주서천은 무곡에게 산동으로 이사를 제안했다. “그리하겠소.” 그동안은 돈벌이 수단으로 강서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도 없어졌으니 미련도 없었다. 게다가 주서천이 보다 안전한 곳을 소개시켜 준다고 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딸을 목숨보다 아끼는 아버지 입장에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장소는 산동. 금의상단이 있는 곳이다. “며칠 뒤에 상단주가 사람을 보내올 거요. 실력 좋은 의원과 시중을 들 하녀들과 호위 무사도 보내 준다 하였으니, 편안하게 이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신경 써 주셔서 고맙소. 산동에서 딸아이의 안전이 확인되면 내 언제든지 주군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겠소.” “너무 과한 호칭입니다. 주 공자면 됐습니다.” “그리하겠소.” 주서천은 여장을 챙겨 출발할 준비를 맞췄다. “저 ……” 떠날 때 즈음, 무선화가 주서천을 찾았다. “이런, 무슨 일로 나오셨습니까? 아직 몸이 좋지 않으신데 나오시면 안 됩니다.” 주서천이 무선화를 보고 걱정했다. “아니옵니다. 소녀의 목숨을 구해주신 은공께서 떠나신다 하는데, 어찌하여 가만히 있겠습니까. 비록 몸이 약하다 할지라도 배웅을 나가야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옵니다.” 무선화는 양갓집 규수처럼 정중하고 예의 바랐다. 몸짓 하나하나가 단아하여 보는 사람이 감탄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좋지 않았고 거동도 힘들었던 사람이 저러기는 불가능한데, 아무래도 타고난 듯했다. 어투야 밖을 나가지 못해 서적만 읽었다고 하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언제나…… 아버님이 걱정이었습니다.” 전광귀검이라는 별호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서 전장을 돌아다니고, 돈에 미쳤다면서 손가락질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자고 있을 때 자신의 손을 쓰다듬어 주며 흐느껴 울던 게 아직도 기억에 선명했다. “은공. 다시 한번 인사드리옵니다. 아버님을 고통 속에서 해방시켜 주셔서 감사하옵니다.” 무선화가 치마 끝을 올려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그 무뚝뚝하고 살벌하던 무곡조차 지금은 부드럽게 웃었다. 눈이 글썽이는 듯했다.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 부정하기도 어렵군요. 바람이 찬데 배웅을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 다.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주서천도 공손한 인사로 답했다. 일행은 남창을 떠나 산서로 향했다. “나와의 대화 때도 말 좀 곱게 쓰지 그래.” “이불인(我不仁), 아불의(我不又).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하지 않았나.” “네 이놈! 아가씨에게 말대꾸를 하다니!” 원대식이 기다렸다는 듯이 화를 버럭 냈다. “그리고 얼렁뚱땅 넘어간 것 같지만 전광검귀와의 관계는 또 무엇이고 기사분반 정도나 되는 법보의 출처는 어디야?” 당혜가 집요하게 묻는다. 다 끝난 일인데 그걸 또 물어야 하나, 라고 중얼거리자 당혜가 눈썹을 치켜떴다. “자고로 일에는 인과( 因果)라는 것이 있고, 그것에 얽혀 있는 장본인이라 하면 응당 호기심을 갖는 법. 나는 거기에 대해서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곡에 대한 사정은 별거 아닌데.” “뭔데?” “금의상단주와 그럭저럭 연이 있다는 건 이야기했나?” “그래.” “상단주는 인재를 찾아내서 포섭하는 데 귀신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고, 그 혜안을 빌려 상단주 대신에 내가 무곡을 포섭한 것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대문파의 제자가 강호행에 나서 훗날을 위해 연을 쌓아 두는 건 흔한 일이다. 이상할 건 없다. “사파인을?” 다만 보통은 정파인들끼리만 교류한다. 무곡처럼 돈에 환장했다는 자는 보통 멸시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사람과 친해진다면 손가락질을 받는다. 무림인은 사람을 사귀는 것에도 여러모로 신경 쓸 게 많은 법이다. “마도인만 아니라면 그럭저럭 대화가 통하니까. 살아가는 데 있어 사파인 벗도 나쁘지 않지 않나?” 마도이세의 경우는 조금 예외다. 그들은 마공을 연공한 탓이었다. 마공이란 건 기본적으로 정사의 무공보다 수련의 속도도 빠르고 그만큼 강맹하지만, 그만큼 단점이 따른다. 마성(魔性) 자체가 무공과 함께 성장해 버린다. 천륜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며, 마공에는 수련 방식 자체가 악랄한 것이 워낙 많았다. “…… 기사분반은?” 당혜가 무곡을 찾은 부분은 넘어갔다. 사천당가 자체가 원래 정파와 사파 사이에 있다. 비록 정파에 속해 있으나, 그 수법은 사파와 닮았다. “보는 눈이 많으니까 나중으로 미루자고.” “아가씨와 단둘이 있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 원대식뿐만 아니라 다른 호위 무사들이 으르릉거렸다. “대식아, 너 완전 미친 거 야니냐! 내 목숨은 하나지, 둘이 아니다!” “감히 아가씨를 모욕하다니 ! 죽여주마!” “어쩌라는 건지!” “그만.” 당혜가 손을 들자 무사들이 멈췄다. 살의를 거두고, 공력에 펄럭거리던 소맷자락이 잠잠해졌다. 일행과 여행하면서 이런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당혜에게서는 장군과 같은 위엄이 흘렀다. 여기에 있는 누구도 당혜를 귀한 집 아가씨 취급하지 않았다. 존경으로부터 나오는 태도였다. “목적지는?” “산서. 흉마의 무덤.” “칠검전쟁?” “그래.” 얼마 전, 혈근경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과연 혈근경인가.’ 칠검전쟁이 반드시 일어날 것은 예상했다. 다만 어떠한 것이 계기가 되는지 그것이 관건이었다. 정확하진 않아도 기억을 나열해 몇 가지를 꼽아 봤고, 그중에는 혈근경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마도이세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암천회는 온 무림의 적. 마도이세도 마찬가지였다. 칠검전쟁 이후, 정사대전이 십 년 동안 이어진다. 하면 그 십 년 동안 마도이세는 무엇을 했을까? ‘마도전쟁!’ 마공을 수련하는 건 마교뿐만이 아니다. 혈교도 마찬가지다. 양측 다 눈을 붉히며 욕심을 부렸다. 암천회는 이에 혈근경을 미끼로 삼아 마도이세 간에 전쟁을 일으켰다. 그게 마도전쟁이다. 참고로 그때도 소림사가 나섰는데, 정사대전 탓에 다수를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소수의 고수로 구성된 정예만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당시 소림사가 파견했던 정예 고수들은 혈근경을 얻지 못한 채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만다. ‘지옥의 시작이었지.’ 무림은 물론이고 중원 전체가 암흑기였다. ‘십 년 후, 그 지긋지긋한 전쟁들이 멈췄지만 중원 무림 세력이 눈에 띄게 약화된 탓에 결과적으로 새외세력이 중원에 눈독을 들이게 되었지.’ 몇십 년 동안 전란이 끊이지 않는 시대. ‘암천회이니 분명 다음에는 혈근경 대신에 다른 걸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전쟁은 멈추지 않을 거야.’ 하나만 나와도 무림이 발칵 뒤집히는 무공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는 이들이다. 그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증오와 탐욕의 연쇄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부족해.’ 그동안 선수를 쳐서 암천회를 방해했다. 중도만공으로 회주의 힘을 깎았고, 후일 오른팔이자 암천의 검이라고도 불릴 검마를 회유했다. 그 외에도 영약을 빼앗거나 흉마의 무덤을 무너뜨리는 등의 온갖 방해를 했지만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무려 몇십 년 동안 모습을 감추고 철저한 준비 끝에 야욕을 드러내 무림을 멸망 직전까지 내몰았다. 역대 최고라 칭송받는 영웅들과 천재가 있었고, 은거한 고수나 신비 문파까지 합세했다. 그들의 희생과 천운이 있었기에 겨우 암천회에게서 승리할 수 있었다. ‘기필코 막아 주마!’ 궁귀검수의 명성은 암천회의 귀에도 들어갔다. “주서천……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군.” 칠성사의 천기는 무림맹으로 따지자면 군사다. 무공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지략으로는 으뜸이다. 암천회주조차 천기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었고, 수뇌부 역시 천기의 말이라면 별 말 없이 따랐다. “흠.” 사도팔문 중 일문이 멸문지화를 맞이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을 준 인물이다.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천선(天族).” “무슨 일?” “주서천에 대해서는 아직인가?” “무림인 중 주서천이 어디 한둘인 줄 아니? 게다가 장본인은 분쟁이 끝나자마자 모습을 감췄어. 그 탓에 사칭하는 어중이떠중이까지 나타나 골치야.” “주서천이라는 이름에 주목하지 마라. 가명일 수도 있으니, 그걸 감안해서 찾아야 한다.” 주서천이 괜히 어릴 적에 몸을 숨긴 게 아니었다. 천기, 나아가 암천회는 집요하다. 자만하지 않는다. 대계에 방해가 될 인물이라면 새싹부터 자르려 했다. “일단 화산파의 봉추는 아니니까 놈은 제외해라. 천독불침이라는 걸 이용해 독봉을 꾀어 어떻게 해 보려는 놈이니까. 여자를 밝히고 내공이 좀 많다는 것 빼곤 별로 대단할 것 없는 놈이다.” 그 대단한 천기조차도 설마 구종과 정면 승부하고 승리를 거둔 자가 열여덟 살밖에 안 될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만큼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그게 얼마나 걸리는지 알고는 있어?” “안다. 시간은 상관없으니 찾으라는 의미다.” “확실히 화경이 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정도 고수에게 그렇게까지 신경을 쓸 이유가 있는 거니?” “아직 추측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그놈이 흉마의 무덤을 수몰시킨 장본인일지도 모르니까.” “……” 천선이 깜짝 놀랐다. “……확실해?” 천기는 그 누구보다 철저하며 지혜롭다. 그렇기에 암천회주는 그에게 천기라는 이름을 맡겼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