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102)
미국의 트러스트 인사들이 속속들이 일본으로 입국했다.
한자리에 모인 거인들은 미쓰이은행 도쿄본점의 회의실에서 한동안 앞으로의 계획을 열띄게 논의했고 순차적으로 일본결제은행의 조율 하에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철도부터인가. 검은 수요일이 떠오르는군.’
일본국 경제자문기관.
일본결제은행은 첫번째 타자로 민영화를 시작한 철도부터 조율하기로 합의했다. 나는 철도 트러스트의 이사들과 함께 도쿄에 있는 일본체신부를 방문했다.
도쿄 체신부.
요시카와 체신대신이 우리를 안내했다.
“대장성의 발표를 듣고 오셨군요. 예 맞습니다. 철도의 민영화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요시카와 체신대신은 손수건으로 진땀을 닦으며 일본결제은행과 미국 트러스트 거물들을 맞이했다.
거대한 회의실.
왜소한 채격의 일본인들과 우람한 체격의 철도이사들이 한공간에 있으니 프레셔가 엄청났다. 심지어 거친 도금시대를 지내온 철도이사들은 험상궂은 인상과 흉악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체신부 관료들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지릴 것만 같았다.
“요시카와 대신님. 일본철도법은 관치금융으로 엮여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구제금융위원회 총재로서 내가 대표로 나섰다.
“예, 예 맞습니다. 말씀대로 저희 체신부의 제국철도청에서 본래 완전한 국영철도를 운영하고 싶었지만 민영자본들이 득달같이 달려드는 바람에 굉장히 이상한 구조로 진행되었죠. 아시는대로입니다.”
요시카와 체신대신은 보고서 몇부를 들춰보며 말했다.
“철도의 자금은 철도공채로 제국철도청에서 지원하는 대신 15년 동안 민영에서 운영하고 국유화한다는 조건입니다. 다만 최근엔 전시체제로 인해 국영으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골때리는 것이다.
공채는 채권인데 사실상 15년 뒤에 주식으로 전환한다는 전환사채나 다름없었으니, 일본 체신부는 공채의 옵션에 따라 철도의 주주일수도 있고 채권단일수도 있었다.
일단 15년간은 민영에서 운영. 15년 뒤엔 국유화를 진행해 국가에서 운영하겠다는 조항으로 철도법이 통과된 상태로 지금까지 왔다.
“Shit.”
그레이트노던철도의 힐 이사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사실상 제국철도청과 민간철도자본 사이의 힘겨루기로 인해 탄생한 괴랄한 구조였다.
하지만 원역사에선 결국 1906년에 철도의 국영전환이 이뤄진다.
“결국 저희가 철도공채를 인수해서 철도법을 개정한다면 추가자금을 투입해 일본의 철도를 인수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군요?”
“마, 맞습니다. 철도법의 개정이야 GHQ가 있으시니 간단하실테고, 저희 체신부는 대장성과 논의한대로 철도공채를 넘겨드리겠습니다.”
요시카와 체신대신은 완전한 저자세로 나왔다.
도쿄전범재판의 처형식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비공개였지만,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요시카와 채신대신님. 그렇게 겁먹으실 필요없습니다. 비록 제국철도청이 육군의 수송을 담당했다지만 그 덕분에 제국철도청이 철도운영권을 민간에서 일시적으로 회수해오지 않았습니까.”
이게 제국철도청의 요시카와 체신대신이 전범으로 기소되지 않은 이유다. 그가 도쿄전범재판에서 처형되기라도 하면 철도의 운영이 다시 민간에 넘어가버릴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나는 철도운영이 제국철도청에 있는 지금 인수하고 싶었다.
‘뭐, 민간사철들도 대부분 파산했지만 채권단이 체신부인 이상, 일본결재은행이 손댈 방법이 없지. 체신부에게서 직접 인수받을 수밖에.’
현재 사실상 국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좋아.
요시카와를 좀 압박해볼까.
나는 자세를 고쳐앉았다.
“요시카와 체신대신님. 저희에게 잡음없이 완전히 인계해 주신다면 도쿄전범재판이 다시 열릴 일은 없을 겁니다.”
“히, 히이익!”
“아직 9명의 재판관들이 일본에 머무르고 있긴 합니다만 관광차원입니다. 전혀 겁먹으실 필요없습니다.”
“하, 하이!”
덜덜덜.
요시카와 체신대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떨리는 그의 어깨 탓에 책상이 진동하는 것처럼 덜컥거렸다.
이정도 어루만져줬으면 기름칠은 잘 됐겠지.
“아치볼드 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느 철도를 인수하길 희망하십니까?”
이 회의에 참석한 철도거물들은 많았지만, 결국 클래스 1의 대륙종횡단 철도의 이사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BNSF, 유니온퍼시픽철도, 펜실베니아철도, 그레이트노던철도.
위 4개사의 임원들 중에서도 갑을이 나뉘었다.
펜실베니아철도의 모회사.
스탠더드오일의 부회장인 아치볼드가 직접 등판했으니 펜실베니아철도가 우선권을 쥐게 되었다.
아치볼드는 수염을 쓸었다.
“일본도 철도가 장난아니게 많군.”
“예, 미국정도는 아니지만 열도가 넓기도 하고 거미줄처럼 조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시 대도시권의 철도를 가져가는게 더 이득이겠지. 특히 개항장과 연결된 철도.”
턱.
아치볼드는 손가락으로 지도 한 지점을 짚었다.
“우리는 우선 간사이철도(관서철도)를 집어가도록 하지. 일본결제은행의 지분이 25%, 우리 스탠더드오일의 지분이 75%였지?”
“예, 정확합니다.”
아치볼드는 상당히 여유로워보였다.
겉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이 회의실에서 가장 마음이 급한건 요시카와 체신대신이었고 그 다음이 아치볼드였다.
‘애초에 아치볼드 부회장이 직접행차한 것부터가 이레귤러지.’
물론 제임스 힐 철도이사도 그레이트노던철도의 회장이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개 대륙횡단철도와 스탠더드오일을 비교하기엔 무리가 커도 너무 컸다.
명실상부 미국 먹이사슬 최상위인 그가 온 것은 그래서 이상하다.
이건. 돈이 된다.
“아치볼드 부회장님.”
나는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치볼드는 미간을 잠시 찌푸렸지만, 내게 귀를 내주었다.
“뭔가.”
“로열더치를 의식해서 오셨군요?”
“……”
“이곳 일본열도에서는 미국의 스탠더드오일보다 동남아의 로열더치가 더 가깝죠. 정확히는 네덜란드 로열더치의 인도네시아 유전지역이 말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아치볼드는 무뚝뚝하게 응답했지만 부정하진 않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스탠더드오일이 미친듯이 석유를 던지면서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현 상황을 말이다.
‘지금 스탠더드오일이 치킨게임에서 승리하려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한다.’
덩치가 커질수록 치킨게임(저가경쟁)에 유리하다.
그리고 석유의 운송비를 줄이기 위해선 철도가 필요했다. 운송비를 줄이고 자유무역협정의 관세혜택까지 받으면 태평양 인프라를 구축한 미국산 석유도 일본에서 가격경쟁력이 생긴다.
그리고 석유 뿐인가?
아시아의 석탄시장에도 접근할 수 있었다.
“저희 지분재조정하시죠. 일본결제은행 49.9%, 스탠더드오일 50.1%로 말입니다. 단, 알짜철도를 좀 더 몰아드리겠습니다. 최대한 스탠더드오일의 정책에 맞춰서 철도를 분양해드리죠. 어떻습니까?”
현재 매물로 나온 철도구간은 크게 나누면 17개의 노선으로 이뤄져있다.
훗카이도탄포철도, 고부철도, 일본철도, 이와고시철도, 산요철도, 니시나리철도, 구슈철도, 훗카이도철도, 교토철도, 한학철도, 호쿠코시철도, 소부철도, 보소철도, 나나오철도, 도쿠시마철도, 간사이철도, 참궁철도.
“청나라 정세가 심상치 않은거 아시잖습니까. 여차하면 전시경제도 챙기셔야죠. 우선 일본철도, 간사이철도, 한학철도부터 배정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아치볼드에게 몰아주는 조건으로 내 지분 49.9%를 챙긴다.
아치볼드는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쓸었다.
“이보게. 모건총재. 내게 그렇게 몰아주면 자네 눈초리받을 걸세. 내가 말하긴 좀 뭐하지만, 철도이사들은 도덕성이 상당부분 결여되어있는 괴물들일세.”
“그건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감당은 제가 다 알아서 하니까요. 아치볼드 부회장님은 노 아니면 예스로 대답해주시면 됩니다.”
“……”
아치볼드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손해될 건 없다고 판단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감당은 자네가 해야되네.”
“감히 스탠더드오일을 건드릴 철도업자는 없습니다. 감당은 제가 합니다.”
사실.
이건 아치볼드와 철도트러스트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맺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아치볼드는 당장에 운영할 수 있는 철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대도시와 항구만 이을 수 있다면 오케이.
만족이다.
‘하지만 과연 철도트러스트들도 그럴까?’
나는 그레이트노던철도의 힐 이사를 바라보았다. 힐 이사는 내 바로 옆에 있어 아치볼드와 대화가 들렸을 텐데도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았다.
“모건.”
힐 이사가 나를 불렀다.
나는 기꺼이 그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예, 힐 이사님.”
“아치볼드와 자네가 뭔 꿍꿍이를 꾸미는지 알겠는데, 자네라면 우리 철도업자들이 뭘 바라는지 알고 있겠지?”
나는 슥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요.”
열도횡단철도. 열도종단철도.
아치볼드의 스탠더드오일이 항구에서 도시로의 운송’길’을 원한다면. 철도트러스트들은 ‘철도환경’ 그 자체를 원한다.
심지어 미국보다 더 싼 노동력이 넘쳐나는 일본이다. 기존 철도를 구매하는 것보다 차라리 대규모로 노선을 직접 깔아버리는게 이쪽은 더 효율적일 수 있었다.
“철도부설권을 따드리겠습니다. 아치볼드 부회장님이 집어가고 남으신 철도중에서 필요한 구간의 우선권도 드리죠.”
“역시 자네는 철도를 잘 아는군. 자네랑 일을 볼때가 가장 편해. 모건 회장님이 아끼시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힐 이사는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나머지 철도트러스트들도 이런식으로 일본을 분배해주면 된다.
그들이 원하는 건 국가 속 작은 국가. 철도라는 환경 그 자체였으니까.
그리고 일본엔 아직 철도가 촘촘하게 개척되지 않은 수많은 번들과 도시들이 있었다.
“요시카와 체신대신님. 지금 얘기 다 들으셨죠?”
“예, 예!”
“예?”
“아, 아아아아 아닙니다! 못들었습니다!”
“하하, 농담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일본결제은행에서 철도부설권 좀 얻고 싶은데 체신부와 제국철도청에서 의회에 철도법 개정안을 제출해주셨으면 합니다. 가능하시겠죠?”
이걸 GHQ의 손으로 직접 통과시키면 모양새가 나쁘다. 껍데기라도 직접 권한을 가진 체신부가 개입해야 예쁜 프레임이 되지.
요시카와 체신대신은 의자를 덜컥이며 목이 떨어져라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 맡겨만 주십쇼! 목숨을 걸고 철도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습니다!”
“예.”
나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이걸로 현 알짜노선 지분의 49.9%를 얻었고.
새로 깔릴 대규모노선에도 일본결제은행을 통해 지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플랫폼이 이래서 중요하다.
중개료로 엄청나게 뜯어먹을 수 있었으니까.
한쪽이 횡포를 부리는 것이 아닌 윈윈.
모두가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1대 다수를 상대하는 플랫폼이 무조건 유리하다.
적어도 전 철도법인의 비토권(거부권)은 내 수중에 있었다.
‘달달하네.’
즉.
사실상 제국철도청을 내가 먹은 셈이다.
***
덜컹.
마차를 타고 도쿄시내를 달렸다. 19세기의 발전된 도쿄시내는 전신과 신고전주의풍의 건축물, 고급스러운 흑색마차들이 거닐고 있었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군정의 GHQ 군인들이 일본시민들에게 식량을 배급해주고 있는 모습정도였다.
제임스는 내 옆에 붙어서 비서업무를 충실히 이어나갔다.
“이사님, 현재 쌀수급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도지마 쌀 거래소의 쌀창고도 올해를 버틸만큼의 분량은 있지만 내년이 위험하다고 하더군요.”
“스팸은? 밀과 옥수수는 넘쳐나지 않나.”
“일본인들의 주식이 아니라 거부반응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거부반응은 씨…개소리하지 말라그래. 3일을 굶으면 뭐라도 먹게 되어있어.”
아.
안좋은 추억이 떠오른다. 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일단 올해를 날 분의 쌀은 충분하다는거지?”
“예, 쌀도매상들이 쌀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더군요. 매점매석을 위해 쟁여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썩은 물량들도 심심치 않게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시민들은 굶어죽어가고 있는데, 쌀창고는 쌀이 넘쳐나 썩어가고 있었다?”
“예.”
좋아.
이건 일본결제은행의 프로파간다에 효과적일 것 같다.
“아사히 신문과 연계해서 취재하고 쌀도매상들의 비난기사를 내게. 그리고 적폐를 토벌한 일본결제은행이라고 기름칠 좀 해주고. 이런 일은 이미지 관리가 생명이네.”
도덕외교?
신뢰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21세기 미국이 증명해냈다. 특히 노란머리의 사자갈기의 대통령이 손수 신뢰를 박살내면서 말이다. 동맹과의 관계를 파탄내는 것보다, 차라리 그들의 신뢰를 얻어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이익이 더 크다.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신용사회에선 신용이 무기다.
부정부패와 적폐인 일본정부.
자유주의와 선의의 미군정(GHQ).
“그래도 쌀 수급처는 알아가지고 오게. 여차하면 동남아의 쌀을 이용해도 되지만, 쌀 종류가 달라. 가뜩이나 노동환경이 작살날텐데 먹을 것만큼은 챙겨줘야 불만 안나온다.”
“예, 이사님.”
“칭(Qing)의 쌀이라도 얻어올 수 있으면 좋은데 말이지.”
조선쌀도 좋고.
“한번 그쪽 시장에 관련있는 곡물회사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부탁하네.”
덜컹.
마차가 흔들리고 서서히 속도가 줄었다.
제임스가 마차의 문을 열고 내렸다.
“도착했습니다.”
***
“디트로이트, 잘도 저런 깡패들과 일을 하는군. 나는 눈빛만 봐도 살이 떨리던데, 완전 살인자의 눈빛이지 않나.”
미쓰이은행 도쿄본점.
일본결제은행으로 돌아온 나를 삭스가 맞이해주었다. 그는 어느새 맛들렸는지 자연스럽게 커피대신 콜라를 유리잔에 따르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깡패아니고 철도사장들입니다. 훌륭한 비즈니스 파트너고요.”
“뭐, 돈만 벌 수 있으면 상관없긴 하지.’
“예, 그보다 영국령홍콩에 아예 콜라공장이 있는데 박스째 가져다 드릴까요? 아니면 캔들러씨에게 말해서 일본에 분점이라도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만.”
“나 불렀나?”
응?
나는 갑작스러운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사각지대에 앉아있던 캔들러가 콜라병나발을 불러 다가왔다.
“어….캔들러씨가 왜 여기에.”
“서프라이즈, 그보다 아서라고 부르게.”
“네, 아서.”
“그래, 꿀꿀하던 기분이 좀 풀리는군. 나 그동안 많이 섭섭했네. 배당받을 때는 꼬박꼬박 직접 잘 오더니 언제부턴가 비서만 딸랑 보내고 말이야. 마치 은행창구 직원이라도 된 기분이었어. 아주 불쾌해.”
“아…아하하.”
찔렸다.
엄청 찔렸다.
사실 ATM으로 보고 있긴 했지만 기름이 좔좔 흐르는 내 혓바닥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현란하게 놀리고 있었다.
“언제 한번 찾아뵐 생각이었습니다. 삭스 이사님께 말씀드린대로 코카콜라의 일본진출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그건 좀 끌리는 제안이군. 원래 영국령홍콩에 머물면서 칭(Qing)에 영업이라도 걸 생각이었는데, 그 지랄이 났으니 말일세.”
큰 시장인데.
아서 캔들러는 쯧쯧 혀를 찼다.
“뭐, 그래서 나도 일본결제은행을 통해 코카콜라 도쿄 보틀링공장이라도 지을 생각이었네. 자네가 대주주지 않나.”
“그렇죠.”
“하지만 맨입으로 오기도 좀 그래서 최근 사귄 친구를 좀 데려왔지. 자네에게 아주 관심이 많은 친구더군.”
“친구입니까?”
아서 캔들러는 씩 웃었다.
“어, 곡물회사 사장인데 최근 쿵짝이 잘맞아서 말이네. 자네가 동남아 쌀무역을 독점한 필리핀회사의 대주주란 걸 알더니 눈빛이 바뀌더라고.”
“곡물회사 사장입니까.”
“그래. 지금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알고 나한테 접근한 걸지도 모르겠군. 상당히 진심이었어.”
아서는 턱을 곰곰히 쓸었다.
아니 잠깐.
“그런데 아서는 영국령홍콩에 계시던게 아니었습니까? 미국친구는 언제…”
“마침 그 친구도 같이 왔네. 극동의 곡물시장에 흥미가 지대하더군. 미국 중부대평원의 강자 중 한명일세. 그런데 명문가의 사위로 들어간 탓에 집안싸움이 좀 심한가봐. 쌀시장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더군.”
중부대평원의 강자.
곡물회사 사장.
명문가의 집안싸움.
왜 기시감이 드는 걸까.
“이름이 어떻게 되죠?”
“존 맥밀란(Macmillan).”
오소소.
피부로 닭살이 올라왔다.
아서 캔들러는 그 괴물의 이름을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읊었다.
“카길(Cargil)이란 곡물회사를 운영하고 있네.”
현대 4대 곡물메이저엔 ABCD가 있다.
ADM, Bunge, Cargil, LDC.
“그러니까 저한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지금…”
그중 압도적 1위 카길은 21세기에서 전세계 곡물시장의 40%를 독점한 초대형기업.
미국과 20세기를 풍미한 ‘식량’이란 이름의 패권.
나는 전율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