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146)
“라이히스방크의 코흐 총재입니다.”
독일제국 재무부의 핵심인사.
라이히스방크면 독일제국의 중앙은행으로 알고 있는데, 꽤 거물이었다.
‘운이 좋았네.’
오늘은 특별히 빅토리아여왕 장례식에 참석한 거물들과 협상하기 위해 재무부 청사 밖으로 빠져나왔다.
재무부에서 경호인력을 붙여주겠다 했으나 거부했다. 내 비즈니스에 꼬리를 붙이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운이 좋았다.
물론 내 운이 아니라……
‘라이히스방크 이놈들의 운이 좋았어.’
오늘이 아니었으면 독일제국의 인사는 단칼에 거절하거나 눈도 안마주쳤을테니 말이다.
영국정부의 눈을 피해 접근한 독일제국의 라이히스방크 총재는 나름 밝아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름 전략적으로 접근한 셈이다.
‘눈빛이 반짝이네.’
“디트로이트 연준의장입니다.”
“네, 명성은 익히 듣고 있습니다. 제가 라이히스방크에 틀어박혀있어도, 재무부나 금융가에 떠도는 소문들은 다 귀담아 듣는 편이거든요.”
“그렇습니까?”
“대충 몇가지만 귀담아들어도 대단하더군요. 보유하신 트러스트 숫자며 전 뉴욕금융가를 규합한 신용법까지.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음 그런가.
한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이놈들. 뭔가 있다.’
독일제국의 자존심이나 민족주의 성향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빌헬름 카이저가 민족주의나 유대주의에서 상당히 자유로운 인사라는 것은 맞는데, 황화론까자 펼친 양반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내치에는 강하나 외치로 말아먹은 황제.’
좀 웃겼던 건.
이건 빌헬름 카이저의 특징이 아니라 독일제국 전체의 장체성이나 다름없는 특징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인에게 상냥한 동네는 확실히 아니었다.
‘썩은 양배추나 쳐먹는 놈들.’
의도가 섞인 칭찬은 거북하다.
무슨 꿍꿍이일까.
신변잡기는 빠르게 끝내고 본론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하, 라이히스방크의 총재께서 대서양 건너의 변방인에 대해 이리 자세히 아신다니 쑥스럽습니다. 영광이군요.”
해석하자면.
나는 너네들이 촌뜨기라고 하는 미국인인데, 무슨 꿍꿍이로 혀에 기름칠을 하는거냐.
“그건. 두 국가의 화합과 평….”
“물론 저도 두 국가의 화합에 이바지하고 싶은 기분은 굴뚝같지만, 그 전에 확인해봐야할 사항들이 몇몇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독일제국 놈들의 본론은 뭘까.
나는 표정을 싸늘하게 굳혔다.
“본론이 뭡니까.”
“……”
라이히스방크의 총재는 자기가 생각해봐도 뭔가 이상하긴 했는지 미간을 열심히 주물렀다.
“….겉치례는 벗어던지도록 하지요.”
“그 스타일. 마음에 듭니다.”
“독일제국에 외자의 투자유치를 하고 싶어서 디트로이트 의장님을 찾아뵜습니다.”
“투자유치?”
독일이?
게르만의 자긍심 어쩌고 하는 그 독일이?
만족주의 어쩌고에 입에 침을 튀기며 싸우는 그 독일이 말인가.
깍지에 힘을 주었다.
생각보다 건수가 좀 큰 것 같았다.
‘중앙은행장이 헛소리를 할리는 없고.’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월가였으면 헛소리인지 개소리인지 뻘소리인지부터 확인해봐야겠지만, 라이히스방크면 독일제국의 공인 중 공인.
이놈들 이럴 애들은 아니다.
“독일제국은 외자유치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이리고 알고 있습니다만.”
“하하, 그간 독일제국 내에서의 투자만으로 잘 돌아간 탓이니 신께서 저희를 보우하셨나봅니다.”
“그렇군요.”
반대로 말하면.
독일제국의 투자시장은 심각한 상황에 빠져있다는 소리다. 내부투자자들로는 더이상 해결할 수 있는 빅이슈가 터졌다는 말인데……
한가지….가늠이 되는군.
“하하하.”
“….왜 웃으십니까?”
뭔지 알겠다.
청제국 때 들었던 얘기가 하나있다.
갑자기 내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고 웃음을 흘리자, 라이히스방크 코흐 총재가 움찔 떨었다.
마치 서늘한 기운이라도 느꼈는지 그의 손등으로 닭살이 돋아있었다.
나 알거 같아.
“크루프군요.”
라이히스방크 코흐 총재는 입을 쩍 벌렸다 닫았다. 아니, 냉정히 떠올리자 독일신문사만 봐도 크루프를 집어삼켰다는 정보는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애써서 쳐먹은 크루프가. 소화불량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시나리오 괜찮네.
라이히스방크는 침묵을 유지했다.
‘정답이군.’
“제 개인적으로 여러분들이 도대체 독일제국이 그 거대한 크루프(KRUPP)를 어떻게 소화하실지 꽤 궁금했는데, 보아하니 문제가 상당해보이는군요.”
“……”
“우선 저희가 보유한 현금은 총 4억 달러입니다. 당장 가용금액은 1억달러고요. 나머지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40억 달러였지만.
전체전력의 10%만 오픈한다.
“……뭐?”
그것만으로 얼빵해진 표정.
라이히스방크의 총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
“1억달러라고?”
영감님 오늘 많이 놀라시네.
“예, 현금성 자산만 그정도면 총자산은 말해 입이 아프겠죠?”
“화, 확실히 그렇군요.”
코흐 총재는 상체를 당겼다.
그의 얼굴은 더욱 비장해져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약점을 후벼팠는데도, 돌아오는 반응이 이렇다면…..’
내가 갑이군.
절대갑.
여유가 생겼다.
“아마 독일정부는 독일제국의 투자시장에 흘러갈 자금을 크루프의 국영화로 깡그리 쏟아부어버리고 있는 상황이고. 정상화까진 아직 기간이 남아있다는 문제가 있겠군요.”
라이히스방크의 코흐총재는 생각했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사리에 밝은 투자자라면 그나마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가끔 금융가나 투자자들을 만나보면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다 허송세월을 보내는 경우가 태반인데.
이놈은 날카로운 혀로 아프게 후벼판다.
‘괜히 미국의 중앙은행, 연준의장을 하는 사람이 아니군.’
그게 오히려 신용과 호감을 창출하고 있었다.
이런 능력은 투자시장에 반드시 요구되는 능력치들이었으니.
“이대로 크루프에 다 잡아먹힌다면, 독일제국을 탄탄하게 받히는 중소기업들이 몰살되고 크루프를 비롯해 티센 등의 거인들만 남겠군요.”
고인물들만 남는다 이거다.
라이히스방크 총재의 얼굴은 이젠 거의 죽어있었다.
나는 빙긋 웃었다.
“투자유치 제안은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지요.”
“정말입-”
“단. 채권으로 하겠습니다. 옵션을 제쪽에서 정하도록 해주시죠. 물론 자세한 사항은 비밀입니다.”
전환사채(CB)
채권을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으로, 채권계의 사기템 중 하나다.
이게 얼마나 사기인가.
기업이 어려울때는 채권으로 추심할 수 있지만, 기업이 잘나갈때는 주식으로 바꿔 자산가치를 펌핑시킬 수 있는 투트랙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놀라지 않는군.’
이정도는 상정해내라 이건가.
이로서 독일제국의 자금상황이 현재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전환사채 자체는 그리 악마적인 물건은 아니다. 나름 기업들이 자금을 수혈하는 시장행위였으니 말이다.
투자자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내민다.
그러니 급박하면 갑을이 형성되는 법이다.
‘옵션. 이게 사기지.’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착즙해야하는지는 의외로 선구자가 한명 지독한 영감이 있었는데, 유명한 양반이다.
워런버핏.
투자의 귀재이자, 전환사채의 대가.
단기간 나락에 빠진 우량기업이 있을때, 그는 하이에나처럼 나타나 전환사채로 요리한다.
그 전환사채로 인해.
해당 기업은 버핏의 돼지저금통으로 전락한다.
이곳은 그런 동네다.
“아참.”
“뭐죠?”
“한가지 더.”
나는 검지를 치켜들었다.
“최근 헤로인으로 법정공방중인 바이엘사를 아십니까?”
“예, 당연히 압….아.”
“저희 가문에서 소송전을 펼치고 있지요. 저희는 이곳을 먼저 투자하거나 인수했으면 합니다.”
잭트레이시를 골로 보내 존피어폰트 회장의 뒷목을 잡게한 헤로인(Heroin).
3년간 법정공방 중이라 한창이었다. 물론 1심은 바이엘의 압도적인 패배였다.
존 피어폰트 회장은 아들일이라 합의도 없이 무대포로 밀고 나가고 있었고.
그러나 이대로 망하게 둬야할 회사는 아니다. 아스피린을 최초로 상용화시킨 제약회사이기도 했고, 곧 닥쳐올 세계대전에서 쓰일 의약품 확보를 위해서라도 아직 살아야있어야할 곳이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나는 턱을 괴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까다로운 독일을 상대로 어떻게 가져오나 했는데,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올 줄이야.
내 태도에 코흐 총재의 목에 슬슬 핏대가 서는 것이 보였다.
언제 독일이랑 이렇게 대거리를 해보겠냐. 오늘은 입맛이 좀 살아나는 것 같았다.
***
“얄마흐.”
독일제국 대형은행 메이저.
드레스드너의 은행장, 얄마흐 샤흐트.
그는 파김치로 호텔룸에 복귀한 라이히스방크 총재를 좀 당황스러운 얼굴로 맞이했다.
“코흐 총재님. 표정이 말도 아니시군요.”
“월가의 영웅이라더니, 협상하는 기세가 아주 하이에나, 아니 늑대가 따로 없더군. 빈틈만 생기면 송곳니처럼 찔러 들어와. 찔린 사람은 정상적인 반응이 나오지 못하지.”
“총재는 찔린 사람이었나 보군요.그래서 몰골이…”
하…
코흐 총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생에서 이렇게 사냥당하는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프로이센이면 늑대건만.
‘최초 조건들만 보면 악랄한 조건들이 많았다.’
투자시장에서 행사할 재량권과 자유권에 관련된 거래였다. 솔직히 처음엔 아까웠다.
하지만 협상을 한 뒤, 크루프에 대해 줄줄이 읊어내리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깨달았다.
‘미국의 최연소 연준의장(중앙은행장). 이거 아무나 하는게 아니군.’
경종이 울렸다.
눈앞에 청년은 독일제국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고.
크루프의 가치를 정확하기 알고 있다고.
마치 물리학자나 수학자들이 증명한 공식으로 산출이라도 한 듯이 말이다.
속임수는 통하지 않는다.
“찔려도 제대로 찔렸어. 크루프에 대한 사정을 다 꿰고 있더군.”
“그게 정말입니까?”
얄마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실 디트로이트는 크루프의 특허를 산업스파이를 통해 빼돌리면서 얻은 정보가 9할이었지만, 코흐 총재나 얄마흐 행장이 그걸 알리가 만무했다.
아무튼 총재는 긴장했다.
“얄마흐, 이게 맞는 길인지 모르겠군. 마치 마왕의 손아귀에 우리 자유를 알아서 가져다바친것 같은 기분이야.”
“뭐, 그래도 디트로이트 이사는 웬만해선 경영권에 참견하지 않는다 들었습니다. 가끔 컨트롤타워가 필요할 때 지휘권을 위임받을 뿐이더군요.”
“나도 그걸 알고 있으니 일단 승낙을 한걸세.”
그런데 이 불안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일단 카이저께 보고는 하셨습니까.”
“복귀하자마자 알현했네. 일단 투자유치는 성공적으로 받아왔으니 만족스러워하시더군. 크루프에 집중하고 싶으신 모양일세.”
“문제는 이제부터군요.”
“그래, 투자유치도 투자유치인데 결국 해외자본. 크루프를 빠르게 정상화시켜야지.”
솔직히 크루프 정상화에 디트로이트 모건의 자금을 쏟아붓고 싶었지만, 국유화할 법인에 타국의 지분은 절대 안된다고.
카이저는 단칼에 거절했다
“투자라…..”
사실 정해져있었다.
“독일 자동차 산업이나 중공업사업, 제조산업, 철강사업, 석탄사업, 해운사업 등 투자할 구석은 많겠군.”
독일제국은 중소기업들이 탄탄한 국가다.
지역별 강세인 업종이 다 다르지만 고르게 분포해 있었다.
공업지대인 루르와 알자스로렌.
자동차산업의 슈투트가르트나 뮌헨.
독일은 중공업 뿐 아니라 화학, 제약분야의 과학기술로도 선진국이었다.
그 고도의 기술력과 과학력은 유럽열강들도 쉬이 넘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독일제국의 목숨줄을 조여온다.
“…..기술산업은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지. 화학이나 제약분야같은 경우는 수십, 수백만 달러는 우습게 깨지네.”
크루프에 집중한 지금.
그들에게 자금줄을 댈 전주들은 단기적이지만 당분간 없다.
그렇다고 단기랍시고 그들을 유기한다?
독일제국의 기술력은 몇년이나 후퇴한다.
‘전진하지 못하면 퇴보뿐이다.’
독일제국은 이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루프를 포기한다?
군국주의 기반의 프로이센 융커들이 그꼴을 두눈뜨고 지켜볼 수 있을까.
‘절대 없지.’
“하하…”
라이히스방크의 코흐 총재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두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이거 완전 외통수로군.”
디트로이트 모건.
그 월스트리트의 하이에나에겐 최고의 만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속이 뒤틀렸다.
***
“큭.”
독일제국과 1차로 협상이 끝난 뒤.
나는 히히덕거리며 재무부로 복귀했다. 마중나온 제임스가 의문의 눈빛을 보내왔다.
“기분이 좋아보이십니다?”
“아 그래보이나? 정답이다, 더없이 좋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정도로. 좋아”
미국을 2류열강 취급 하던 콧대 높던 독일.
이번 기회로 이런저런 쓸모있는 것들을 투자하거나 인수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기술반출 제한이나 여러모로 제약이 걸리긴 했지만, 독일제국의 투자기회라니 이 얼마나 맛난 먹잇감인가. 군침이 싹 돌았다.
“마치, 큼지막한 먹이가 제발로 제게 걸어오는 기분이야.”
사냥할 시간이다.
나는 눈을 초승달 형태로 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