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153)
“독일투자공사에서 바이엘에게 제안하겠습니다.”
침묵이 내려앉은 방.
나는 바이엘의 이사회장을 바라보았다.
칼 뒤스베르그.
전에 말한 아우슈비츠의 IG Farben을 설립한 설립자다.
‘물론, IG Farben을 유대인학살하려는 의도로 설립한 건 아니지.’
나치독일의 치하에서 벌어졌을 때, 칼 뒤스베르그는 이미 IG Farben에서 야인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그 당시엔 다른 독일대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나치독일의 수뇌부가 장악하고 있었으니 별 수 없었다.
아무튼.
바이엘에 있어 역사적인 인물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지금은 그저 헤로인이란 마약을 시장에 풀어버린 극악무도한 기업의 회장일 뿐이다.
“…….무슨 제안입니까.”
“사실 제안이라기 보단 통보에 가깝습니다만.”
나는 깍지를 끼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바이엘의 운명은 정해져있었다.
“저희 독일투자공사에서 바이엘의 지분 100%를 인수하고자 합니다.”
“예? 하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칼 뒤스베르그는 허허 웃음을 지었다.
평화로운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인자한 미소였지만.
이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대체 당신은 바이엘을 뭘로 보고 그런 제안을 하시는 겁니까. 이래봬도 독일화학업계에서는 업계 톱으로 군림하고 있는 대기업입니다. 그런데 독일투자공사에 지분 100%를 넘겨달라고요?”
숨이 가빠진다.
칼 뒤스베르그는 흥분했다.
쾅-!
“지금 자네의 만행을 프로이센 정부가 용서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의 이마에 성난 힘줄이 뿌득뿌득 돋아나기 시작했다.
바이엘을 독일에서 제일가는 화학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IG Farben이란 독점 트러스트도 미국의 스탠더드오일, US스틸 같은 트러스트에서 본따 설립한 독일의 화학트러스트다.
화 날만 하지.
지금 나는 트러스트의 기반을 뜯어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예.”
“뭐?”
“용서할 거라 생각한다고요.”
나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프로이센정부가.”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저를, 아니 독일투자공사의 바이엘 인수를 말입니다.”
“하! 그 무슨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하긴 뒤스베르그 입장에선 말도 안되는 헛소리처럼 느껴질 것이다.
독일투자공사란 이름을 달고 있지만 애초에 미국투자회사나 다름없었고, 바이엘의 독일의 화학업계를 책임지는 거인이나 다름없다고.
그는.
‘착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프로이센정부는 지금 우리 바이엘을 살려주려고 하고 있단 말이다! 크루프를 국유화하느라 여력은 없어 보여도 어떻게든 살리려고 제약회사 영업정지도 안하고, 자네들 독일투자공사를 소개시켜줬어! 그럼 자네들은 프로이센정부의 의향을 좀 봐줘야하는 것이 도리 아닌가? 어린 놈의 자식이 비즈니스 세계를 너무 물로 보는 거 아니냔 말이다!”
쾅-!
또다시 내리친 분노의 주먹.
하지만 나는 그에게 진실을 알려줄 의무가 있었다.
그의 착각을 바로잡아줄 책임이 있었다.
독일투자공사가 프로이센정부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어떤 위상을 가지는지.
나는 그에게 알려줘야 한다.
“프로이센정부가 왜 영업중지처분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까?”
“자네는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비즈니스의 세계는 말이네. 자본이나 도덕만으로 굴러가는 세계가 아니야.”
뭔가 헛소리가 날아오기 시작했지만.
나는 일단 묵묵하게 들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사업이란 무릇 정치와 시민들의 일자리까지 고려되는 분야란 말일세! 프로이센정부는 결코 독일제국의 대기업을 죽일 수 없을 거란 말이다!”
대마불사.
독일 지역패권을 쥐고 있는 바이엘은 지방의 노동력을 꽉 틀어쥐고 있었다. 바이엘이 무너지거나 구조조정이 시행되면 프로이센정부의 엄청난 반발을 겪어야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역시 뭔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우선.”
나는 검지를 들었다.
“저는 구조조정을 실시할 계획입니다.”
“프로이센 정부가 그걸 용서할 거라 보는가!”
“하지만 노동자들은 해고시키지 않을 겁니다.”
“…..?”
“회사구조만 바꿀 뿐, 인사재배치를 하든 뭘하든 그대로 가져가겠다고요.”
바이엘은 앞으로 활용할 방법이 무궁무진하게 널려있었다. 고작 구조조정으로 수익 좀 더 보겠다고 내 살 깎아먹을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나는 확장할 생각이라 오히려 노동력이 없어서 문제가 되겠지.
“물론 임금은 동일하게 배정할 겁니다. 차별은 있어선 안되죠.”
“지금 그걸 말이라고…..”
“두 번째.”
나는 중지를 검지와 나란히 세웠다.
이젠 이들에게 차가운 현실을 일깨워줄 때가 왔다.
“원래 프로이센의 정부는 당신네들을 영업정지시키려고 했습니다.”
“…..!!!”
칼 뒤스베르그.
그는 내 말에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눈을 부릅떴다. 마치 지금 자신이 무슨 헛소리를 들었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얼굴로 입을 쩍 벌렸다.
‘받아들여라.’
이건 현실이다.
나는 그의 허상을 지옥 밑바닥을 끌어내렸다.
“그, 그럼….”
“예.”
그가 떨리는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
나는 그의 추측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이센정부의 영업중지처분을 막은 게 저희 독일투자공사입니다. 당신네들 바이엘을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프로이센정부에게 저희가 ‘부탁’ 했단 말입니다.”
그제서야.
칼 뒤스베르그는 안개가 개이고 눈앞에 닥친 현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나는 그에게 단어 하나하나 강조하며 단언했다.
“당신네들은 프로이센정부에게 버림받은 겁니다.”
너희들은 이미 버려진 낙동강의 오리알이라고.
“그래서 저희가 ‘구제’해드리려고 온 것이고요.”
–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명언이다.
동아줄은.
이제 나 하나 남았다.
나는 싸늘한 눈으로 칼 뒤스베르그를 내려다 보았다.
소송이 진행되던 내내 보이던 당당함은 이미 잃어버린지 오래였다.
더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
며칠 뒤.
“프리드리히 바이엘입니다.”
내가 팩트로 융단폭격을 날리자, 칼 뒤스베르그 이사회장은 바이엘의 오너를 데려왔다.
바이엘 가문.
창립자의 아들인 프리드리히 바이엘이다.
‘오너 가문이라, 이제 내 말을 좀 진지하게 들어볼 생각이 든 모양이지.’
프리드리히 바이엘은 꽤 직설적으로 운을 띄웠다.
“며칠씩이나 걸려서 죄송합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정말 프로이센정부가 저희 바이엘을 버렸는지 확인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저희도 사실관계를 확인해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뭐, 알 권리 정도는 있지.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뭐라고 답변이 돌아왔습니까?”
“기존에 알고 지내던 프로이센 내각의 교육의료국 장관에게 수소문을 해봤더니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바이엘이 독일제국의 수치가 되었다는 사실도 깨달았구요.”
아편전쟁으로 영국을 까내렸지만.
사실 유럽 전역에 아편을 팔고 있던 건 독일이었다.
– 그 빌어먹을 자식들은 독일제국의 수치다! 당장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란 말이다! 으아아악!
와장창-!
이런 사실을 독일제국이나 카이저가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바이엘은 카이저의 컴플렉스를 제대로 건드려버렸다.
‘독일황실을 달래느라 좀 힘들긴 했지.’
푹 한숨을 쉬었다.
안 그랬으면 바이엘은 이미 사지절단나서 부관참시까지 당했을 것이다.
나는 독일황실을 달래는 조건으로 몇 가지 조치를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지분 100% 인수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이대로면 제 목이 붙어있는 것조차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더군요. 이미 바이엘 이사회를 통해 주주들에게 주주서한이 발송되었습니다. 지분을 넘기라는 내용의 서한입니다.”
빠른 행동력.
역시 오너가문인가.
전문경영인과의 차이점이 곧바로 드러난다.
시원시원하다.
“바이엘은 항복합니다. 일단 저도 살고 봐야겠죠. 아마 곧 지분 100% 인수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빠른 결정 감사합니다.”
“재계에서 한 푼도 못 받고 사장될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발악할 만큼 어리석진 않습니다. 그리고 돈 받을 수 있을 때 팔라고 주주서한에 협박장을 적어놨고요.”
“악역을 자처하셨군요.”
그는 푹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저는 길게 오래 살고 싶다고요. 독일황실의 카이저께 찍힌 이상 저 같은 소시민은 순순히 행동할 수밖에 없답니다.”
소시민이라.
재산 1000만달러가 넘어가는 소시민이라면 소시민이지.
“뭐, 다 좋은데…..”
바이엘은 눈을 가늘게 뜨고 운을 띄웠다.
“저희 바이엘을 어떻게 처리하실 예정입니까? 저희는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거죠?”
바이엘(Bayer).
원 역사에선 아스피린을 출시하면서 국제적인 제약거인으로 발돋움하는 제약화학기업이다.
그렇다면 제약회사로서 명성을 얻기 전에 바이엘은 어떻게 명성을 떨칠 수 있었는가.
바이엘의 시작은 염료회사였다.
사실 이 19세기 중반, 독일화학회사들은 대부분 염료회사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바이엘은 제약회사로 확장하는데 목을 메고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의약품이 헤로인이고 아스피린이다.
제약을 제쳐놓고 본다면 제약은 바이엘이란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이엘이란 빙산.
그들은 현재 전세계 염료업계의 빅3에 군림하고 있었고, 독일염료 빅3는 전세계 염료공급의 80% 이상을 독식하고 있었다.
여기서 바이엘의 지분은 무려 27%에 육박한다.
그래서.
모건회장도 부담감을 가지고 있던 것이고.
하지만 이젠 아니다.
“해체될 겁니다.”
“…….”
“화학과 제약파트로 바이엘을 두 개로 쪼갤 겁니다.”
“쪼개진 다음엔….
“예, 제약파트는 화이자에 흡수합병될 예정이고. 바이엘이란 이름은 화학파트가 계승할 예정입니다.”
염료회사로의 회귀.
그게 이들에게 닥칠 운명이었다.
“제약을 영원히 잃게 되겠군요.”
“뭐, 이미 여러분들의 손을 떠난 회사입니다. 미련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으득.
프리드리히 바이엘은 이를 꽉 깨물었다.
“이젠 부외자라 이거군요.”
“이제 이 회사는 제 겁니다. 경영간섭하시면 소송할 겁니다.”
“독일투자공사의 것이겠죠.”
“죄송하지만, 그 독일투자공사가 제 것입니다.”
“…..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상체를 힘껏 당기고 있던 프리드리히 바이엘은 또다시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바이엘은 싸인된 인수계약서의 잉크를 반쯤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보았다.
“일단 듣기나 해보죠. 당신의 비전이 무엇인지. 바이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말입니다. 전 오너로서 이 정도는 들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다 포기한 얼굴이었다.
“바이엘의 사명을 남겨놓은 이유가 있겠죠?”
꽤 감이 좋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엘의 화학파트는 전세계 염료의 1/3을 독점공급하는 세계 최대의 염료사업입니다. 헤로인의 손해배상금이나 채권콜 옵션, 불매운동에 정부의 영업정지 등을 연속으로 얻어맞거나 얻어맞을 뻔하지 않았다면 엄청 건실한 기업이었겠지요.”
사실 헤로인만 아니었으면 나는 바이엘을 집어삼킬 엄두조차 내지 못하….진 않겠구나.
내 통장엔 달러가 넘쳐흘렀다.
“그렇죠. 선대가 창립하신 바이엘은 건실한 기업입니다.”
자기최면을 하는 듯한 어조.
하지만 나는 무시했다.
“그리고 현 독일에는 그런 염료독점기업이 2개 더 존재합니다.”
바스프(BASF)와 훽스트(Hoechst).
“저는 이 시장에 미꾸라지가 되어 마음껏 흙탕물을 뿌리고 다닐 예정입니다. 염료사업을 독점하기 위해 확장할 겁니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
“거짓말이야.”
“예?”
바이엘과의 협상이 끝난 뒤.
나는 제임스와 호텔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미꾸라지처럼 들쑤신다는 게 거짓말이었다고요? 염료사업 독점을 위한 확장은요?”
“다 거짓말. 아주 새빨간 거짓말, 나는 그럴 생각 전혀 없거든.”
애초에.
뭘 믿고 그놈들에게 우리 사업구상을 알려준단 말인가. 저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프로이센 내부에 상당한 인맥을 가지고 있다고까지 까발린 상태였다.
“이용해먹은 거지.”
일부로 정보를 흘린다.
염료업계 전체로 내 메세지가 흘러가도록.
“아마 염료업계는 내가 확장하겠다고 선포한 이상 저들끼리 뭉치기 시작할 거다.”
“독점벽을 세우겠다는 거군요.”
“어. 아마 독일투자공사와 내 정체에 대해서 간헐적으로나마 간파하고 있을 거야. 엄청 예민하게 반응하겠지.”
저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지들끼리 뭉치느냐.”
아니면.
“나와 손을 잡느냐.”
혹은.
“혼자 독불장군처럼 밀어붙이느냐.”
하지만 내게는 이미 판도가 훤하게 다 보이고 있었다.
“현 독일 염료업계 판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고 있나?”
“예, 염료업계는 빅3가 틀어쥐고 있지요.”
“맞아. 그런데 빅3 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비빌 수 있는 염료기업이 하나 더 존재해.”
바이엘(Bayer)
바스프(BASF)
훽스트(Hoechst)
그리고.
카셀라(Cassella)
“훽스트는 아마 동맹으로 바스프 대신 카셀라를 선택할 거야.”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바스프는 제약사업을 하지 않거든.”
“아!”
동맹은 시너지가 나는 기업들끼리 맺어야한다.
하지만 바스프는 쌩자 화학기업이다.
제약사업도 하는 훽스트(Hoechst)입장에선 제약파트가 없는 바스프보다 제약도 가지고 있는 카셀라가 더 매력있어 보이는 것이다.
원역사에서도 그랬다.
훽스트는 바이엘의 합병제안을 내치고 바스프대신 카셀라를 선택해 상호지분교환 협정을 맺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바스프는 홀로 남게 된다.
“나는 이 바스프가 필요하거든.”
내가 어떻게든 독일황실을 어르고 달래 영업중지를 막아낸 이유.
바이엘 화학파트를 독일에 남겨둔 이유.
나는 이 바스프(BASF)를 원한다.
“우리는 내동댕이쳐진 바스프와 상호지분 교환 협정을 맺는다.”
바스프와 바이엘의 덩치는 비슷비슷하다.
상호지분교환 협정을 맺으면 대략 35%에서 50%의 지분을 가져올 수 있게 된다.
나는 애초부터.
바이엘의 아스피린도 좋지만.
바스프의 지분 35%에서 50%를 얻기 위해.
이 계획의 토대를 세웠다.
“아직까진 다 계획대로다.”
왜 바스프(BASF)냐고?
그야···.
식량생산량이 인구증가 폭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맬서스트렙과 인구통제 정책.
그것을 질소비료로 깬 하버-보슈법.
전세계 암모니아 생산량의 99%를 독점하고 질소비료를 공급해 인류를 식량부족에서 구원한 역사상 최고의 화학공정.
그렇게.
전세계 인구의 1/3을 먹여살리는 인류의 구도자.
그중 한 명, 칼 보슈(Carl Bosch)의 회사가 바로 이 바스프다.
“도련님, 혹시 어디까지 고려하고 계신 건지 미리 알아둘 수 있을까요?”
제임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즘 종종 이렇게 물어오는데, 아마 저번 독일과의 협상에서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제임스. 지금은 격변의 시대다. 그리고 난 인류의 식량사업을 독점할 생각이야.”
“예?”
“그런 계획이라는 것만 알고 있게.”
이미 카길은 얻었다.
나는 이 질소비료를 얻음으로서, 미래 인류의 식량산업을 독점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