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155)
“프랑크푸르트 금융계의 사교장입니까.”
독일 금융계에선 유명한 도시다.
헤센 주의 도시로 독일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경제의 수도로서 수많은 은행들이 위치하고 있었고, 증권거래소도 활발하게 거래되었다.
얄마흐 샤흐트는 내가 킬리안 슈타이너를 만나고 싶어하자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릴 독일은행 협회(vereins)의 사교장에 나를 초대했다.
“독일은행은 협회(vereins) 형태의 은행들으 많습니다. 킬리얀 슈타이너 전행장님도 뷔르템베르크 협회은행의 행장님이셨죠.”
“이번 협회의 사교장에 나오시는건가요?”
“예, 은퇴하셨지만 아직 그분이 독일금융계에 끼치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실상 독일금융의 기틀을 세운 아버지들 중 한분이시기에.”
독일 금융계의 거물.
킬리얀 슈타이너에 대해선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독일 금융계에서 사실 킬리안이나 구스타프 밀러 같은 금융계 거물들을 빼놓으면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다.
금융계 역시 유대계들이 꽉 쥐고 있었다.
“뷔르템베르크 협회은행은 뷔르템베르크 주에서 가장 큰 은행입니다. 뷔르템베르크 주에는 또 중앙은행이 있는데 이것도 킬리얀 슈타이너께서 설립에 지대한 공을 세우셨습니다.”
“엄청나군요.”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독일 금융계에서 그분을 빼놓으면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습니다.”
조금 다르다.
킬리얀 슈타이너. 뷔르템베르크 협회은행.
이 ‘두’ 개가 독일금융계를 꽉 틀어쥐고 있었다.
우선 도이체방크.
“도이체방크의 설립에 뷔르템베르크 협회은행이 참여했죠. 초기 설립기관 중 한 곳입니다.”
뷔르템베르크 협회은행은 나중에 도이체방크와 합병하게 된다.
뷔르템베르크 주의 슈투트가르트를 지배하고 있던 은행이자 뷔르템베르크 주의 핵심은행이었기에 베를린을 지배하던 도이체방크와 합병은 유효했다.
도이체방크는 이 합병으로 슈투트가르트의 금융계를 얻었다.
하지만 이뿐이 아니다.
“뷔르템베르크 협회은행은 뷔르템베르크 도이체협회은행과 도이체환전은행을 설립했는데, 현재 드레스드너방크 컨소시움의 핵심구성원들입니다.”
뷔르템베르크 협회은행이 설립한 두 은행.
도이체 협회은행.
도이체 환전은행.
이 둘은 드레스드너 은행 컨소시움의 핵심멤버들이다. 사실상 드레스드너 은행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뷔르템베르크 협회은행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현재 독일제국에서 드레스드너방크가 제일 거대한 은행입니다.”
“그렇습니까?”
“예, 아니었으면 저희가 어떻게 라이히스방크와 함께 크루프사 국유화에 참여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직은 도이체방크보다 큽니다.”
샤흐트는 나름 자랑스럽게 어깨를 쭉 폈다.
“대단하군요.”
드레스드너은행이 이 시점에선 더 컸다.
지금도 도이체방크가 빠르게 부상하고 있긴 하지만 본격적인 대규모 인수합병은 이루워지지 않은 시점이다. 분산되어있었다.
반면 드레스드너방크는 중앙집권화가 이뤄진 채 독일전국에 27개 지점을 운영중인 독일최대의 은행이었다.
“그래봤자 킬리안이라는 느낌이네요.”
“예, 다만 도이체방크에는 킬리안님보다 구스타프 밀러님이 관여하고 계십니다. 결국 뷔르템베르크 협회은행 소속이지만요.”
뷔르템베르크 주가 아주 지배를 하고 있구나.
이쯤되면 왜 슈투트가르트(뷔르템베르크)가 아니라 프랑크푸르트(헤센)가 경제 수도인지 모르겠는 수준이다.
슈투트가르트는 뷔르템베르크의 주도다.
“바스프는 킬리안님께서 소유하고 계시는군요.”
“예.”
이 시기 독일제국의 기업들은 보통 대부분의 주식을 창립자가 들고 있던 시기다.
본격적인 근대은행업이 시작된지 40년 정도밖에 안된 시점이기도 했고. 비스마르크 시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세워지거나 폭발적으로 성장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창립자들이 살아숨쉬고 있었다.
“킬리안님께서 대주주로 참여하고 계시는데다, 독일금융계는 그분이 틀어쥐고 계시니. 아마 킬리안님만 잘 설득하면 바스프는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거, 아예 뷔르템베르크 협회은행까지 사버리고 싶은 심정이군요.”
“하하, 그건 불가능합니다.”
얄마흐 샤흐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뷔르템베르크 ‘협회’은행이 왜 ‘협회’은행이겠습니까. 뷔르템베르크의 독립적인 경제권을 위해 설립된 은행입니다. 게다가 도이체방크가 전에 한번 합병의사를 내비췄는데 킬리안 전 행장님께 퇴짜먹었거든요.”
“아, 뷔르템베르크에 중앙은행이 있는것도?”
“예, 그것도 프로이센에서 독립된 경제권을 형성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라이히스방크(프로이센 중앙은행)과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고요.”
독립된 경제권.
하긴 이해가 안되진 않는다. 독일제국 자체가 프로이센이 독일제국을 통일시킨 형태였기 때문에 뷔르템베르크 입장에선 침략자들이나 다름없게 느껴질 여지가 있었다.
프로이센이 자꾸 자신들을 집어삼키려고 하니 그 방어기제가 이런 경제적인 독립이었던 것이다.
도이체방크는 베를린 중심의 대형은행.
뷔르템베르크의 대형은행인 뷔르템베르크 협회은행이 먹혔다는 것은……
‘프로이센이 뷔르템베르크 주를 집어삼켰다는 말 밖에 안되지 않는가.’
“킬리안님이 왜 그렇게 완고하게 거부하시는지 좀 알겠군요.”
“예, 도이체방크에 킬리안님이나 뷔르템베르크 협회은행이 참여했다고는 해도, 그 지분은 많지 않습니다. 베를린 은행가들이 다 쓸어갔거든요.”
킬리안 전행장.
그는 뷔르템베르크와 프랑크푸르트에 자신의 거점을 세우고 활동한 은행가라는 말이었다.
“흥미롭군요.”
독일제국의 역사가 곧 독일 은행의 역사였다.
현대 독일도 지방분권이 확실하게 확립되어 있는데다 지방의 중소기업들이 단단하게 기반을 다지고 있었는데, 그 원동력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주마다의 독립성이나 의지가 생각보다 강하다.
-덜컹.
얄마흐 샤흐트가 차문을 열었다.
드레스드너 은행본사는 프랑크푸르트에 있었다. 나는 이미 프랑크푸르트에 있었으니 사교장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드레스드너방크 요인들을 경호하는 가드(Guard) 수십명이 드레스드너 은행 입구를 철통같이 방비하고 서있었다.
“일단 호텔로 모실까요?”
얄마흐 샤흐트가 열어준 차 내부엔 이미 기사까지 딸려있었다.
그는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사교장에서 봅시다.”
“예,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덜컹.
나는 차에 올라탔다.
“디트로이트 의장님.”
“예.”
샤흐트가 나를 불러세웠다.
“칼리안 님은 쉽지 않을 겁니다. 자리는 주선하겠지만··· 그 분은 독일금융계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요. 더 필요한 게 없는 분이죠.”
“그렇군요.”
“···”
얄마흐 샤흐트가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싱긋 웃어보였다.
***
프랑크푸르트.
독일전역의 은행들이 집결한 두 도시 중 한 곳. 독일의 경제수도라 불리는 이곳은 독일서부의 헤센 주에 위치한 최대도시다.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증권거래소는 베를린 증권거래소와 엎치락뒤치락하며 서로 1위를 다투고 있는 경쟁력 있는 증권거래소였다.
그런만큼.
독일경제계의 거물들이 거의 대부분 은행총회에 참석한다. 프로이센 정부의 고관대작들. 프로이센 상원의 융커들을 포함해 독일의회의 의원들까지 참석한 대규모 사교장이었다.
“오셨군요.”
얄마흐 샤흐트는 먼저 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독일제국의 험악한 인상의 아저씨들만 득실거려서 좀 무서웠는데 면식이 있는 얄마흐가 오니 좀 반가웠다.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킬리안님은?”
“아직 입장하지 않으셨습니다. 킬리안님도 이젠 노년이시라 그리 몸상태가 좋지 않으셔서 중간에 잠깐 들렀다 가실겁니다.”
얄마흐는 손짓으로 나를 사교장 안쪽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킬리안님과 선약을 잡아왔으니 협상은 손쉬울 겁니다.”
얄마흐 샤흐트를 따라 사교장 안쪽으로 안내받으니 곧이어 숨겨진 룸들이 나타났다.
룸에는 이미 선객들이 몇몇 와있었다.
“음….”
룸들이 늘어선 복도를 둘러봤다.
복도엔 꽤 많은 사람들이 서있었고, 그들의 시선은 내게 집중되어있었다.
얄마흐 샤흐트가 내게 귓속말했다.
“아마 어리셔서 쳐다보는 걸겁니다. 아직 고위층 은행가들이 아니면 의장님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대다수일 테니까요.”
“아.”
내 존재가 이질적이긴 하다.
턱수염이 북실북실하고 덩치는 집채만한 아재들이 바글바글 모여있으니 갓 성인된 내가 섞여있으면 이상해보이는 것이다.
이거, 수염을 기를수도 없고.
‘이거 만만하게 보이는거 아니야?’
일순 걱정이 스쳐갔지만, 이내 털어버렸다. 지네들이 만만하게 보면 뭐 어쩔건가.
내가 독일투자공사의 총재이자 미합중국 연방준비제도의 의장이거늘.
그냥 잡아 족치면 된다. 간단하다.
그때 한구석이 시끌시끌해졌다.
어느샌가 사라진 열마흐가 시끄러워진 곳에서 한 노인을 에스코트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형형해 잘못하면 베일 것만 같았다.
‘그보다 덩치가 산만한데?’
독일놈들 하여간 피지컬은 사기라니까. 내가 중얼거리는 동안 어느새 노인은 내 앞까지 다가와있었다.
“자네가 디트로이트 모건인가.”
노인은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형형한 눈빛은 내게 대답을 강요하고 있었다.
“예.”
“그렇군. 만나서 반갑네. 코흐나 샤흐트에게 말은 많이 들었네.”
덥썩.
그의 억센 손이 내 손을 틀어쥐고 몇번 흔들었다. 행동은 거침없었지만 그렇다고 불쾌하지는 않았다.
“내가 킬리안일세.”
드디어 최종보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
“늙어서 그런가. 요즘 참을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네.”
사교장의 한 룸.
킬리안과의 협상장.
나는 어김없이 콜라병을 따 잔에 따랐다. 킬리안은 내가 콜라를 따라도 별 언급은 하지 않았다.
“늙었다니요. 아직 정정해 보이십니다.”
말하고 살짝 후회했다.
21세기 기준으로도 70대는 노인인데 정정하다고 하는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햇갈렸다.
하지만 정정해보이는건 진짜였다.
머리카락은 좀 허전하지만 풍채가 크고 사람 자체가 단단해보였다.
‘….나보다 건강해보이는데.’
“말만이라도 고맙군.”
킬리안은 헛헛하게 웃으며 커피잔을 들었다. 얄마흐는 그의 옆에 앉은채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하긴 얄마흐 입장에서 킬리안은 독일근대은행 창시자급의 까마득한 선배였으니 어쩔 수 없긴 하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좀 딱딱했다.
“독일투자공사는 바스프를 인수하고 싶다고?”
킬리안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채 커피잔을 호로록 마시며 물어왔다. 나는 순간 뭐라 대답해야할까 1초 정도 망설이고 고개를 저었다.
“인수가 아니라 상호지분교환을 하고 싶습니다.”
“상호지분교환이라, 이거 될수있으면 합병을 추진하고 싶은건가?”
“맞습니다.”
“그렇게 되면 전세계 시장점유율이 60%안팎으로 계산되겠군. 독일염료의 독점회사라. 나쁘지 않아.”
탁.
킬리안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이건 그가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는 일종의 스위치라는 것을.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최근 바이엘의 애송이 하나가 사교계를 휘젓고 다니며 자네 뒷담을 좀 많이 하더군. 알고 있었나?”
“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그는 고개를 한차례 끄덕였다.
킬리안의 얼굴은 표정이 잘 없어 읽기가 힘들었다. 표정이 없는 사람은 협상하기 가장 까다로운 상대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무표정한 칼리안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럼 훽스트와 카셀라가 물밑에서 합병논의를 하고 있는것도 자네 의도대로라는 소리군.”
‘벌써 그 둘은 협상에 들어간건가.’
괜히 독일금융계의 거물이 아니다.
시장이 흘러가는 흐름따위 몇마디 정보를 듣는것만으로 핵심을 딱딱 짚었다. 그의 귀에 들어가는 정보들도 고급진 정보들 뿐이었고.
재밌네.
이렇게 된 이상 숨기는건 의미가 없었다. 숨겨지지도 않을거고.
“예, 맞습니다.”
“당당한걸보니 배짱도 있고.”
“숨기는게 의미 없을 것 같았거든요. 말씀대로 제가 바스프와 상호지분교환을 맺기 위해 일부로 그 둘을 엮었습니다.”
“왠지 그럴 것 같았어. 내가 자네에 대해 들은 소문이 좀 있거든. 아주 날아다닌다던데. 흥미롭군.”
‘……소문?’
나는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킬리안은 나에 대해 무슨 소문을 들은 걸까. 들었다면 누구에게 들은걸까.
궁금했다.
하지만 물어봐도 딱히 알려줄 것 같진 않았다.
정보는 생명이니까.
‘이미 다 조사는 끝낸 뒤라는거군.’
나는 눈빛을 가라앉혔다.
내가 그를 조사했듯이.
그도 나를 조사했다.
‘협상이 까다로워질수도 있겠어.’
내심 긴장을 끌어올렸다.
사실 당연한 일이지. 결국 협상은 정보의 격차와 활용도로 그 승패가 갈리는 두뇌싸움이자 세치 혓바닥의 전쟁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전에 정보를 얼마나 많이 파악느냐.
인맥과 경험, 그리고 노력의 영역이었다.
킬리안은 턱수염을 쓸었다.
“내가 합병결정을 내리면 바로 절차에 들어가는건가?”
“저희 독일투자공사는 드레스드너방크를 주관사로 의뢰했습니다. 얄마흐 행장님은 실력이 좋으시죠.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될 겁니다.”
“그래, 얄마흐라면 믿을만해.”
옆에 앉아있던 얄마흐 샤흐트는 움찔 몸을 떨었다.
킬리안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폭탄선언을 내뱉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럼 합병을 추진하도록 하지.”
아직.
협상을 시작한지 5분조차 안지난 시점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