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16)
“베이론, 자네 장갑은 왜 벗었나?”
제임스가 봤을 때, 베이론의 외모는 같은 남자가 봐도 잘생겼다고 생각할 정도로 유려했다.
강물처럼 흘러내린 칠흑색 머리카락,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 독일풍의 이지적인 이목구비와 차가워 보이는 기세까지.
하지만 흉측하게 찢어진 맨손의 흉터들은 잘생긴 외모를 지워버릴 정도로 오싹했다.
베이론(Veyron)은 제임스의 물음에 입 꼬리를 말아올리며, 품에 넣어놨던 검은색 가죽장갑을 꺼내 도로 손에 끼웠다.
꽈악-
“모건 이사님에게 제가 슬럼(Slum) 출신이란 첫인상을 쐐기처럼 박아 넣고 싶었습니다.”
“아니, 왜?”
“그래야 베이론이란 존재가 임펙트 있게 각인될테니까요.”
저벅. 저벅.
제임스와 베이론은 디트로이트 모건의 의전을 위해 월도프-아스토리아 정문을 걸어나왔다.
미리 입구에 세워놓은 벤츠-빅토리아의 엔진은 뜨거운 열을 덥히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첫인상이 쓰레기가 되든 진창이 되든. 일단 베이론이란 사람을 주목하게 만들어야 황금 같은 성과를 채광해냈을 때, 더 극적인 평가를 받지 않겠습니까.”
“노이즈 마케팅인가!”
베이론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디트로이트 도 모건.
베이론이 현재 근무하는 헤지펀드의 대표이사이자, 모건가문의 차남.
코카콜라 컴퍼니의 대주주를 거머쥐고 해군부의 군납을 뚫은 굴지의 기업인이자 DWM에게 북미대륙사업권과 아일랜드 사업권을 받아낸 죽음의 상인.
그가 다루는 자금만 1000만 달러를 넘어 2000만 달러를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이 경이(驚異)의 이적들은 디트로이트 도 모건이 불과 3개월 만에 이룩한 업적들.
베이론은 진중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비서실장님, 얼마 전 해군부에서 철퇴를 휘둘러 JP모건은행을 아주 쑥대밭으로 갈아버렸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그건 또 어디서 들었나?”
“와튼스쿨에 잠깐 들를 일이 있었는데, 은사님의 전화 너머로 통화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꼬리에 불붙은 고양이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패닉이 오셨길래 뭔가 했었죠.”
베이론의 말에 제임스는 조용히 입에 지퍼를 잠구는 시늉을 했다.
“자네, 그 사건은 JP모건은행 내부에서도 기밀로 다뤄지는 건일세. 목숨 아까운 줄 안다면……알지?”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베이론은 기억했다.
해군부가 휘두른 묵직한 철퇴에 JP모건은행이 쳐 맞은 것도.
잭 모건이 근신을 명령받은 것도.
결국 중심엔 코카콜라 컴퍼니가 있었고. 그 뒤엔 흑막처럼 디트로이트 모건이 서있었다.
피부로 오싹 소름이 돋았다.
‘디트로이트 도 모건……무서운 사람이다. 어리다고 얕보다간 여럿 피보겠군.’
덜컹-
제임스는 벤츠-빅토리아에 올라탔다.
“모건 이사님도 좋지만, 견습기자들을 어떻게 구슬려야 월스트리트저널로 끌어들일 수 있는지부터 좀 생각해보게. 자네도 비서실의 일원이지 않나. 비서실의 일부터 먼저 생각하는게 어떻나?”
“따로 모건 이사님께 언질 받은 내용이라도 있으십니까?”
베이론의 칼날같은 질문에 제임스는 헛헛하게 웃었다.
“눈치가 귀신같군. 이사님께서 뉴스보이들을 활용해보라고 하셨네.”
“……!”
베이론은 감탄했다.
자신도 방금 막 미국 동북부 명문대의 견습기자들을 끌어들이려면 뉴스보이들을 활용하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던 참이었으니까.
혹시 모건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 자신이 떠올린 아이디어의 키워드를 줄줄이 읊었다.
“뉴스보이, 0센트 그리고 성과급.”
“……자네 진짜 귀신같군. 자네 말대로 뉴스보이들을 통해 월스트리트저널을 0센트로 대학 내 캠퍼스에 뿌리는 방법이네.”
“당연히 1면에는 모집공고가 대문짝만하게 찍혀있을 테고, 뉴스보이들에겐 뿌린 부수만큼 성과급을 지급해야겠군요.”
“정확하네. 자네 좀 치는군?”
제임스는 그의 추론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베이론은 반대로 디트로이트 모건을 향해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하달한 명령의 악랄함 때문이다.
– 뉴스보이들에게 뿌린 부수만큼 성과급을 지급한다.
언뜻 보면, 허술해 보이면서도 딱히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듯, 허술해 보이는 부분에 핵심이 있었다.
제임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0센트면 처음엔 신문을 받는 사람들도 거리낌이 없을 테고, 신문독자들은 공짜로 신문이 생겼으니 소소한 행복을 누리겠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란 단어를 1차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지 않겠나.”
신문독자들의 측면.
“하지만 성과급에 눈이 먼 뉴스보이들은 점점 사방팔방에 미친 듯이 신문을 뿌리고 다니겠지. 그것도 신문독자들에게 공짜로 건네는 게 아니라 캠퍼스의 바닥이나 벽면에 도배하면서 말이네.”
“미국 동북부 명문대의 캠퍼스가 월스트리트저널 신문지의 파도에 뒤덮히겠군요.”
노이즈 마케팅.
월스트리트저널은 캠퍼스의 벽지라도 된 듯 도배될 테고, 대학생들이나 교수들은 이 같은 만행에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이름은 확실히 쐐기처럼 그들의 머릿속에 때려 박힐 것이고.
하지만 이 전략에 세공된 악마의 장치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죗값은 뉴스보이들이 뒤집어쓰겠군요.”
“그게 핵심이지. 결국 대학캠퍼스를 신문지로 도배하고 다닌 주체는 뉴스보이. 월스트리트저널이 아니니까.”
“월스트리트저널 사이사이에 0.5할정도 간간히 뉴욕타임즈나 뉴욕트리뷴의 신문지를 끼워놓으면 더 재밌어지겠군요.”
“시선분산이라…..나쁘지 않군.”
미필적 고의.
사실 월스트리트저널의 성과급 제도 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이런 성과급 제도의 허술한 면을 악의적으로 이용한 뉴스보이들의 탓이 가장 큰 것도 사실이었고.
하지만 성과급 전략은 애초부터 뉴스보이들이 악용할 것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입안한 미필적 고의를 활용한 악마같은 작전이다.
“사실, 뉴스보이들이 우리가 낚시바늘에 끼워놓은 미끼를 물지만 않으면 되는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
슬럼 출신의 베이론은 인간이 욕심이란 악마에게 얼마나 취약하고 집착하는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대학 내 그 누구도 뉴스보이들이 월스트리트저널에게 성과급을 대가로 받았든 말든 신경조차 안 쓰겠지요.”
“관심도 없겠지. 외려 월스트리트저널(WSJ) 1면에 실린 견습기자 모집공고에 더 신경을 쓰지 않을까?”
“결국 달러에 눈이 먼 뉴스보이들만 피를 본다…..”
피도 눈물도 없는 건가.
베이론은 디트로이트 모건이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도덕적인 틀에서 벗어난 19세기식 인성질.
최고의 일자리가 아닌가.
씨익.
“비서실장님, 그 작전에 한 가지 장치를 더 추가해 봐도 괜찮습니까.”
“경청하고 있네.”
“부가옵션으로 성과급의 액수를 늘리는 대신, 최소할당제를 걸면 어떻겠습니까.”
베이론은 이지적인 이목구비로 살벌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뉴스보이들에게 두 가지 옵션을 제안한다.
1번은 뿌린 부수만큼 성과급을 받는다.
2번은 성과급의 액수를 높이는 대신 최소할당량을 채워야한다.
즉, 2번 옵션은 뉴스보이들에게 아예 대놓고 캠퍼스에 도배하라고 등 떠미는 선택지나 다름없지만.
베이론은 확신했다.
자신이 아는 뒷골목의 소년들이라면, 반드시 2번을 선택할 것이라고.
‘선택은 너희들이 한 거다.’
그러니 책임도 너희들이 져야지.
베이론이 자못 사악해 보이는 웃음를 흘리자, 제임스는 묘한 표정으로 베이론을 빤히 응시했다.
“베이론 자네……”
“……”
짝.
“뭘 좀 아는군.”
“과찬이십니다.”
결국.
베이론은 슬럼 출신이었고.
제임스는 대영제국 출신이었다.
……아무튼 그랬다.
***
1898년 2월, 메사추세스 케임브리지.
하버드 대학교.
Veritas.
진리.
– 월스트리트저널 호외요 호외!
– 0센트에 뉴욕 월스트리트의 고급정보들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월스트리트저널에서 견습기자를 모집한답니다! 단 0센트!
콰직.
하버드의 교정은 뉴스보이들의 고함과 월스트리트저널의 신문으로 도배되었다.
교정을 오가는 대학생들은 바닥에 씹히는 신문지들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1면에 실린 모집공고에 눈길을 보냈다.
특히 뉴욕 언론사에 견습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기자들은 더욱 더.
“견습기자를 모집공고?”
하버드 크림슨(Crimson) 소속의 학생기자들은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월스트리트저널의 신문지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월스트리트저널 1면의 모집공고를 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월급이 50달러? 출퇴근 자유에 추가로 기사의 질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한다고?”
미친건가?
하지만 이미 크림슨의 학생기자들의 머릿속엔 50달러와 출퇴근 자유, 성과급이 밤하늘의 별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뉴스보이들의 고함 따위, 자본주의 치료앞에선 들리지도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이라고 했지? 그러면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발행되는 경제지인가?”
“너는 공부 좀 더해야겠다. 뉴욕증권거래소에 출근하는 투자자들이라면 월스트리트저널을 모를 수가 없을걸?”
“이, 일단 선배들한테도 말씀드리자.”
다른 미국 동북부의 명문대 8곳의 대학신문에서도 파격적인 월스트리트저널의 모집공고에 뒤집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이란 이름이 학생들의 머릿속에 쐐기박힌 순간이었다.
***
하아…..
“대학원 들어오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졸업하고 뭐해야하나.”
한 사내가 하버드 교정을 걷고 있었다.
그는 하버드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밝고 있는데, 공무원으로 가야할지, 교수로 가야할지, 아니면 월스트리트의 대형은행 쪽으로 가야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에효. 프린스턴 때랑 다를 게 없잖아.”
일단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은 은행과 통화량에 관한 논문이긴 한데.
그의 최대 관심사는 1893년 경제공황같은 칙칙한 주제들뿐이라, 월스트리트에서 자신이 이런걸 연구한다고 말하고 다녔다간, 다음날 호텔에서 변사체로 발견될지도 모른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음, 역시 월스트리트는 아닌 것 같다.”
워싱턴 D.C.의 재무부 공무원이나 지금 다니고 있는 하버드 대의 교수직을 맡는게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계속해서 월스트리트가 자꾸 눈에 밟혔다.
사내는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공무원이나 교수직은 재미없어보이고, JP모건은행 같은 쪽이 더 재미있어 보이는데. 미치겠군.”
콰직.
한참 좌뇌와 우뇌가 갈라져 칼싸움을 벌이던 그때, 그의 구둣발에 하버드 교정에 흩뿌려진 신문지가 밝혔다.
사내는 허리를 굽혀 신문지를 주워들었다.
+
The Wall Street Journal
+
“…….월스트리트.”
촤락-
홀린듯이 중얼거리며, 월스트리트저널을 펼쳐들었다.
+
견습기자 모집공고.
+
하버드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자신에겐 한 500만 광년 떨어진 분야였지만, 왠지 취준생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마법의 단어에 사내는 모집공고를 읽어내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을 읽어내려가는 사내는 눈은 점점 커졌다.
“월 50달러, 출퇴근 자유, 추가로 성과급. 뭐지 천국인가?”
요즘 기자들의 페이가 다 이런 식인가.
견습기자가 이정도면 기성의 기자들은 도대체 얼만큼의 페이를 받고 있는 거지?
비열한 놈들, 이래놓고서 매일 박봉이나 받는다고 불평하고 다니는 건가?
나는 랩실에서 노예처럼 부림당하고 있는데?
“이런 빌어처먹을 빨갱이 새끼들.”
콰직-
랩노예 대학원생의 비애와 섞여 울분에 찬 분노를 토하려던 그때, 사내의 귀로 크림슨 학생기자들의 광기어린 환호성이 들렸다.
– 50달러! 50달러!
– 우워어어어억!!!
사내는 심연에 처박은 이성을 다시 끄집어올렸다.
……견습기자들에게도 평범한 조건은 아닌 것 같았다.
“흠흠.”
촥촥-
이성을 되찾은 사내는 다시 구겨진 신문지를 빳빳하게 펼쳐들어, 차분히 채용조건을 정독했다.
그러자 추가적으로 군침이 도는 조건들이 몇몇 눈에 들어왔다.
“학과제한 없음? 석박사 경력우대. 기자 관련 경력은 무관. 투잡가능.”
이놈은 진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지라더니, 기자들보다 관련종사자들의 이슈와 전문가들의 사설을 실으려는 모양인데.
1차 모집인원은 300명, 추가모집은 있지만 이 월스트리트저널이 8개의 대학교에 뿌려졌다고 친다면…….
사내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선착순?”
젠장.
다시 월스트리트저널 신문지에 얼굴을 거의 파묻었다. 선착순이란 건 알았는데, 어디로 접수해야하는지 찾아야했다.
최하단까지 시선을 내리자, 모집공고를 띄운 회사명이 1면 하단에 조그맣게 적혀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그리고……”
+
헤지펀드(Hedge Fund)
+
헤지펀드?
최근에 들어본 이름이다.
분명 랩실의 교수들끼리 대화에서 들어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뉴욕 월스트리트에 1000만 달러 규모의 기금이 생겼다든가. 투자기관인 헤지펀드의 운용방식이 흥미롭다든가.
분명 헤지펀드의 창립자 이름이……
“……디트로이트 도 모건. 어떤 사람이려나.”
에이브람 피아트 앤드류.
훗날 오웬과 함께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의 법안 초안을 작성해 미국 경제의 토대를 닦은 거인도 광기어린 견습기자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