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161)
베스트팔렌의 에센.
중공업 크루프(Krupp)의 본사.
덜컹. 덜컹.
장성급의 의전.
에센시의 거리로 독일제국군의 마차열이 이어진다.
거친 말발굽소리.
전투마에 올라탄 기병대가 마차열을 호위한다.
엄숙하고 삼엄한 분위기가 에센시의 거리로 전염된다.
“각하. 거리로 시민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놔두게. 크루프의 직원들 아닌가. 훌륭한 인적자원들이군.”
“…..알겠습니다.”
부관은 입을 다물었다.
덜컹이는 마차.
몰트케는 무심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훌륭한 인적자원들이긴 한데, 복지가 너무 좋아도 지출이 증가하는 게 아닌가 모르겠군. 나 때는 말이야. 한창 전장에서 활약했을 땐 흙바닥을 굴러다니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
‘당신은 지휘관이었잖아!’
부관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얼굴 만큼은 철판을 단단히 깔고 미소를 지은 채 몰트케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장성급의 부관은 파리목숨이다.
정말 마음에 안 들었지만 기름칠을 한 혓바닥이 현란하게 굴러갔다.
“전쟁영웅의 고충을 일반인들이 어찌 알겠습니다. 다만 시민들도 또한 독일제국군의 위엄과 권위에 진심으로 자부심을 느끼며 존경하고 있습니다.”
“놈, 혓바닥이 현란한게 입만 살았군.”
독설을 내뱉으면서도 씨익 미소를 짓는 몰트케.
부관은 인생 참 살기 힘들다는 걸 느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자네 말대로 독일제국군은 존경을 받는 독일제일의 집단이지. 시민들은 귀족들의 권위에 좀 존경심을 보일 필요가 있어.”
몰트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노회한 자본가들도 말이야.”
크루프의 이사회.
몰트케 준장은 알고 있었다.
무릇 사회(군대)생활이란 기선제압으로 하급자를 휘어잡는 행위다.
베를린궁의 명령으로 이사회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니 몰트케 자신은 자본가들을 휘어잡을 의무가 있었다.
“군대식으로 운영해야겠군.”
‘…..맙소사.’
이건 아니다.
기겁한 몰트케의 전속부관은 내심 크루프사의 직원들을 걱정하며 항변했다.
“……각하. 군대식 운영은 직원들의 반발을 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최근 사민주의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파업이라도 일어나면 골치아파질 여지가 있습니다.”
“그럼 더더욱 강경하게 대처해야지.”
“하지만 각하. 최근 베를린궁의 분위기는 유화파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
“죄송합니다. 제 짧은 사견입니다만, 카이저께서 사민주의자들을 수용하는 분위기이지 않습니까. 각하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싶습니다.”
“쯧.”
카이저가 언급되자, 몰트케 준장은 턱을 괴었다.
그도 카이저의 기조를 거스를 용기는 없었다.
“참고하지.”
“감사합니다.”
“다만.”
몰트케는 부관을 노려보았다.
“의견진정은 좋지만 내가 상관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도록. 자칫 건방지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항상 명심하게.”
“…..죄송합니다.”
“그래.”
달칵.
몰트케는 화중시계를 열었다.
“이제 곧 정오가 되는군.”
“도착하는대로 식사 준비하겠습니다.”
“부탁하지.”
“예.”
부관은 품에서 편지봉투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좀 늦었지만 크루프사 휘하의 샤프하우젠셔은행으로 편지봉투가 한 봉 도착했습니다.”
“은행?”
몰트케는 벌써부터 지끈거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보낸 건가.”
“독일투자공사에서 보낸 전문입니다. 독일결제은행을 신설할 예정이고 샤프하우젠셔은행의 참여를 바란다는 내용입니다. 투자제안서도 껴있습니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군.”
몰트케는 이마를 짓눌렀다.
“자네가 알아서 처리해. 머리 잘 쓰고 계산 빠른 부관으로 붙여달라고 부탁했으니 그정도는 할 줄 알 것 아닌가.”
“……예, 다만 결재는.”
“서류철만 올려보내. 결재는 싸인만 하면 되지?”
부관은 편지봉투를 지긋이 읽어내렸다.
“예, 그럼 일단 수락하는 방향으로 가보겠습니다. 크루프사에 딱히 누가 되는 내용은 없어보입니다.”
“그래.”
“그리고 몇 주 뒤에 독일결제은행 총회를 가진다고 합니다.”
“그거 꼭 참석해야 하나?”
“앞으로의 비즈니스를 생각해보면 참석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쯧.”
몰트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사업이란 거 머리만 아프군.”
“하하…..”
망했구나.
그 모습을 본 부관은 앞으로의 암담한 미래가 머릿속으로 시커멓게 그려졌다.
***
프랑크푸르트(Frankfurt).
구 독일로스차일드 본점.
“배를린 은행권은 거부했습니다.”
“그런가.”
베이론이 보고했다.
일단은 베를린 은행권에도 독일결제은행 제안서를 발송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
사실 거절할 것 같았다.
내가 독일로스차일드를 뺏어서 낼름 삼켰으니 베를린 은행권과는 당분간 냉전이다.
좀 아쉽긴 했다.
“잘 빠져나갔군. 운이 좋아.”
“…..빠져나가다니요?”
“아니, 무시해. 혼잣말이야.”
베를린 은행권도 이 기회에 침발라놓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하지만 베를린만 거절했지 다른 은행권들은 속속들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북독일은행 이사회가 전면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그들도 독일결제은행에 합류한다고 합니다.”
“좋아, 그런데 우리의 투자제안은?”
“투자제안도 받아들였습니다.”
이중방어책이다.
우선 막대한 투자금으로 참여은행들의 지분을 얻어 대주주로 등극한다.
그 뒤 독일결제은행의 지분구조에 참여시킨다.
대주주는 거부권이 있다.
거부권으로 은행들의 배신을 사전차단시킬 수 있다.
‘배신해도 딱히 상관은 없지. 어차피 내 목적은 침바르기다. 지분만 있으면 돼.’
베를린 은행권도 언젠가 침발라야지.
킬리안 그 영감쟁이는 프로이센을 싫어하는 것 같았지만 내 입장에선 다다익선이다.
베를린에도 침을 발라놓고 싶었지만 진짜 아쉽네.
“베이론, 티센에선 연락 없어?”
“티센은 아직 거부하진 않았지만 대담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탐색전을 하고 싶은 모양이던데요.”
“탐색전이라.”
내 속내가 들킬 걱정은 없었다.
이 세계관은 아직 그 누구도 세계대전을 모른다.
인류 수백만을 고기분쇄기에 갈아넣을 참상을 그 누가 예상할까.
티센의 요청은 간단하다.
아마 내가 어떤 인간인지가 궁금한 것이다.
“아마 서독일 은행들의 공격적 M&A를 보고 뭔가 느낀 모양이네. 이 자금의 출처를 확인하려고 만나자는 거겠지.”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 괜찮아. 들켜도 돼.”
어차피 티센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다.
내 제안을 거부하고 독일결제은행에 가입하지 않는다면 서독일에서 혼자 고립될 뿐이다.
고립된다는 의미는 경제권에서 퇴출된다는 의미.
티센이 이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다.
“죽기 싫으면 합류하겠지.”
“하지만 도련님, 티센(Thyssen)입니다. 독일 제일가는 철강기업인데 이렇게 배짱 부려도 괜찮은 겁니까?”
“베이론. 독일은 좀 특수해. 철강이 많아. 부담스러울 정도로.”
루르공업지대.
자를란트(자르분지).
엘자스-로트링겐.
유명한 광물매장지였고.
죄다 서독일이다.
이 세곳의 광물매장량은 미쳐돌아간다.
엘자스-로트링겐의 경우 프랑스 철광석의 90%가 매장되어 있고.
루르, 자르 공업지대는 독일 석탄의 50%가 매장되어 있다.
“티센(Thyssen) 혼자 독식하기엔 너무 커.”
물론 티센이 가져가는 시장파이는 크다.
그 어마무시한 덩치.
무아지경으로 뽑아내는 철강량은 미쳐돌아간다.
하지만 그뿐이다.
광물매장지는 광활했고, 경쟁사는 우후죽순 솟아나고 있었다.
“크루프군요.”
“크루프 뿐만이 아니야. 경쟁사들이 수두룩해.”
피닉스철강, 라인철강, 호슈철강 등.
서독일 공업지대에 널려있는게 광산기업이고 철강기업이었다.
티센 보다 작아서 그렇지.
굳이 티센이 아니어도 대체품들은 많았다.
저들은 선택받는 입장이고, 우리는 ‘선택하는’ 입장이다.
“티센은 거절해도 다른 철강회사들은 거절 못해.”
“왜죠?”
“하하. 그들에게 대출해준 은행이 다 우리 편인데 개기려고? 죽으려고 환장한 거지.”
“아.”
티센(Thyssen)이 아무리 크다한들.
자금력으로 미국의 국부펀드에 비빌 수 있을까.
국부펀드(Sovereign Fund).
미국연방정부의 예산과 뉴욕은행권들의 투자금이 예정된 무지막지한 사이즈의 펀드다.
아직은 재무부의 예산밖에 편성되어 있지 않다.
‘그래, 고작 미국예산의 1%밖에 투자되어있지 않지.’
당연히 반어법이다.
고작은 개뿔.
손으로 하늘 가리기지.
서로 부딪히면 교통사고다.
티센(Thyssen)은 중환자실에 실려가리라.
“그러니 티센은 우리에게 붙을 수밖에 없어.”
“……굉장하군요.”
“아마 티센의 면담요청도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정하려는 시도겠지.”
나는 서류철을 뒤적였다.
문제는 크루프(Krupp)다.
티센은 이대로 합류하겠지만 크루프는 확실하게 딱 잘라서 단정하지 못한다.
프로이센 정부가 그들을 뒷받침하고 있었으니까.
‘정보도 문제다.’
아직 프로이센왕국, 특히 군부 쪽에는 특별한 연줄이 없었다.
동독으로 가면 확실히 정보전에서 밀린다.
베를린 은행권도 우리 편이 아니고.
“까다롭네.”
사업가들은 오히려 읽기 쉽다.
그들이 원하는 이익이 뭔지 내 눈에 훤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이센정부는 그게 어렵다.
저 미친 융커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대체가 알 수 없었다.
항상 상상이상의 똘끼를 보여주는 집단이었으니.
‘……정보가 필요하다.’
독일 군부와 연결된 정보통 어디 없나?
“이사님!”
쾅-!
그때 이사실 문이 벌컥 열렸다.
헤지펀드에서 독일로 파견된 비서실 직원이었다.
“바쁘신 와중에 죄송합니다. 크루프에서 답신이 도착했습니다.”
“크루프에서?”
나는 내심 바짝 긴장했다.
크루프가 거절하면 일이 좀 복잡하게 꼬일 수 있었다. 만약 거절한다면 이건 크루프만의 의지가 아니다. 프로이센 정부의 의지까지 섞여있다고 봐야 했다.
비서실 직원은 가뿐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크루프에서 승낙했습니다.”
“그런가?”
베이론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웠다.
야근일 수가 줄어든다는 사실에 얼굴이 상기되었다.
하지만 비서실 직원의 얼굴엔 암운이 드리웠다.
나는 직감했다.
‘일이 꼬였구나.’
“예, 추가적인 조정일정만 잡아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허.”
이어지는 한탄소리.
베이론의 얼굴이 석상처럼 굳었다.
‘추가적인 조정일정.’
정부에서 흔히 쓰는 우회답안이다.
“혹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 따위의 답변이 온 건가?”
“예.”
“전형적이군.”
“이사님. 아마도 실무진의 답변입니다. 이거.”
베이론이 인상을 팍 구겼다.
나도 동의한다.
“언제든 파토날 수 있습니다.”
“그래.”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책임회피성 답변은 답변이 아니다.
아마 ‘추가조정’ 대담에 이사급이 참석하면 그때서야 확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주의하게.”
정부.
특히 프로이센 정부는 조심해야 한다.
“저놈들은 국익이 따라 행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해. 이사급의 심사가 뒤틀리면 뭔짓을 할지 몰라.”
그들은 돌발변수 투성이었다.
군부출신들로 빼곡한 프로이센 융커들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세심하게 대비하자고. 해산해.”
“”예!””
내 해산명령과 동시에, 비서실 직원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몇 주 뒤.
프랑크푸르트(Frankfurt).
“티센(Thyssen)입니다.”
독일의 철강기업 티센의 회장.
아우구스트 티센이 협상단을 이끌고 프랑크푸르트로 내려왔다.
“협상하기에 앞서, 디트로이트 모건 의장님께 저희 티센이 얻은 정보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정보?”
“예, 비밀리에 접수한 기밀정보입니다만. 아무래도 현 독일결제은행에 제일 필요한 정보 같아서 말입니다.”
“기밀……그걸 저희에게 공개하시는 저의가 뭡니까.”
나는 깍지를 끼고 티센을 노려보았다.
확실히 정보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티센의 회장이라면 손에 넣을 수 있는 극비들도 많을 테고, 아마 독일제국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사안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
내 협상철칙이다.
내가 적극적으로 나오기 보다 한 발 물러서자, 티센은 능글맞게 미소지었다.
마치 내가 그 질문을 할 줄 알았다는 듯.
“저희 티센의 몸값을 높이려고요.”
스스럼 없는 그의 한마디에.
내 입매는 크게 호선을 그렸다.
그리고 확신했다.
티센(Thyssen).
넘어왔구나.
“한번 들어보시렵니까?”
티센의 압묵적 동의.
그들의 합류에 독일제국의 철강업계엔 실시간으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나는 정중히 손짓했다.
“예, 부디.”
“프로이센에 새 이사회장이 임명되었습니다.”
티센 회장은 잠시 말을 골랐다.
“저희는 이 인물이 프로이센 군부의 낙하산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프로이센 군부요?”
내심 놀랐다.
나는 당연히 프로이센 내각에서 가져갈 줄 알았다.
설마 군부인사를 다이렉트로 꽂아넣을 줄이야.
크루프를 전쟁기계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베를린궁의 굳건한 의지가 느껴졌다.
독일황실의 카이저도 화끈하네.
“그보다 낙하산이라니. 하자가 있는 인물이군요.”
“예, 이번에 보임된 군부인사의 계급이 준장입니다. 아무래도 크루프의 이사회장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확실히 베를린궁이 집중하는 건치고 준장은 계급이 낮다.
더더욱 궁금해지는데.
“뒷배라도 있나보군요. 대체 누굽니까?”
“몰트케.”
티센 회장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헬무트 폰 몰트케. 일명 ‘소몰트케’로 불리는 인사입니다.”
소 몰트케.
제1차세계대전에서 슐리펜 계획을 말아먹은 1등공신.
프로이센 군부의 무능아.
대 몵트케와 비교해 호부견자 그 자체.
평이 썩 좋지 못한 인물이다.
나는 턱을 쓸었다.
‘나쁘지 않은데?’
어쩌면 괜찮게 구워삶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쟁영웅 대 몰트케 원수의 조카군요.”
“예, 이 인물은 아마 향후 ‘저희’의 사업계획에도 지대한 변화를 줄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저희’.
티센의 워딩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결정타.
이걸로 티센은 완전히 우리편으로 돌아섰다는 것을 증명했다.
좋아.
‘앞으로 하나. 이젠 정말 크루프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