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162)
“잘 오셨습니다.”
프랑크푸르트(Frankfurt).
구 독일로스차일드 본점.
나는 반갑게 티센(Thyssen)의 회장을 맞이했다.
그가 가진 철강과 독일군부 커넥션은 귀중했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자원들이다.
그를 독일결제은행의 일원으로 영입해 나는 이 자원들을 이용한다.
우리는 정원을 산책했다.
“저희 독일결제은행이 목표하는 최종지향점은 서독일의 하나로 통합된 경제권입니다.”
“서독일이라 함은 라인강부터 엘베강까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엘베강 동쪽은 융커들의 영역 아닙니까.”
“하지만 그러면 문제가 생깁니다.”
문제가 생긴다.
티센회장은 심각하게 말했다.
“서독일 경제권을 아우르는 공통된 산업이 있어야 통합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개별산업들 내부에서도 뿔뿔이 흩어져있는 상황입니다.”
공통된 산업.
나는 내심 티센에 대한 평가를 몇 단계 올렸다.
이건 티센의 말이 맞다.
서독일 경제권을 통합시킨다한들 공통된 산업이 없으면 뿔뿔이 흩어져버리기 마련.
‘한 번 시험해볼까.’
“하지만 은행업으로 통합되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요. 절대 경제권은 은행업으로 통합할 수 없습니다. 은행업에는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으니까요. 매우매우 중요한 요소가 말입니다.”
“무슨 요소입니까?”
“사람.”
티센의 눈이 불이 켜졌다.
“사람입니다.”
정답이다.
“은행업은 공통된 산업으로 묶기엔 노동자들의 수가 매우 적습니다. 경제권도 결국 사람이 행하는 일인 만큼 소속된 사람의 숫자가 적으면 경제권도 이룩할 수 없지요.”
“소속감이 없겠군요.”
“예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은행업 따위 소수정예로 돌아가는 산업은 금방 좌초될 겁니다.”
“일리 있군요.”
맞다.
통합된 경제권을 형성하려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폭넓은 사회가 필요하다.
하지만 은행은 소수정예의 그것도 보통 고학력자들로만 이뤄진 엘리트층.
사회를 이루는 소수층으로 이뤄져있으니 통합 경제권 따위는 이룩할 수 없었다.
“크루프 같은 경제권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
크루프의 에센시는 훌륭한 모델이다.
에센시는 일종의 크루프 기업도시로, 도시인구는 크루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노동자들만으로 도시경제가 돌아간다.
‘독자적인 화폐를 찍어내도 유통될 수준이지.’
실제로 1차대전이 끝나고 독일경제에 초인플레이션이 터졌을 때, 크루프는 독자적인 화폐를 발행해 에센시의 경제를 안정화시켰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크루프는 독립된 경제권을 형성했다.
“한 마디로. 그 거대한 경제권을 아우를 중앙통제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은행은 헤드쿼터(머리)는 될 수 있어도 시스템(몸체)은 못 됩니다.”
“그렇겠죠.”
은행은 머리는 될 수 있어도 몸통은 될 수 없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핵심산업군이 필요하다.
“실제로 JP모건은행도 은행이 헤드(Head)지만 실질적인 몸통은 산업계가 책임지고 있죠.”
JP모건은행은 은행 자체의 파워보다도, 그들이 형성한 ‘독점산업군’이 무지막지한 파워를 자랑한다.
실제로 도금시대를 관통한 통일된 산업군은 ‘철도’였다.
철도로 모두가 하나가 되는 사회였다.
“도금시대의 철도 같은 산업군이 필요합니다. 서독일은 말입니다.”
철도같은 산업군.
이쯤되면 티센이 하고 싶은 말은 모르고 싶어도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티센은 ‘철강’사업체였으니 말이다.
“티센회장님은 ‘철강’으로 서독일을 통합하고 싶으신 거군요?”
“하하. 속내를 읽혀버렸군요. 맞습니다.”
속내를 읽히긴 개뿔.
대놓고 나 좀 봐주세요, 하는데 모를 수가 있어야지.
하지만 티센회장의 말은 틀린 점이 없었다.
‘게다가 나도 계속 생각하고 있던 문제였고.’
사실 독일에 넘어오기 전부터 구상하던 시나리오는 있었다.
독일철강산업이 워낙 유명해야지.
그래서 티센 회장의 제안이 더 반가웠다.
“독일결제은행이 최상위 지주회사로 군림하고, 그 밑에서 철강업체들이 기둥처럼 지탱하는 형식이군요.”
“정확합니다.”
지배은행을 지탱하는 철강이라는 기둥.
문어로 비유하자.
대가리는 은행이고.
촉수들은 철강으로 채우자는 의미다.
문어는 다리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독일결제은행의 지배 하에 철강얼라이언스를 구축하자는 말씀이군요.”
“예, 티센과 크루프를 중심으로 피닉스철강, 호슈철강, 라인철강들을 합류시키면 독일시장을 독점하는 철강얼라이언스가 탄생할 겁니다.”
독일의 철강얼라이언스.
나쁘지 않다.
“아, 혹시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입니까?”
갑작스러운 내 말에 티센회장은 의문을 표했다.
나는 검지를 세웠다.
“독일의 철강생산량이 곧 미국에 견줄 수준으로 성장할 거라는 통계수치가 나왔습니다.”
“아, 그건 저도 본 기억이 있군요.”
티센 회장은 턱을 쓸었다.
“제가 알기로는 독일의 철강생산량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합쳐도 더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1000만톤이 넘어간 지 좀 됐죠.”
철강업계의 서열.
미국이 압도적인 1위.
그 뒤를 쫓는 독일 2위.
한마디로 미국과 독일의 철강이 세계철강시장의 주도권을 양분하고 있었다. 영국철강은 이 둘에 급격히 밀려 쇠퇴하고 있었다.
“철강얼라이언스를 구축하면 가격경쟁력도 생기고 독일철강이 유럽철강시장을 압살해버릴 수 있을 겁니다.”
압살할 뿐일까.
독일제국에게 철강지대를 통째로 뜯겨버린 프랑스는 독일이 종속될 수도 있다는 공포에서 살아야할 것이다.
자를란트. 엘자스-로트링겐.
다 뜯겼다.
프랑스의 공업지대는 프랑스 동북부다.
그런데 이걸 독일제국이 보불전쟁으로 다 뜯어갔으니 프랑스의 공업능력은 심각하게 디버프당해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철강얼라이언스로 합쳐졌을 때 시너지를 발휘하는 체계 아닙니까.”
나는 반론을 제기했다.
“하나로 합쳐지기엔 독일철강업계는 산산이 흩어져있는데요.”
“예, 게다가 철강업은 수익성도 좋아서 주식회사의 형태여도 증권거래소에 잘 상장시키지 않습니다. 저희 티센만 해도 거의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죠.”
티센의 지주회사.
카이저탄광의 지분 거의 100%를 아우구스트 티센이 소유하고 있다.
‘기만인가?’
하지만 그것도 크루프와 티센정도 덩치가 되니 가능하지.
다른 회사들은 불가능하다.
“크루프는….. 모르겠군요. 국유화한 뒤로는 지분구조를 알 수가 없게 되었으니.”
“공개 안하는 걸 보면 뻔하죠. 지분구조가 취약해졌을 겁니다. 애초에 크루프는 국가가 집어삼키기에 너무 컸어요.”
크루프를 쉽게 정의하자면, 독일제국의 삼성이다.
삼성을 국유화한다고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국가재정에 무리가 가는 행위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미친 짓이지.
한마디로 삼성일가의 대가 끊겼다고 국가가 호로록 집어삼킨 것이다.
그런데 성공만 하면 국가입장에선 대박이다.
‘빌헬름 카이저가 이걸 그냥 지나칠 리가 없지.’
세계정책에서 크루프가 가진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국가가 나서서 국가기간산업을 독점으로 크루프에 몰아주기만 해도, 대영제국의 동인도회사처럼 무지막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크루프와 티센만 합류해도 철강 얼라이언스의 과반수는 먹고 들어가겠군요.”
“사실 크루프는 철강보단 군수사업에 더 초점이 맞춰진 기업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독일제국이 크루프의 철강수요를 책임질 거란 사실이지.
“하지만 독일황실이 있거든요.”
“허긴 빌헬름 카이저가 크루프의 철강수요를 책임진다라. 그러면 크루프도 철강에 집중하게 되겠군요.”
결국 철강으로 귀결된다.
독일 철강 얼라이언스는 서독일경제권을 하나로 뭉칠 중요한 조각임은 틀림없다.
문제는 뿔뿔이 흩어진 독일철강회사들을 하나로 통합할 방법이었다.
나는 잠시 멈칫 발걸음을 멈췄다.
‘유레카.’
기막힌 아이디어.
순간 독일철강기업들을 하나로 뭉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티센회장님, 생각해보니 말입니다. 다른 철강기업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
티센 회장은 눈썹을 꿈틀댔다.
나는 초승달 모양으로 눈을 반개했다.
“뭉치지 않으면 죽을 환경을 조성해주면 되거든요.”
적자생존.
제국주의자들이 참으로 좋아하는 단어 아닌가.
“……”
내 충격적인 발언.
티센 회장은 입을 쩍 벌렸다.
“아.”
나는 손바닥을 짝 부딪혔다.
“그전에 크루프부터 끌어옵시다.”
***
“거절해.”
베스트팔렌, 에센시.
크루프(Krupp)의 본사.
이사화장실.
몰트케는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부관은 멍한 얼굴로 몰트케를 바라보았다.
이 미친놈이 지금 뭐라고 한 거지?
“거절하라고.”
“하, 하지만 준장님. 독일결제은행의 은행권에서 벗어나면 자칫 크루프가 고립될 여지가 있습니다. 프로이센 왕국이 지역경제권과 협력한다는 명분으로 협력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부관은 항변했다.
말로는 ‘그럴 수도 있다.’ 따위로 말했지만 대강 서독일 경제권 돌아가는 모습을 보아하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 크루프가 고립될 것만 같았다.
“크루프는 철강 부분에서 경쟁자들이 많습니다. 차라리 철강얼라이언스에 합류해 저희 크루프(Krupp)사가 그들을 아군으로 삼고 주도권을 얻어내는 것이 옳다고 사료됩니다.”
“너 지금 나한테….말대꾸하나?”
몰트케의 이마에 힘줄이 섰다.
아뿔싸.
부관은 입을 턱 다물었다.
“지금 상관의 명령에 항명인가?”
“아닙니다.”
“자네 건방지다고 전부터 얘기했지. 머리만 잘돌아가면 사회생활의 기본도 다 집어치워도 되는건가?”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가.”
“……”
“뭐가 죄송한지도 모르나? 흙바닥의 향기가 그리워졌나보군. 프로이센의 군홧발이 얼마나 단단한지 잊어버린 것 같은데 체감시켜줄 수도 있네.”
“…..아닙니다!”
“이럴 때만 목소리가 크지. 이거 부하들 무서워서 어디 군인하고 살겠나? 지금 상관한테 반항해!”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가?”
안돼.
악마의 회로가 작동했다.
부관은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하, 하지만 라인란트의 중공업들이 뭉치면 크루프사라도 고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티센(Thyssen)도 껴있는데, 자칫 철강 얼라이언스에게 고립되었다간 시장점유율 다 빼앗겨버릴지도 모릅니다!”
“티센? 자네는 시덥잖은 걱정만 산더미군. 독일황실에서 크루프 밀어주는데 그런 잔챙이들은 신경쓸 필요가 있나?”
“하, 하지만…”
“크루프는 지금 철강산업계의 원탑이야. 우리가 거절하면 독일결제은행 같은 듣도보도 못한 잡것이 아니라 다 우리를 따라오게 되어있다.”
부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몰트케는 전략을 볼 줄 모른다.
아니 애초에 전술조차 못 보는 것이 아닐까.
지금 판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주제파악을 못하고 힘겨루기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철강만 놓고 보면 애초에 티센(Thyssen)과 차이도 별로 안 나는데.’
물론 크루프 거대하고 단단하다.
하지만 너무 크루프에 대한 환상이 짙다.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된다.’
결과가 안 좋을 때 뒤집어 쓰는 건 부관 자신이다.
“각하, 물론 베를린궁에서 크루프에게 철도사업을 밀어주고 있습니다만, 티센의 철강사업부는 크루프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입니다. 차라리 철강얼라이언스에 합류하는 것이 더 시너지도 나고 좋아 보입니다.”
“그래도 안돼.”
“혹시 제가 이유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퍽!
몰트케는 서류 한 장을 집어던졌다.
“이걸 기획한 독일결제은행의 회장이 이제 갓 20세 된 새파란 애송이더라고? 서독일 경제권이네 뭐네 말만 번지르르한 그 사기꾼 새끼. 새파랗게 어린 놈이 말이야. 어른들이 오냐오냐 해주니까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고 말이야.”
새파랗게 어린놈.
열등감이 느껴지는 몰트케의 목소리.
“준장님?”
“한 번 호되게 당해봐야 ‘아 내가 헛짓거리를 하고 있었구나. 몰트케 장군님이 옳았구나.’ 하고 깨닫지 않겠나. 저런놈들은 사회의 쓴맛을 한번 좀 봐야 해.”
“아, 제발.”
부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몰트케가 말하는 ‘어린놈’.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의장.
미국의 연방투자공사 총재.
이외에 다수겸직.
아무리 부관이 머리를 굴려 생각해봐도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 건 몰트케 쪽이었다.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카이저 폐하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고! 언제든지 팽해버릴 수 있다는 걸 왜 모르는거야!’
희망이 없다.
더 이상 부관의 머릿속엔 몰트케가 카이저가 손수 독점으로 밀어준 철도사업부까지 말아먹고 베를린궁에 질질 끌려갈 미래밖에 그려지지 않는다.
부관은 최후의 항변을 이어나갔다.
“지금은 베를린궁이 저희에게 제국철도사업을 맡겼지만 언제 박탈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영구적인 사업권이 아닙니다. 제발 눈 좀 뜨십시오, 준장님.”
크루프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순간, 베를린궁의 단두대가 언제 작동할지 모른다.
너도 나도 끝장난다고.
‘받아 제발.’
우리 큰일납니다.
하지만 몰트케는 기대를 매몰차게 배신하고 손을 휘휘 저었다.
“아아! 나는 그런 어려운 건 잘 모르겠고.”
“준장님?”
“거절하라면 좀 거절하게! 내가 자네 상관이야!”
“아.”
안돼.
이후로 부관은 계속해서 어르고달래며 몰트케를 설득해보려 시도했다.
하지만 몰트케는 꿈쩍도 안 했다.
오히려 그의 심기만 불편하게 만들었다.
“너.”
차분하고 어두운 목소리.
몰트케는 잔잔하게 타오르는 눈으로 부관을 노려보았다.
“지금부터 한마디만 더하면 너 군생활 끝장날 줄 알게. 소위에서 군생활 끝내고 싶지 않을 것 아닌가.”
“…….”
“경고일세.”
“…..독일결제은행. 거절하겠습니다.”
“좋아. 진작 그럴 것이지.”
먼저 꺾인 건 부관이었다.
“쯧.”
부관은 혀를 차는 몰트케를 바라보았다.
한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새카맣게 물든 시야.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몰트케의 발작은 끝나지 않았다.
“안 되겠군.”
그의 콧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그 새파랗게 어린놈의 새끼 면상을 꼭 봐야겠어.”
흥분한 몰트케는 침을 튀기며 큰소리로 지시했다.
“당장 내 의전용 마차 준비해!”
“아, 준장님 제발!”
부관은 비명을 질렀다.
***
프랑크푸르트(Frankfurt).
“거절했다고요?”
크루프가 단칼에 거절했다.
철강얼라이언스 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프로이센 융커들에겐 아니었나보다.
티센회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크루프가 거절하자 다른 철강사들도 거절의사를 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음.”
다들 크루프를 믿고 합류하는걸 꺼린다.
하긴 누구 밑으로 들어가는걸 좋아할 기업은 보통 잘 없지. 티센처럼 시류를 탁월하게 읽는 능력이 없다면 더더욱 꺼린다.
그래서 현재 다른 철강회사들도 크루프의 눈치만 보고 있는 이 상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너무 얌전했지.’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더니.
반성한다.
나는 눈빛을 가라앉혔다.
“제가 말씀드렸죠? 뭉치지 않으면 죽을 상황으로 몰아넣겠다고.”
“…..예.”
“마침 좋은 기회입니다. 독일철강회사들에게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려주도록 하죠. 결코 크루프 ‘따위’는 보금자리가 될 수 없다고.”
따릉.
나는 베이론을 호출했다.
“지금부터 미국철강사들이 일제히 철강수출 가격을 인하하기 시작할 겁니다.”
“예?”
나는 티센을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티센은 저희 철강얼라이언스의 첫 번째 멤버입니다. 자금지원 빵빵하게 해드리도록 하죠.”
“아, 아니.”
“참고로 미국철강회사는 일본, 청제국까지 진출한 상태입니다. 신일본제철 고로’들’도 돌아가기 시작했고, 오스트레일리아 철광산도 미친듯한 철광석들을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
“적대하던 베들레헴은 박살내서 합병했고, 카네기철강과는 휴전협상을 맺었으니 사실상 미국철강회사들은 전부 동참할 겁니다.”
적대하던 베들레헴은 박살내서 합병했고…..
티센회장의 귓가로 이명과 함께 그 대사가 계속 윙윙 반복재생되었다.
‘잠깐. 북독일 무역망이 독일결제은행에 합류했었지?’
북해(Nordsee)의 문, 함부르크.
다시 생각해보면, 북독일의 해상무역을 담당하는 북독일은행과 다름슈타트 산업은행은 이미 독일결제은행의 편이다.
그들이 락을 걸면, 다른 철강사들의 바다가 막힌다.
즉, 수출길까지 제동이 걸린다.
‘심지어 독일결제은행 산하 은행들에게 대출까지 막히면….’
적자가 폭발하는데 대출까지 안된다.
믿을 건 베를린 은행권밖에 없어지는데 과연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현기증이 핑 돌았다.
아찔하다.
‘미국의 사업가들은 원래 이런가?’
이렇게 마왕처럼 무자비한가?
티센회장은 소름이 돋아 털이 거꾸로 삐죽 서는 것을 느꼈다.
“제가 장담하죠.”
나는 표정을 싸늘하게 굳혔다.
“딱 한 분기. 아니, 한 달만 있으면 독일철강회사들의 재무제표는 초토화될 겁니다.”
현금흐름은 박살나고.
재무제표는 붉은색 핏빛 적자로 물들고.
임금동결에 파업의 물결까지.
가뜩이나 압도적인 미국철강에 일본과 청제국,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철광산까지 대규모로 합세했다.
우리들의 덤핑을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제발 살려달라고 독일결제은행의 문 앞까지 기어와 빌게 되지 않을까.
‘이 기회에 독일철강시장의 시장점유율도 좀 뜯어오고.’
물론 티센회장에겐 비밀이다.
“아마 그 크루프(Krupp)조차 피 좀 토할 겁니다.”
“도련님 부르셨습니까?”
베이론이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가볍게 손짓했다.
“이전에 말했던 그 초토화 작전. 당장 시작해.”
“……! 예.”
학살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