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171)
“보직해임….”
클루게는 자신이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크루프의 몰트케와 독일철강협회의 이사들이 독일제국군에 항의문을 넣었고, 자신의 부관직은 보직해임이 이뤄졌다.
그뿐아니라 군인으로서의 명예까지 잃어버릴 위기였다.
“보직해임은 사실상 불명예제대 직전의 징계잖아…..”
보직해임은 불명예제대하기엔 죄질이 가볍지만 최악의 잘못을 한 경우 받는 징계로, 별 이유가 없다면 제대하는 것밖에는 답이 앖다.
독일제국군에 입대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소위 나부랭이가 보직해임까지 당해야하는가.
“미치겠네…..”
독일제국군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자신은 절뚝이는 다리를 이끌고 베를린궁까지 왔다. 베를린궁의 크루프 담당행정관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징계수위를 정하겠다고 통보를 해왔다.
징계사유를 읽어보면, 온갖 악의적인 사유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제대 밖에 답이 없나.”
사실상 제대하라는 권유나 다름없다.
독일제국군이라 이 정도지. 기업이었으면 말 한마디 없이 책상이 사라졌으리라.
아니, 크루프의 책상도 사라지긴 했지.
갑자기 몰려오는 서러움과 함께, 몰트케에게 구타당한 전신이 욱씬거리기 시작했다.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어쩌냐.”
뭐하고 먹고 살지.
사실상 작년 3월달에 배치되었으니 1년 갓 채우고 제대당한 독일제국 군인이 되는것이다. 절대 밖에선 말하고 다닐 수 없다.
순간 아버지의 얼굴이 생각났다.
프로이센군의 소장을 맡고계신 아버지라면 보직해임을 당한 아들 하나 구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현역소장인 아버지에게 기대기엔 몰트케의 후광과 베를린궁의 편애가 너무 심하다… 아버지도 눈치보이실 텐데 괜히 나 구하겠다고 하시다 징계라도 받으시면 내가 볼 낯이 없다.”
소 몰트케는 대 몰트케 원수의 조카다.
독일제국군 내의 승진속도에는 꼬리에 불이라도 붙은 고양이마냥 가속도가 붙었고, 차기 참모총장감이라는 소문까지 들려오는 상황이었다.
그런 거물에게 귀족조차 아닌 아버지가 태클을 걸었다간 무사할 리가 없었다.
벽을 짚고, 자리에 주르륵 무너졌다.
“미치겠군.”
답도 없는 상황이다.
“그럼 나랑 일 하나 하지 않을래?”
귓가에 갑작스럽게 들리는 젊은 목소리.
순간 오소소 소름이 돋은 클루게는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건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디트로이트?”
***
클루게는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어, 나는 디트로이트 모건 맞고, 동갑이라길래 말 놓는다.”
“…..어, 어어.”
동갑.
갑자기 훅 치고들어오는 모건의 대화법에 말려들었다.
끼긱… 클루게는 정지한 머리를 억지로 가동시켜 떠올렸다. 확실히 디트로이트 모건은 자신과 동갑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런데 우리 일면식도 없는 사이 아닌가?’
뭐가 뭔지 모르겠는 혼수상태에서 디트로이트는 따발총처럼 말을 쏟아부었다.
“뭐, 별건 아니고. 베를린궁의 카이저에게 독대하자고 끌려왔는데 네가 보이길래. 뭔 일이 있었나 싶어서 말 걸어봤다.”
“……”
“아, 네 이름 말인가? 티센회장님께 들었어.”
“티센… 티센?!”
크루프의 경쟁사.
독일철강업계의 양대산맥. 티센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클루게는 기겁했다. 아니 일개 부관인 자신의 이름을 회장급의 거물이 기억하고 있었단 말인가.
가슴 속에 응어리 지는 감각이 꽈악 조여왔다.
“어, 티센. 군대는 몰라도 우리는 인사평가를 제대로 해야하거든? 경쟁사의 네임드라면 더더욱. 네가 경영실에서 실질적인 크루프의 수장이었는데 모를리가 없지.”
그런데 디트로이트의 말이 더 가관이었다.
“부럽구만. 벌써부터 티센회장의 눈에 들다니, 미래가 창창하잖아. 너.”
“…..너에게만큼은 듣고 싶진 않은 말인데.”
“아 그런가? 아하하.”
디트로이트는 하하 웃으며 뒷목을 쓸었다.
‘디트로이트 모건…..’
1882년생의 동갑내기.
미국의 금융계와 산업계를 주름잡는 불세출의 천재이자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거인.
일본을 집어삼킨 자.
청제국을 분열시킨 자.
철강을 독점한 철강의 화신. 등 온갖 무시무시한 칭호와 루머가 뒤따르는 미국 월스트리트의 대표기수.
존 피어폰트 모건과 함께 월스트리트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거물이다.
그것도 고작 20대에 말이다.
‘정녕….. 같은 동갑이 맞는 건가.’
풍기는 아우라부터 이질적이다.
마치 성스러움과 탐욕이 혼재한 혼돈.
그 초자연적인 존재는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 이질적인 기운은 이계의 신격과도 같은 영험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성스러운 자본의 신격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굴러다니는 돌맹이인가.’
디트로이트의 존재가 땅을 지탱하는 하늘이라고 비유한다면, 자신은 발에 채이는 한낱 돌쪼가리와 같다.
비루한 소위는 보직해임으로 제대할 위기에 처해있었고, 갈기갈기 찢어진 수년간의 학업과 1년 남짓의 커리어는 더 이상 사회에서 숨겨야할 상처 밖에 되지 않는다.
자신의 일생은 재처럼 산화해버린지 오래다.
어무도 자신 따위, 알아봐주지도 않고 인정해주지 않는다.
나 자신 조차 스스로가 미워진다.
“네 무역망 작전, 꽤 아팠어.”
그래서인가.
디트로이트가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가 심장을 꽈악 짓눌렀다. 짓눌러진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고,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조여왔다.
클루게는 디트로이트와 눈을 마주쳤다.
“독일대형해운사의 임원을 포섭해 덤핑한 철강을 유통독점해 박리다매로 크루프에게 제공하고, 크루프는 내수시장에 비싸게 팔아먹는다. 설령 잘못된다 해도 문제없다. 독일대형해운사가 유통독점이 해산되어도, 독일본토에서 크루프가 다시 유통독점을 하면 되니.”
신기했다.
월가의 거인. 디트로이트의 입에서 자신의 작전이 물줄기처럼 흘러나온다. 포장지로 감싸고 있던 비밀작전을 한꺼풀 한꺼풀 벗겨나가며 진실에 가까워지는 그의 모습은 사뭇 공포적이었지만.
자신이 ‘작전’이랍시고 내놓은 물건이 나체처럼 실 한오라기 없이 개방되자, 무지하게 부끄러웠다.
‘…..젠장!’
클루게는 디트로이트의 말이 이어질수록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치기어린 어린아이의 맹랑한 작전이 어른에게 들켰을 때, 그 상황이 바로 지금의 상황이었다.
미치도록 부끄럽다.
두 손으로 세상을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멈추지 않고 담담하게 읊어나갔다.
“이 작전, 아마 내가 아니었다면 된통 당했겠지. 뉴욕대형은행장들 뿐 아니라, 우리 아버지였어도 허를 찔려서 당황했을지도 몰라.”
“……그렇게 띄워주지 마.”
“내가 띄워준다고?”
디트로이트의 목소리가 확 높아졌다.
마치 어이가 없다는 듯, 거짓말하지 말라는 듯. 네 가치를 왜 네가 못 알아채냐는 듯.
왠지 모르게 분노한 노기까지 느껴졌다.
“우리 아버지가 소유한 해운사는 고작 20%의 시장점유율 밖에 차지하지 않은 해운사다. 내가 가세한다쳐도 40%. 독점카르텔을 형성한 미국대형해운사들은 우리들을 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어. 너는 그 카르텔을 독일대형해운사와 연결시켰다. 독일무역협회로.”
맞다.
독일무역협회를 끌어들인 것도 자신이고 미국해운업계의 현황도 알고 있었으며, 그들과 연계시킨 것도 자신이다
‘….고작 20%.’
미국해운의 20%면 엄청난 괴물 아닌가.
클루게는 딴지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그깟 사소한 문제는 집어치우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반독점의 마왕인 루스벨트와는 철천지원수다. 아버지의 철도회사는 아마 나 없었으면 갈기갈기 찢어졌을 정도로 사이가 나빠. 상무부가 아버지의 해운사 따위 안 도와줘. 네가 그대로 찔렀다면 아버지는 골로갔다.”
맞다.
클루게는 순간 미국의 반독점 기조를 알고 혹시나했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몰트케가 자신을 버리고 놀러다니는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코피 쏟아가며 세운 작전이었다.
먹힐 거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고 하지 않으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러니까.”
디트로이트 모건은 자신의 이마를 검지로 톡 밀었다.
“클루게, 너 대단하다고.”
쾅.
무언가 부딫히며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내 자신을 감싸고 있던 공포였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압박감이 사라지고 그 어둠의 틈으로 광휘가 쏟아져들어왔다.
그 칭찬의 말 한마디가.
지금의 자신에겐 너무나도 간절했다.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실패의 결과로 날아온 것은 악의로 점철된 무시와 멸시. 그리고 조롱이었다.
보직해임이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인정받았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인정받고 싶었던 상대에게.
자신은 인정받았다.
심장이 울컥이며 목이 메어왔다. 클루게는 거칠게 눈가를 소매로 닦았다.
“젠장…… 남자답지 못하게.”
“야, 우냐?”
“…..아니야. 저리가.”
“그래? 하지만 저리가기는 싫은데.”
디트로이트 모건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네가 필요하거든.”
***
“….!!!”
클루게는 홱 고개를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 울음에 충혈된 두 눈은 쫙쫙 갈라진 채로 부릅떠져있었다.
눈 시뻘건 게 우는거 맞구만.
“조국인 독일을 배신하라고 안 해. 독일제국군이야, 보직해임이면 사실상 찍힌 거니 제대하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네게 바라는 건 내 산하 독일기업들의 총괄운영이 될 거야.”
“……”
쿨루게는 입을 뻐끔거렸다.
갑자기 커진 스케일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 걱정하지마. 너는 아직 허접해. 어, 존나 허접해.”
“….아.”
“하지만 허접하다는 건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말이기도 하지. 너는 일단 디렉터(이사)는 아니고, 매니저급(중간관리자)으로 채용될 거야.”
“매니저….”
“어, 주니어부터 시작하기엔 시간낭비같고, 그렇다고 디렉터부터 시작하기엔 네가 모르는게 너무 많고.”
“그렇겠지. 나는 초짜나 다름없어.”
클루게의 눈이 빛을 머금었다.
그는 소매로 눈물을 닦고 매서워진 눈매로 나를 노려보았다. 곧바로 납득하는 클루게의 모습을 보니 객관화가 상당히 잘 되는 편인 것 같다.
“잘 아네. 아무튼, 매니저부터 시작할 거야. 하지만 보통의 매니저는 아니지. 독일결제은행의 핵심사업부에 소속되게 될 거야.”
“독일결제은행……”
“뭐, 안심해도 돼. 미국회사라고 부르기엔 독일의 지분비율이 더 높으니까. 애초에 국적부터 스위스은행이고? 하지만 독일 철강얼라이언스의 실질적인 지주회사다.”
“아니, 그런 걱정은 안 해. 하지만 개인적으로 채용된다면 부탁이 있어.”
“부탁?”
클루게는 눈빛을 가라앉혔다
“크루프(Krupp)를 쳐부술 수 있는 사업부로 나를 보내줬으면 해. 더 자세히는 몰트케를 작살낼 수 있는 사업부로. 나는 내가 옳았음을 중명하고 싶어.”
잔잔히 타오르는 클루게의 아우라에 나는 턱을 쓸었다.
“그럼 독일결제은행보다 좋은 곳이 있지.”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일단 티센으로 들어가라.”
티센철강.
독일철강업계의 No.2
독일투자공사의 투자로 티센철강의 지분 30%를 확보. 대규모 M&A와 덤핑을 위한 후속투자로 지분율을 더 끌어올릴 예정.
크루프를 쳐부수고 독일철강을 독점할 철강의 기수.
“크루프를 쳐부순다면 여기다.”
내 제안에 클루게의 눈빛이 위험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