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204)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구둣발들이 찰팍인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증시입구는 검은색 우산들로 가려졌다.
투자자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증권거래소로 출근했다. 재무부 비서관은 그런 투자자들에게 섞여 상트페테르부르크 증시로 입장했다.
시장상황을 파악해야 다음작전을 위한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었으니까.
모건장관님의 아침인사는 꽤 스펙타클했다.
“세레메테프 백작의 답신은 아마도 몇일뒤면 러시아우정국을 통해 미국대사관 앞으로 전송되겠고…”
백작에게 보내는 편지내용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유추는 해볼 수 있다. 모건장관님은 세레메테프를 최대한 이용해먹으려고 하시니, 꽤 긍정적인 내용이라고 상상할 수 있었다.
세레메테프 백작은 러시아제국 중추의 인물로서 반드시 포섭해야하는 인물이었으니까.
설마 거절한다느니 하는 미친 내용을 적어넣었을까.
아니 왠지 모건장관님이라면 가능할지도…
‘으음…하지만 그렇다고 세레메테프 백작이 조금이라도 모건장관에게 이를 드러낸다면. 그때는 또 어떨까.’
“모건장관님 성격에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으실텐데…”
불길한 상상이 떠오르자, 머리를 털어 생각을 지웠다.
모건장관님 입장에서야 세레메테프라는 체스말은 작전수행을 원활하게 해주는 윤활유에 불과하다.
하지만 세레메테프 백작 입장에선 계륵이나 마찬가지. 그러나 공황의 상황에서 세레메테프 백작이 잡을 수 있는 줄은 아마 모건장관이 거의 유일하다.
미쳤다고 대영제국이나 독일제국이 손을 잡진 않을테니 말이다.
프랑스는….프랑스가 있었네.
“그러고보니 프랑스는 요즘 뭐하지?”
촤락.
좀 젖은 러시아제국 신문지를 펼쳤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사들은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대소사가 응집된 신문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뿐 아니라 러시아 전체의 상황도 간헐적으로 기술한다.
[차르의 분노, 미하일 대공의 국무원 소집.] [상트페테르부르크 증시 5일차, -3% 빌빌대는 증권거래소.] [러시아제국 시가총액 1위, 브라노벨의 +5% 선전. 반등장 분위기 형성.] [브라노벨의 공격적인 인수합병과 치열한 시장독점에 열광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증시. 돈바스 석탄지대와 바쿠유전는 사실상 브라노벨 소유.] [엠마누엘 노벨 회장, ‘브라노벨은 확장정책을 이어나갈 것. 에너지 패권을 틀어쥔 위대한 러시아를 실현해보이겠다.’ 애국선언.] [세르게이 비테 재무장관, 국무원 회의에 앞서 거래위원회 소집.] [프랑스는 묵묵부답, 막대한 차관과 디플레이션에 고심하는 러시아의 동맹. 이대로 괜찮은가.]“프랑스는 묵묵부답이라…”
차관을 중재한 프랑스 재무부.
재무부 비서관에게 프랑스의 재무부라고 하면 한군데를 떠올릴 수 있었다.
프랑스중앙은행.
사실상 프랑스 재무부와 경재계를 지배하는 은행이었다. 이들이 프랑스 경제를 꽉틀어쥐고 있었고. 러시아 차관에 대한 사실상의 결정권도 이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200개 가문이 지배하는 프랑스라는 말이 괜히 생긴게 아니지.”
200가문.
프랑스에선 꽤 유명한 얘기다. 프랑스 200개의 가문이 주주총회로 이사회를 장악해 프랑스중앙은행을 틀어쥐었다는 얘기. 그들이 프랑스를 지배한다는 설.
어느정도 거짓말은 아니다.
실제로 이들이 임명한 15명의 이사들이 프랑스 전체의 재정적 권력을 독점했으니.
“프랑스는 이미 시베리아횡단철도를 부설하는데 막대한 차관을 재공했을텐데,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는 러시아제국에 또다시 투자를 할까?”
‘투자 안할 것 같은데.’
비서관은 젖은 신문을 접었다.
이 시기 금융가들이나 재무부직원들, 투자자들에게 있어 디플레이션은 곧 공황의 전주곡이었다. 공황을 주식시장의 급격한 붕괴를 현상으로 꼽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경제가 전체적으로 작살난다.
프랑스 중앙은행이 쉬이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도 러시아제국의 공황리스크를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러불간 동맹도 중요한데, 프랑스까지 공황에 말려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하고 싶어하는게 너무 선명하게 보인다.
“러시아 재무부도 머리털 빠지겠어.”
프랑스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빌려줬던 차관까지 안면몰수하고 싹 회수해버리면 러시아제국의 경제는 파멸한다.
19세기말, 20세기초.
러시아공업화의 기초토대는 단연코 막대한 차관을 제공한 프랑스였으니까.
토대를 빼면 기둥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다.
“최후의 보루마저 흔들리면….이거 러시아제국 입장에선 재앙이군. 증권거래소도 검은 목요일의 충격 이후, 계속 요동치고 있고.”
파라락.
검은 판넬 넘어가는 소리.
비서관은 주가현황판을 올려보았다.
검은 판넬이 휘몰아치진 않았지만, 티커들은 여전히 암울한 숫자들을 표시했다.
일반 투자자들은 쑥떡쑥떡 떠들었다.
주식시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브라노벨은 선전하는군.
-브라노벨이 희망인가. 그놈들 돈바스와 바쿠까지 다 먹었다했지? 그러면 사실상 에너지 섹터는 브라노벨이 독점했다고 봐야하네.
-어쩌면 아직 저평가되었을지도 모르겠군.
-다른 종목들은 모르겠지만, 브라노벨이라면 괜찮아 보이네.
브라노벨이 확실히 우량주이긴 하다.
최근 떠오르는 신성으로 시가총액 1위를 달성했으니. 이것도 모건장관님과 영국정부의 입김 덕분에 가능했던 것들이지. 마치 잘 짜여진 한편의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비서관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브라노벨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증권거래소에서 꽤 자금을 수혈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본데?”
공격적 인수합병은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한다.
주식상장, 유상증자, 등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끌어올 수단은 널려있었다. 브라노벨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증권거래소에서 자금을 수혈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브라노벨의 대주주.
영국정부와 로스차일드의 자금줄만으로는 돈바스 석탄지대와 바쿠유전을 다 집어삼킬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증권거래소 폭락에 영국정부가 승인했다는 얘기는 이미 브라노벨도 이를 감안하고 뛰어들었다는 의미겠지.”
그레이트게임.
영국정부가 품은 독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 증권거래소.
그곳엔 두 공간이 있었다.
우선 일반 투자자들은 젖은 겉옷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도 혈안으로 주가현황판을 노려보며, 주가정보에 매몰되어있었다.
“일반 투자자들에게 더 얻을 정보는 딱히 없어보이고…”
비서관은 고개를 돌렸다.
일반 투자자들과는 명백히 다른 공기가 흐르는 공간이 있었다.
– 브라노밸이 요즘 미친 망아지마냥 날뛰는군. 시가총액 1위와 2위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어.
– 자금들이 다 그쪽으로 쏠리나보지.
– 대리인을 호출해. 오늘 주가는 1% 안쪽으로 관리하라고 전해주게. 검은 목요일의 타격이 너무 커.
부르주아들.
이 독점자본가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럴수밖에 없다.
애초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티커들은 독점사업들과 대형상업은행들 뿐이다.
저들이 주가조작을 하기에 훨씬 유리한 조건이었고, 독점사업체의 부르주아들은 귀족들과 결탁해 법을 지배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증권거래소는 부르주아들이 지배하는 셈이다.
“모건장관님께 공평하게 머리가 깨졌지만, 그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증권거래소를 지배하는건 사실이니까.”
비서관은 피식 웃고는 젖은 신문지를 펼쳤다. 이번에는 앉은 자세 그대로 신문지들을 넓게 펼쳐놓았다.
앞으로 빅이벤트들이 남아있었다.
“재무부 거래위원회나 국무원 회의는 꼭 들어봐야하는데, 방법이 없으려나.”
도청은 전쟁감이고.
다른 방법이 있다면…세레메테프 백작의 도움밖엔 없어보인다.
“…미국대사관으로 가야겠는데?”
미국대사관.
곧 세레메테프 백작의 편지가 도착한다.
도착한 편지를 뜯어, 모건장관님께 직접 답신하고, 모건장관님의 명의로 세레메테프 벡작에게 부탁하면 될 것 같았다.
아니면 직접 백작의 저택에 대리인으로 찾아가는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독점자본가들의 입김을 최대한 떨어뜨리려면, 상트페테르부르크 증권거래소를 장중폐쇄될정도로 긁어내려야한다.”
빗자루로 독점자본가들을 쓸어내라.
비서관이 모건장관으로부터 받은 지령은 단순하다. 미국대사관을 통해 순차적이고 구체적인 지령들이 떨어지지만.
결국 궁극적으로 한 목표를 가리킨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증권거래소를 청소하라.]***
주 러시아 미국대사관.
재무부 비서관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미국대사관의 숙소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비서관은 미국재무부의 답신을 받기 위해 통신실로 와있었다.
“전보 들어옵니다.”
헤드폰을 낀 통신사가 말했다.
이미 미국대사관에는 모건장관의 요청으로 전신시설을 새롭게 설치했고, 재무부정보국의 입김이 많이 들어가있었다.
비서관은 침을 삼켰다.
‘본래라면 민간인은 이런 시설들을 이용할 수 없지만…’
재무부 정보국의 입김으로 대사관 고위급에게 허가받았다. 애초에 재무부 소속이었던 것도 컸고.
비서관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증권거래소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며칠뒤. 세레메테프 백작의 답신이 도착했다.
– 먼저 답신을 열어보고 내용을 전보로 보내도록.
“설마 나보고 세레메테프 백작의 편지를 열어보란 말씀인가?”
손에 땀이 난다.
비서관은 편지를 내려다보고 괜히 긴장했다.
원래 백작의 편지는 일개 비서관이 함부로 열 수 없는 금단의 영역. 모건장관님은 그냥 뜯겠지만, 비서관인 자신에겐 조금 임무가 무거웠다.
그는 심호흡하고 편지를 뜯었다.
“음?”
비서관이 물음표를 띄울 때, 전보 하나가 더 들어왔다.
– 백지수표 한장이 들어있을것이다.
“어?!”
‘어떻게 알았지?’
소름이 쫙 끼쳤다.
미국재무부가 여기서 얼만큼 멀리 떨어져있더라? 적어도 자중해 대서양은 합친 정도로 멀리 떨어져있을텐데. 대체 어떻게 맞춘거지?
독심술이라도 배우신건가?
‘미친…’
온갖 망상이 다 떠올랐다.
세차게 떨리는 눈.
덜덜 떨리는 비서관은 편지봉투속에서 백지수표를 꺼내들었다.
– 백지수표는 내가 필요하다는 백작의 구애행위에 불과하다. 백지수표 자체보다 그 속에 든 메세지가 중요하니까.
“아니….”
새삼 모건장관님의 위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우선 백지수표가 날아온것을 맞춘것부터 소름이 끼쳤지만, 백지수표를 보고도 별로 덤덤한 모건장관님의 모습은 화폐단위를 초탈한 초인처럼 느껴졌다.
‘세레메테프 백작의 백지수표라면 계좌한도만큼 뽑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 대체 얼만큼 뽑아낼 수 있는거야?’
세레메테프 가문은 러시아제국 최대부호가문 중 한곳이다. 광활한 대륙을 가진 러시아제국의 부호라면 대체 얼만큼의 재산을 쌓아두고 있을지 가늠조차 안간다.
물론 미국국세청조차 재산파악을 포기한 모건장관님보다는 무조건 덜하겠지만, 그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증권거래소를 폭파시킬 정도는 될것이다.
그런 사람의 계좌 중 하나라고?
만약 비서관이 받았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실려갔을 것이다.
비서관은 통신사 옆으로 착 달라붙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지?”
– 아침인사를 드렸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지. 세레메테프 백작에게 내 이름으로 답신을 보내도록.
모건장관님은 계획이 있었다.
– 이제부터 좀 많이 바빠질거네.
***
워싱턴 D.C. 미국재무부.
“임시비서관, 한번 시험삼아 보내봤는데, 꽤 잘하고 있네. 핑커톤도 첩보성능이 상상 이상이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증시를 터트리고도 미국대사관을 여유롭개 왔다갔다할 줄은 몰랐다. 일단 비서관의 배짱도 배짱이지만, 상상이상으로 핑커톤의 수완이 좋았다.
혹시 들키면 어쩔거냐고 핑커톤 사무실에 물어보니, 아나키스트들의 소행으로 꾸미고 최악엔 사살당할지라도 고용주의 정보는 풀지 않는다고 했다.
“괜히 록펠러회장이 핑커톤을 애용한게 아니네.”
물론 기관총으로 노동자들을 갈아버리는건 좀 어떨까싶긴 한데, 첩보방첩분야에 한정한다면 능력자들이었다.
원래 첩보방첩이 남북전쟁에서 핑커톤의 주요업무 중 하나이기도 했고.
“백작에게 뭐라고 보내신겁니까?”
제임스가 나를 불렀다.
그는 며칠전 롤스와 로이스를 데리고 뉴욕으로 복귀했다. 나는 곧바로 워싱턴 D.C.로 소환했고 임시비서관 대신 비서관으로 임명했다.
제임스는 디트로이트 시의 항공산업단지에 롤스와 로이스를 떨구자마자 내가 보낸 전용열차를 타고 워싱턴까지 직행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별거없어. 내가 보낸 임시비서관을 백작의 수행원으로 넣어달라고 했지.”
“예?”
“세레메테프 백작정도의 권한이면 사실상 러시아제국의 모임이란 모임에는 다 참석할 수 있어. 임시비서관에겐 그 정보를 뜯어오라고 했네.”
현 임시비서관은 완전한 민간은행 이사신분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재무부 정보국의 협력자 신분이지. 재무부 정보국에 기밀로 붙여져있을 뿐.
그에겐 첩보업무도 맡긴 셈이다.
“세레메테프 백작의 권한을 조금 알려줄까?”
“예, 부디.”
제임스는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나는 세레메테프 백작의 권한 일부분만 알려주기로 생각했다.
“국무원에 로마노프 황실의 궁중귀족, 모스크바 지방총독에 군경력. 일부만 나열해도 이정도 위력이다.”
“…..미친.”
“그와 성공적으로 파트너를 맺는다면, 이제 러시아제국에서 성역없는 첩보가 가능해진다고.”
이제 곧 개최될 러시아재무부 거래위원회, 국무원 회의, 귀족 사교회 등. 다 수행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오히려 임시비서관은 오히려 넘치는 정보에 고통받아야할 것이다.
“대가는요?”
당연한 물음이다.
대가는 항상 필요하지.
나는 씨익 웃었다.
“살려는 드릴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