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224)
“이런 삶아 먹을 달팽이 새끼들!”
쨍그랑!
비테 재무장관은 화를 이기지 못하고 호텔 잡기들을 잡히는 대로 집어 던졌다. 고가의 기물들이었지만, 러시아제국을 농락한 프랑스 달팽이들을 떠올리니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러시아제국의 보좌관들이 좀 말릴 법도 하지만 몸을 움찔거리는 게 이들도 뭔가를 던지고 싶어 했다.
손에 힘줄이 굵게 맺힌다.
“빌어먹을, 말이 안 통해!”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서도 비테장관은 프랑스의 모욕에 대한 분노 대신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게 된 이 거지 같은 상황에 심장을 불태웠다.
러시아제국의 협상단은 자신들의 장관이 품은 애국심에 감탄했다.
비테장관은 1인용 쇼파에 털썩 주저앉아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프랑스 정부는 구제금융을 해줄 생각이 없어. 영불협상에 따라 영국정부는 자동으로 탈락이다. 프랑스정부가 안 해줬는데 영국정부가 해주면 프랑스정부의 체면이 있는 대로 구겨지겠지.”
“영불협상이 걸림돌이군요.”
“그래, 영국과 프랑스는 엮어서 생각해야 하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아군은 미국밖에 없어.”
재무장관회의.
1일차의 공식적인 단체회담은 마무리를 지었다.
2일차부터는 개인 회동을 가질 수 있었으니, 2일차에 회동할 상대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제국에는 프랑스가 지랄발광한 이상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었다.
미국이다.
“일단 OPEC에 대한 건은 본국에 연락했나?”
“이제 곧 황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에 전해졌을 겁니다.”
“차르께서 좋아하셨으면 좋겠군.”
러시아제국에 공황이 불어닥친 날.
그 이후로 차르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졌다. 평소 귀족들과 어울리며 사람 좋았던 당신의 차르께서는 메마른 사막 같은 표정으로 정무에 임하시며 기계적인 활동만을 반복하실 뿐이었다.
프랑스. 영국.
이 두 국명만 들어도 발작이 일어날 만큼 증오심과 적개심을 키우고 계셨다.
슬픔에 잠긴 차르께 미국의 구제금융과 더불어 OPEC의 석유 패권에 대한 소식은 차르에게서 먹구름을 몰아내고 그 틈으로 햇살을 드리울 것이다.
“러시아제국의 패권주의는 부활할 수 있다.”
설령 미국보단 못할지라도.
이대로 침몰해 열강 대열에서 탈락할 바에는 1등을 등에 업고 패권주의로 복귀하는 것이 옳다.
이대로 러시아제국이 몰락해서는 안 된다.
“오늘은 러시아제국의 상황이 어떤가.”
“아직 추가로 파산한 트러스트나 카르텔은 없습니다만, 중소기업들은 계속해서 파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시가 시급하군.”
구제금융은 타임 어택이다.
재무장관회의 졸속으로 빠르게 개최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 파산하고 구제금융 받아봤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핵심은 시간이었다.
“미국과의 대담은 당장 성사할 수 없나?”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오늘 호텔에 입실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아마도 구제금융이 시작되면 연방준비제도의 정책으로 도움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앙은행이니까요.”
“그 말이 옳군.”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는 미국재무부와 연동되며 미국경제를 두 축으로 떠받히고 있었다. 달러를 찍어내는 기관이자 채권을 다루는 기관.
모든 통화정책과 공개시장조작은 이 연방준비제도를 통해 이뤄진다.
“연방준비제도 지하금고와 일본 중앙은행위원회의 지하금고에 루블화가 대량으로 쌓여있다는 루머가 돌고 있습니다.”
“소스 출처는?”
“대한제국 체신부와 영란은행입니다.”
“영란은행?”
“뻗은 잔가지가 많을수록 보안은 허술해지는 법이지 않습니까.”
“….오흐라나로군.”
“맞습니다.”
러시아제국은 이번 구제금융을 최후통첩과 비슷한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번 구제금융아 파투 나면 전쟁까지도 불사할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유럽대륙의 평화가 깨지더라도, 나는 살아야겠다는 의지.
애초에 시작한 건 프랑스와 영국이다.
그들의 업보를 청산할 뿐인 이야기였다.
“내무부와 외무부도 이번 러시아제국 협상단에 끼워져 들어왔다지?”
“예, 꽤 많습니다.”
“그들 중 오흐라나 한둘 정도 끼워져있을지 모르겠군.”
“…..가능성은 높습니다.”
오흐라나는 어디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내무부장관의 말 한마디로 배치하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구제금융에 대한 차르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무조건 있을 것이다.
“프랑스…..”
와그작.
도자기 찻잔이 악력에 터졌다.
비테장관은 이성적인 사람이었지만, 감정이 없는 기계는 아니었다. 이성적인 분석과 판단을 마친 그의 두뇌는 잠시 휴식에 들어갔고, 감성적인 반응과 감상을 담당하는 심장이 분노로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빌어먹을 새끼들이!!!!”
콰창!
으스러진 도자기 파편들을 벽면에 집어 던지자 더 작은 조각들로 산산조각났다. 분노를 표출해도 가라앉지 않는다.
그 모욕적인 언사는 잊히지 않는다.
“구걸?”
구걸.
러시아제국이 프랑스에게 구걸하러 왔다고 표현한 그 델카세라는 잡놈. 엘랑비탈에 사로잡힌 망령 같은 개자식에게 러시아제국은 모욕당했다.
처음에는 그 딱한 사정을 이해하려 했지만, 지금은 당해 싼 놈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삼족을 멸해버릴 놈.
아마 그 회담장 자리에 오흐라나도 있었을 것이다.
“오흐라나가 보고하겠지만, 공식적으로 러시아대가관을 통해 본국에 연락 넣게. 델카세도 델카세지만, 플랜 B가 필요하다고.”
“….플랜 B라면.”
“외무부장관이 꾸미고 있는 협상. 미리 준비하고 진행하라고 연락해. 아무래도 프랑스는 글러 먹은 것 같으니까.”
“예.”
“러시아제국엔 빈손을 잡을 다른 우호 세력이 필요하다.”
비테장관은 눈을 잠시 감았다.
하지만 곧이어 번쩍 눈을 뜨고 잡힌 찻잔을 다시 벽면에 집어 던졌다.
쨍그랑-!
“이게 다 그 개자식 때문이잖아!!! 그 빌어먹을 새끼는 도저히 용서가 안 돼!!!”
델카세.
그 개자식은 러시아제국이 입국한 순간, 오흐라나에게 뒷덜미가 잡힌 채 감옥으로 끌려가리라.
겨울궁전의 차르께 보고될 보고서에도 제일 첫 장에 빽빽하게 적어 제출하리라.
그 잡놈은 찢어 죽여 마땅한 놈이다.
“괜찮으십니까?”
“어…좀 던지고 핏물을 보니 좀 괜찮아지는군.”
주먹을 쥘 때마다 도자기 파편에 핏물이 배어 나왔다. 쓰라린 상처였지만, 지금은 그 고통이 너무도 통쾌했다.
그 빌어먹을 달팽이를 찢어버린 것 같아서 너무 통쾌했다.
“후.”
진정하자.
비테장관은 머릿속을 맑게 비웠다.
다시금 심장을 가라앉히고 두뇌를 깨우기 시작했다.
“지금 러시아제국에 제일 중요한 안건은 미국에 제공할 대가일세.”
사실 제일 큰 문제였다.
“애석하게도, 현재 러시아제국은 미국을 만족시킬만한 미끼가 없다네.”
사실상 빈털터리에 빚쟁이에 거지나 다름없은 러시아제국이 과연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까.
제일 기본적인 것부터 해결해야겠다.
“미국이 인수할만한 매물 중에 파산 신청한 기업들의 부채나 탕감해줘야겠군. 인수합병에 드는 세금도 일체 면제해주고. 아예 면세혜택도 부분적으로 줘도 되겠어. 더 없나?”
사삭.사사삭.
세르게이 비테는 보좌관들을 불러 모아 머리를 맞대고 미국에 제시할 구제금융의 대가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탐스러워야 한다.”
처절했다.
이는 러시아제국이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
“연방준비제도의 게이지의장과 개인 면담이라.”
독대다.
재무장관회의 2일차가 시작하자마자 러시아제국 협상단은 연방준비제도 FOMC의 이사들과 만났다.
프랑스는 자체적인 회의에 돌입했고, 영국 정부는 정보를 수집하고 다녔다.
일단 흐름 자체는 다행히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러시아제국도 안타깝게 됐어. BOSS로 구제금융을 해주고 싶어도, 상임이사 중 프랑스가 있어서 비토당해버렸으니.”
“아마 러시아제국도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을 겁니다.”
“사실 그걸 원하긴 했어. 아직 BOSS는 대립국의 거부권으로 중립을 유지할 필요가 있어.”
BOSS의 돈은 신중하게 써야 한다.
치트키지만 일회용이었고, 회원국의 대형통화거래에서 쓰이는 희소한 화폐였다.
함부로 쓰면 안 되는 돈이다.
회원국 전부가 필요하다고 인증할만한 이슈가 터졌을 때 사용할 돈이다.
전쟁이 끝날 때쯤이야 금고의 일부가 개방되겠지. 그 정도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뭐, 어차피 BOSS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러시아제국을 살릴 방법은 있어. 사실 이미 살릴 도구는 다 갖춰졌지.”
결국 부채를 탕감한 뒤 빅딜로 독점기업을 만들어 러시아산업을 살리는 방법이 있었고, 채권을 대량매입해 차관을 빌려주는 방법도 있었고, 우리가 보유한 루블화를 대출해가는 방법도 있었고.
일본 중앙은행위원회.
연방준비제도.
이 두 중앙은행의 지하금고엔 러시아제국의 루블화가 입 떡 벌어질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 잠들어있었다.
본래 러시아제국의 금본위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축적한 공황 발생용 화폐였지만, 구제금융을 하는 입장에선 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공개시장조작 기능을 빼앗는다.”
“예?”
“러시아 중앙은행을 빼앗는다고.”
제임스는 헛소리를 들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말 안 되는 것 같지. 하지만 돼. 러시아 중앙은행을 기능만 뺏어온다면 우리가 러시아제국의 중앙은행이 될 수 있어.”
“하지만 진짜 중앙은행이 화폐개혁을 하면 전부 휴지통행 아닙니까?”
“아, 구제금융을 받을 때 루블화와 달러로 받을 텐데, 그걸 기반으로 살아난 산업을 다시 초토화한다? 폭군 네로가 환생해도 절대 불가능한 행위다.”
화폐개혁으로 기존 화폐를 조지려 한다면, 구제금융으로 대출해준 통화도 죄다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러시아제국이 구제금융을 받은 이유가 없어진다.
즉, 걱정할 필요 없다.
미쳤다고 구 루블화를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면, 누가 러시아제국에서 사업을 하겠나.
게다가 화폐개혁은 한번 실패하면 초인플레이션이다.
국가를 조질 확률이 높은 게임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절대 하지 않는다.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수행할 때 어떤 방법을 쓰는지 아나?”
“예, 채권을 매입하거나 매각하지 않습니까.”
“그래, 채권을 매입하면 시중에 통화량이 늘어나고, 채권을 매각하면 시중에 통화량이 줄어들지.”
일단 채권이 많아진다.
채권이 많으니 금리에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루블화도 대량으로 가지고 있다.
간접적인 통화정책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막말로 우리가 보유한 루블화를 시중에 일괄적으로 풀어내면 초인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
중앙은행의 기능을 일부 인터셉트해오는 것이다.
대신 러시아제국의 산업이 잘되면 굳이 거부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일단 살고 봐야지.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하나다. 러시아제국에 목줄을 채우는 것.”
독점기업들을 다 처먹는다고 끝이 아니다.
전제군주정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소유권 따위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것을 지키는 힘이 바로 중앙은행의 탈취다.
미국이 러시아에 중앙은행 급의 영향력을 흩뿌릴 수 있다면, 러시아제국은 목줄이 잡힐 수밖에 없다.
목줄을 거부한 순간 공황이 닥칠 테니.
경제적 예속이었다.
이미 되었지만.
살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미국의 통제에 얽혀들어 가는 것이다.
그물처럼.
풍요로울수록 공황에 대한 두려움은 커져만 간다.
아 또 하나.
“러시아제국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해. 그놈들은 미국보다 심한 환경에서 노동하거든.”
“여기보다 더 심한 곳이 있습니까?”
“어.”
공산화는 출혈을 내서라도 노동환경을 극적으로 개선해서 막아야 한다. 동시에 노동환경이 개선되면 노동자 임금이 올라간다.
노동시간이 줄어든다.
노동자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남는 시간은 여가를 보낼 것이고, 그 여가에 올라간 임금으로 소비를 할 것이다.
내수시장이 커진다.
“러시아경제를 살리려면 노동자들의 대우부터 고쳐야 한다. 러시아제국 고질적인 문제점의 본질적인 원인이야.”
사람만 많으면 뭐 해.
다 거지들인데.
결국 노동자가 잘살아야 소비시장도 커질 수 있었다. 소비시장이 커져야 공급도 안심하고 많아질 수 있었다.
더 많이 생산하면 가격이 더 내려간다.
선순환이다.
한차례 대전쟁까지 끝나고 재건사업까지 생각하면 아직 좀 멀긴 한데, 나쁘지 않은 투자처다.
애초에 천연자원 원 툴만으로 본전은 뽑는다.
치트키지.
“좀 길게 보고 투자해야 하지만, 러시아제국이란 물고기 꼭 잡아야 한다.”
러시아제국.
그들은 미국의 세 번째 지갑이 될 운명이었다.
“일단 최대한 조건 좋게 뜯어내.”
***
독일제국.
베를린궁.
“비밀특사께서 베를린궁까지 오신 이유가 무엇이오?”
두 인영이 베를린궁의 인근 정원을 거닐었다.
그 두 인영을 뒤따르는 정장의 사내들은 날카로운 기세로 주위를 경계했다.
한쪽은 베를린궁의 주인, 빌헬름 카이저였고.
다른 한쪽은 러시아제국 외무부에서 파견한 비밀특사였다.
“저희 차르께서 카이저와 요트 여행을 즐기신다는 소문이 궁중에 돌았습니다. 외무부와 내무부에서 그 사실 여부를 파악했고, 과연 그렇더군요.”
“그런 소문이 돌았군.”
카이저는 내심 만족했다.
사실상 차르와 논의하던 관계 정립은 독일제국에 유리한 입장이었고, 독일제국은 러시아제국과 프랑스의 관계가 깨지자 적극적으로 러시아 정부에 정보를 흘리고 있었다.
과연 정보에 민감한 외무부와 내무부에서 정보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카이저는 짐짓 모른 척 계속해서 걸었다.
“예, 그래서 자세히 알아본 결과 러시아제국과 독일제국의 새로운 관계 정립에 대해 저희 황실의 차르께서 지대한 흥미를 느끼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카이저께서도요.”
“과연 그렇소.”
독일제국의 고질적인 문제점.
그것은 러시아제국과 프랑스에 포위당한 현실이다. 독일제국의 전쟁 수행 능력은 무척 뛰어나지만, 한 번에 두 제국을 양면전선으로 열어버리면 것은 너무 큰 리스크였다.
물론 슐리펜이 계획을 세웠지만, 기왕이면 없는 쪽이 나았고.
네덜란드까지 친독일성향으로 전형한 지금이 최적의 기회였다.
카이저는 야심 있는 제국의 황제였다.
“재미있지 않소. 서로의 이익에 합치하고.”
“저희 러시아제국의 황실과 정부에서도 동일한 생각을 공유했습니다.”
“그건 참….”
카이저는 찢어질 듯한 미소를 지었다.
“반가운 일이군.”
카이저는 거룩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 신께 기도했다. 하늘이 독일제국을 보우하사, 친히 손을 들어주었다.
독일제국이여 영원하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