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227)
오흐라나.
차르의 그림자.
러시아제국 내무성 산하의 비밀경찰기관으로 일명 ‘정치경찰’들을 보유하고 운용하는 집단이다.
러시아제국 황실에 반하는 반동들을 색출하고 공공안전을 수호하는 정식명칭 공안질서수호국이다.
니콜라이 2세, 차르의 명령이 내무부장관의 입을 통해 오흐라나로 떨어졌다.
“공산주의의 절멸?”
“쉿. 목소리가 너무 크네.”
상트페테르부르크.
성 올가 고아원.
이곳에서 근무하는 가폰신부는 아이들이 잠에든 새벽 오흐라나의 비밀경찰들과 접선했다. 가폰신부 또한 신분을 위장한 비밀경찰이었다.
그는 성 올가 고아원의 종교교사였지만, 동시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주요 노동자단체를 온건하게 규합한 단체장이었다.
사실 오흐라나로서 침투해 움직인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공산주의를 절멸하라는 명령이 전해졌다.
“전부다 쏴죽이라는 소리요?”
“아니, 공산주의의 절멸은 오흐라나의 대전략으로 수정되었네. 원래부터 공산주의의 처단이 우리들의 목적 중 하나가 아니었나.”
“그건 그렇지만 너무 모호하오.”
“현 러시아정부는 노동교화소(굴라크)라는 이름의 시베리아 노동수용소를 운영할 계획을 세웠소. 이미 건설할 예산까지 다 배정되었고.”
굴라크.
어감부터 살벌함이 물씬 올라왔다. 새로운 굴라크는 현 시베리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더 체계적이고 악랄했다.
당국도 공산주의에 진심이 되었구나.
“하, 굴라크로 다 쳐넣을 생각이군.”
“우리들이 해야할 일은 공산주의자들, 그중에서 핵심 지도자들을 색출해 체포해서 본부로 보내면 되네.”
“그럼 본부에서 알아서 굴라크로 보내겠어.”
“굴라크로 가는 시베리아행 열차에서 원인불명의 행방불명을 당할지도 모르지.”
가폰신부는 하 입김을 불었다.
1905년의 1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혼돈에 빠져있었다. 줄줄이 파산하는 제국의 기업들과 줄줄이 해고당하는 수만명의 실직자들.
부당해고도 아니었고, 사실상 자연재해라고 봐야했다.
프랑스와 영국에 쑥대밭을 만든 자연재해.
그로인해 러시아제국의 인민들은 고통을 받고 있었고, 매주 수만명의 실직자들이 길거리에 내앉았다.
제일 악랄한 점?
이들이 노동자단체를 만들어도 아무 쓸데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노동자들이 협상을 하려고 조합을 결성하면 뭐하나. 노조가 협상할 회사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데.
섀도우복싱이 되어버렸다.
노동자단체들은 어쩔수없이 서로 뭉쳤다. 생계가 달린 일이니 러시아제국의 정부에 자신들을 구원해달라 요청하려고 했다.
차르께서 그들을 보우하시리라.
노동자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로마노프 황실에 대한 노동자들의 믿음은 굳건하네. 그들은 차르께 자신들의 어려움을 성토하고 구원을 받으려하고 있지.”
노동자단체들은 지금도 쌀쌀한 한풍이 부는 도심 속 허름한 건물에 모여앉아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이제 더이상 임금인상이나 복지따위 배부른 소리가 아니었다.
일자리.
대규모로 실직한 노동자들은 정부에 그저 일할 일자리를 원했다.
러시아제국의 정부는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가폰신부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
“문제는 그런 순진한 인민들을 영악한 공산주의자들이 혁명으로 꾀어들이고 있소. 공격적이고 협상은 개먹이로 주고, 오직 혁명만을 외치는 국가전복세력들. 그놈들을 굴라크로 보내버릴수만 있다면, 나야 당연히 찬성이지.”
“….그렇군.”
오흐라나들은 죽은 기계들이 아니다.
비밀경찰이라고 당에 세뇌당해 기계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시기 오흐라나들은 자신들만의 신념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가폰신부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평화로운 방식으로 노동자들과 러시아제국이 화해할 수 있는 길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일단 그렇게 알고 있겠소. 나는 이대로 노동자단체에 숨어들어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해 본부에 인도해드리겠네.”
“최대한 자세하고 많이 부탁하네. 내무성 내부적으로도 비밀리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는 모양이니까. 상부도 매일같이 회의를 열고 있어. 보통 일이 아님은 분명하네.”
“숙지하고 있겠네.”
“아참.”
철컥.
동료는 가폰신부에게 차가운 금속을 들이밀었다. 가폰신부는 리볼버를 집어들었다.
미제 신식의 리볼버였다.
“이건….?”
“한시를 다투는 급박한 일이 벌어진다면 주저하지 말고 쏴버리게.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발포허가까지 떨어졌네. 안될것 같으면 쏴죽여버려.”
“…..!”.
“블라디미르 레닌이 러시아제국으로 입국했네. 미국에게 정보를 받은 오흐라나 상부에서 주의를 요구했어. 볼셰비키의 핵심 간부들이 곧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전당대회를 일으킬수도 있네.”
“이 시점에서 폭동이라도 일어나면 재앙이겠군.”
가폰신부는 전율했다.
말만이 아니라 러시아제국 당국은 공산주의를 소탕하기 위해 본격적인 작전을 입안하고 있었다. 그동안은 공산주의자들을 이렇게까지 급진적으로 절멸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하지만 기조가 바뀌었다.
‘좋은 징조면 좋으련만.’
그럴리가 없지.
리볼버를 품은 가폰신부는 얼굴의 주름이 깊어지는걸 느꼈다.
가폰신부는 가려는 상대방을 붙들었다.
“잠깐, 이보게. 내쪽에서 전해줄 정보도 있네.”
가폰신부는 입김을 후 불고 눈을 부릅떴다.
공산주의자들을 척결하기로 당국이 결정한 이상, 노동자단체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당장 파업하려는 세력들은 넘쳐났고, 폭동으로 들고 일어나려는 세력들도 득실거렸다.
그런 조직들은 대부분 공산주의의 지원을 받는 과격분자들이었고.
당국은 이 사실을 자세하게 알고 있어야했다.
“1월 내에 대규모 파업이 벌어질 예정이오. 내가 노동자단체의 단체장을 맡아 지휘권을 일부나마 쥐고 있으니 그들을 이끌 방도가 있을 것이네.”
실직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가폰신부의 위상은 높았다. 일단 러시아제국 인민들이 신실하게 믿는 정교회의 신부였고, 가폰신부 개인적으로도 노동에 대한 평화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공감대는 같다.
가폰신부는 용이하게 그들사이로 숨어들었다.
“만일 무언가 일이 터진다면, 내가 최대한 노동자들을 진정시킬 터이니 부디 발포명령만큼은 내리지 말아달라고 상부로 전해주게.”
가폰신부는 진심을 담아 호소했다.
동료는 가늘게 뜬 눈으로 가폰신부를 흘겨보았다. 잠시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동료에게서 무기질적인 어조가 흘러나왔다.
“상부에 일단 보고는 하겠소.”
“그정도면 충분하오.”
탓.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동료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오흐라나답게 만남은 짧았다.
가폰신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고 고아원으로 복귀했다.
“차르시여. 당신의 인민들을 보호하소서.”
***
“더이상은 못참겠소!”
1905년 1월 22일 일요일.
여느때와같이 성당으로 향하던 노동자들의 행렬 한가운데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며칠은 굶은 탓에 등가죽이 배에 들러붙을 정보로 앙상한 육신, 일할 곳은 없는데다 잘공간마저 존재하지 않는 하층민들은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고함을 내지른 인간은 곧이어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성당을 간다고 해서 우리들의 현실이 바뀐답니까? 우리가 노동투쟁을 벌여야할 기업들은 이미 잿가루로 산화했고, 사악한 러시아제국의 관료들은 차르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소. 그 간신배들이 우리들을 죽이려하는데 참고 기도만 드리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가!”
공산주의자.
혁명적 투쟁을 부르짓는 공산주의의 프락치가 노동자단체에 숨어들어 있었다. 아니, 공산주의는 더이상 프락치가 아니다. 공산주의의 이념에 오염되어가는 인민들은 셀 수 없이 많아지고 있었으니.
정교회 성당으로 향하던 군중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퀭한 눈빛으로 선동하는 선동꾼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진실을 알 권리도 없는 이들이었고, 선동의 진실여부를 판단할 수도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혁명?”
그들의 귀에 혁명이란 단어는 달콤한 사탕처럼 녹아내렸다.
“그렇소! 동지, 혁명이오! 우리들이 지금 해야할 일은 노동자들의 결의를 세상에 표출하기 위한 시위고, 투쟁이고, 혁명이오! 들고 일어나시오! 나태함은 배고픔을 달래주지 않습니다. 직접 쟁취하십시오! 그대들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혁명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만.”
덜컹.
성당의 문이 벌컥 열리고 성당 내부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어둠에서 걸어나왔다.
경건한 신부복을 입은 가폰신부는 노동자들을 향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위대하신 차르께서는 인민들을 굽어살피시는 신의 대리인이자 러시아제국의 어버이십니다. 당신들은 가정에서 마음이 들지 않는 일이 일어날때마다 도끼를 들고 부모의 머리를 내리치시오? 혁명을 부르짓소? 그것은 신끼서 이르신 옳은 방법이 아닙니다.”
가폰신부의 경건한 음성에 노동자들은 뜨겁게 끓어오르던 투쟁심을 잔잔하게 가라앉혔다.
신부의 말이 맞다.
차르는 러시아제국의 어버이셨고, 자신들은 그런 차르의 아들들이다.
어버이와 해야할 것은 폭력이 아닌 대화였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해결할 기회는 아직 남아있었다.
노동자들은 하나 둘 주먹을 풀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내심 혀를 찼다. 그들도 정교회의 종교만큼은 건들지 못했다.
러시아제국의 정신적 주체였으니.
“그럼 혁명도 없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하오?”
“행진합시다.”
가폰신부는 떠올렸다.
자신이 오흐라나 본부에서 받은 지령은 분노한 민심을 얌전하게 되돌려놓는 것. 하지만 이미 노동자들의 분노는 한계치에 달아있었고, 더이상의 유예기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평화로운 시위뿐이 없잖는가.
“분명 차르께서도 인민들의 호소를 들어주실 것이오.”
가폰신부는 플랜카드를 하나 꺼내들었다.
펜을 꺼내 큼지막한 글씨로 ‘병사들이여, 인민들을 쏘지 말아라.’라고 정자로 적었다.
“나를 따라오시오. 겨울궁전으로 행진해 차르께 우리들의 진심을 보여드리리다.”
가폰신부는 경건하게 선봉으로 걸어가 겨울궁전으로의 행진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홀린듯이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내심 숨겨진 계산이 존재했다.
가폰신부는 일단 이 시위가 더이상 커지길 희망하지 않았다. 시위대가 커질수록 이들을 통제하는 것이 더 까다로웠고,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에서 벗어나기 더더욱 힘들어질 수 밖에 없었다.
빨리 겨울궁전으로 가야했다.
할수있는한 최소한의 인원으로 평화행진을 해야했다.
최대한 빠른 시간.
블라디미르 레닌이 만약 진실로 러시아제국에 귀국했다면, 볼셰비키들이 언제 난입해 이 평화시위를 폭동으로 바꿀지 아무도 몰랐다.
최대한 볼셰비키들을 떨춰내기 위해 평화시위는 기습적으로 이뤄져야했다.
제2인터네셔널의 입김도 사방에 존재한다. 특히 혁명적 노동투쟁과 공산주의를 부르짓는 과격분자들은 최대한 배제해야한다.
어쩧게든 평화시위에서 끝을 내야했다.
‘차르시여. 인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소서.’
“병사들이여, 인민들을 쏘지 말아라.”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앞 광장.
노동자들의 합창으로 러시아제국의 국가가 광장을 뒤흔들었고, 그들의 호소력짓은 목소리는 도시를 가득메웠다.
노동자들은 차르만을 바라보고 눈물섞인 행진을 이어났다.
‘겨울궁전이 곧 보인다.’
가폰신부는 더욱 우렁찬 목소리로 러시아제국의 국가를 부르짖었다. 노동자들은 경건한 가폰신부의 제창에 울컥해 더욱더 큰 목소리로 국가를 부르짖었다.
“차르시여! 불쌍한 인민들을 보우하소서!”
“차르시여! 당신의 불쌍한 수백만의 인민들이 굶어죽고 있사옵니다!”
“차르시여! 제국을 위해 헌신하는 노동자들을 위로해주소서!”
차르를 향한 울부짖음이 겨울궁전까지 닿았다.
겨울궁전의 창문으로 관료들은 고개를 내밀었고, 급히 움직이는 이들도 있었다.
군홧발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시위대를 본 경찰들이 치안경찰 책임자인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에게 달려가는 소리였다.
겨울궁전이 소란스러워졌다.
가폰신부는 잠시 멈칫했지만 눈을 부릅뜨고 더 큰 목소리로 겨울궁전을 향해 부르짖었다.
“병사들이여! 인민들을 쏘지 말아라!”
러시아제국의 군대가 밀고 들어온다.
겨울궁전을 수호하는 경비대는 차르를 보호하는 총을 집어들었고, 기마병은 마굿간으로 달려가 군마에 재빠르게 올라탔다.
금속음이 들려온다.
소복히 쌓인 눈길을 밟은 딱딱한 군홧발 소리가 광장을 울린다. 겨울궁전의 경비대가 각자 총을 메고 일렬로 광장 앞에 도열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쏟아져들어온 총병들에 인민들은 당황했다.
히히히힝!
중후한 투레질을 터트린 기마대들은 굵은 말발굽소리로 인민들을 위협하며 군마의 거체를 광장으로 들이밀었다.
기마병은 손을 허리춤으로 옮겨 검 손잡이를 쥐었다.
철컥 철컥-!
인민들을 향해 총구를 겨냥한다. 군인들의 동공은 세차게 떨렸지만, 총구가 흔들릴지언정 명령에 충실했고, 그들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덜덜덜….
떨리는 가늠쇠를 통해 울부짖는 인민들의 눈물콧물 섞인 얼굴이 보렸다. 총구가 미친듯이 떨리지만 그들의 귀족장교는 평온해보였다.
마치 저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듯했다.
“대기.”
귀족장교의 섬뜩한 목소리.
아직 저들은 선을 넘지 않았다. 광장으로 밀려드는 수천명의 군중들은 점점 겨울궁전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들은 오열하고 울부짖으며 평화를 외쳤다. 차르에 대한 호소심 하나만으로 목숨을 걸고 행진을 이어나갔다.
손이 떨린다.
귀족장교들은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기세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기마대들은 돌격할 준비를 한채, 칼을 뽑아들었다.
그럼에도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은 그들의 소탕을 명령하셨다.
“그마아아안!!!”
사자후.
겨울궁전을 뒤흔들만큼 쩌렁쩌렁한 사자후가 한차례 광장을 뒤흔들었다.
군인들도, 시민들도, 노동자들도, 공산주의자들도, 모두가 눈을 부릅뜬채 감전이라도 당한 듯 제자리에 멈췄다.
갑작스러운 외침에 머릿속이 하얗게 증발해버렸다.
“그만! 그만하시오!”
철컹! 탕!
철제가 부딪히는 소리.
철제 창살로 닫힌 겨울궁전의 내부에서 일련의 무리가 달려나오고 있었다. 아니, 헐레벌떡 달려나오는 한명의 인영을 따라 수십명의 관료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가폰신부는 눈을 가늘게 떴다.
뒤로 뛰따라오는 관료들의 정체는 곧바로 파악했다. 재무부와 외무부 관료들이 맨앞의 인영을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그럼 맨앞의 인영은 누구지?
풍경이 익숙하지 않아 순간 놓칠뻔했지만, 가폰신부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는 눈을 부릅떴다. 눈동자는 세차게 흔들렸고, 떨리는 손가락은 겨울궁전을 가리켰다.
“…..저, 저 분은.”
맨앞으로 달려나오는 고귀한 인영.
러시아제국을 통치하는 그들의 군주.
니콜라이 2세는 외투도 걸치지 않은채 숨을 가쁘가 몰아쉬며 겨울궁전을 뛰쳐나왔다.
철컹-!
당황한 군인들은 곧바로 철제창살을 열어 그들의 차르를 맞이했다.
차르는 분노한 표정으로 귀족장교들에게 명령했다.
“저들은 내 인민들이오. 손하나 까닥할 생각마시오.”
“예, 예! 위대하신 차르의 명령을 따릅니다!”
치워!
귀족장교들의 이마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어진 귀족장교들의 일갈에 러시아제국 군인들은 곧바로 총구를 치우고 총을 회수했다. 기병대들은 도로 칼을 칼집에 꼽고, 차르의 호위에 합류했다.
허억….
차르는 뛰었다.
눈길을 하염없이 뛰었다. 소복히 쌓인 눈이 신발속으로 차갑게 스며들었지만 차르는 신경쓰지 않고 그저 달렸다.
당신의 인민들을 향해 차르는 멈추지 않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차르에 인민들은 당황했다.
경찰들은 거의 비명을 지르듯 차르를 막아서려고 했지만, 차르는 이미 인민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
순간 가폰신부는 차르와 눈이 마주쳤다.
차르는 순간 그를 알아봤는지 눈을 크게 떴지만, 다시 평온해졌다.
차르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인민들은 차르를 중심으로 빙 원을 둘렀다.
“….차르시여.”
가폰신부는 인민들을 대표해 용기있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차르도 또한 가쁜 숨을 들이마시며 가폰신부를 바라보았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겨울바람에 입김이 얼어붙었다.
“당신의 인민이 비탄에 빠졌나이다. 고통 속에서 몸을 비틀어 어떻게든 생을 연명하고 있나이다. 어둠에 빠진 인민들을 부디 구원해주소서.”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진 가폰신부는 차르를 향해 정리되지 않은 대사를 읊었다.
비록 내용은 추상적일지라도 차르에게 진심은 닿았다.
“……”
차르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비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인민들의 노고를 알겠다는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차르는 곧바로 표정을 바로잡았다.
“알고있소.”
그 직후 인민들은 두 눈을 의심했다.
덥썩-!
갑작스러운 온기에 가폰신부는 눈을 부릅떴다.
그에게 다가온 러시아제국의 차르는 감정에 휩쓸린듯, 붉어진 눈시울로 당신의 인민을 끌어안았다.
차르의 품은 따뜻했다.
당신의 위대하신 차르는 인민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의 노고가 많소.”
그 한마디에.
노동자들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겨울궁전의 광장으로 비탄과 비애의 오열이 무너진 댐처럼 쏟아져나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심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러시아제국은 살아있었다.
차르께서는 그대들을 보우하셨다.
당신의 위대하신 차르는 노동자들의 부름에 답하시었다.
위대하여라.
러시아제국엔 새로운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