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234)
“연막은 뿌려졌네.”
엘리제궁.
프랑스 대통령, 에밀 루베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엄지로 짓눌렀다.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를 비롯한 독실한 가톨릭지구에서는 경찰들과 시위대가 서로 뒤엉켜 총격전을 벌이는 투기장으로 프랑스군병력이 배치되었다.
아직 시민에게 총을 발포하는게 꺼려진 계엄군 사령부에서는 주둔만 할 뿐 아직 진입은 하지 않았다.
그런 프랑스육군의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
진짜로 시위대 진압하자고 벌인 판은 아니었으니까.
“델카세 장관. 전 식민장관으로서 이런때에는 어떤 방식의 조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델카세 재무장관.
그간 10년쯤 늙어버린 델카세는 피곤한 얼굴로 회의에 참가했다. 대통령의 언급에도 델카세는 대충 끄덕였다.
“징집이 제일 큰 목적이었죠. 다행히도 독일제국은 사태파악이 안된 상태라 당분간 관망할 예정 같습니다.”
“프랑스 서부에서 시위대가 크게 터질줄은 알았지만, 설마 유혈사태까지 번질줄은 대통령인 나도 몰랐으니까. 독일제국놈들은 프랑스 망한다고 좋아하겠지.”
대충 괜히 초치지 말자는 분위기다.
독일제국은 프랑스가 자멸하는 꼴에 신이 났다. 괜히 건드렸다가 다 진압되고 재미못볼 바에는 그냥 가만히 있겠다는 것이다.
하긴 누가봐도 프랑스는 두쪽으로 분열되었고, 내란이 일어나기 직전인데다, 비상계엄령까지 선포되었다.
독일제국은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하진 않는다.
“징병할 명분은 있습니다.”
델카세는 은퇴가 하고 싶다.
빨리 전쟁위협을 없애거나 전쟁을 마무리짓고 미국으로 날라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정도 깊게 얽혀버린 이상 탈주했다간 불명예와 정기적인 피습만이 남을 뿐이다.
요양을 해야하는데 서바이벌을 하게 생겼다.
그러니 이번 일을 빠르게 마무리 지어야 델카세도 조금은 편해진다.
아니, 편해졌으면 좋겠다.
“방법?”
점점 대통령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이 많이 부담스러웠지만, 델카세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고생하는 이유중 1/3은 저 양반 때문이고, 1/3은 프랑스 중앙은행 이사들 때문이었으며, 나머지 1/3은 프랑스 시민들 때문이었다.
프랑스가 문제네.
그냥 망하면 안될까.
하지만 이게 또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내 조국이라는 애증스러운 감정이 원수였다. 이미 늦었기도 했고.
“프랑스 서부로 계엄군이 집중된 이상, 프랑스 파리와 수도근교의 지방들은 방어가 취약해졌습니다.”
“그건 당연….아!”
“예, 그걸 명분으로 일시적인 징집령을 내리면 됩니다. 어차피 일정기간 안에 전쟁이 터진다면, 그때까지만 징병을 유지하면 되잖습니까. 자동으로 연장될테니까요.”
“자네는 언제쯤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 보는가?”
대통령은 심각해진 얼굴로 물었다.
그래, 그 질문이 왜 안나오나 했다. 델카세는 손가락 몇개를 접었다.
“1년 안에는 무조건 터집니다.”
총동원령.
준비하는데만 1년이 걸릴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물론 제대로 전쟁을 준비하면 훨씬 더 오래 걸리겠지만, 시간을 오래 끌어서 불리한 쪽은 프랑스다.
그렇다면 속전속결로 최소한만 군비를 갖추고 독일제국을 먼저 치는 것이 옳다.
그게 아니더라도, 독일제국이 습격했을 때 최소한의 방어정도는 되지 않겠나.
“당장 그렇게 하도록 하지. 전쟁장관, 듣고 있나?”
“예, 각하. 당장 전쟁부로 회의내용을 전달하겠습니다. 징집에 대한 범위는 전쟁부에서 정해도 되겠습니까?”
델카세는 눈을 흘겼다.
앙드레 전쟁장관, 저 양반도 만만찮은 반가톨릭계 거물이다. 그는 장성경력을 이용해 군대 내 가톨릭계 장교들의 승진을 계속해서 누락시키고 있었다.
비밀리에 프리메이슨의 단원이란 말도 있었고, 암튼 위험한 양반이었다.
“폭탄을 하나 더 떨어뜨리죠.”
델카세는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징집령을 최대한 진행시켜놔야 전쟁이 터졌을 때 불리하지 않다.
게다가 현 계엄군사령부가 시민들에게 총쏘기를 꺼려해서 더 좋다.
살상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시위대의 존재만으로 징집의 명분은 강해지는 것이지.
프랑스육군이 일방적인 학살을 벌이면 그때부턴 정권자체가 끝나는 것이다.
“폭탄을 하나 더?”
“아직 정교분리법은 1차적인 교회자산 몰수밖에 집행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가톨릭계가 발작하는 요소가 하나더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일을 더 크게 벌이자.
프랑스 가톨릭계는 교회자산만큼 발작하는 분야가 있었으니, 교직의 박탈이었다.
정교분리법의 일부로 아이들을 종교에서 분리시키는 법이었다.
가톨릭계에겐 미안하지만, 이번 프랑스공화국은 급진공화국이란 별명을 얻을만큼 스펙타클하고 급진적이었다.
정교분리법을 미친듯이 밀어붙이는 이번 정권만 봐도 알 수 있지.
급진 중에서도 정도를 모르는 미친 급진파들이었다.
세속주의로 종교를 타파한다.
아이들의 가치관에서 종교를 분리해야 한다. 종교적인 가톨릭계 교사들은 라이시테(세속주의)앞에선 더이상 서있을 자리가 없었다.
“가톨릭계는 미쳐날뛸 겁니다.”
가톨릭들의 밥그릇은 이걸로 소멸될테니.
종교계의 간접적인 간섭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현 정권은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되, 최소한만 존중해주는 스텐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톨릭이냐.
현 정권이냐.
둘 중 하나는 무조건 죽어야되는 투기장에서 멸망전이 시작되었다.
“이걸로 계엄령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즉, 더 많은 징집이 가능해집니다.”
다만, 현 프랑스정부는 세속주의 따위보단 프랑스공화국의 존속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종교? 세속주의? 다 좋다 이거다.
그것도 프랑스라는 국가가 있어야 성립가능한 갈등이 아닌가.
보불전쟁에서 한번 더 패배하면 프랑스는 열강에서 탈락할수도 있었다.
‘독일제국의 썩은 양배추놈들은 어떻게든 프랑스의 식민지를 다 뺏어갈 것이 분명하다.’
전쟁배상금.
독일제국이 전쟁을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사실상 재정정책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세입(?)을 타국에서 걷어버리는 미쳐버린 발상을 가진 국가다.
그들의 카이저는 식민지에 목마르다못해 집착하고 있었고, 프랑스공화국이 패배했을때, 식민지를 죄다 뺏길 것이란 예측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대통령님.”
이정도는 다들 알고 있겠지.
하지만 델카세는 동기부여를 위해 입을 열었다.
“이번 전쟁에서 패배하면 프랑스공화국의 식민지들은 전부 독일제국으로 넘어가버릴 겁니다.”
“…..”
“그렇게되면 식민지 관련 행정부처들도 사라지겠군요. 제 커리어와 함께 말입니다.”
“그럴일은 없을걸세.”
에밀 루베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델카세를 바라보았다.
“엘랑비탈의 정신을 가진 프랑스에게 패배란 없으니.”
그 엘랑비탈이 문제입니다만.
델카세는 목구멍까지 그말이 치밀었지만 도로 집어삼켰다. 전쟁장관까지 비장해진 이 분위기를 굳이 깨고 싶지 않았다.
“…..그러길 간절히 빕니다.”
제발 잘풀려야한다.
대통령 각하께 죄송하지만, 델카세는 한시라도 더 빨리 프랑스에서 해방되어 미국으로 요양하고 싶었다.
현재 그에겐 오직 그 갈망 뿐이었다.
그이상의 숭고한 마음가짐 따위를 가지기엔 너무 지쳤고, 너덜너덜 닳아버렸다.
하….
이젠 그냥 좀 쉬고 싶었다.
***
“X발.”
이번에도 델카세는 고통받았다.
더 악질적이라면, 그토록 갈망하던 미국에게 고통을 받고 있었다.
위장이 스트레스로 살살 녹는다.
주미 프랑스 대사관으로부터 전송된 전보는 델카세의 뇌를 파먹는 벌레가 되어 델카세를 실시간으로 죽이고 있었다.
안색은 시커매진지 오래다.
“프랑스 결제은행? 이 새끼들이 진짜 미쳤나.”
순간 머릿속으로 열이 확 끓어올랐다.
마치 프랑스인이 식민지의 2등시민으로 강등된 느낌이었고, 이만큼 개같은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델카세 본인도 결국은 프랑스인이다.
그 에고가 살아있고, 태생부터 영혼에 프랑스인이란 낙인이 찍혀있는 이상, 델카세는 분노할수밖에 없었다.
전보를 휴짓장처럼 구겨버렸다.
탁-!
휴지통에 처박았다.
온몸에 힘을 빼고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진짜 세상은 내게 왜 이런 시련을 내려주는가…가톨릭을 믿고 싶어도, 신을 믿을수가 있어야지.”
프랑스 결제은행.
그간 미국이 결제은행이란 이름의 쐐기로 몇개의 국가들을 날려버리고 경제를 집어삼켜버렸던가.
독일제국조차도 독일결제은행의 철퇴에 크루프가 날아갈 뻔했다. 그나마 철강을 전부 포기하는 대가로 목숨을 유지한 것 같았다.
결제은행은 전세계 각국 재무부에겐 악명이 자자한 괴물같은 은행이었다.
하지만 분했다.
델카세는 현실이 너무나도 분했다.
“…..막을수가 없다.”
진퇴양난.
당장 독일제국과 전쟁이 초세기에 들어간 지금, 천연자원을 막아버린 러시아제국은 더욱더 강하게 수출길을 걸어잠궜다.
남은건 미국뿐인데, 프랑스 결제은행을 설립하지 않는 이상 결코 물자공급은 없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아닌가?”
순간 벼락이 스쳐지나갔다.
델카세의 눈이 빛을 머금기 시작했다. 반대로 생각해보니까 당장 전쟁이 터질 프랑스 입장에서 썩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델카세 입장에선…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하! 불가침조약 탓에 머리가 어떻게 됐나보군. 프랑스가 단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수단이 여기에 있었거늘.”
프랑스 결제은행?
좋다. 받아들일 수 있다. 결제은행까지 설립한단 의미는 프랑스에게 천연자원을 그냥 웬만큼만 주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좋지.
더욱더 가져올 방법은 없을까?
프랑스가 경제식민지가 되든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프랑스가 존속할 수만 있다면 별로 상관없었다.
빨리 은퇴할 길을 제손으로 차단해버릴 뻔했단 사실을 깨달은 델카세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애국심이란게 위험한 감정이군.”
개인이 삭제된다.
국가에 심취하면 그 순간 국가를 위한 노동력 1로 전락해버린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래 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더이상 휘둘려선 안되겠어.”
델카세의 표정은 차게 식었다.
끓어오르던 구국의 열망은 어느새 비즈니스 마인드로 바뀌었다. 프랑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만을 매듭짓고 미국으로 은퇴하겠다.
그 목표를 위해선 전쟁을 빨리 끝내야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쟁을 빨리 종결지어야한다.’
델카세는 구겨진 전보를 다시 펼쳐들어 내용을 곱씹어 읽었다. 델카세는 차가워진 이성으로 전보의 조건들을 재무적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미국에게 퍼주는 한이 있더라도 전쟁을 빨리 끝내자….그 방법밖엔 없다.”
은퇴.
델카세의 눈에는 다른 광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
“어차피 미국은 러독 불가침조약을 모르지 않겠습니까? 정보도 영국에서 넘어온 것 같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며칠 뒤.
프랑스 외무성.
대외적인 외교를 전담하는 행정부처의 외무장관은 외무성을 방문한 대통령과 독대를 나누었다.
재무장관에게서 받아낸 전보를 뜯어보니, 프랑스 결제은행이란 시설은 열받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프랑스는 정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대외정책은 재무부와 외무부의 관할이 애매하다. 특히 외교쪽으로 넘어온다면, 재무적인 사안일지리도 외무부에서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다.
외무성의 대사들은 ‘전권대사’였으니 말이다.
“미국이 러독 불가침조약을 모르는 이상, 협상은 더 쉬워질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설정할 프랑스의 담보가치를 더 올려칠 수 있습니다.”
전쟁리스크.
러독 불가침조약라는 정보의 유무는 전쟁리스크이 대한 핵심정보였다. 만약 미국이 불가침조약을 모른다면, 프랑스는 자국의 자산에 더 높은 담보가치를 걸 수 있었다.
더 많은 차관이나 물자를 미리 땡겨올 수 있다. 전쟁이 터지기 전에 미국을 최대한 등쳐먹을 수 있었다.
그것이 외무성의 계산이었다.
“미국을 등쳐ㅁ…협력을 요청해 프랑스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이끌어나갈 수 있습니다. 프랑스 결제은행의 권한을 확대해준다면, 오히려 미국이 빠져나가기는 더 힘들 겁니다. 더 많은 천연자원을 수출할 수밖에 없겠죠.”
프랑스 결제은행.
결제은행이란 이름의 기관은 열받지만, 미국을 묶어놓을 족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권한을 프랑스 결제은행에 부과한다면, 미국이 이 은행을 포기할 수 있을까?
분명 활성화를 위해 더 많은 물자들을 공급할 것임이 틀림없었다.
이렇게 결제은행을 묶고.
미국을 등쳐먹어 담보를 올려치면 프랑스는 더 빠르게 무장을 완수할 수 있었고, 전쟁수행능력도 향상될 수 있었다.
이것을 델카세 재무장관이 들었다면 대성통곡을 하며 득달같이 달려들어 미친듯이 뜯어말렸을 발상이지만, 외무장관은 프랑스를 증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여전히 미국은 2류열강이었다.
오히려 자존심에 눈이 멀어, 감히 마국 따위가 프랑스를….이런 가치관의 관료들이었다.
대통령은 다른가?
[Pride or Oil] 대통령은 그 사태를 떠올리기만 해도 PTSD처럼 전신이 바들바들 떨려온다. 감히 지신의 프랑스를 짖밟은 미국양키따위에게 더 이상 휘둘릴 수는 없었다.내 프랑스는 강하다.
대통령도 진성 급진파였고, 온건과는 한 3만광년쯤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괜찮은 생각이군. 억울하면 정보를 모른 쪽의 잘못이지. 이 기회에 미국에 담보를 걸고 차관을 있는대로 뜯어오게.”
대통령의 인가가 떨어졌다.
정치인으로서 실적을 올림과 동시에 미국을 등쳐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외무장관은 입이 찢어질듯한 함박미소를 지었다.
“….예!”
***
꾸깃….
“프랑스 이…미친새끼들이 약을 파네?”
워싱턴 D.C.
미국 재무부 청사.
정관실에는 재무부 내 각국의 국장급들이 다 집결해있었다. 대프랑스전략을 구축하기 위해 소집한 인원들이었지만, 중간에 난입한 이 개같은 전보는 열띈 토론에 찬물을 부어버렸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하. 담보가치 단위가 왜 이 모양이지? 국장들, 내가 지금 계산서 단위를 잘못보고 있는건가?”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인줄 안다고.
달팽이놈들은 우리가 러독 불가침조약을 모를거라 생각했나보다.
‘그거 알려준게 우리다. 이 개새끼들아.’
뿌득….
각 국장들의 이마엔 힘줄이 튀었고, 분노에 눈을 충혈시키기 시작했다. 부들부들 떨린다. 아직도 프랑스는 미국을 2류열강 취급에 호구같은 돈주머니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다.
이 수모를 견딜 수 있는 국장급은 없었다.
감히 프랑스 따위가?
“장관님, 심지어 지불화폐가 프랑입니다. 달러조차 아니군요.”
“미친놈들.”
“장관님, 이건 미국에 대한 중대한 모욕입니다. 외교상 결례도 정도가 있지…이건 그냥 대놓고 면상에 먹물을 뿌리는 놈들 아닙니까!!!!”
쾅-!
분을 참지못한 몇 국장들은 서류철을 집어던졌다. 주먹으로 벽을 치는 놈들은 손에서 핏물이 질척이며 흘렀다.
“…….”
내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나와 순간 눈을 마주친 국장들은 움찔 떨었다. 나는 죽은 동태 눈으로 프랑스의 제안서를 확인했다.
내 목에선 사람 목소리가 아닌 매마른 음성이 흘러나왔다.
“흠.”
그래.
프랑스가 이렇지.
내가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달팽이를 사람으로 취급했던 내 이전 행동들을 반성한다.
달팽이는 달팽이다.
사람이 아니다.
그래, 사람처럼 생각할 수 없는 이들에게 그만한 대우를 해준 내 잘못이 컸다.
이젠 쥐어짜면 돈이 튀어나오는 달팽이로 취급해주마.
“제안서는 파쇄기에 갈아버리고, 프랑스 결제은행 그대로 밀어붙이세요.”
나는 흘긋 제안서를 바라보았다.
역시 이 제안서는 재무부가 아닌 외무부의 명의로 온 제안서였다. 프랑스 엘리제궁과 외무부가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달팽이다.
더이상의 미사여구는 필요없다.
“이제부터 프랑스는 달팽이로 취급합니다. 그들에게 더이상의 자비는 필요없습니다.”
나는 프랑스에겐 더없이 무자비한 고리대금업의 샤일록이 되어줄 것이다.
‘망하지는 않게 해주마.’
내 계획상 프랑스는 아군이어야한다.
이것은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살려준다는 뜻은 아니었는데…좀 자의식이 비대하고 설레발이 심한 친구들이다.
이 험난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너희들 프랑스는 이제 가시밭길을 좀 걷게될 것이다.
“감히 미국을 기만한 죄는 크다.”
다음날.
이 소식은 백악관에 전해졌다.
그날 백악관에는 남아나는 가구들이 없을 정도로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받은 불곰은 용암과도 같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채, 화산처럼 포효했다.
곧 차가운 이성을 되찾았지만, 더이상 백악관에는 프랑스에 대한 자비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모건장관.”
“예, 대통령님.”
루스벨트는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프랑스를….자네에게 맡겨도 되겠나?”
프랑스를 맡긴다.
나는 단번에 그 말뜻을 알아들었다. 내 멋대로 프랑스를 요리해버리란 뜻이구나.
나는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나는 속으로도 미소를 지었다.
프랑스 결제은행도 설립했겠다. 대전쟁도 코앞에 있겠다. 프랑스에게 조롱까지 당했겠다…
…지금부터 프랑스경제는 제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