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239)
“결국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워싱턴 D.C.
미국 재무부 청사.
내 사무실로 정보국장이 문을 발칵열고 다급하게 들어왔다. 독일제국에 대한 기사들을 손에 쥔 채, 그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선전포고는?”
“아직입니다.”
나는 신문지를 집어들었다.
[기습적인 독일제국의 총동원령.] [준비된 전쟁기계. 독일육군 상비군과 예비군들의 소집. 빠른 속도로 모이는 군단.] [카이저의 총동원령. 독일서부 공업지대는 전시태세로 돌입. 전쟁물자를 찍어낼 공장으로 변모 중.] [유럽대륙을 위협하는 한마리의 늑대.] [선전포고까지 시간문제.] [조용한 러시아제국, 전쟁부 ‘독일제국과 모종의 계약가능성을 시사.’]–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총동원령부터 시작하나.
독일제국 역시 아직 시간이 부족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중립 재선언이 유럽대륙에 돌을 던졌다.
갑작스럽게 이뤄진 중립선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독일제국은 흥분에 휩싸인걸로 보인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이상, 프랑스 따위 얼마든지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총동원령이 내려진 이상, 독일제국은 멈출 수 없을텐데….”
“예, 독일육군의 특성상 한번 계획된 작전은 열차수송시간까지 체크해 돌어갈정도로 꼼꼼하고 철저하게 진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멈출 수 없겠지.”
독일육군의 최대단점.
그것은 한번 가동된 전쟁 프로세스는 멈출수 없다는 점이다. 한번 정교하게 설계된 전쟁기계는 전쟁이 멈추지 않는 이상, 가동중지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빌헬름 카이저가 전쟁중단을 명령했을때, 참모총장이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을까.
만약 총동원령을 해제하고 독일제국이 전쟁에서 짼다면, 전력상 공백이 생겨 서부전선 곳곳에 구멍이 생기고, 역으로 프랑스육군에게 잡아먹힐 수 있었다.
즉, 사실상 선전포고의 예고편이었다.
이미 시작된 총동원령은 이제 취소될 수 없다.
“독일결제은행은?”
독일제국이 전쟁을 시작한다면, 독일제국 서부의 라인란트지대가 제일 취약하다.
전쟁이 벌어지는 주전장 중 한곳이 바로 알자스-로트링겐이다. 수많은 공업단지들이 세워져있었고, 광물자원이 풍부했고, 철강기술이 고도로 발전했으며, 그에 투자한 독일은행들이 즐비하다.
독일결제은행은 그런 서부의 은행들을 규합한 유럽최대 은행 중 한곳이었고, 서부은행장들은 독일결제은행의 이사회에 소집되어 서부은행들의 총의를 다진다.
그만큼 독일제국 서부에선 빼놓을 수 없는 기관이고, 미국의 자산이기도 하다.
“일단 독일 베를린궁에서 사람이 파견나왔다고 합니다. 독일육군장성이 방문할 예정이라고도 합니다. 그만큼 신경쓰는게 느껴집니다.”
“뭐, 프랑스도 미쳤다고 공격하진 않겠지.”
중립 재선언을 한 미국의 콧털을 있는대로 잡아뜯는 행위는 자살행위다. 프랑스 결제은행과 독일 결제은행은 지뢰다.
양측 육군 중 어느 한곳이라도 건들여 결제은행에 피해가 생긴다면, 미국은 피해자를 도울 것이었다.
프랑스는 지금 압도적 약자다.
웬만하면 넘어가겠지만, 제발 선만 넘지 마라.
내가 아니라 루스벨트 대통령이 프랑스를 매의 눈으로 벼르고 있었다.
프랑스의 기만책이 어지간히도 충격이었던 모양이지.
“독일제국은 상비군과 동원능력이 매우 우수한 집단이다. 아마 지금은 전 기차역 플랫폼에서 군용수송열차를 계획대로 발차하고 있겠지.”
“2주에서 1달정도면 선전포고를 하겠군요.”
“아니, 이미 한거야.”
선전포고는 이미 한 셈이고, 진짜 선전포고는 들어가기 직전에 급하게 때릴 것이다.
사실 어쩔 수 없었다.
정치적인 문제가 남아있었으니.
프랑스나 독일제국이나 전쟁을 막으려고 온몸을 내던지는 온건파들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들의 방해를 무릅쓰고 진행하려면 우선 총동원령부터 지시해야했으니까.
“독일제국의 총동원령은 현재 명분도 뚜렷하다. 프랑스의 계엄군이 동부와 수도권으로 집중화되고 있는 지금, 국가안보에 위협을 받는다는 거지.”
독일제국에 비스마르크는 없다.
보불전쟁때처럼 엠스전보 등으로 나폴레옹 3세에게 선전포고를 시켰던 비스마르크는 없는 것이다. 그만큼 대세를 볼줄 알고 외교를 조종하는 초인은 없었다.
그러니, 프랑스를 쳐들어갈 절호의 기회가 보인 지금, 억지로라도 명분을 쥐어짜 쳐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프랑스와 관계는 보불전쟁에서 이미 파탄났고, 독일제국는 프랑스식민제국과는 달리 식민지에 컴플렉스가 있는 국가다.
이번 기회에 프랑스의 식민지를 모조리 뺏어갈 생각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신문지를 접었다.
독일제국의 발악은 어떻게든 유럽대륙을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오스만제국도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과 이탈리아 왕국도 독일제국과 삼국동맹으로 인해 곧 총동원령을 내리겠지.”
[준동하는 유럽대륙.] [총동원령에 돌입한 제국들.] [독일제국, 프랑스, 이탈리아왕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총동원령을 향한 발걸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자극하는 오스만제국, 관망하는 러시아제국.] [들끓어오르는 유럽의 화약고, 발칸. 오스만제국과의 총력전을 준비하고 있어.] [러시아제국은 완전히 중립으로 선회. 오스만제국도 총동원령을 검토중.]세계는 점점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프랑스는 이미 총동원령을 내렸고, 삼국동맹은 일단 정세를 살피고 있었다. 무작정 총동원령을 내렸다가 무슨일이 벌어지면 막심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에, 선전포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영제국은 아직까지 침묵 중이다.
“영불협상은 잘못되면 파기될수도 있겠는데….?”
전세계에서 각국이 전쟁에 휩쓸린 기사들을 쏟아내는 와중에 신기하게도 영국에 대한 내용들은 다 빠져있었다.
이는 영국이 전쟁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프랑스가 워낙 삽질을 잘했어야지. 대영제국 입장에서도 영 못미더웠을 것이다. 좀 친해진 로버트 영국 재무장관의 경우, 가끔 만날때마다 프랑스에 대한 한탄을 털어놓을 정도였다.
게다가 프랑스가 미국을 기만해 백악관을 분노시켰으니, 2인3각을 해야하는 영국입장에선 이만한 트롤러도 없었다.
정보국장이 내 의견에 근거를 거들었다.
“협상을 파기하는 건 쉬울겁니다. 애초에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철천지원수 사이입니다. 결코 서로를 선의로 도울만한 사이는 아니죠. 사실상 독일제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의 역전이 벌어진 결과일 뿐입니다.”
맞다.
이 협상은 애초에 퍼쇼다사건으로 촉발된 식민지문제를 타협하고, 독일제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외교적 동맹관계일 뿐.
철천지원수 사이에 사적인 감정없이 완전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로 체결된 동맹관계였다.
얼마나 영국이 싫었으면, 영불협상을 주도한 델카세에게 머리에 총맞았냐는 식의 비난이 쏟아졌을까.
옛날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중요한 변수였다.
“장관님, 이번 벨푸어내각은 1906년까지입니다. 그전에 해산권으로 내각이 엎어지면 곧바로 새롭게 구성된 내각에서 영불협상을 파기시켜버릴수도 있습니다.”
“움직임이 있다는 소리군.”
“예, 영불협상을 탐탁치 않개 여기는 영국의원들이 상당하답니다. 정권이 교체되면 영불협상이 엎어질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말 안해도 잘 안다.
전세계의 균형을 수호한다는 ‘그’ 영국이 조용하다. 전 유럽대륙이 전쟁이라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지금, 오직 영국만이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
적당히 눈치껏 동맹을 파기하고 나는 런해버리겠다는 소리다.
과연 신사의 나라.
제국주의시대의 신사의 기준은 제법 빡빡한 법이다.
“근데 안될껄.”
“예? 왜죠?”
슐리펜계획.
그 진실을 아는 나로서는 회의적이었다. 왜냐하면 슐리펜 참모총장이 계획한 작전은 슐리펜의 지휘아래에 철통같이 지켜질 예정이었으니.
슐리펜 계획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독일육군 우익 5개군의 대우회였다.
작전에는 문제가 없다.
작전에는 말이다.
중립국.
진짜 문제는 우회하려면 중립국이란 중립국은 다 건드리고 쳐들어가야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벨기에 등 저지대 국가들을 독일육군이 진격하며 다 지나쳐야한다.
“중립국을 타격하는 순간, 벨기에의 중립을 ‘보증’한 영국정부는 반드시 참전해야한다.”
동맹관계와 보증은 격이 다르다.
동맹만 깨도 난리인데, 특히 중립국에게 세워준 보증이 깨지는 날엔 대영제국의 대외신뢰도는 바닥을 치게 될 것이다.
그 누구도 영국을 신뢰하지 못한다.
이건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영국은 절대 이 대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 독일제국은 어떻냐고?
그놈들에게 전쟁 앞에서 보증’따위’ 신경쓸 정상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거…삼국동맹 VS 영불협상&오스만의 구도로 갈 확률이 높겠는데…중립국도 골때리네.”
[로열더치에 대한 네덜란드의 복수혈전.] [독일제국 카이저와 빌헬미나 여왕의 독대. 과연 어떤 문답이 오갔는가.] [최근 친독일로 노선을 갈아탄 네덜란드의 파괴적 외교행보. 중립국의 지위가 위태롭다.] [대영제국의 보증이 흔들리는 순간. 네덜란드의 역린, 로열더치를 건드린 죗값을 치루는 영국.]“네덜란드는 완전 친독일로 돌아섰군.”
슐리펜 계획에 기름칠하는 소리가 들린다.
네덜란드도 대우회로에 있는 대표적인 저지대 국가인데, 그들이 진격로를 허용하면 더 빠르게 진격이 가능해진다.
[벨기에, 레오폴드 2세의 만행.] [콩고에 행해진 수많은 잔인한 행위들. 벨기에에 쏟아지는 국제적 원성들.] [벨기에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 [콩고의 눈물. 벨기에 정부를 압박하는 합병여론.] [쑥대밭이 된 벨기에 여론. 레오폴드 2세에 대한 국제적인 원성으로 인한 왕실권위 추락.]벨기에도 만만찮게 화제몰이 중이었다.
“슐리펜이 좋아하겠는걸.”
제일 큰 장애물이다.
벨기에가 이번 슐리펜 계획에서 가장 큰 변수이자, 중요한 요소다. 벨기에를 얼마나 빨리 통과하는가에 이번 슐리펜 계획의 성공여부가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슐리펜은 기뻐해야한다.
원역사 제1차 세계대전처럼 벨기에를 통합해 지휘할 뛰어난 왕은 없었고, 벨기에 육군은 강화되기 전이었으며, 내부는 지금 콩고스캔들로 인해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왕실에 대한 권위까지 추락해 바닥을 기고 있었다.
“노났네.”
슐리펜이 그냥 밀어버리면 된다.
사실 그걸 원하기도 했고. 네덜란드와 영국관계를 곱창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독일제국은 이번 서부전선에서 자신감을 얻어야한다.
좀 자아가 비대해질 필요성이 있었다.
러시아제국 따위는 독일육군이 쌈싸먹을 수 있다는 그런 비대한 자아가 필요했다.
라스푸티차와 동장군의 철퇴를 맛봐야하니까.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목표는 항상 말하지만 딱 하나다.
– 팍스 아메리카나.
유럽대륙이 다 망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국의 목줄을 차고 무거운 자본의 구둣발에 밟히길 원한다.
“일단 프랑스부터 쥐어짜볼까.”
마른오징어도 짜면 물이 나온다.
***
프랑스재무부.
독일제국에 총동원령이 내려지고, 프랑스정부는 뒤집어졌다. 곧바로 수도권으로 병력을 수송했으며, 계엄령은 폐기하고 총동원령을 내려 본격적인 징집에 들어갔다.
계엄군으로 이미 징집되어 조금이나마 훈련받은 군대가 있었기에 그들을 프랑스철도를 통해 수도방위사령부로 편입하는 것은 쉬웠다.
일드프랑스는 프랑스의 심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신경쓸 문제는 아니지.”
델카세는 냉정한 눈으로 서류들을 읽고 결재했다. 당장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었지만, 전쟁이 발발한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시점이 미국으로 튀어봤자 다시 잡혀오거나 돌팔매질에 사망할 뿐이다.
은퇴할 타이밍은 지나도 한참 지났다.
이제 델카세가 남은 일은 어떻게든 프랑스는 존속시킨 채로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
그리고 재무장관인 델카세는 프랑스재정을 책임져야할 위치에 있었다.
“장관님, 프랑스 결제은행에서 제안서를 보내왔습니다.”
“제안서?”
델카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원무기화를 완료한 프랑스 결제은행은 도대체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어서 두렵다. 대체 자원가격은 어디까지 폭등할 것인가.
3배인 지금도 허리가 부러지는데, 3배가 더 오른다 생각하니 머릿속이 하얘진다.
‘…….이게 다 대통령과 외무장관이 삽질한 결과라니.’
이를 갈았다.
델카세는 떨리는 손으로 서류철을 받아들었다. 대충 받아든 서류철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앞장을 전부 빠르게 넘겨버리고 청구서나 공급망에 대한 부분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델카세는 두 눈을 의심했다.
“음?”
일단 놀랐다.
하지만 부정적인 놀람이 아니라 의아함이었다. 석탄자원을 비롯한 각종 자원들은 1.5배만 상승했을 뿐. 3배까지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이상하다.
만약 델카세 본인이 미국의 재무부장관이었다면, 프랑스가 파산하든 말든 꾸역꾸역 쳐먹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파산.
파산…..?
‘…..잠깐.’
델카세는 문득 청구서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이 숫자들 뭔가 익숙하다. 청구서에 적혀있는 숫자들은 마치 최근에 본듯한 기분이 새록새록 들었다.
뭐지…이 숫자를 어디서 본….
“……!!!”
눈을 부릅뜬 델카세는 곧바로 방금까지 결재하던 서류철로 달려들어 광인처럼 뒤적이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뒤적이는 손이 빨라진다.
서류철들은 전부 프랑스재무부의 기밀이었고, 프랑스의 재정상태를 기록하고 있었다.
델카세는 제발 자신의 추론이 틀렸기를 바라며 악착같이 뒤졌다.
델카세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서류철을 뒤적이다 우뚝 멈췄다.
천천히 서류철 더미에서 한 서류철을 꺼냈다.
……프랑스 재정상태를 간략하게 요약해놓은 회계장부 요약본이었다.
기밀스러운 내용까지 전부 적혀있는 프랑스 재정상태 그자체.
펄럭.
서류철을 열어 패이지를 꼼꼼히 살폈다.
살살 내려가던 델카세의 손은 어느부분에서 우뚝 멈췄다.
델카세의 눈은 터질듯이 부릅떴다.
“……똑같다.”
영혼이 가출한 듯,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델카세는 현실을 부정하며 서류철을 쥔 손을 미친듯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붉은 서류철의 트라우마가 도진다.
“숫자가….똑같다.”
소름이 끼쳤다.
청구서로 날아온 숫자들과 프랑스 재정에 그나마 남아있는 항목들의 자금숫자가 일치했다.
델카세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목이 메이는 목소리로 목을 긁었다.
“……대, 대체….어떻게….”
프랑스재무부의 잉여자금을 숫자 하나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미국재무부는 손바닥 훤히 프랑스재무부의 상태를 관조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바닥에 놀아난 기분이다.
하지만 분노보단 공포가 스물스물 목까지 기어오른다.
‘….프락치.’
누가봐도 프락치가 프랑스재무부에 있었다.
하지만 이 자료는 고위공직자들 밖에 열람하지 못하는 기밀자료다. 즉, 프랑스재무부의 고위급 혹은 프랑스재무부 고위급과 맞먹는 지위의 누군가. 혹은 프랑스 중앙은행 간부들 중에 프락치가 숨어있다는 소리다.
범위가 너무 넓다.
“…….”
다시 청구서를 내려다보았다.
델카세는 해탈했다. 이제 미국에겐 속일수가 없었다. 프랑스에 남아있는 잉여자금들을 다 파악했다는 소리 아닌가.
하지만 다시금 소름이 끼쳤다.
“……파산하지 않을정도로만 쥐어짠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청구서를 다시보니, 해석이 달라진다.
이는 프랑스가 즉지 않을정도로 딱 죽기 일보직전까지 쥐어짜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느껴진다.
마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처럼, 모건장관은 이미 프랑스의 역치를 확인했다.
이 이상 쥐어짜면 죽는다.
그러니 죽기 직전까지만 쥐어짜주겠다는 채권자의 광기가 느껴진다.
툭.
종잇장 한장이 흘러내려 떨어졌다. 델카세는 불안한 마음으로 침을 삼키고 종잇장을 주웠다.
종잇장을 뒤집어 내용을 읽어보자, 델카세의 얼굴은 시커멓게 죽어버렸다.
[프랑스 결제은행의 차관 제안.]대출제안 문서였다.
“…..아…아아….”
델카세는 뒷걸음치자 벽에 쿵 뒷머리를 찧었다.
무기력해진 두 팔과 두 다리는 이미 힘을 잃고 바닥에 널부러졌다. 델카세의 눈빛은 잿빛으로 죽어버렸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기 시작한다. 이젠 목에선 쉰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아….”
……프랑스에 희망은 있을까.
아니, 없는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