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246)
“외무부에서 미국대사관에 항의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고 합니다. 파견된 미군장교들은 이미 명단에서 제외된 인선들로 확인되었습니다.”
베를린 참모본부.
슐리펜은 삐딱한 의자를 기울이며 턱을 쓸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탓에 다소 영혼없는 대답을 참모장교에게 되돌렸다.
“그렇겠지.”
사실 슐리펜의 머릿속엔 이미 미군장교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미국대사관도 바보가 아닌지라 있는그대로 미국대사관의 장교들을 현역으로 투입하진 않았을테니 말이다.
물론 확인은 했어야했지만 결론적으로 외무부의 시간낭비였다.
슐리펜의 머릿속에서 이미 미군이란 단어는 이미 지워진지 오래였다.
“총장님. 다행스럽게도, 벨기에와 국경전투에서 시간을 번 덕분에 저희 독일군에게 조금 여유가 있습니다.”
“고민이 되는군.”
“고민입니까?”
“독일군이 단 한명도 참호선에 다다르지 못한 것은 전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전술이 등장했다는 신호탄이다.”
극강의 방어전술이 전선에 등장했다.
삼중으로 두른 윤형철조망은 독일군의 돌격을 원천차단했고, 쏟아지는 기관총 탄알의 세례 속에서 독일군은 빗물처럼 씻겨나가 단 한명도 생존할 수 없었다.
벌집처럼 온몸에 구멍이 숭숭난 채 시체산과 하나되어 참호앞으로 켜켜이 쌓여갈 뿐이었다.
“한마디로 다같이 평등하게 고깃덩어리로 전락해버렸단 말이다.”
“고깃덩어리….”
참모장교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슐리펜에겐 딱히 충격적이지 않았다.
이미 국경전투에서 낌새는 보이고 있었으니까. 미국장교들이 알려주지 않았어도 늦어도 내년정도엔 나왔을 방어전술이었다.
“그래서 고민인 것이다.”
하지만. ‘방어’전술이다.
당장 공세가 필요한 독일군에겐 해악밖에 되지 않는다. 만약 독일군이 공세가 아닌 방어를 해야할 입장이라면, 참호를 파놓고 병사들을 집어넣어 달려오는 보병들을 썰어버리려면 참호전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참호전이란 극강의 방어전술이 나온 지금 시점에서, 독일군은 공세를 해야한다. 파리가 코앞인데 더이상 물러날 순 없네.”
“……공세를 밀어붙여야한다는 말씀이군요.”
슐리펜의 카리스마가 참모본부를 휘어잡았다.
평소라면 공세와 돌격을 외쳤을 융커들은 그들의 천적인 슐리펜이 신중한 모습을 보이자 쥐죽은듯 조용하게 받아들였다.
“다행인 점은 독일군의 전력이 우익기동에 과도할 정도로 치우쳐져있단 것이다. 숫자로 밀어버릴 수도 있다.”
극단으로 치우쳐진 우익군은 이미 성공적으로 우회기동을 하고 있었다. 벨기에군은 이미 깨끗하게 녹아버렸고, 국경전투에서 프랑스군은 대패해 독일군에게 아직 유리한 형편이었다.
“대신 엄청난 규모의 피해가 속출하겠지요.”
“그래, 분쇄기를 고장내기 위해 고깃덩어리들을 계속 던져주는 꼴에 불과하다.”
상당히 소름끼치는 얘기다.
융커들은 개개인의 기량이 사라지는 끔찍한 전장을 애써 부정하고 싶어했다.
숫자가 된 전쟁엔 낭만이 없다.
“….총장님, 이대로 전선을 멈추고 저희도 참호를 파는 선택지도 있습니다.”
“쯧. 공세인가. 정체인가. 그것부터 정해야겠군.”
정체.
이대로 공세를 멈추는 선택지도 있다.
헐렁한 보급로를 탄탄히 정비하고, 마른강 유역에 참호를 미친듯이 파내려가 달려오는 프랑스군을 분쇄해버릴 수 있었다.
포병대가 중포로 프랑스군 참호를 박살낼 수 있다는 희망도 조금은 있었다.
그런식으로 조금씩 진격하는 방법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프랑스 국경 안이다. 이대로 멈춰도 프랑스 영토내에서 전선을 천천히 밀어버릴 수 있다.’
독일영토도 아니니 상관없지.
‘하지만 이대로 전선이 형성되면, 독일군은 공세를 포기해야한다.’
문제는 슐리펜 계획에 따른 공세를 멈추면, 더이강 독일군에게 속전속결은 없어진다. 공세라는 카드가 사라질 확률이 높았다.
점점 치밀해지고 악마화된 프랑스군의 참호는 독일군을 더 효율적이고 무자비하게 갈아마시겠지.
게다가 영국원정대가 아미앵까지 진출해 참호선을 깔아버리면, 독일군의 우익기동은 완전히 막혀버릴 공산이 컸다.
슐리펜 계획이 처참하게 깨진다.
“미군이 애를 먹던 이유가 있었군.”
“미군 말씀이십니까?”
“그래, 스페인군의 기관총에 갈려 관타나모 철수작전을 벌인 미군의 심정이 이제야 이해된다는 의미일세.”
“아.”
슐리펜은 속으로 미군을 재평가했다.
그동안 미군을 무시했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스페인군의 기관총세례를 뚫고 ‘공세’에 성공했지 않나.
결국 미군을 갈아마셨던 쿠바에서 스페인군을 몰살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미군의 공세기록은 독일군에게 해가 된다.’
“독일군은 언제나 해군청이 문제다.”
슐리펜은 입술을 씹었다.
미군이 쿠바를 점령할때 강행했던 작전들은 전부 봉괘작전과 상륙작전들 뿐이었다. 전함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해안가를 무력화시키고 해병대를 투입해 요새화시켰다.
섬의 특징을 살려, 봉쇄작전으로 상대방 보급의 씨를 말려버리고, 점점 전선을 넓혀나갈 베이스캠프를 상륙작전으로 점령했다.
전형적인 해군위주의 작전이었다.
“그런데 참호전의 거의 유일한 대성공케이스가 해군에게 훨씬 유리해. 이건 좋지 않은 신호다. 앞으로 전장이 까다로워지겠어.”
“영국놈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쳐들어오면 독일제국이 훨씬 불리하겠군요.”
“영국원정대가 상륙작전으로 아미앵에 도착하기 전에 파리를 점령해야 우리가 편해진다.”
독일제국은 아직 드레드노트가 없다.
독자적인 기술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고, 카이저마리네는 왕립해군에게 압도적으로 밀린다.
왕립해군(Royal Navy).
이놈들이 드레드노트를 앞세워 상륙작전을 펼치고, 해안가를 점령해 남하를 시작하면, 설령 우익기동이 성공한다한들, 우익 독일군의 측면이 찔리게 된다.
측면은 최대 약점이었다.
영국원정대에게 찔리는 순간 그자리에서 멈춰서 전선을 재정비해야한다.
“아…해군이 아쉽군요.”
“우리는 아쉬운 정도지. 카이저마리네 놈들의 자존심은 지금쯤 산산조각으로 공중분해 되어버렸겠군.”
슐리펜은 혀를 차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벽면에 걸린 지도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고, 프랑스지도를 유심히 뜯어보았다.
슐리펜은 그 특유의 굳은 표정으로 지도를 노려보았다.
후….
“결국 남은 선택지는 공세뿐이다.”
공세를 포기하고 전선을 굳혔다간 영원히 공세할 기회는 오지 않는다. 공세는 슐리펜 계획의 핵심이고, 슐리펜 계획의 본질은 모험이다.
슐리펜은 생각했다.
어차피 참호에서 독일군이 갈려나갈 예정이라면, 공세가 되는지 확인정도는 해야하지 않을까.
만약 공세를 멈춰도 전선을 넓히려면 프랑스군의 참호를 향해 장병들이 돌격해야한다.
목숨값은 값질수록 좋다.
전쟁은 결국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국익을 얻어내는 교환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 목숨값이 값져질수록, 얻을 수 있는 국익의 규모는 커진다.
“공세…말씀이십니까?”
참모장교들의 질문에 슐리펜은 기계적인 음성으로 부연설명을 붙였다.
“참호전을 하든, 공세를 퍼붓든, 우리 독일군이 갈려나가는 조건이 똑같다면 당연히 공세를 해야하지 않겠나.”
“…아.”
슐리펜은 펜을 들어 지도에 찍찍 선을 그으며 전략을 수정했다. 마른강 유역으로 참호선들이 찍찍 그어진다.
탕.
펜을 집어던졌다.
“밀어붙여. 인해전술이다.”
결국 사람숫자로 찍어눌러버리면, 프랑스군의 참호선도 뚫릴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군에게 측면이 찔릴 걱정은 없었다.
예상보다 국경전투와 아르덴공세가 싱겁게 끝나 독일군은 이미 밀어버릴만큼 밀어버리고 있었고, 병력소모도 이번 참호전을 제외하면, 얼마되지도 않았다.
아직 독일군이 훨씬 공세에 우세하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적극적으로 공세를 밀어붙여 전선을 밀 수 있는 만큼 밀어버린다.”
단기결전.
참호선만 박살내면 뒤편은 파리다. 파리만 함락시킬 수 있다면, 프랑스점령의 본쳅터로 넘어갈 수 있었다.
참호선만.
마른강의 참호선만 넘을 수 있다면, 그 뒤부터는 일사천리로 해결되리라.
“다들 주목! 지금부터 방침을 설명하겠다.”
쾅-!
슐리펜은 탁자에 지휘봉을 내리꽂았다.
난데없는 굉음에 화들짝 놀란 참모장교들은 빠르게 각잡힌 자세로 슐리펜의 말씀을 경청했다.
슐리펜은 고개를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공세를 이어나간다. 우익기동하는 보병사단들은 프랑스군 참호선에 도착하는 족족 전열보병 태세로 밀어붙인다!”
슐리펜은 일갈했다.
“너희도 독일군 소속의 숭고한 군인이라면, 국가를 위한 길을 목숨을 바쳐 개척하라.”
어차피 참호에서 죽어나갈 보병들.
전부 공세에 때려박아 참호선을 넘고여 말겠다.
“각 포병대들은 보병이 참호선을 뚫을 수 있도록 전력으로 서포트한다. 최대한 프랑스군의 참호를 지운다! 알겠나!”
“예!”
“그럼 지금 뭐하고 있나! 당장 움직여!”
쾅-!
슐리펜이 다시 내려찍은 지휘봉의 굉음에 참모본부는 빠른 톱니바퀴처럼 일사분란하게 군부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채찍질을 한 말처럼 독일군본부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루조차 지나지 않은 시점.
슐라펜의 과감한 결단에 의해 독일군의 공세는 재개되었다.
***
“…..지금 다들 뭐하시는 겁니까.”
프랑스 참호선.
참호의 점검을 위해 파견된 미군장교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겨우 붙들었다. 프랑스군의 이해되지 않는 엽기적인 행각에 멀미가 나는듯 어지러워진다.
“왜…아니, 대체 왜 참호를 다시 메우고 있는 겁니까!”
미군장교는 괴성을 질렀다.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몇몇 프랑스군의 장교들이 프랑스참모본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참호를 다시 메우고 있었다.
프랑스참모본부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통신시설이 독일군이나 미군에 비해 훨씬 열악했고, 사령부의 명령체계도 주먹구구처럼 보일정도로 엉망이었다.
즉, 현장의 소식이 참모본부로 수월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잠시 눈을 뗀 것만으로 이런 참사가 벌어질 줄은.상상도 못했다.
“아니, 허, 하….미치겠네.”
모자를 벗어 뜨거워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미군장교는 당장 프랑스지휘관에게 달려가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하지만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 그럴수도 없었고, 이미 군명단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분이기에 문제를 만들기도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건 화가 났다.
퍽-
미군장교는 곧바로 지휘관이 머무르는 천막으로 쳐들어갔다.
그곳엔 지휘관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작전지도를 펼치고 일었다.
이것들이 지금 웃어?
“왜 다시 참호를 매워, 다들 정신이라도 나갔습니까!”
순간 미군장교의 고함소리에 놀란 프랑스군 장교들은 휙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곧 미군장교를 보더니 미간을 확 찌푸리고는 시선을 외면했다.
미군장교의 분노게이지는 점점 상승했다.
프랑스군 장교는 마치 하급자를 가르치듯이 나긋한 어조로 깔아뭉갰다.
“왜 참호를 다시 메우다니,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뭐?”
“그놈의 참호 때문에 전선을 밀어내지 못하지 않소.”
영문을 알 수 없는 헛소리가 날아왔다.
“프랑스군의 최대장점이자 핵심교리는 엘랑비탈의 공세중심의 전술이오. 당신네들의 참호전 교범은 방어전에는 효과적일지는 몰라도, 공세엔 전혀 아니오.”
쯧쯔 혀까지 찬다.
환장하겠네.
“독일군이 약해진 지금 시점에서 공세를 가해야 프랑스군이 더 유리한…켁-!”
“-다 집어치우고.”
꽈악…
듣다못한 미국장교가 프랑스군 지휘관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순식간에 지휘본부는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미국장교는 손을 놓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분노로 타오르는 눈빛은 프랑스군을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잘 들으시오.”
이 기가막힌 프랑스군은 말로 하면 들어먹질 않는다. 미군교리가 승리로 맞아떨어진 이상, 이정도 월권은 괜찮다. 감당할 수 있다. 계급은 자신이 더 높다.
미군장교는 스스로 합리화시키며 멱살을 더 세게 꼬나쥐었다.
“이번 독일군 후방의 보급선에서 삽과 철조망이 목격되었소. 지금 벨기에와 프랑스국경에서 함락시킨 철도지점을 복구시켜 빠른 속도로 전장으로 보급시키고 있단 말이오.”
어이가 없었다.
정작 효과를 본 프랑스군은 자존심 때문에 참호를 철거하고 있었고, 오히려 호되게 당한 독일군 쪽에서 더 적극적으로 참호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알겠소? 독일군은 공세를 실패하는 경우까지 고려해서, 그 즉시 참호를 팔 계획까지 짰단 말이오. 독일군이 밀고 들어온 지점에서 전선이 형성되겠지.”
왜 미국수뇌부가 프랑스군을 도우려고 했는지 드디어 알 것 같았다.
이놈들 전쟁을 더럽게 못한다.
프랑스군은 참호로 대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그 결과는?
프랑스는 참호를 철거하고.
독일군은 참호를 장려한다.
이놈들은 지금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건가?
“엘랑비탈? 헛소리말고 참호나 더 깊고 길게 파시오. 프랑스가 공세를 할 수 있던 시점은 이미 애저녁에 지났으니.”
하….
미군장교는 슬슬 눈빛에 스물스물 불만이 올라오는 프랑스군 지휘관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엘랑비탈?
이놈들은 진짜 답이 없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