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30)
심야.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
“핑커톤(Pinkerton)이?”
오후부터 시작된 비밀회동이 새벽이 돼서야 마무리되자, 참석한 거물들은 대부분 월도프-아스토리아에서 하룻밤 머물고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시티은행의 윌리엄 록펠러와 독대를 나누고 싶어서 그의 호텔객실로 가려는데, 월스트리트저널 본부에서 날라온 베이론이 나를 붙들었다.
“예, 지방의 대형역사들에 그들의 철도치안병력과 핑커톤의 탐정들이 집결하고 있다고 합니다.”
“규모는?”
“대략 수천 명에서 만 명대로 추측됩니다.”
“추측? 확신이 아닌건가?”
“죄송합니다. 저희 쪽 정보원들이 대형역사에 진입하려고 해도, 핑커톤에서 다 잘라내고 있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규모는 알 수 없습니다.”
“하, 역시 핑커톤이라고 해야하나.”
철도회사들의 본거지는 뉴욕 월스트리트가 아니다. 그들의 본사는 월가에 있을지언정 그들의 기반은 철도 그자체에 있다.
뉴욕과 달리 다른 주정부들은 이미 철도업계가 장악하고 있겠지.
그 광대한 철도를 지키는 병력들이 하나로 뭉친다면 1, 2천은 우습게 모일 것이다.
“골 때리는군. 이건 암살도 뭣도 아니고 그냥 대놓고 전쟁하자고 시위하는 거 아닌가.”
“일단 뉴욕경찰청에 부탁해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 주위로 경찰병력들을 싹싹 긁어왔습니다.”
철도의 치안병력들은 대부분 PMC나 용병회사들이나 다름없는데, 그 사이사이에 핑커톤의 살수들이 숨어있다고 생각하니 골이 아파온다.
그놈들은 말만 탐정이지 19세기말의 어쎄신들이자 민간군사업체였으니까.
“혹시 모르니 뉴욕주 민병대나 전쟁부에도 연락 넣어놓게. 아무리 천명단위로 그들이 모여도 연방정부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대놓고 전쟁을 못할 테니까.”
“하긴 셔먼 반독점법이 통과된지 불과 8년. 연방정부가 철도귀족들을 보는 눈이 살갑지는 않을 테니까요.”
멈칫.
“반독점법?”
순간 베이론의 한마디가 벼락처럼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뭔가. 뭔가를 놓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셔먼은 왜 조용하지? 반독점법을 만든 그 양반이라면 가만히 있을리가 없는데.’
그 누구보다도 철도귀족들을 해체시키고 싶어했던 셔먼이라면 언제 어디서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전직 재무부장관 출신의 현 국무부 장관임을 생각해보면 그가 조용하다는 게 더 이상한데?
“전쟁이군.”
“예?”
“아닐세.”
‘메인함 폭침이 나를 살렸구나.’
내 예상이긴 하지만, 아마도 셔먼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헤지펀드의 문을 부수기 일보직전까지 왔을 것이다.
하지만 메인함 폭침이 터지면서 스페인과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
국무부 장관인 그가 철도귀족에게 눈돌릴 여유 따위 사라졌겠지.
“베이론, 헤지펀드로 돌아가는 즉시 국무부에 사람을 붙여서 동태를 살펴보게.”
“국무부입니까?”
“어, 지금 그 국무부의 장관으로 앉아있는 사람이 반독점법을 만든 셔먼이다.”
“…..아!”
“그가 언제 움직여서 철도에 훼방을 놓을지 모르는 이상, 동태를 감시해야하네.”
“돌아가는 즉시 사람을 붙이겠습니다.”
아직…..
아직 철도가 무너져선 안 된다.
이번 빅딜로 철옹성을 굳게 쌓아올리기 전까지, 그 누구의 방해도 사양한다.
아직 헤지펀드는 갓 4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기였으니까.
“록펠러.”
연방정부의 손아귀에서 헤지펀드를 보호해줄 수 있는 존재라곤 이 미국에서 단 3명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존 피어폰트 모건 회장, 단 한 명만으로는 불안했다.
그럼 한 명 더 끌어들여야지.
록펠러 가문을 끌어들일 수만 있으면 최상이다.
***
“들어오시죠.”
윌리엄 록펠러의 호텔 객실을 찾아가자, 그의 수행비서가 문을 열어주었다.
수행비서의 안내에 따라 응접실로 들어가니, 아직 검은 정장을 갖춰입은 윌리엄 록펠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해보게.”
“예?”
“대가 말일세. 우리 록펠러 가문이 염원하던 펜실베니아철도(PRR)를 받았으니, 자네에게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하지 않겠나.”
나와 베이론이 좌석에 앉기 무섭게, 윌리엄 록펠러는 본론부터 찌르고 들어왔다. 록펠러의 핏줄이 다소 차가운 면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하지만 적어도 펜실베니아철도의 가치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어보였다.
윌리엄 록펠러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왜, 내가 펜실베니아철도의 가치를 후려쳐서 날로 해먹을 줄 알았나?”
“…….!!!”
독심술이라도 하는 걸까.
헤지펀드에 근무했을 때 포커페이스로 나름 유명했는데, 이 노회한 거인에게 단숨에 간파당했다.
나는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속내를 가까스로 집어삼켰다.
“아니요.”
“아니, 자네의 생각이 맞네. 처음엔 나도 펜실베니아철도의 가치를 후려칠 생각이었네.”
“……그런데 왜?”
“보였거든. 그 비밀회동의 판도가 자네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흐름이 말일세.”
나를 중심으로?
하긴 내가 비밀회동의 새 철도업계의 청사진을 짜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내 등 뒤에서 모건 회장이 받쳐준 결과.
이 양반이 그걸 모를 리가.
“그건 아버지가 제 등 뒤에 있으셔서-”
“바로 그 점이네.”
윌리엄 록펠러는 날카로운 안광을 내뿜었다.
“내가 아는 존 피어폰트 모건 회장이라면 결코 자신의 아들에게 그 일을 맡기지 않아. 그 증거로 내 한평생 잭 모건이 모건회장 대신 회담을 조율하는 광경을 본 적이 없네.”
“……!!!”
“그럼에도 자네를 중간에 끼워넣었단 의미는, 우리가 펜실베니아철도로 모건회장과 딜을 볼때 반드시 자네들을 통과해야한다는 엄포나 마찬가지지.”
윌리엄 록펠러는 상체를 끌어당겼다.
“알겠나? 이건 모건회장이 자네에게 준 선물이라네. 모건 회장, 생각보다 혈족에겐 마음이 여려서 돈씀씀이가 달라져.”
“아버지가 펜실베니아철도로 록펠러 가문과 저를 연결시키고 싶어했다는 말씀이군요.”
“정확하네.”
대강 흐름을 잡았다.
모건 회장은 잭 모건에게 대부분의 인맥이 쏠려있는 상황에서 균형의 천칭을 맞추기 위해 나와 록펠러 가문을 엮었다.
‘어쩐지 모건 회장이 설계안을 짤 때 록펠러에게 집착한다 싶을 정도로 신경을 곤두세운다 생각했는데 이런 꿍꿍이가 있을 줄이야.’
그리고 이 모든 쟁점들의 핵심에 있는 존재가 바로…..
“잭 모건이군요.”
“핵심을 정확히 간파했군. 맞네. 잭 모건과 자네를 동일선상에 올리려는 모건 회장의 눈물겨운 작업이었던 셈이지.”
“……하하.”
“잭 모건의 후계구도가 완성되기 일보직전에 자네가 송곳으로 판을 찢어버렸어.”
아무래도 이번 철도건으로 모건회장의 눈에 확실하게 들어온 모양이다.
모건회장이 십수년간 염원하던 철도 트러스트를 펜실베니아철도, BNSF 두 개나 조직해버렸으니까 그럴만도 한가.
‘하지만 잭 모건의 인맥이 록펠러 가문을 얹힘으로써 겨우 균형이 맞춰질 정도였나?’
내심 전율이 일어났다.
“디트로이트 모건 이사.”
“예.”
“자네, DWM을 조심하게. 잭모건은 자네가 생각한 만큼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니. 아직 전쟁부의 스프링필드 조병창은 잭 모건의 손아귀에 있다는 점을 꼭 유념하고.”
“….!!!!”
“그는 기다릴 줄 아는 인물이야.”
나는 눈을 부릅떴다.
DWM 건은 아직 모건 회장에게조차 숨기고 있던 기밀이었는데, 록펠러 가문의 그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설마…..’
“모건 회장님도……DWM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아, 그쪽이 신경쓰였나.”
윌리엄 록펠러는 피식 웃었다.
“자네, 최근 전쟁부와 물밑으로 접촉하고 있었지? 우리 록펠러 가문의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 전쟁부와 아주 깊은 연을 맺고 있네. 그정도야 손쉽지.”
“그럼……”
“말은 끝까지 듣게. 하지만 우리와 달리 JP모건은행은 잭 모건의 삽질로 군부와의 연줄이 반쯤 날아가 버렸지. 그러니 자네 아버지가 알길이 있겠나?”
“후, 아버지는 모르신다는 말씀이군요.”
윌리엄 록펠러는 씨익 웃었다.
그것만으로 대답은 되었다.
“그런데 잭 모건이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건 무슨 의미죠? 혹시 제가 모르는 뒷이야기라도 있는 겁니까?”
“있지. 사실 방금 말한 잭 모건의 삽질은 그의 작품은 아닌데도, 얌전히 근신을 받고 별장으로 내려갔으니까.”
잭 모건의 작품이 아니라고?
나는 의문이 들어 상체를 당겼다.
“그의 작품이 아니다?”
“토마스 W. 라몬트, 그리고 헨리 P. 데이비슨. 그 두 명의 작품이지.”
“……!!!”
나는 눈을 부릅떴다.
“잭 모건은 왜 조용히 근신을 받은거죠?”
“그는 판을 볼 줄 아는 사람이야. 그러니 토마스 W. 라몬트와 헨리 P. 데이비슨도 해고하지 않았지.”
“…..잭 모건은 그 두 명이 반드시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했군요.”
“뭐, 헨리 P. 데이비슨의 경우는 모건 회장의 측근이기도 하니까 건드리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더 큰 판을 위해 작은 판을 희생한다.
잭 모건은 더 큰 걸 노리고 있다는 뜻인가.
“잭 모건의 가장 무서운 점이 뭔지 아는가? 그는 방심한 순간 뾰족한 송곳으로 폐부를 푹 찔러온다네.”
“아직 그가 몸을 웅크리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소름이 돋았다.
그동안 잭 모건의 도발이 없길래 그를 낮게 보고 있던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아니, 애초에 최근엔 변수에서 그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모건 회장은 나를 잭 모건과 동일선상에 세우고 싶어할 뿐. 나를 후계로 낙점한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안심따위를 하고 있었지?’
치이익-
윌리엄 록펠러는 조용히 내 모습을 지켜보더니, 유리잔에 콜라를 따랐다.
“자네가 부족해서 방심한 게 아니네. 단지, 잭 모건이 그런 방면에 특기가 있는 거지. 그놈이 괜히 인맥왕이겠나.”
“그래서 내 자네에게 제안할 게 있네.”
촤악-
윌리엄 록펠러는 수행비서가 가져온 서류들을 응접실의 책상 위로 흩뿌려놓았다.
“이제부터 좋으나 싫으나 자네 헤지펀드와 우리 록펠러 가문은 펜실베니아철도(PRR)로 반 운명공동체가 되었지.”
“그렇죠.”
“펜실베니아철도가 지속가능한 대가였으니, 우리도 자네에게 지속가능한 대가를 주어야하지 않겠나?”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차분히 록펠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과연 이 모든 정보를 알려준 후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일까.
“우리 록펠러 가문은 디트로이트 자네에게, 반 잭모건 동맹을 대가로 제안하는 바이네.”
“허.”
슥-
윌리엄 록펠러가 손을 내밀었다.
록펠러 가문.
미국 석유시장의 90%를 장악한 스탠더드 오일을 소유한 19세기의 거인이자, 시티은행 등의 대형은행들을 거느린 금융계의 대부.
미국 굴지의 3대 가문 중 한 곳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 록펠러 가문은 탑승감 좋은 열차라고 장담하지. 한번 타 볼 생각 있나?”
씨익-
윌리엄 록펠러는 웃었다.
“우선 핑커톤부터 치워주지.”
***
1898년 2월 17일 오전 7시.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 정문.
“든든하군요.”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의 정문은 뉴욕경찰청(NYPD)에서 파견한 수백명의 경관들로 우글거리고 있었다.
윌리엄 록펠러는 피식 웃었다.
“뉴욕경찰청이 말인가? 아니면 새로운 동맹을 맺은 미국 굴지의 록펠러 가문이 말인가.”
“하하. 짓궂으시네요.”
우리는 경관들의 호위를 받으며 월도프-아스토리아의 정문을 걸어나왔다.
윌리엄 록펠러는 자신의 수행비서의 경호를 받고 있었고, 내겐 베이론과 해병대 출신의 경호원들이 붙어있었다.
“아참, 형님이 자네에게 건네주라고 한 편지봉투가 있었는데 까먹고 있었군.”
“형님이라면…..?”
존 데이비슨 록펠러.
19세기 미국의 석유왕이 직접 나한테 편지를 썼다는 건가?
나는 등줄기를 타고 찌르르 흐르는 전율을 느끼며, 윌리엄 록펠러가 건네준 편지봉투를 떨리는 손으로 건네받았다.
꿀꺽.
“…..열어보겠습니다.”
“뭘. 긴장하지 말게. 생각보다 대단치 않은게 들어있을수도 있으니까.”
씨익 미소를 지은 윌리엄 록펠러가 내 어깨를 팡팡 두들기며 긴장을 풀어줬다.
사악-
나는 품에서 철자와 편지칼을 집어들어 편지봉투를 일직선으로 조심스럽게 잘랐다.
[ 행운의 편지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4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이 편지를 포함해서 7통을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 주셔야 합니……(중략)
– John Davison Rockefeller.
“…..!!!”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록펠러가 나한테 행운의 편지를 보냈다고? 도대체 행운의 편지 스노우볼은 어디까지 커질 생각인거지? 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도대체 어떻게 미국 굴지의 석유왕에게 도달한 걸까.
어질어질했다.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행운의 편지를 고이 접어 안주머니에 모셨다.
다그닥-
그때, 뉴욕경찰청의 기마경찰들이 우리들의 경호를 위해 인파를 해치고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부탁하네.”
윌리엄이 중절모를 벋어 인사했다.
기수를 튼 기마경찰이 천천히 선두를 달리자, 나와 록펠러는 기마경찰을 뒤따랐다.
그리고 뒤이어 온 경관들이 우리들의 뒤를 감싸는 형태로 걸었다.
경비는 삼엄했다.
그렇게 모두가 방심하고 있었고.
모두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순, 한 경관이 기습적으로 장전된 권총을 꺼내 내 심장을 겨눴다.
탕-!
한 차례 총성이 뉴욕 시내에 울려퍼졌다.
평화로운 아침, 갑작스러운 총성에 뉴욕경찰청의 경관들도 멍하니 서있었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어어!!”
히히힝-
오직 총성에 놀란 말들만 말굽으로 바닥을 때리며 날뛰었고 기마경찰들은 날뛰는 말 위에서 정신없이 말고삐를 틀어쥐었다.
탕-! 탕-! 탕-!
– 꺄아악!!!
뒤이어 세발의 총성이 추가로 격발했다.
연이은 총성에 행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고, 월도프-아스토리아의 정문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아침의 뉴욕시내에 패닉이 벌어졌다.
– 크…크아악!
암살을 시도한 경관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터뜨렸다.
그가 저격당한 손에서 핏물을 뿜어내며 그 자리에 털썩 쓰러지자, 그 뒤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구를 겨눈 베이론의 모습이 보였다.
씨익-
나는 경찰들에 둘러쌓인 채 살짝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