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36)
“그러니까. 자네가 말한 전차라는 녀석은 포격으로 진창이 된 험지에서 구동이 가능하며, 강력한 대구경주포로 상대진지를 찢어버릴 수 있으며. 쯧. 여기까지 하지.”
칙-
벤자민 홀트는 거칠게 시가를 끄며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는 내가 설명한 전차의 개념들을 백지에 슥슥 적더니, 펜대를 물고 팔짱을 꼈다.
“힘들겠습니까?”
“지금 자네는 혼자 20세기를 살고 있는 것 같아. 우선 자네가 첫 번째 조건으로 제시한 무한궤도부터가 아직 없는 기술일세.”
하긴 19세기 말인 지금은 전차는커녕 장갑차량조차 나오지 않은 시점이다. 장갑열차라면 모르겠지만.
차라리 장갑차량을 만들어달라고 하는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일단. 엔진. 엔진이 문제일세.”
“엔진입니까?”
“어, 증기기관으로 털털털 굴러가는 저 구닥다리 트랙터 따위로는 절대 전차의 무게를 견딜 수 없네. 대구경 주포는커녕 장갑판조차 달 수 없어. 더 강력한 엔진이 필요해.”
“강력한 엔진……”
벤츠가 휘발유로 움직이는 차량을 개발한 것도 최근이다. 내가 타고 다니는 벤츠 빅토리아가 휘발유 엔진의 초기모델이니 말 다한 셈.
그렇다면 디젤 엔진은 어떨까?
디젤엔진이라면 압축비율이 높아 휘발유에 비해 연비도 좋고 힘도 강하다고 들었다.
애초에 디젤엔진은 대형선박이나 화물열차, 대형차량에 들어가는 엔진일 텐데.
훗날 독일전차인 판터에도 디젤엔진이 들어갔다고 알고 있다.
‘역시 문제는 크기랑 무게겠지?’
디젤엔진은 전차에 들어가기엔 과하게 크고, 무겁다.
그래도 한번 제안은 해볼까?
“제가 두 종류의 엔진 개발사를 알고 있는데, 혹시 관심 있으십니까?”
“두 종류?”
“하나는 휘발유로 움직이는 엔진이고, 다른 하나는 경유로 움직이는 엔진입니다.”
지금쯤 독일제국에서 루돌프 디젤이 MAN사와 함께 디젤엔진을 개발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MAN사의 전신이 되는 회사지만 이름이 길었다. 아무튼.
“휘발유로 움직이는 엔진은 들어봤어도, 경유로 움직이는 놈은 처음 들어보는데?”
“대충 듣기로는 공기압축비율이 휘발유와 2배정도 차이가 난답니다.”
“2배?”
벤자민 홀트가 눈을 크게 떴다.
이 아저씨, 뭔가 반지를 손에 넣은 골룸처럼 눈빛이 위험하게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고 무겁습니다.”
“젠장. 내 그럴 줄 알았지.”
하지만 이어진 내 말에 관심이 푸쉬식 식었다.
이 아저씨, 진짜로 천상 공돌이구나.
“그래도 관심 있으십니까?”
“관심이야 많은데, 개발할게 한 둘이어야지. 자네가 말한 것들을 다 개발하려면 내 몸 하나가지곤 부족해.”
“그럼?”
“자네가 말한 전차라는 놈. 내가 봤을 땐 험지돌파를 위한 무한궤도가 핵심처럼 보이는데, 아닌가?”
“맞습니다.”
애초에 참호선을 뚫으려면, 참호전으로 개떡이 된 뻘밭을 돌파해야하는데, 무한궤도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대구경 주포고, 방탄강판이고 나발이고 간에 우선 무한궤도부터 완성하자고. 무한궤도만 완성 되도 일단 뭐라도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럼 연구는 어디서 하시겠습니까?”
“DWM.”
벤자민 홀트는 부릅뜬 눈으로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는 듯, 안광을 폭사했다.
마치 DWM에 보내주지 않으면 지금부터 24시간 파업을 하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졌다.
“마침 뉴욕 외곽에 DWM의 연구소가 있습니다. 거리는 대충 1시간 정도. 디트로이트에도 있고, 코네티컷에도 하나 있습니다.”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여기까지 열차를 타고 날아왔네. 그깟 1시간, 2시간이 대수인가? 우선 뉴욕 외곽부터 가보지.”
“OK.”
벤자민 홀트는 벌떡 일어나서 외투를 집어들고 밖으로 쏜살같이 뛰처나갔다.
성미도 급하긴.
하지만 타이밍은 좋네. 나도 마침 DWM에는 용무가 있었다.
***
“DWM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뉴욕 외곽.
DWM의 뉴욕지부에 들어서자, 대형 사격장들과 함께 거대한 공장건물들이 우후죽순 세워져있었다.
“이것이 DWM……”
“꽤 볼만 하지 않습니까?”
벤자민 홀트는 홀린듯한 시선으로 베이론의 안내에 따라 DWM 내부를 견학했다.
뭔가 피리 부는 사나이 같은 느낌도 없잖아 있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베이론이라고 했나? 혹시 DWM의 총기연구소나 화약연구소에 들어가 봐도 되겠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베이론이 ‘될까요?’라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자, 나는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OK 신호를 보냈다.
베이론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걸어가던 공장직원을 불러세웠다.
“이 청년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오, 고맙군. 자네 나랑 같이 좀 가지.”
벤자민 홀트는 청년의 목에 헤드락을 걸고 DWM 연구소를 향해 날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베이론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누굽니까?”
“홀트제조회사의 벤자민 홀트. 트랙터 회사의 메인엔지니어일세.”
“예? 트랙터 엔지니어가 왜 DWM 연구소를 찾습니까? 인터내셔널 하베스트 연구소면 모를까.”
“뭐, 깊은 사연이 있네.”
나는 손을 내저었다.
베이론에게 전차가 어떻고, 무한궤도가 어떻고를 다시 설명할 기운이 딸렸다.
나중에 무한궤도가 완성되면 그때 보여줘야겠다.
“그보다 중요한건 전쟁부일세. 총기납품계약은 좀 진척이 있나?”
내 물음에 베이론의 안색이 거무죽죽해졌다. 무능력한 자신에게 실망한 것 마냥 죽어가는 그의 안색은 누가봐도 심각해보였다.
음, 잘 안풀리나 본데.
“전에 DWM 독일본사에서 보내준 기관총을 보여줘도 묵묵부답인가? M1893 소총을 보여줘도?”
“물론, 독일본사와 계약상 DWM의 상표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꿈쩍도 안 하더군요.”
베이론은 고구마를 수십 개는 쳐먹은 듯 갑갑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병기국에서 대충 독일에서 제작한 무기라는 건 알아챘지?”
“네. 그래서 처음엔 독일제 장비들은 섬세하고 다루기 까다롭다면서 저희를 쳐냈습니다. 제 인맥을 총동원해서 찔러봐도, 결국 마지막엔 ‘예산부족’이었습니다.”
“하하. 예산부족?”
육군 놈들 정신 못 차리네.
M1893은 마우저에서 생산하다가 1896년에 스페인 내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소총으로, 복열식 5발 내부탄창을 적용했다.
게다가 이 소총은 스패니시 마우저라고 불리는 만큼, 스페인군이 사용하는 무장이었다.
스페인.
사실 어려운 설명은 다 필요없고, ‘스페인군’이 사용하는 무장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왜냐면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미 육군은 이 스패니시 마우저에게 거지발싸개처럼 먼지 나게 두들겨 맞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걸 거부한다고?
스프링필드 M1873 따위로는 스패니시 마우저의 장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예산부족……”
메킨리 대통령의 요청으로 의회가 5천만 달러 예산을 국방비로 할당한 게 고작 며칠 전의 일이다.
물론, 미육군을 소집하고, 무장시키고, 보급품을 마련하려면 5천만 달러로는 빠듯할 수도 있다.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5천만 달러는 현대 한화로 약 1500억 원. 당시 미국의 경제규모로 따지면 1조는 우습게 넘어가는 예산이었다.
“개소리지?”
“개소리죠.”
쿠바로 파병될 육군 5군단의 대부분은 민병대일 텐데, 무장과 보급품으로 1조나 되는 금액을 쏟아부은다는건 진짜 미친소리다.
게다가 저 전쟁부 자식들은 5천만 달러로 제대로된 보급품을 구매하지도 않았다.
훗날 썩은 소고기 스캔들로 갈려나갈 전쟁장관을 떠올려보면, 도대체 5천만 달러가 어디로 증발했는지가 미지수다.
하여간 방산비리는 진짜.
“그럼 입찰조차 하지 못한건가?”
“아니요. 입찰은 했습니다만, 콜트, 윈체스터, 레밍턴에게 밀렸습니다. 아무래도 말만 입찰이지 사실상 입찰거부인 것 같습니다.”
“콜트는 개틀링건으로 입찰했지?”
“맞습니다.”
“어이가 없네.”
왜 만들어와도 먹지를 못하니.
아니, 1차 세계대전에서 훨훨 날아다닐 MG08 기관총을 만들어줘도 아득바득 개틀링건을 쓰겠다는 전쟁부 놈들은 도대체 뭐하는 놈들인지 머리뚜껑을 열어보고 싶었다.
물론, 독일제는 저들 말대로 섬세한 기계들이라서 관리가 필요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점이 단점을 씹어먹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내 기분 탓이 아니겠지?
“시연은 해봤어?”
“예, 시연을 하긴 했는데 ,갑자기 군수장교가 육군의 엔지니어 몇 명을 부르더니 기관총을 뜯어보던데요.”
“……미친놈들인가?”
“일단 납품은 해야되니 내버려뒀는데, 부품 하나하나 집어들면서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아주 학을 땠습니다.”
“……”
이정도면 베이론이 천사임에 틀림없다.
이 시기 미육군 병기국이라면 스프링필드 놈들이 제일 잘나갈텐데, 이놈들은 진짜 한번 끔살 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생각인건가?
일단 시연 중에 총기를 다 뜯어봤다는 데서 나는 생각을 포기했다.
전쟁부는 자기네 육군 보급품으로 썩은 고기통조림이나 퍼주는 놈들.
음, 이제 좀 이해가 되네.
“시발. 진짜.”
“이사님, 속마음이 튀어나오셨습니다.”
“큼큼. 미안하네.”
아무튼 전쟁부 놈들은 틀려먹었다.
그리고 내 경험상 이런 안일한 놈들은 본때를 보여줘야 비로소 정신 바짝 차린다.
미 육군 놈들의 뒤를 기관총 총구로 쑤셔버리고 싶은데, 어디 좋은 카드가 없나?
‘그러고 보니 아일랜드에 보내던 밀수루트가 있었지?’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워싱턴 D.C.
전쟁부 청사.
스프링필드에서 불려온 병기장교들은 입찰 후 서류처리 때문에 전쟁부 청사의 사무실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콜트 사의 직원들까지 사무실을 들락거리니 정신없었다.
“근데 이번에 입찰한 독일제 총기들은 왜 입찰거부한 겁니까?”
한 신참 병기장교가 고참에게 물어봤다.
자신이 봤을 때는 독일제 총기들이 스프링필드의 총기들이나 콜트사의 총기들보다 우수했는데, 입찰조차 못하고 거부당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자 고참은 검지를 위로 치켜세웠다.
“상부로부터의 지시. 이번 입찰은 미국 내 국산 브랜드를 사용하라는 엄명이시다.”
“그런데 그 독일제 무기들도 생산은 미국에서 하지 않습니까?”
“글쎄다. 나야 모르지. 전쟁부 위에서 어떤 말이 오가고 어떤 거래가 체결되는지 우리같은 쩌리들은 모르는게 정상이고 약이야. 깊게 관여하지 말게.”
“예……”
“참 자네 말 잘 꺼냈군. 자네가 말한 그 독일제 기관총, 창고에다 좀 가져다 놓게.”
쉬쉬 손을 내젓는 고참의 말에 신참 병기장교는 내쫓기듯 자리로 돌아왔다.
마침 책상 위엔 독일제 기관총 한 대가 떡하니 올려져 있었다.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창고가 어디더라. 스프링필드에서만 근무해서 청사 내부는 까막눈인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드르륵-
병기장교는 무거운 기관총을 수레에 옮겨담고 돌돌 끌며 사무실을 사왔다. 전쟁부 청사의 복도엔 육군정복을 입은 장교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상관과 부딪히는 날엔 끝이다.
신참은 침을 삼키고 사람에게 부딪히지 않게 살살 수레를 끌며 전쟁부 청사 내부를 걸었다.
쿵-
“윽-!”
하지만 신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복도는 너무 좁았고, 실수로 누군가와 부딪혔다.
좆됐나?
신참은 제발 나보다 밑이어라, 밑이어라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삐걱이며 고개를 돌렸다. 계급장이…..
중위?
좆됐다.
“죄, 죄송합니다!!!”
“아, 아니. 괜찮네. 자네야말로 이 비좁은 복도에서 그 큰걸 옮기느라 고생이 많군.”
신참이 연신 사죄를 올리자, 부딪힌 중위는 신참의 어깨를 두들겨주며 진정시켰다.
중위도 10기병연대에서 병참장교를 하고 있어서 신참 병기장교의 고충은 잘 알고 있었다.
딱 보아하니, 창고가 어딘지 몰라서 해매고 있는 모양새였다.
“창고까지 안내해줄까? 대신이라기엔 뭐하지만, 그 기관총 좀 구경시켜주게.”
“네, 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아, 따라오게.”
창고는 가까웠다.
기관총을 창고에 옮겨놓은 신참은 연신 감사를 외치며 고개를 숙이더니, 곧바로 사무실로 올라갔다. 기관총은 무거워서 선반 아래에 내려놓아져있었다.
중위는 수염을 쓸며 기관총을 내려다보았다.
“독일제인가? 기관총이라기엔 좀 특별하게 생겼군.”
어째 개틀링건과는 다르게 생긴데다 대영제국의 맥심 기관총과도 모양이 조금 다르다. 이번에 새로 개발된 총기 같은데, 자세히보니 상자에 서류 몇장이 꽂혀있었다.
신참이 실수한 것 같았다.
“이거…..잘못하면 군법재판감인데. 나중에 따끔하게 일러둬야겠군.”
중위는 표정을 굳히면서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서류를 뽑아들었다. 혹시 누가 볼까 주위를 한번 빙 둘러봤지만, 창고엔 자신 혼자였다.
좋아.
“분석표? 시연할때 작성된 건가?”
마치 기관총 하나하나를 뜯어 역설계한 것 마냥 자세한 제원정보에 중위는 눈을 반짝이며 읽어내렸다. 탄약, 급탄, 작동방식, 총열길이, 전장, 중량, 등.
개발사에서 작성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자세했다.
어?
“……!!!”
10 기병연대 병참장교.
조지프 퍼싱은 경악한 얼굴로 기관총 샘플을 내려다봤다. 이런 훌륭한 기관총을 보고도 계약을 불발시켰다고? 대신 콜트사의 개틀링건으로 계약했고?
퍼싱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병기국 놈들, 미친건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