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38)
“빌어먹을 철도돼지놈들. 왜 보험이 안 되냐고 빼액빼액 울어대기는. 고막이 다 아프네.”
로이드 보험(Lloyd’s) 북미지부.
한 사무실에서 한탄의 소리가 세어나왔다. 그의 사무실은 한차례 허리케인이라도 지나갔는지, 서류들이 흩뿌려졌고 티컵들이 깨져있었다.
다 철도귀족 손놈들이 만들어놓고 간 참상, 청소하려면 한두 시간으론 어림도 없어보였다.
“이거 언제 다 치우지.”
하아-
로버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자식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아니, 볼일은 없겠군. 대부분 다 파산했으니.”
2월 중순부터 미국에 입국해있었으니, 벌써 철도재벌들과 실랑이 한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로버트는 그 기간 동안 법무팀과 함께 미국에 입국해 철도재벌들의 보험계약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애초에 분식회계 했으면서 보험금을 달라고 하다니, 도대체 낯짝이 얼마나 두꺼운 거야?”
검은 수요일.
뉴욕증시에서 철도회사들이 나락으로 떨어지자, 그동안 맺어왔던 모든 거래계약들이 삐걱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약이 줄줄이 불발되자 철도재벌들은 엉덩이에 불이 붙은 듯 런던로이즈로 찾아와 로버트의 멱살을 붙들었다.
– 런던로이즈, 당신네들은 신뢰하나로 먹고 사는 이들 아니오! 그런데 왜 보험이 적용이 안된다는 거요!!!
– 내 당신네들의 민낯을 전부 까발려버리겠어!!! 미국엔 발도 못붙일줄 알아!!!
– 내가 누군지 알아? 어? 내가 당신네 회사 사장이랑 어? 저녁도 먹고 어?
귓가를 멤도는 클레임 소리에 로버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전혀 신사적이지 못해.”
여왕폐하의 치하.
대영제국의 금융가에서 저런 불한당은 한 명도 못 봤거늘. 교양이 떨어지고 지능이 떨어지니, 대화 몇 마디 나누는 것조차 고통이었다.
“애초에 런던로이드는 회사가 아닌데 무슨 헛소리들인지. 우리에 대해 조사도 안 해보고 보험계약을 한 건가? 배짱 하난 인정해 줘야겠군.”
런던로이즈는 보험의 세계 중심지.
로버트 자신이 맡고 있는 북미지사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의 대규모 보험계약은 90% 이상이 로이드 보험을 통해 체결되고 이행된다.
그래서 로이드 법안(Lloyd’s Act)에 따르면 로이드보험은 기업보단 협회의 성격에 더 가깝다.
“한 푼도 안 뜯겼으니, 그걸 위안 삼아야 되나. 울고 싶어지는군.”
탁탁-
로버트는 바닥에 떨어진 서류들을 하나로 모아 정리했다.
“뉴욕센트럴철도, 이리철도, 체셔피크-오하이오, 조지굴드 대륙시스템……”
서류들에 적힌 철도회사의 이름들은 화려했지만, 이젠 더 이상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회사들이다.
빅4 대륙철도에 죄다 합병되어 버렸으니까.
“아, 그러고보니 제임스 선배한테 안부전화도 거의 안하고 있었네.”
로버트는 런던로이즈에서 JP모건은행으로 이직한 제임스를 떠올렸다. 최근엔 헤지펀드라는 회사에 들어갔다고 했었지.
요즘은 월가의 영웅이라 불린다나.
“하하, 이직도 능력이라니까.”
뭐, 자신도 런던로이즈에서 일하면서 페이 하나는 넉넉하게 받으니 불만은 없었다. 이번처럼 검은 수요일처럼 대사건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나름대로 꿀이기도 했고.
따르르릉-
그때, 빈 사무실의 수화기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로버트의 미간이 팍 찌그러졌다.
“또 철도회사 놈들인가. 이런 지긋지긋한 개자식들.”
딸깍-
로버트는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한두 번 클레임은 좋게좋게 넘어가지만, 이건 선 넘었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전화 좀 작작-”
“로버트, 나 제임스인데 혹시 시간되나?”
응?
로버트는 삐걱이며 천천히 귀에서 수화기를 떼었다. 잠시 수화기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번뜩 정신차리고 다시 귀에 댔다.
“선배?”
***
뉴욕 월스트리트
헤지펀드 사무실.
“…..”
치이익-
나는 콜라를 든 채 조용히 제임스 옆 의자에 앉아, 그가 통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제임스는 특유의 영국식 발음으로 유창하게 통화했다.
– 철도회사들 때문에 미국으로 넘어왔다고? 자네도 힘들었겠군.
– 아, 조지굴드 놈들은 피곤하지. 그놈들, 기업사냥꾼의 거친 방식이 남아있으니까.
– 밴더빌트는 꽤 신사적이었나보군?
제임스는 전화 속 상대방과 몇 마디 신변잡기를 나누더니, 슬슬 본론에 들어갔다.
전화 속 상대방과 스페인제국에 대한 이야기로 진지한 대화를 하더니, 나에게 수화기를 넘겨주었다.
“도련님, 로버트가 바꿔달랍니다.”
“로버트라는 이름인가보군?”
“예, 로이드 보험에 다닐 적에 제가 사수를 하던 후배입니다.”
“실력은?”
“발군입니다.”
“좋아.”
나는 제임스에게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수화기 너머로는 유창한 영국식 영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로버트입니다. 월가의 영웅과 통화할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하하, 얼굴에 너무 금칠하지 말아주시죠. 런던로이즈(Lloyd’s of London)의 국제적인 위상은 저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하하. 쑥스럽군요.”
의외로 뻣대지 않는다.
19세기 대영제국을 떠올려보면 영국인들은 신사인 척 하는 날강도들이라고 생각했지만 꽤 의외였다.
이 당시 대영제국은 미국을 촌뜨기라고 생각하던 시점일 텐데, 적어도 대화는 통한다 이건가.
시작이 좋다.
“제임스가 말씀드린 스페인제국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선, 밀수루트만 확실하다면 스페인제국에 기관총을 팔아넘기는 건 무리 없다고 판단됩니다. 규모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스페인군 20만 명을 무장시킬 무기를 팔아넘길 생각입니다. DWM제 소총이나 탄약, 기관총들과 부속품들을 팔아넘기게 되겠죠.”
“…..!!!”
20만 명.
스페인제국이 미국스페인전쟁에 투입시킨 병력의 총원이었다.
반면 미국은 7만 명.
그런데 어떻게 이겼냐고 한다면, 그건 스페인제국이 개틀링건조차 없는 머저리들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20만 명의 군대라면 로이드보험을 끼고 거래하는게 유리하겠군요.”
수화기 너머로 펜이 사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DWM이면 마우저사를 말씀하시는 걸테고, 마우저사의 기관총이나 소총이라면 확실히 스페인제국이 침을 흘릴만한 품목입니다.”
“예, 그래서 저는 이 무기를 스페인제국에 팔아넘길 생각입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로버트가 말을 끊었다. 그의 음성에선 사무적인 어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직 흥미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
“스페인제국이 20만 명이나 되는 군을 무장시킬 예산이 있습니까? 그게 있었으면 진작 독일제국의 DWM본사로부터 구매했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서 런던로이드에 제안을 하는 겁니다.”
“흠?”
지금부터가 본론이다.
“혹시 모라토리엄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
모라토리엄(moratorium)
전쟁·천재·공황 등으로 경제가 혼란하고 채무이행이 어려워지게 된 경우, 국가가 일정기간 채무의 이행을 연기 또는 유예하는 상태.
당장 못 갚겠으니 조금만 미뤄달라는 것.
대한민국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지 못했을 경우,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을 것을 고려하면 구제금융보다 심각한 상태다.
“…..스페인제국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라도 한다는 말씀입니까?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순서대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우선 미끼부터 달아야합니다.”
“미끼 말씀입니까.”
미끼.
스페인제국이 우리 무기를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한다.
“만약 스페인제국이 저희의 무기를 사서 전쟁에서 승전한다면, 쿠바의 완전한 지배권을 손에 넣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의하십니까?”
“그렇죠.”
“그렇다면 스페인제국에 남아있는 미국의 자본들은 다 어떻게 될 것 같으십니까? 그리고 쿠바인들의 자본들은?”
“그야……아!”
전부 스페인제국이 먹어치울 것이다.
현 쿠바의 투자금 대부분은 미국에서 출자된 금액들. 그것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스페인 제국이 다시 부강해질 수 있다는 꿈을 불어넣을 수 있다.
‘한마디로 따서 갚겠다. 이거지.’
어딘가의 파쇼 콧수염 아저씨가 할법한 발상이었지만, 놀랍게도 이건 식민지개척을 하던 제국주의자들의 발상과도 일맥상통하는 발상이었다.
“당장 미국은 군축과 문민통제로 동원할 수 있는 군이 겨우 7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스페인제국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일 터. 기관총으로 무장한 20만 대군을 보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
“심지어 스페인제국은 미국에 DWM 북미지사가 있다는 사실은 새까맣게 모르고 있을 겁니다. 로이드보험의 당신도 모르고 있던 사실을 그들이 알겠습니까?”
“……대단하군요. 확실히 바람잡이는 쉽겠습니다. 플랜테이션으로 나오는 수익금이 얼마나 막대한지는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눈 돌아가겠는데요.”
“그리고 유럽의 열강들은 미국을 한층 낮게 보고 있지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백색함대를 이끌고 무력시위를 돌고, 중재자로 나서면서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투사하기 전까지 유럽대륙의 열강들은 미국을 이류열강 정도로 깔보고 있었다.
실제로 미육군을 본다면 아직 이류열강이 맞았고.
“며칠 전, 미육군은 DWM제의 기관총을 입찰 거부했습니다.”
“미쳤답니까?”
“글쎄요. 머리에 납탄이라도 박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미육군이 초반에 기관총을 든 스페인제국군에게 갈려나갈거란 사실이 중요합니다.”
고작 개틀링건을 들고 MG08 기관총을 상대한다? 그것도 고작 7만명으로 20만명에게?
스페인제국에게 개박살나겠지.
“하지만 한번 개박살난 미육군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DWM의 기관총을 구입하겠군요. 그것도 대량으로.”
“북미지부의 분이라 그런지 말이 잘 통하는군요. 미국에 대해 잘 알고 계십니다.”
로버트는 수화기 너머로 침음성을 삼켰다.
스페인제국은 DWM 북미지사의 존재를 모른다. 현 미육군은 윈체스터, 콜트, 레밍턴 3사가 군수업을 꽉 쥐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갑자기 미국이 DWM제 기관총으로 떡칠한 채 나오기 시작한다?
“…..스페인 제국을 이기게 할 생각이 전혀 없으시군요?”
“당연합니다. 저는 헌법을 수호하는 미합중국의 시민. 저는 저의 조국이 이기길 간절히 희망하는 사람입니다.”
“뭐, 그렇다고 합시다.”
안 믿네?
“그런데 말씀대로라면 스페인제국은 결국 미국에게 쿠바고, 필리핀이고, 태평양이고 다 빼앗길 텐데, 돈은 어디서 충당하실…..아!”
로버트는 수화기너머로 탄성을 내뱉었다.
“모라토리엄!”
“예, 스페인제국은 거의 국가부도 직전에 다다르겠죠. 쿠바나 필리핀에 있던 자본들까지 전부 빼앗기게 될 테니까요. 그럼 저희는 채무불이행을 명분으로 스페인제국에게 뜯어먹으면 됩니다.”
“….!!!”
수화기 너머로 침묵이 이어졌다.
대영제국의 금융인인 만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내가 제안한건 IMF가 대한민국에 한 것처럼 거의 똑같은 포지션으로 스페인제국에 해주자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아마 군침이 싹 돌지 않을까?
“잠시만요.”
수화기 너머로 우당탕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한 5분 정도 지나자, 로버트가 돌아왔다.
“모건 이사님 말씀대로 스페인제국에게 무기구매를 부추기려면, 외상이나 대출을 생각하고 계시는 거겠죠?”
“예, 저는 스페인제국에게 저금리 대출을 권유할 생각입니다.”
“이야, 저금리 대출이면 더더욱 무기를 구매하겠군요.”
로버트가 감탄했다.
“스페인제국은 대출한 금액으로 기관총을 구매한다. 그렇다면 대출할 은행도 중간에 끼워야겠군요? 그것도 대영제국의 은행으로요.”
“정확합니다.”
로버트는 내 의도를 정확히 읽었다.
“그럼 바클레이스 은행을 중간에 끼워넣도록 하죠. 마침 저희 신디케이트의 회원 중에 바클레이스 은행이 있습니다. 아마 흔쾌히 대출해주실 겁니다.”
“완벽하군요.”
나는 옆에 서있는 제임스를 보았다. 제임스는 눈매를 초승달처럼 휘고 있었다.
하여간 혐성놈들은 이런걸 좋아해요.
로버트가 수화기를 다시 잡았다.
“음….남은 건 대영제국의 정부를 끌어들일 미끼군요?”
씨익-
나는 대영제국이 혈안이 될 정도로 달려들 미끼를 하나 알고 있었다. 지중해 패권을 견고하게 하고자 하는 사자들의 니즈를 말이다.
“모로코. 모로코는 어떻습니까.”
풀스 울트라(Plus Ultra)
지중해의 관문이자, 스페인제국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대해의 통로. 동시에 고대 헤라클래스의 기둥으로 막힌 금단의 영역.
지중해판 잠가라 벨브를 할 수 있는 대서양으로의 유일한 통로.
지브롤터 해협이다.
이걸 안 물고 베길 수 있다고?
내 장담하건데, 대영제국 놈들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달려들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