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45)
워싱턴 D.C.
주미 영국대사관.
부릉-
심야한 밤.
검은색 마차 한 대가 주미 영국대사관으로 향했다. 대사관 입구에 배치된 보초들은 검은색 마차가 다가오자 철창을 열어주었다.
“영국대사관 내부가 이렇게 생겼었군.”
“처음 와보십니까?”
사실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20세기에 한번 영국대사관에 들어가본 적은 있을 뿐이지. 19세기 말 이런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영국대사관은 처음이었다.
내부로 들어가자 영국대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통신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영국대사를 따라 영국대사관 내부에 위치한 통신실로 들어갔다.
이곳 영국대사관의 통신실은 19세기 중반에 설치된 해저케이블을 시작으로 수에즈, 중동, 인도, 싱가포르를 거쳐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전 대륙에 걸쳐 전보를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홍콩에 있는 듀이제독과 모스부호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일본제국의 요코하마항, 오사카항에 있는 그레이트노던철도의 이사들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모든 전신은 영국의 식민지를 경유하는 식으로 제작되었고, 보안은 철저했다.
“컨트롤타워네요.”
“하하, 군함으로 따지면 함교에 맞는 위치가 되겠군요.”
역시 대영제국의 대사라고 해야하나.
기승전 해군이었다.
“이쪽 전보를 통해 홍콩총독부와도 통신할 수 있다고 했었죠?”
“예. 뿐만 아니라 각국의 대사관, 공사관, 영사관에도 연락이 가능합니다.”
“오.”
나는 통신실에 있는 아무 의자나 가져와 앉았다. 솔직히 21세기에 살다와서 모니터가 덕지덕지 달린 컨트롤타워에 익숙했지만.
이곳은 검은색 전깃줄이 사방에 거미줄처럼 빽빽하게 걸려있었고, 사람들이 서류를 집어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책상엔 모스부호를 송수신하기 위해 타다닥 손가락을 움직이는 통신사들로 가득했다.
영국대사는 입에 손가락을 댔다.
“이곳에선 지시를 내릴 때를 제외하곤 조용히 계셔야합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일본제국으로 통신하려면 누구에게 가야하나요?”
“일본제국 라인이면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레이트노던철도의 이사들에겐 미리 주일 영국공사관을 통해 통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잘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나는 일본라인의 통신사 곁에 의자를 두고 앉았다.
“일단 주일 영국공사관과 통신부터 확인해주세요. 아마 지금쯤 입관했을 겁니다.”
“예.”
통신사가 타다닥 신호를 보내자, 몇 분 뒤 답신이 날아왔다. 초단위로 통신을 하던 21세기 인으로선 고구마같은 속도였다.
‘분 단위….이것만 해도 감지덕지인가.’
“통신상태 양호합니다. 그레이트노던철도라고 전보가 왔는데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나는 제임스에게 지시했다.
“제임스, 자네는 홍콩 쪽을 확인하게. 듀이제독이나 보좌관이 연결해줄 걸세.”
“네!”
제임스가 통신실 직원을 따라 사라지자, 나는 다시 내가 담당한 통신사에게 집중했다.
가만히 앉아있던 통신사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통신에 귀를 기울였다.
“신호 들어옵니다.”
종이에 무언가 샤샤삭 적은 통신사는 내게 종이를 건네주었다.
나는 휘갈겨진 필기체를 읽어내렸다.
“일본항에서 미쓰이물산, 미쓰비시 상사, 스미토모 상사와 접촉. 홍콩으로의 미국상선 인계는 1차적으로 완료. 총 대수 15척.”
15척?
그걸 다 무장하면 군함인데 15척?
아시아함대가 장갑순양함 4척에 포함 2척.
스페인함대가 장갑순양함 2척, 비방호순양함 5척. 포함 5척, 수송선 1척.
이걸 다 합한 대수랑 비슷하잖아?
“……자본주의 무서운 것.”
원역사에선 듀이제독의 지휘하에 아시아함대만으로 스페인함대가 슥삭슥삭 지워졌다.
그런데 15척이 증원이라.
태평양 방면의 스페인 함대에게 애도를 표하며, 나는 계속해서 읽어내려갔다.
“미쓰비시 기선(해운회사)이 상선의 지원을 희망한다고 요청.”
‘미쓰비시라.’
현 일본제국의 재계는 미쓰이재벌, 미쓰비시재벌, 스미토모재벌들이 정경유착을 통해 일본경제를 꽉 쥐고 있다.
러일전쟁이 끝나고 일본이 대한제국을 합병하면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지금도 일본 내 위상은 높다.
“미쓰이물산을 따라잡으려고 악을 쓰는군.”
미쓰이물산이 일본내 업계 1위.
미쓰비시 상사가 일본내 업계 2위.
뭐, 미쓰이재벌은 미쓰비시와 달리 유서깊은 재벌가문이라 어쩔 수 없긴 했다.
“이번에 미해군에게 상선을 지원해서 빚을 지우고 필리핀의 이권을 따내겠다?”
하하.
어디다 숟가락을 얹으려고.
“통신사.”
“넵.”
“완곡하게 거절하라고 넣어주게.”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을 위해 일본재벌들과의 커넥션은 중요하다. 10년도 지나지 않아 러일전쟁이라는 빅이벤트가 있으니까.
뜯어먹- 아니, 돋을 벌려면 그들과의 커넥션은 필요하다.
그때 뒤에서 제임스가 손가락으로 나를 쿡쿡 찔렀다.
“도련님, 홍콩으로부터 전보입니다.”
“듀이제독의 요청인가.”
나는 홍콩발 전보를 건네받았다.
“폐선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 기뢰확인용으로 사용될 예정인가.”
아, 확인용.
기뢰제거는 폐선 몇 척으론 무리겠지만, 기뢰를 확인하는 정도야 가능하겠지.
‘원역사 마닐라 해전에서 스페인놈들, 해안가를 지뢰로 도배해놨다지?’
하지만 기뢰를 설치하면 뭐하나.
수심이 깊어서 미해군의 군함을 한척도 침몰시키지 못했는데.
그래도 폐선정도야 충분히 지원가능했다.
“허가한다고 전해주게.”
“예.”
삐걱-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걸로 판은 다 깔아줬다.’
이젠 느긋하게 승전보를 기다릴 일만 남았다.
***
홍콩.
영국 왕립해군(Royal Navy)의 제복을 입은 해군대령이 듀이제독에게 서류철을 넘겼다.
듀이제독은 결재서류에 싸인을 휘갈겼다.
“…..내 인생에서 영국해군에게 함포를 대여받는 건 처음인 것 같군.”
“하하, 세상사 모르는 법이죠.”
“자네들의 상사와는 아직 대면할 수 없나?”
“홍콩총독은 홍콩주재영국군의 총사령관직을 겸임합니다. 그래서 많이 바쁘시니 양해부탁드립니다.”
“그런가?”
“그보다 출항이 내일이셨죠?”
“어, 필리핀의 수빅만을 통해서 마닐라만까지 갈 예정일세.”
“그렇다면 보급은……뭐, 충분하겠군요.”
“허허허.”
보급품이야 산처럼 쌓여있었다.
듀이제독은 홍콩 군항에 정박하지 못한 채, 근해에 띄워져 있는 무장상선들을 보더니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영국해군의 대령은 무장상선의 후미에 연결된 폐선들을 보며 머리를 갸웃했다.
“저 폐선들은 뭡니까?”
“기뢰확인용.”
“아.”
치익-
듀이제독은 콜라병을 깠다. 코카콜라를 바라보는 영국해군의 대령의 눈빛이 달라졌다.
먹이에 굶주린 사자의 눈빛이랄까.
“자네도 한 병 줄까?”
“열 병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자네, 뭘 좀 아는군.”
코카콜라 홍콩지부.
영국해군과 미국해군들의 폭풍흡입으로 매출이 지붕을 뚫고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홍콩총독부.
“크흠.”
홍콩총독 직무대리는 주홍콩 스페인 영사와 독대를 나누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홍콩총독 직무대리를 맡고 있는 윌슨 블랙입니다.”
“……예.”
주홍콩 스페인 영사는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홍콩총독은 본국으로부터 송신된 전보를 상기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 교전 시, 스페인 영사를 붙잡아둘 것.
‘미해군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정보망으로 필리핀 주둔군이 주홍콩 스페인영사를 이용한다라.’
일리 있다.
같은 상황이면 자신도 그럴 것이고, 애초에 대사 공사 영사란 직업은 원래부터 첩보, 방첩의 성격을 띌 수밖에 없다.
홍콩총독은 얼굴을 들어 스페인 영사를 바라보았다.
‘그를 총독부에 붙잡아둠으로서 스페인 주둔군의 눈과 귀를 막는다.’
아마 아르마다(무적함대)놈들.
깨나 당황하겠지.
“그럼 대담을 시작하죠.”
홍콩총독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
1898년 4월 30일.
아시아함대는 4척의 장갑순양함, 2척의 포함, 15척의 무장상선과 5척의 폐선으로 구성되어, 필리핀 수빅 만으로 항해했다.
스페인 해군으로부터 수빅 만과 마닐라 만을 가져올 수 있다면, 해상봉쇄를 통해 스페인제국의 필리핀 주둔군을 고립시킬 수 있다.
하지만 수빅 만은 예상과는 달리 텅 비어있었다.
쏴아아-
야심한 밤.
듀이제독은 기함인 USS 올림피아의 함교에서 수빅 만을 바라봤다.
그때 함교로 통신병과 장교가 달려왔다.
“마닐라주재 미국영사에게서 전보가!”
“줘보게.”
듀이제독은 전보를 낚아챘다.
“수빅 만의 스페인함대는 마닐라만 함대와 합류. 홍콩 주재 스페인 영사로부터 정보를 받은 것으로 예측됨.”
“홍콩 주재 스페인 영사면…..”
“어, 지금 홍콩총독과 오순도순 독대를 진행하고 있지. 몇박 며칠로 말이야.”
“그렇다면 수빅 만에 있던 함대들은 왜 마닐라로 합류한 겁니까?”
부관의 질문에 듀이제독은 미소를 지었다.
“정보 부재의 공포일세. 정보통인 홍콩 주재 스페인 대사와 연락이 끊겼다면 저들은 상당한 패닉이 왔겠지? 자신들의 눈과 귀가 가려졌으니 말일세.”
“그렇겠죠.”
“그럼 답은 하나지. 미해군의 전력을 알 수 없으니 요새나 해안포가 부실한 수빅만을 포기하고 마닐라만에 집중하겠단 걸세.”
“아.”
듀이제독은 턱수염을 쓸었다.
‘하지만 너무 딱딱 맞아떨어진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자신과 이 아시아함대가 누군가의 정교한 판 위에서 움직이는 기물처럼 느껴졌다.
영국총독이 스페인영사와 독대하는 건. 영국해군이 함포를 대여해준 건. 일본항으로부터 대량의 상선이 입항한 건.
이 모든 것들이 ‘우연히도’ 스페인군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과연 우연일까?”
듀이제독은 일단 나머지를 읽어보기로 했다.
마닐라 주재 영사의 전보엔 아직 뒷내용이 있었다.
“스페인 함대는 장갑순양함 2척, 비방호순양함 5척. 포함 5척, 수송선 1척을 구성.
“마닐라 만의 방어선은 요새, 해안포, 기뢰, 함대 4겹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각각의 구성품이 구식장비들로 구성됨.”
“수빅만에서 마닐라만으로의 해로는 초행자들에게 야간항해는 무리이나, 지리정보를 첨부함.”
듀이제독은 눈을 크게 떴다.
“수빅 만에서 마닐라 만까지의 지리정보들까지 들어있군. 스페인놈들, 이정도면 우리 측 영사를 감금시켜도 될 수준인데?”
허술하다.
게다가 장비도 구식이다.
구식 장갑순양함이 2척 밖에 없다고? 우리에겐 4척의 신식 장갑순양함이 있었다.
듀이제독은 함교를 둘러보았다.
“지금부터 야간항해에 돌입한다. 이렇게 지리정보까지 세세하게 측량되어 있는데 못하는 머저리들은 없겠지?”
“에!!!”
듀이제독의 함대는 조타를 틀어, 마닐라만을 향해 항해했다.
쾅-! 쾅-!
초행자에겐 어렵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수중의 기뢰들이 폭발했지만, 수심이 깊어 선두의 장갑순양함에 생채기밖에 내지 못했다.
아직 폐선을 쓸 수는 없었다.
“이건…..!!!”
함교의 장교들은 두 눈을 의심했다.
마닐라만에 도착한 아시아함대를 기다리는 건 십수척의 군함들과 6대의 해안포대 3곳의 요새 뿐. 심지어 군함들엔 목조함마저 섞여있었다.
열악하다.
너무 열악하다.
“이게….스페인?”
함교에 있던 장교들은 얼떨떨했다.
설마 함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열악한 장비들. 하지만 듀이제독은 정확히 현실을 간파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탄약도, 석탄도, 무장상선들도 없이 이곳을 왔다면 고전했을 걸세.”
“…..!!!”
“풍족한 보급에 감사해야겠군.”
듀이제독은 망원경을 들었다.
야심한 밤동안의 항해를 마치자, 마닐라만엔 아침 해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걸로 해를 등지고 싸울 수 있었다.
음…..
이정도로 유리한 판에서 침몰할 정도로 머저리는 자신의 함대엔 없었다.
저 해안포에 맞을 바엔 차라리 자신이 직접 목을 잘라 효수해 버릴 것이다.
이정도로 판이 유리해지니, 듀이제독의 눈에 스페인제국의 함대가 다른 의미로 보이기 시작했다.
“부관, 아무리봐도 저놈들. 우리들의 전력을 모르는 것 같지?”
“예. 제게도 그렇게 보입니다.”
“흠.”
듀이제독의 눈에는 차후 먹을 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들이 아른거렸다
좋아.
“제군들.”
“예!!!”
“작전 목표를 변경한다.”
듀이제독은 망원경을 내렸다.
그의 눈에 더 이상 스페인 군함은 처치해야할 적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먹이였지.
훕-
듀이제독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우리는 지금부터 스페인의 군함을 최대한 나포한다!!!”
***
워싱턴 D.C.
주미 영국대사관.
치익-
나는 잠시 로비로 나와, 콜라병을 깠다. 소파에 앉아 뻐근해진 다리를 쭉 폈다.
“도련님께서 무장상선들을 지원해줬지만 역시 걱정되는군요.”
“왜? 장갑이 없어서?”
“네, 태평양을 다 커버할 수 있을지···”
맞는 말이다.
미국은 지금 2류열강이라 장갑화된 군함들이 부족한 시점이었다. 아직 군함을 찍어내 백색함대를 만들어낼 정도의 해군력이 없어, 그들은 군함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무장상선에도 그렇게 기뻐한 것이고.
“걱정 말게. 스페인함대는 열악하고, 우리에겐 영국해군도 있으니. 무엇보다···”
“?”
쪼오옥-
콜라를 마셨다.
“없으면 뺐어오는 게 전쟁아닌가.”
나는 지금쯤 나포할 생각에 신나있을 듀이제독의 얼굴을 떠올리며 편안히 소파에 기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