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80)
대영제국 재무성.
“호텔생활은 좀 괜찮으십니까?”
“최고입니다. 이보다 좋을 수 없네요.”
로버트 재무장관의 물음에 나는 곧바로 끄덕였다. 대영제국의 빈부격차가 극에 달하고 빈민가가 창궐했다지만 귀족들이나 관료들이 머무르는 관저나 호텔은 그만큼 최상급을 유지하고 있었다.
영국에 머무르는 동안, 로버트 재무장관은 각별히 나를 챙겨주고 있었다.
“아, 혹시 디트로이트 이사님도 미합중국의 게이지 재무장관님께 언질 받으셨습니까?”
“언질이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게이지 재무장관에게 따로 귀뜸받은 내용은 없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로버트 재무장관이 나보다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게이지 장관님께서 디트로이트 이사님이라면 알고 계실거라고 하시던데요. 존 피어폰트 모건 회장님이 언질해주셨을 거라고.”
“아니요. 그보다 무슨 내용입니까?”
존 피어폰트 모건 회장.
라이만 게이지 재무장관.
이 둘이 언급된 이상 예삿일이 아닐 것이다. 이 시기에 미합중국에 일어날 사건이 뭐가 있었는지 머릿속을 뒤져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곧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됩니다.”
“….아!”
나는 머리에 벼락이라도 스친 듯 충격을 받았다. 제정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이 2세의 제안에 의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
‘이 중요한 사건을 왜 잊어버리고 있었지?’
하지만 곧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이 헤이그 평화회의에 대해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사에서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에 파견된 헤이그 밀사사건에 대해서만 기억하다보니 제1차 헤이그 평화회의에 대해선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기억이 나는 것 같습니다.”
“오. 내심 디트로이트 이사님도 참가하시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성인연령이 아니셔서 참석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이 말이 맞다.
사실상 현재 내게 도움을 주는 이들은 존 피어폰트 모건회장이란 뒷배를 신뢰하는 이들이거나, 내가 그동안 벌인 일들을 옆에서 지켜본 산 증인들 뿐이었으니.
‘검은 수요일에도, 공화당 회의에도 나를 무시하는 인간들은 늘 있어왔지.’
다 짓밟아버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이들에겐 내가 어린 애송이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건 인정한다. 무엇보다 지금 내 나이는 17세. 미국은 18세부터 성인으로 취급하니, 성인이 되려면 1년이나 남아있었고.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
“아무래도 불참이 되겠죠?”
“사실, 헤이그 평화회의의 참가조건에 성인만 참여할 수 있다는 조항은 명시되어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누가 미성년자가 참여할거라고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요.”
국제회의에 미성년자를 내보냈다간 미국의 체면이 말 그대로 짓뭉개질 것이다. 이건 미국의 위신과도 직결된 문제라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건은 아니었다.
‘뒤에서 암약하는 수밖에 없나.’
헤이그의 평화회의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법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법으로 해결하자.’였다.
헤이그 평화회의를 통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평화궁이 건설되었고, 내부는 국제사법재판소, 상설중재재판소, 헤이그 국제법 아카데미, 평화궁 도서관으로 구성되었다.
평화궁의 건설에는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개인자금을 댔다.
‘즉 그만큼 법률중심적으로 조인된 협약과 선언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협약에 국제은행업에 대한 법률조항을 추가할 예정이다.
통화스와프에 대한 지급의무와 패널티를 명시하기 위해 말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통화스와프라고 언급하지는 않는다.
계약이행의무 정도로 서술해놓고, 그 세부사항과 특약에 통화스와프를 연상시킬 수 있는 대목을 넣을 수만 있다면 최상이다.
‘현 미합중국의 법무장관이 존 그릭스였지?’
이번 헤이그의 평화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장관급 인사들 중 한명이다. 직접적으로 헤이그 평화회의에 얽힌 인물들은 총 넷.
법무장관.
국무장관.
전쟁장관.
해군장관.
현 미합중국의 국무장관은 존 헤이였지만, 이 양반은 메킨리 대통령과 더불어 친영파였으니 우리 편이다.
더불어 문호개방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던 제국주의자기도 했고.
“걸리는 건 내 나이뿐인가.”
나는 편지지를 꺼내들어 펜으로 국제은행업 조항에 필요한 의무와 패널티들을 적어내렸다. 기본적인 개념만 적어서 블라치포드 로펌에 자문을 부탁하면 알아서 포장해주겠지.
추신(P.S.)에는 완성된 초안을 존 그릭스 법무장관에게 발송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냥 국제은행업에 대한 조항만 넣어서는 존 그릭스 법무장관이 끄떡도 안 하겠지.’
나는 제1차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의결될 평화협약들의 대략적인 컨셉 속에 국제은행법을 끼워넣었다. 수많은 법학자들이 고안해낸 협의문인 만큼, 존 그릭스도 유심하게 정독해주리라.
사사삭사삭-
편지지의 끝엔 내 서명을 넣었다. 그리고 내 염원과 함께 편지봉투에 동봉했다.
“잘 풀리면 좋겠네.”
국제은행업에 대한 조항만이라도 제대로 통과된다면, 나는 국제법이란 천혜의 방패를 손에 넣게 되리라.
쐐기를 박을 명분으론 이것만한게 없었다.
***
미합중국 백악관.
장관회의.
“존(John)만 세 명이군.”
“…..루스벨트. 만약 농담이었다면 재미없었네.”
뿌득-
루스벨트가 농담하자, 정색한 존 롱 해군장관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회의석 맞은편에 앉아있던 국무장관과 법무장관도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존 롱 해군장관.
존 헤이 국무장관.
존 그릭스 법무장관.
진짜로 존만 세 명 있었다.
턱-
그때 두터운 손이 회의실 탁자를 턱하고 내리쳤다. 메킨리 대통령이었다.
“루스벨트 전쟁장관, 회의 시작부터 물 흐리지 말고 얼른 시작합시다.”
“죄송합니다.”
드륵-
마지막으로 들어온 루스벨트까지 착석하자, 회의실은 단숨에 엄숙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메킨리 대통령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회의 안건을 꺼내들었다.
“오늘 회의 의제는 헤이그 평화회의에 대한 안건들입니다. 이전부터 제정러시아의 차르께서 평화회의를 위해 노력하신 끝에 결국 네덜란드 헤이그에서의 개최가 확정되었습니다.”
헤이그 평화회의.
만국 평화를 위한다는 껍질을 뒤집어썼지만. 사실상의 군비증강에 따른 각국의 재정부담이 심해지자 이를 중재하기 위해 개최된 중재회담이었다.
“원래라면 전시상황인 미국과 스페인의 상황으로 인해 미뤄지거나 취소될 수도 있었습니다만, 스페인도 미국도 이번 만국평화회의에 참석을 희망했기에 개최될 수 있었지요.”
메킨리 대통령의 발언에 국무장관을 제외한 장관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하지만 곧 스페인제국이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는 이유에 대해 추론해볼 수 있었다.
속도전으로 끝내려고 한 전쟁이 장기화되자 이쯤에서 종전이나 휴전협정이라도 맺으려고 몸부림치는 거겠지.
“저희의 스텐스는 간단합니다.‘
절대불가.
이 장관회의에 참석한 이들 중 미국이 패배한다고 예측하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특히 드레드노트에 대해 언질받은 메킨리 대통령이나 존 헤이 국무장관, 존 롱 해군장관, 루스벨트 전쟁장관은 오히려 여기서 휴전하면 미국의 국익에 손해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
끄덕-
메킨리 대통령의 스텐스에 모두가 동의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해봅시다.”
***
백악관의 별실.
“답답하군.”
루스벨트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었다.
장관회의는 형식적인 말만 오가며 메킨리 대통령의 스텐스를 공고히 굳히기만 했을 뿐 유익한 얘기가 오가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각 행정부의 장관들마다 저들끼리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장관회의에서 발설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헤이그 평화회의에 대한 건설적인 얘기는 장관회의가 끝난 이후에 이뤄졌다.
존 롱 해군장관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루스벨트, 자네도 참 애같은 구석이 있어.”
“그럴 수밖에. 장관회의에서 드레드노트를 발설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렇게도 답답할 줄은 상상도 못했네. 곧 있으면 스페인해군이 삭제될텐데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지.”
“드레드노트에 대해 모르니 당연하지 않겠나. 그보다 중요한 소식을 하나 더 가져왔네.”
“중요한 소식?”
존 롱 해군장관은 리처드 제1해군경에게 날아온 전보를 루스벨트 전쟁장관에게 건네줬다.
“잉글랜드의 왕립해군도 드레드노트를 건조하기 시작했다는군.”
“…..언제부터.”
“우리한테 비밀로 이미 포츠머스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있던 모양일세. 건조를 시작한건 우리 드레드노트와 거의 동시. 우리 측에서 반대할까봐 이제야 통보해왔다고 하더군.”
“그 망할 라이미 새끼들.”
루스벨트는 이를 갈았다.
결국 잉글랜드 놈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제대로 된 놈들이 아니었다.
존 롱 해군장관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롱-리처드 밀약에 적힌 조항은 다 준수했으니 약이 올라도 어쩔 수 없지. 우리측 드레드노트와 쌍둥이함이라더군.”
“……진짜 아니꼬운 자식들.”
치익-
루스벨트는 거칠게 시가를 태웠다.
“그런데 왕립해군은 갑자기 왜 건조한다고 하던가? 저번 포츠머스에서 회의했을 때는 상당히 조심스러워보였잖은가.”
“북미 및 서인도제도의 함대사령관이 강력하게 요청했다더군.”
“그게 누군가.”
“피셔 제독.”
“그 이름, 들어본 기억이 있군.”
악마섬.
대영제국이 프랑스와 파쇼다에서 부딪혔을 당시 악마섬에 투옥되어 있던 드레퓌스를 꺼내 프랑스 본토로 송환하려 했던 작전을 지휘한게 피셔 제독이다.
뭐, 원체 유명한 사건이기도 했지만, 이 둘이 알고 있는 건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번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영국측 해군대표로 참석한다던 인물 아닌가.”
“곧 있으면 지중해함대로 영전할 예정이라고도 하네.”
“왕립해군의 요직이군.”
아무튼 거물이 끼어들은 탓에 왕립해군도 드레드노트를 건조하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롱-리처드 밀약에 의해 각 해군이 관할할 해역이 각각 다 정해졌기 때문에 부딪힐 일은 없었다.
오히려 미국과 특수관계인 그들이 드레드노트를 가졌다는 사실에 좋아해야할 지도 몰랐다.
“롱, 디트로이트 자문에겐 귀뜸해줬나?”
“아직일세. 나도 장관회의에 불려오기 조금 전에 들었으니까.”
“그렇군. 그나저나 이번 헤이그 평화회의에 그가 참석할지부터가 의문이야. 아무래도 미성년자라 무리지 않을까?”
루스벨트의 의문에 존 롱 해군장관은 콧웃음을 쳤다.
“자네는 그렇게 당해놓고도 아직 디트로이트를 모르는군.”
“뭐?”
“그놈의 사전엔 말일세.”
존 롱 해군장관은 미서전쟁 초기, 대영제국의 왕립해군을 아군으로 끌어왔을 때의 디트로이트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때부터 쭉 이어진 그의 행보를 말이다.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네.”
존 롱 해군장관은 어느새 루스벨트보다도 더한 디트로이트의 신봉자가 되어있었다.
***
그 시각.
JP모건은행.
“…..저보고 아버지 대신 나가라고요?”
나는 황당해져 되물어봤지만, 모건 회장은 그저 심드렁하게 시가를 태울 뿐이었다. 그는 여유롭게 한 손으로 서류철을 훑어보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래, 게이지 장관에게 네놈의 작전을 대략적으로 전해들었지. 헤이그 평화회의는 네게 날개를 달아줄 중요한 회의가 될 거고. 물론 내 부탁도 몇 개 들어줘야겠지만.”
“그럼 그동안 아버지는 뭐하시고요.”
“나?”
모건 회장은 잠시 나를 흘끗 쳐다보더니 다시 서류철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네가 싼 똥 치워야지.”
“아니…..말 표현이 좀.”
“부정하지 않는 걸보니, 네놈도 유대계 은행들이 얼마나 무자비한줄 알고는 있나보구나.”
“…….예.”
“그러니 네가 싼 똥이지.”
유대계 은행들이 뼛속까지 발겨먹기 전에 제동을 걸 방법을 찾고 계신다는 소리였다. 그들이 뼈 한줌 남김없이 먹어치웠다간 더 큰 이득을 놓치게 되니 말이다.
구제금융.
연방통화위원회의 명의로 휴지값된 동아시아 경제를 호로록 빨아먹으려면 유대계 은행들의 속도조절이 필요했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지만 대다수가 그랬다.
“디트로이트.”
“예.”
“눈치보지 않아도 된다.”
“예?”
휙-
모건 회장은 시가를 입에 물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던져주었다.
금고의 열쇠꾸러미였다.
“JP모건은행 특수금고의 열쇠다. 금보유고는 물론이고 은, 다이아, 보석, 달러, 파운드, 증권 등 자산들의 보유고까지 다 열 수 있는 열쇠들이지.”
“……”
“그러니 돈 모자를까 걱정하지 말고 지르거라. 모자른 돈은 내가 다 메꿔줄 테니.”
“…!!!”
나는 고개를 퍼뜩 들었다.
존 피어폰트 모건 회장은 어느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피식 웃었다.
“나도 아버지 노릇 좀 해보자고.”
그날.
나는 최고의 뒷배를 얻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