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81)
네덜란드 헤이그.
유럽의 신흥해상강국 네덜란드의 이름이 걸맞게 거대한 항구에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그리고 만국평화회의.
세계각국의 대표단이 한자리에 모여 세계 평화를 위해 논하는 자리인만큼 거물들이 줄줄이 항구에서 내려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뿌우우-
각국은 거물들의 호위에 군함을 붙여준 탓에 구축함이나 순양함들이 헤이그의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덜컹.
우리도 미국군함의 호위를 받으며 항구의 선착장에 발을 내딛었다.
“그래서. 나는 왜 데리고 온 것이냐.”
윌리엄 록펠러.
시티은행의 은행장이자 록펠러 회장의 동생. 그는 툴툴거리면서도 헤이그의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 국민들에겐 기본적으로 유럽문화에 대한 열망이 있었으니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아버지께 못들으셨습니까?”
“그래, 모건회장님은 그냥 자네를 따라가라고 하시더군, 설명은 자네가 해준다고.”
“하긴 제가 하는 편이 더 빠르긴 하죠.”
덜컹.
나는 검은색 마차에 올라타 문을 닫았다. 마부는 채찍을 휘두르며 마차를 부드럽게 몰았다.
“은행장님은 이번에 미국에 새로 도입한 신용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자네가 국세청(IRS)을 동원해서 강제지장을 찍게 만든 그거 말인가?”
“……뭐, 예.”
“그거라면 나는 높게 평가하고 있네.”
록펠러 은행장은 심술난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시가를 칙칙 태웠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툭툭 칭찬들이 튀어나왔다.
“이번에 국가공인신용평가기관으로 선정된 기관이 어디어디 있었지?”
“그거야 저희 헤지펀드와 무디스, S&P에서 이뤄지고 있지요.”
무디스.
존 무디스를 영입해 세운 특수법인. 내 지분 75%와 무디스의 지분 25%로 세워졌고, 법인 설립과 동시에 연방통화위원회의 인가를 받아 국가신용평가기관(NRSRO)에 등록했다.
그리고 S&P.
여기가 좀 복잡하긴 한데, 원래 스탠더드와 푸어스를 분리해서 법인을 설립했지만, 철도계와 비철도계가 나눠진 채로는 헤지펀드나 무디스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둘이 합병해서 탄생한게 S&P.
여기도 내 지분 75%에 그들의 지분 25%가 들어가 있다. 즉, 신용평가기관들은 전부 내 수중에 있는 셈이었다.
“맙소사. 신용 독점이라니. 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횡포일세. 하지만 자네가 그 핸들을 쥐니 횡포가 아닌 시장안정이 찾아오더군.”
록펠러 은행장의 말대로 국가신용평가기관이 선정되고 기업들의 신용평가가 이뤄지면서 분기단위로 빡세게 공시를 하기 시작하자, 대형은행들이 신용법에 의거 우리 신용평가를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연쇄적으로 대형은행의 거래처인 기업들 간의 거래에도 또한 절대적인 기준으로 군림했다.
“자네, 이번 분기에 조정된 스탠더드오일의 신용등급. 혹시 알고 있나?”
록펠러 은행장은 기가막히다는 듯이 헛헛한 웃음을 흘렸다.
“무려 A급일세. A급. 미국독점시장을 구축한 스탠더드오일에게 AAA급을 주지 못할망정 A급을 준다고? 나는 이 소식을 들은 순간 진노할 록펠러 회장님이 걱정되어 뉴욕자택으로 찾아갔네.”
“어떤 반응을 보이시던가요.”
“웃으시더군.”
록펠러 은행장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미소엔 록펠러 회장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감탄이 담겨있었다.
“그러면서 내게 신용평가기관이 스탠더드오일에게 발송한 신용평가 사유들이 명명백백 빽빽하게 적힌 서신을 건네주셨는데, 이유들이 하나같이 다 납득할 수가 있는 사유들이었네.”
반독점법의 리스크, 국내시장은 독점이지만 해외 시장으로 나가면 브라노벨과 로열더치, 셀과의 머리터지는 경쟁. 텍사스 유전에 대한 가능성과 강력한 신흥석유강자들에 대한 위협.
하나같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들로만 채워져있으니 이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손도 발도 못쓰지. 록펠러 회장님은 자신의 손인 엘드리치 상원의원을 이용해 신용법을 통과시킨 장본인이었으니. 게다가 모든 기업들의 신용등급과 등급사유가 공시되어버리니 원. JP모건은행은 신용도 AAA, 헤지펀드도 AAA, 하지만 그 산하의 기업들은 단 한곳도 AAA를 받은 곳이 없네.”
사실 AAA의 기준을 심하게 높게 잡았다.
록펠러는 한탄아닌 한탄을 했지만 얼굴에 묘한 자부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록펠러 회장님이 왜 그대로 두고 계시는지 아나? 모건회장님이나 카네기 회장님이 왜 신용평가기관이랍시고 날뛰는 저들을 내버려 두고 계신지 자네는 아는가?”
“왜죠?”
“시티오브런던의 로이드보험 때문이다.”
록펠러는 말을 이었다.
“시티오브런던의 선진화된 금융구조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네. 잉글랜드와 독립된 일종의 도시국가나 다름없는 시스템을 예로 들 수 있지. 하지만 시티오브런던의 자부심에는 한 곳의 기관이 꼭 들어가있는데, 그게 로이드 보험이네.”
“무슨 말씀인지 감이 잡히네요.”
“그래, 로이드보험은 시티오브런던의 신용 그 자체일세. 로이드보험은 단 한 번도 지금불이행을 낸 적이 없으며 보험료는 정확히 계산해 정시에 상대에게 납부하지.”
“하지만 월스트리트엔 그런 자부심이 없었네. JP모건은행의 모건회장님? 그 분도 대단했지.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자부심보단 그분은 그 자체로 빛이 나는 분 아니던가. 그분은 일종의 월스트리트의 황제같은 분이지. 자부심을 가질만한 꺼리는 아닐세.”
“하지만 신용법은.”
“다르지.”
월도프-아스토리아 협약.
대형은행들이 한자리에 모여 건전한 금융시장을 위해 뜻을 모을 일이 있을까? 하물며 미국은 중앙은행이 없거나 미약했던 시대를 풍미해온 자유방임주의 국가 그 자체였다.
자부심은 개뿔이고 늑대처럼 자본만 걸신들린 듯이 쫒던 짐승들 그 자체.
그런 월가에 신용법은 묘한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있던 것이다.
“한 마디를 더 붙이자면, 헤지펀드가 신용등급을 공시했을 때, 단 한건의 항의전화도 항의서한도 없었습니다.”
“그게 대단하다고.”
툭툭.
록펠러 은행장은 다 꺼져가는 시가를 창밖에 버리고는 새로운 시가를 꺼내 태웠다.
“짐승들을 사람으로 만들었지. 자네가 월스트리트에 새로운 획을 그은 거야.”
나는 록펠러의 진지한 말에 새삼 감명을 받았다.
“별 말씀을 다.”
“그래서 결국 나를 데려온 이유는 뭔가.”
후우-
록펠러 은행장은 심드렁한 얼굴로 물으면서도 눈에 이채가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픽 웃었다.
“그 신용법(Credit Act). 이번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제안해주셨으면 합니다.”
“…뭐?”
“저희 월스트리트도 이제 전세계적으로 놀아야하지 않겠습니까. 해외 대형은행들도 저희 신용법에는 혀를 내두르고 있습니다. 외신들은 저희 신용법을 배워야한다고 각국의 금융계를 향해 외치고 있고요.”
“하긴, 모건가문이 있었고, 자네가 국세청(IRS)을 움직였고, 자네의 공정심으로 겨우겨우 완성된 이 견고한 성은 우리 ‘미국’이기에 가능한 법일지도 모르겠군.”
“예, 그래서 국제법에 국제신용법을 비준시키려는 겁니다. 만약 국제신용평가기관이 탄생하면 누가 제일 먼저 등록되겠습니까? 국제법의 법학자들은 미국의 법조계보다는 더 깐깐하고 공명정대하거든요.”
록펠러 은행장은 감탄했다.
“…..우리 미국의 신용평가기관들이겠군.”
“맞습니다.”
“그리고 그 신용법의 제안을 록펠러의 내 입으로 하게 만드는 건가. 자네도 참 영악해.”
이례적으로 신용등급 A등급이란 폭탄을 맞은 스탠더드오일의 록펠러가문이 신용법을 제안한다?
이보다 더 설득력 있는 제안도 없다.
“자네, 늙은이 취급이 고약해.”
“하하, 한번만 편 들어주시죠. 이건 빚으로 달아놓겠습니다.”
“그 말. 꼭 지켜라.”
“이래봬도 신용평가기관의 수장입니다.”
“퍽이나.”
툴툴거리는 록펠러 은행장에 나는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통과만 된다면, 아마 꽤 거스름돈이 들어올 겁니다.”
***
네덜란드.
헤이그 회담장의 별실.
“그릭스 장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네덜란드의 법학자.
토비에스 아서르는 미국의 그릭스 법무장관과 독대를 가지고 있었다. 네덜란드인들은 국제법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아서르는 그 가운데서도 깐깐하기로 유명하며 일종의 사명마저 가지고 있는 법조인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와 독대를 가지자고 하셨는지 궁금하군요.”
“제가 오늘 아서르 법학자님을 찾아온 것은 이 서신 때문입니다.”
그릭스 법무장관은 품에서 한 서신의 사본을 꺼내 아서르에게 건네주었다.
“무슨 내용입니까?”
“이번 헤이그 회담에서 논의될만한 주제들을 정리해놓은 서신입니다. 누가 제게 건네줬는데 꽤 쓸만하겠더군요.”
“어디…..”
아서르는 옆에 놓아두었던 안경을 쓰고 서신을 꼼꼼하게 읽어내렸다. 하지만 아서르의 시선이 밑으로 더 밑으로 향할수록 그의 표정은 단단하게 굳어갔다.
이내 침음성을 흘렸다.
“음…..”
한 30분 동안, 아서르는 서신을 몇 번이고 정독하고 또 정독했다. 그릭스 법무장관은 그가 다 읽고 납득할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처음에 이 서신을 본 자신도 아서르와 똑같이 몇 번이고 그 자리에서 읽어내렸으니까.
침묵이 길어지고, 초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째각. 째각.
그렇게 2시간이 흐르자, 아서르는 마침내 서신에서 눈을 떼고 그릭스를 바라보았다. 아서르의 복잡해진 눈이 그의 심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떤 천재가 이걸 적어주었습니까.”
“하하, 어째 저와 반응이 똑같으십니다.”
그릭스 법무장관은 허허롭게 웃었다.
서신을 건네준 비서관에게 자신이 보여준 반응과 일치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서르의 눈에는 웃음기라곤 전혀 없었다.
그제서야 그릭스도 뭔가 잘못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 문제 많지요. 우선 저희 네덜란드 측의 국제법 법학자들이 합의하고 예측한 제안서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촤락-
그릭스는 건네받은 문서를 펼쳐 읽어내렸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내릴수록 그릭스의 눈은 점점 커졌고, 이윽고 마지막에 이르자 그는 눈이 터질 듯이 부릅떴다.
“이건…..”
“예, 저희가 예측한 항목들 중 겹치는 것들이 몇 개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점이 놀라운 게 아니죠.”
“그럼?”
“이 서신에 추가되어 있는 새로운 조항들. 이 조항들이 제겐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국제은행법.
국제신용법.
국제거래법.
법학자들이 초안을 짤 때 전쟁과 분쟁에 관련된 모든 안건들을 다 검토했다 생각했었지만, 가장 중요한 걸 빼먹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 국제분쟁의 반절 이상은 금전에서 나오고 99% 이상은 손익에서 탄생합니다. 그런데 국제조약에 이런 경제조항들을 넣을 생각을 못했다니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입니다.”
“그렇군요.”
“예. 그리고 이 그림…..”
아서르는 서신 마지막에 그려져 있는 궁전의 그림에 홀린 듯 중얼거렸다.
“개인적으로 상설중재법원을 설립하는 것이 제 평생의 소망입니다만,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이 서신의 주인은 이렇게 멋진 건축물을 지어주겠다는 거군요.”
“예, 이름은 네덜란드 ‘평화궁’. 추신에 직접 아서르 법학자님에게 보여달라는 부탁이 적혀있었으니까요. 건축에 필요한 비용도 전부 후원하겠다는 전문입니다.”
“……법률에 대한 선구안적인 시야, 국제정세에 밝은 감각, 그리고 국제법을 어떻게든 통과시켜 사법재판소와 중재재판소를 만들겠다는 의지. 훌륭하군요. 이렇게 된 이상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이 서신에 적힌 안건들이 통과될 수 있도록 두 팔 걷어부쳐보겠습니다.”
탁탁-
아서르는 그릭스에게 전달받은 서신을 정리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네덜란드의 국제법 법학자들에게 이걸 보여줘 설득부터 시켜야겠군요.”
그렇게 또 한 명의 거물이 디트로이트에게 홀리는 순간이었다.
***
탕. 탕. 탕.
“헤이그 평화회의를 개회하겠습니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각국의 대표단이 참석해 개회를 시작했지만, 원역사에서 일정은 길게 잡혀있었다.
제정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이 2세의 탄생일인 5월 18일부터 7월 29일까지 계속되는 일정이었다.
역시라고 해야할까.
군비경쟁에 대한 내용이 주 안건으로 제안되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고, 곧 회의는 전쟁관련의 안건으로 피터지는 토론장이 개막했다.
그 중 각국대표단이 주목한 대목은 스페인 대표단과 미국대표단의 언쟁이었다.
“저희 미국의 리버코드는 전세계 최초로 입법기관에 의해 제정.공포되어 문서화된 전쟁행위에 대한 군법입니다. 미국의 리버코드는 만국에서 인정하는 군법아니었습니까?”
“저희 스페인대표단은 미국 리버코드를 기반으로 한 국제조약에 과연 중립성이 있을지 의문을 표합니다. 네덜란드의 고명한 국제법의 법학자님들을 의심하는 것이 아닌 미합중국의 야욕을 경계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밝힙니다.”
스페인 대표단이 중립성을 걸고 넘어지며 반박을 해오자 그릭스 법무장관의 이마에 핏대가 튀어나왔다.
“법전은 그저 법전일 뿐입니다. 미국국민들에게, 미국에게 유리하게 적힌 조항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교전자, 포로, 인질, 반란군, 탈영병, 등 모든 명사들은 중립적인 단어를 토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릭스의 어조는 평탄했지만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렸다.
“그리고 참고한다 뿐이지 누가언제 이걸 그대로 들고가서 배낀다고 했습니까. 네덜란드의 고명한 국제법 법학자들의 손을 거쳐 공정성을 인정받고 문서화할텐데, 스페인측의 의견은 네덜란드 법학자들의 공정성에 이견을 제시하는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국제법에서 네덜란드의 위상은 높다.
왜냐하면 네덜란드의 법학자 휴고 그로티우스는 최초로 국제법의 기초를 정립한 인물이자 국제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법조계의 거성이었기 때문이다.
21세기 국제사법재판소도 네덜란드의 평화궁에 자리하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
스페인대표단은 침묵했다.
이 이상 걸고넘어지면 국제법을 상대로 싸움을 건 꼴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의 리버코드를 토대로 국제조약을 조인하자고 만국이 협의했는데 스페인이 계속 걸고 넘어졌다간 국제적으로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스페인의 발언권이 높아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국제사회가 스페인제국의 승리에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 두 곳.
영국과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에 한해서였지만 말이다.
평화회의는 계속되었고, 전쟁행위 및 잔혹행위에 대한 규제. 살상무기들에 대한 금지조치 등 인도적인 차원의 조항들만 계속해서 늘어났다.
“역시 이렇게 되는군.”
윌리엄 록펠러는 디트로이트 이사의 말대로 흘러가는 평화회의의 분위기에 구역질을 느꼈다. 평화라는 인두겁을 쓰고 군비경쟁의 축소라는 목적으로 모인 주제에.
결국 아무도 군비축소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도적인 조약이랍시고 규제만 점점 늘어나고 있을 뿐.
그 누구도 자신들의 국가의 군비를 축소하고 싶지 않아했다.
아, 스페인 빼고.
스페인은 미국의 군비를 줄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지만, 미국만 때리기엔 명분이 약해서 끼어들 수가 있어야지.
“지금이 시기적으로 딱 적절한 것 같군요.”
평화회의가 마무리된 어느날 저녁.
벌써 평화회의가 개회한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전쟁행위에 대한 조항이 미국 리버코드를 바탕으로 이뤄지기 시작했고, 평화회의의 흐름은 명백히 미국측이 쥐고 있었다.
내 말에 윌리엄 록펠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평화회의 의제로 국제은행법, 국제신용법, 국제거래법을 제안해보도록 하지.”
스윽-
가만히 않아있던 그릭스 법무장관이 한 손을 더 거들었다.
“자네의 법안들. 네덜란드 법학자인 아서르가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군. 네덜란드의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호평이 자자하다고 해. 아마 내일 윌리엄 록펠러 은행장이 평화회의의 의제로 제시하면 꽤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걸세.”
하지만 두 명의 응원에 나는 조용히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아니다.
그들의 호응이 없어도.
네덜란드와 영국의 지원사격이 없어도.
이 법안은 통과될 것이다.
‘아주 잘 듣는 미끼를 숨겨놨지.’
금융에 어두운 법학자들은 깨닫지 못할 제국주의라는 싱싱한 미끼를 말이다. 뭐, 국제법은 어차피 명분일 뿐이지만, 그 명분을 대영제국과 미국이 잡는다면 좀 이야기가 다르지.
이 두 국가는, 특히 대영제국은 명분만 생긴다면 식칼을 들고 생선의 배를 회쳐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시점 국제법이나 조약은 가장 강력한 명분이다.
“록펠러 은행장님.”
“음?”
“내일 평화회의에 제안할 의제들을 제가 분석해 서면으로 정리해봤습니다.”
“한번 읽어봐도 되나?”
“예. 물론입니다.”
촥-
윌리엄 록펠러는 내게서 종이를 건네받고는 펼쳐들었다. 하지만 읽어내려 갈수록 록펠러의 눈이 점점 커져갔다. 마치 자신이 왜 이걸 눈치채지 못했는지 놀라워하는 듯이 말이다.
“…!!! 잠깐 이거.”
“네.”
나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아마. 이대로만 해주시면 잘될 겁니다.”
“자네 도대체… 어디까지 보고 이 계획을 세운 건가.”
나는 대답 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몇 달 뒤.
곧 영국 포츠머스 조선소에서 드레드노트가 취역한다.
국제법으로 저들의 통화스와프가 꼼짝없이 묶인 순간.
드레드노트로 스페인해군이 무너진다면.
거의 시간차도 없이 쓰나미처럼 전세계를 덮칠 것이다.
……페소화의 쇼크가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