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90)
네덜란드 왕실.
암스테르담의 왕궁 접견실에선 토비에스 아세르가 빌헬미나 여왕과 대면하고 있었다.
네덜란드의 법조계, 국제사법재판소의 권위자인 그가 하는 발언인만큼 빌헬미나 여왕은 귀를 기울였다.
“여왕폐하. 오늘 국제사법재판소로 제소가 접수되었는데, 일단 왕실에 보고해야할 것 같아 직접 찾아왔습니다.”
아세르는 미국의 그릭스 법무장관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 문서를 빌헬미나 여왕에게 진상했다.
빌헬미나 여왕은 문서를 훑어읽었다.
멈칫.
여왕은 눈가를 문질렀다.
“…..아세르 경. 내 눈이 잘못된건지 모르겠군. 감히 일개은행이 황실의 재산을 건드렸다고 적혀있는데, 혹시 짐의 착각이라면 그렇다고 일러주게.”
빌헬미나 여왕.
올해 19세의 나이, 네덜란드 왕실의 어린 여왕이다. 이제 갓 어머니 섭정에게서 벗어나 홀로 일어서기를 하려던 그녀는 현재 전방위적으로 기량을 의심받고 있었다.
꽈악.
그녀는 종이를 우그러뜨렸다.
왕실의 권위에 거의 노이로제가 걸린 그녀는 이 일개은행이 감히 왕실재산에 손을 대려고 한 일본의 은행에 잔잔한 분노를 흘리고 있었다.
“아세르 경. 국제사법재판소는 국제법에 의거해 판결을 한다고 알고 있네. 맞는가?”
“예, 여왕님. 공정한 국제법 판결을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이 안건은 국제사법재판소가 설립되고 처음으로 제소된 안건입니다.”
“그럼 내 묻겠는데. 과연 이 천인공노할 무리들이 저지른 황실재산의 탈취시도는 국제법에서 지엄하게 다스려질 수 있는가?”
토비에스 아세르는 만국평화회의를 떠올렸다.
국제은행법, 국제신용법, 국제거래법.
이번 안건은 이 세가지를 모두 어긴 안건이었다.
“중범죄입니다. 폐하. 국제관계에 있어서 그 어떤 범죄행각보다도 심각한 침해행위고, 은행이라면 있을 수 없는 횡포이기도 합니다.”
“아세르 경.”
“예, 폐하.”
빌헬미나 여왕의 눈에 불이 켜졌다.
“공정하게. 하지만 지엄하게. 국제법과 국제질서의 위상을 그 일본제국이란 촌놈들에게 제대로 보여주도록 하게. 네덜란드 왕실은 국제사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전적으로 지지하겠네.”
“황송하옵니다. 폐하.”
“좀 피곤하군. 잠시 혼자있고 싶네.”
“예, 폐하.”
쾅.
왕궁 접견실의 문이 닫히자, 빌헬미나 여왕의 이마에 핏줄이 맺혔다.
상업의 국가 네덜란드.
국제적인 무역도시 암스테르담.
당연히 은행업은 최신 선진기술을 많이 도입하고 있었고, 네덜란드 상업은 유구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은행이 타국 황실의 재산 탈취라니 이런 무도한 놈들 같은이라고.”
한편으론 공포가 몰려왔다.
19세기말.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그녀는 약소국으로 국가가 전락하면 저런 무자비한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19세의 어린 빌헬미나 여왕은 입술을 깨물었다.
“절대로 안된다. 만약 국제법이 이 무도한 은행에게 조금이라도 관대한 처사를 하게된다면, 향후 네덜란드의 왕실, 더 나아가 약소국들의 왕실재산과 권위가 어찌될지 모른다.”
국제사법재판소가 어떻게 이뤄지더라?
국제사회의 구성국에서 법관들을 선정해 법정을 꾸려 국제법에 기반해 판결을 내린다.
그렇다면……
국제사회의 동조를 얻을 필요가 있었다. 왕족들에게 가능한 멀리 퍼뜨릴 수 있게 하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녀는 왕실하인에게 타일렀다.
“외무경을 불러들이게.”
대영제국.
네덜란드 여왕의 친서는 곧바로 버킹엄 궁전으로 날아들었다.
벨 에포크 시대.
제국주의의 상징.
살아있는 대영제국.
빅토리아 여왕의 이 소식이 귓가로 들어갔다.
챙그랑-!
크리스탈 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파편으로 비산했다.
“이 서신에 적힌 것이 사실이오?”
“예, 여왕폐하. 국제사법재판소와 미국정부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혐의는 거의 확실하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 솔즈베리 경을 호출하시오.”
빅토리아여왕은 진노했다.
그녀는 유럽열강의 자손 황제들에게 친서를 써 배포하였고.
빌헬름 카이저. 니콜라이 차르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배를린궁.
크렘린궁.
반응이 절대 좋을 리 없었고.
국제사법재판소의 법관들은 최초의 안건에 황실들의 관심이 쏠리자,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직 제소된 안건의 검토조차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재판까지는 멀었다.
하지만 외교는 가까웠다.
쾅.
일본공사는 버킹엄으로 소환당했다.
***
버킹엄궁전으로 일본공사가 소환당했다.
그것도 자국은행의 범죄행각에 의한 압력으로 전세계 황실의 눈초리를 받게 되었다.
살아있는 제국주의.
일본제국은 빅토리아 여왕의 눈밖에 나버렸다.
“이런 무뢰배들 같은이라고!!! 통화스와프로 나라를 한번 말아먹었으면 작작 해야지. 국가의 기둥뿌리까지 뽑아가려 하는가!!!”
결국 눈뒤집힌 메이지 천황의 포효가 황거를 뒤흔들었고.
일본제국의회는 뒤집혔다.
쾅-!
“이 모든 일의 발단은 이토히로부미 전 내각총리와 시부사와 제1국립은행장의 천인공노할 만행. 그리고 대장대신의 대처가 물렀기 때문에 나온 일입니다!!!”
일본제국의회.
야마가타 내각을 구성하는 대신들은 줄줄이 소환당했고, 제국의원들의 심문을 받기 시작했다. 조슈번과 사쓰마번은 서로를 집요하게 물어뜯기 시작했고 의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메이지 천황은 제국의회의 상석에 앉아 냉기를 풀풀 흘리고 있었다.
마쓰가타 대장대신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가쓰라 육군대신. 이게 어찌 본인의 잘못이오? 그대가 조슈번이라 사쓰마번 출신인 내가 미워보이는건 알겠지만, 억지도 이런 상억지가 어디있소. 정 나를 몰아세우고 싶다면 증좌를 제시하시오.”
“뻔뻔하군!!! 국립은행들의 환교환(통화스와프)를 막지 못한 시점에서 당신은 이미 끝인거야!!!”
쾅-!
가쓰라 육군대신의 열연에 육군부의 장성출신 의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슈번의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이토의 죄가 중한만큼, 그들은 어떻게든 사쓰마번과 이 짐을 나눠가지고 싶어했다.
“마쓰가타 대장대신. 상식적으로 한달만에 공황이 터지는게 말이 되오? 일본경제는 그렇게 약하지 않소! 메이지 유신을 거쳐 유신지사들이 쌓아올린 철옹성이 이리 빠르게 깨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 아니오! 이건 대장성의 무능함을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소이다!”
“하!”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이를 갈았다.
가뜩이나 도쿄조약을 맺은 일로 민중의 질타를 당해 억울해 죽겠는데 제국의회에서까지 맞으려니 너무 억울하고 너무 아팠다.
“가쓰라 육군대신! 경제를 모르면 좀 빠져계시오! 애초에 국립은행들은 자주적으로 거래할 권리가 있고 중앙은행은 이를 침범해선 아니되오! 분명 중앙은행의 위엄과 통제가 있어야하긴 하지만 그게 어용은행은 결코 아니란 말이오!”
일단 자신은 통화스와프를 중앙은행을 통해 맺은 적이 없다.
이게 다 메이지 천황에게 빌붙어 일본은행의 보증을 칙령으로 선포하게 한 이토 히로부미와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만행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자신에게 뒤집어 씌운다고?
기가 차 말도 안나온다.
하지만 이건 입에 담지 않았다.
자칫하면 메이지천황의 칙령인만큼 그의 분노를 맨몸으로 받아내야할지도 몰랐으니까.
“그리고 경제공황이 한달만에 와 내 역량이 의심받는 것은 무리가 너무 많은 이야기 아니오! 그리고 한달이 뭐요 저들이 준비한 기간은 1년이 넘어가고 있었소!!!”
“뭐이야?”
“애초에 우리 일본대장성의 대처는 이보다 빠를 수 없었소! 은행폐쇄령이 내려졌을 때도, 3일만에 일본결제은행과 도쿄조약을 맺어야 했을때도!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능력이오! 그거라도 없었으면 지금 일본경제가 남아있었을거라 생각하시오?”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머리가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애초에!!! 서반아제국이 하루아침에 무조건 항복을 외치고!!! 나라가 내란으로 공중분해되기 직전인데다 왕실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내가 어찌 예측할 수 있었겠냐는 말이오!!!”
쾅! 쾅! 쾅!
“거짓말처럼 일주일도 안된 시점에서 페소화가 휴짓조각이 되었고!!! 남미국가들보다 소식을 늦게 받은 일본제국은 그 쓰레기더미를 다 떠안을 수 밖에 없었고!!! 이건 대장대신인 내가 아니라 댁들의 외무대신이 문제 아니오!!!”
마쓰가타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외무대신은 자신이 사쓰마번이란 이유로 스페인제국의 소식을 은폐하고 있었던 사실을.
마쓰가타는 심호흡했다.
“미국이 남미대륙에서 공수한 페소화 현금을 무려 태평양함대로 옮겨온 시점부터 글렀던 겁니다. 직접 현금을 숟가락으로 떠 일본 시중은행들의 입에 찔러 넣었으니 공황이 이리 빠르게 진행된 겁니다.”
“…..핑계도 고상하군.”
“핑계가 아니라고!!! 당신네들 육군은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이밀고 쏘면 피할수나 있소?! 시간차없이 총알에 맞고 뒈져버리겠지!!!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지체시키기 위해 해군대신에게 부탁해 현금수송선을 억류시켰던 것이오!!!”
만약 일본결제은행이 미국이나 스위스에서 전보를 통해 거래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최악으로 치닫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함대에 화폐를 이만치 쌓아 요코하마항으로 쳐들어왔고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 거대한 태평양의 대양에 75억달러나 쏟아부으며 인프라를 탄탄하게 구축한 미국이 미친 것이다.
일본의 상상을 초월한 미국의 공업력과 해군력이 공황을 가속화시켰다.
“페소화를 꾸역꾸역 처먹으며 빚을 싸지르기 시작한 5대은행들부터 피똥을 싸기 시작했지요. 그탓에 밑에 있던 민간자본들까지 초토화되었고요. 일본경제를 지탱하는 기둥부터 사라지니 일본경제가 나락을 간 거란 말입니다.”
“……”
“한달도 저희 대장성이 끌어서 한달이나 늦춘겁니다. 맨바닥에 머리부딪혔으면 페소화는 한순간도 억류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게 쏟아진 그날 은행들은 흔들리기 시작했겠지.”
제국의회는 엄숙해졌다.
대장대신이 도쿄조약에서 멱살을 붙들면서까지 일본경제를 챙기던 인사라는건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쓰라 육군대신은 반발했다.
아니, 군부는 아무리 대장대신이 쉽게 말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대장대신과 해군대신의 문제란 말이군.”
“…..아니 지금까지 뭘 들은거요? 이건 자연재해라고!!!”
“-결국 다 핑계고 패배주의자들의 항변일 뿐이오!!! 일본육군은!!! 일본해군의 능력에 강력한 의심을 하는 바이며, 해군대신과 대장대신의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쾅-!
가쓰라 육군대신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야마가타 총리대신은 제국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이꽉 깨물고 가쓰라 육군대신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폭주한 가쓰라는 이를 본체 만체 했다.
가쓰라 육군대신은 생각했다.
저놈들은 다 일본제국을 팔아먹은 매국노들이고 패배주의자들이다. 군비를 늘리고 일본제국민들을 무장시킬 수 있다면 두려울 건 그 무엇도 없었다.
군비증강.
그리고 또 군비증강.
결국 일본제국이 살아남으려면 이것밖에 답은 없었다.
텁-
“…….일단 휴게하지.”
메이지 천황은 의외로 육군대신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았고, 끝까지 경청한 뒤.
휴게를 선언했다.
휴게시간.
…..가쓰라 육군대신은 제국의회의 한구석에서 육군장성들과 짧게 대담했다.
“지금은 우리가 나설 차례요.”
천황폐하께서 본인의 말을 막지 않으셨다.
이는 메이지 천황도 이 난국을 헤쳐나갈 의지가 있단 의미였고, 육군부에도 꽤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의미.
“나머지는 다 변절자들이다. 메이지 유신의 정신은 바닥으로 추락했네.”
작금의 일본제국은 답이 없다.
양이도. 사쓰마번도. 해군도. 이토도. 야마가타도.
다 변절자들 뿐이고, 믿을 수 없는 무뢰배들 뿐이었다.
결국 국제사회는 힘으로 돌아갔으며.
힘이 없으면 도태될 뿐이다.
군부가 내각을 틀어쥘 수 있다면 대일본제국의 군부는 이리 무력하게 짓밟히진 않으리라.
이젠 진정한 유신지사고 우국충사인 일본육군이 일어설 차례였다.
고작 금융가 나부랭이들이 날뛰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젊은 장교들에게 전파하게.”
가쓰라 육군대신은 젊은 육군장교들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짧은 전파 사항을 보냈다.
“…….자네들의 천황폐하에 대한 우국충정을 시험해보겠노라고.”
육군의 사냥개들을 풀었다.
귀관들은 각자 자신의 유신지사로서 가치를 증명하라.
***
일본결제은행.
도쿄 구제금융위원회.
“미쓰비시 탄광의 신용등급은 CCC로 격하. 범죄행위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으니 빼도박도 못할 겁니다. 미쓰비시은행도 현재 1차로 내사와 회계감사중입니다.”
사무엘삭스와 나는 1층 복도에서 콜라를 잔에 따라 마시고 있었다.
그의 취향에 맞았나본지, 삭스는 콜라를 처음마신 그날부터 끼고 살았다.
치익-
“미쓰비시의 작업도 척척 진척되고 있는 모양이군. 제1국립은행 다음의 타겟이 미쓰비시 은행이었지?”
“예, 삭스 이사님. 미쓰비시에겐 우선 프리퀼만 보여준 겁니다.”
솔직히 신용평가가 1주일도 안되서 나오는건 문제가 있어도 너무 있었다.
왜냐하면 내부감사와 회계감사를 진짜 제대로 하기 위해선 한달이 뭔가 반년동안 쑤시고 쑤시고 또 쑤셔야 제대로 된 결과가 도출된다.
하지만 이는 구제금융에 맞지 않은 방법이다.
구제금융.
당장 신용평가때문에 하루 늦어질때마다 도산하는 기업만 수십개는 넘어갈 것이다. 그래서 빠르게 납득할 수 있는 이유만 뽑아내 1차로 졸속처리하는 것이고.
단기어음의 만기는 계속해서 찾아오는데, 단 1엔이라도 갚지 못하면 채무불이행으로 파산이다.
‘차라리 이게 더 이들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나으니까.’
꿀꺽 꿀꺽.
콜라를 목구멍으로 밀어넣었다.
내부감사나 회계감사를 반년동안 각잡고 파고들기 시작하면 일본은행들 진짜 다 죽는다.
의미도 없지.
이미 파산한 기업 내사해서 얻을 이익이 뭐가 있는가.
그래서 졸속처리지만 약식인 1차 신용평가를 진행하는 것이다.
“제1국립은행의 모든 불법자산은 차압해 자산매각부에서 신용등급을 매겨 경매부로 넘겼습니다. 일본결제은행이 해당 자산을 다 매입했으며 아직 보유중입니다.”
“하긴 까다롭지. 조선정부의 공금과 해관세, 그리고 조선인의 토지를 담보로한 대출까지 있으니 말 다했지.”
“예, 이건 조선정부와 협상할때 좋은 카드가 되겠죠. 물론, 불법으로 이뤄진 모든 계약들은 전부 국제사법재판소와 미국, 일본 법원에 넘겼으니 짧으면 3개월 길면 반년안에 1심이 나올겁니다.”
“훌륭하군.”
삭스는 감탄을 내뱉었다.
“그래서 제1국립은행의 처우는?”
“1차적으로 제1금융의 지위를 박탈. 제2금융권으로 강등시켰고, 신용등급은 D로 강등. 강제청산절차에 돌입했고, 마무리로 은행업 면허까지 영구취소시켰습니다.”
“강제 해체군.”
“예, D등급이면 가망없습니다. 곧 산산조각날겁니다.”
야스다은행에 이어 제1국립은행까지 해체.
구제금융을 기다리고 있는 미쓰비시은행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 좋은 꼴은 못볼 것이다.
저벅저벅.
우리는 느긋한 발걸음으로 1층 정문을 나섰다.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쏟아지는 인파가 담벼락 너머로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도쿄경시청의 경관들이 그들의 진입을 막아주고 있었으며, 우리의 호위까지 맡아주고 있었다.
“하하, 삭스 이사님. 재미있는건 조선의 토지를 외국인이 소유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하지만 일본결제은행이 소유한 토지담보계약들. 이건 간접적으로 토지를 소유하는 방법이거든요.”
“담보로 묶어두는것으로 금융거래를 창출해낼 수 있는군.”
“예, 총 500정보입니다. 일본대부업자 놈들, 알마나 해처먹은건지 개항장의 핵심지와 대량의 벼농사 농지를 소유하고 있더군요.”
“그게 다 우리 꺼라 이 소리군.”
“조선정부와 협상을 잘 해야겠지요.”
나는 사무엘 삭스와 일본결제은행, 구제금융위원회의 성과를 논의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도쿄지부의 근처를 돌아다녔다.
“그래도 이정도면 일본정부에게 꽤 호의적으로 다가간 겁니다. 그들의 경제를 완전히 장악하지 않고 여지를 남겨두었으니까요. 결국엔 이 조치들은 혹독하긴 하지만 일본경제를 다시 정상화시켜줄 테니까요.”
“…..그런가?”
“예, 악랄해질려면 더할 수도 있었는데, 도쿄조약이 원체 시원하게 체결되어서 쉽게쉽게 가려고요.”
“하긴 적은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뽑아내는게 최상이지. 자네 천상 월스트리트의 금융가구만.”
“하하. 아닙니다.”
우리는 앞으로의 구제금융 계획에 대해 설계하기 시작했고, 일본경제에 어떻게 말뚝을 박을지 콜라를 마시며 논의했다.
그래서 눈치채지 못했다.
도쿄 경시청의 경관들 사이로 배치된 육군장교들의 모습을. 그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스릉.
젊은 육군장교 중 한 명이 조용히 칼집에서 카타나를 뽑아들었다. 주위로는 다른 장교들이 몸으로 그를 가려주었다.
저벅.
한 걸음.
저벅.
두 걸음.
저벅. 저벅……
발걸음에 점점 가속이 붙었다.
탁. 탁. 탁. 탁탁탁탁탁탁탁.
챙.
카타나를 높게 치켜들고.
쐐애액-
일직선으로 내리그었다.
서걱.
한 차례 절삭음.
삐이이이이이익-!
귓가에 이명이 찌른다.
툭. 툭. 후두둑.
그리고 흙바닥에 핏물이 쏟아졌다.
아마 거리가 모자랐는지, 카타나의 끝은 내 귀를 가르는 선에서 그쳤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에 통증을 느낄 세도 없었다.
내 귓가를 본 사무엘 삭스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Oh shit.”
“……”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핏물이 뚝뚝 떨어진 손바닥을 응시했다.
턱선을 타고 흐르는 핏방울은 끝 첨단에 뭉쳐 손바닥으로 방울방울 떨어졌다.
핏물에 젖은 주먹을 꽉 쥐었다.
“……”
귀에 이명이 거슬린다.
이명이 울리는 귀를 탁탁 쳤다. 슥 옷소매로 핏물을 닦았다.
나는 나를 베고 제압당한 젊은 장교를 내려다보았다.
한동안 지긋이.
지긋이 바라보았다.
“재미있네.”
그리고.
내 얼굴에서 표정이 지워졌다.
끝